목차
1.삼원리설
2.플로기스톤(Phlogiston) 이론
3.기체화학자
4.라부아지에
5.화학혁명
6.화학혁명의 원인
7.라부아지에 이후
2.플로기스톤(Phlogiston) 이론
3.기체화학자
4.라부아지에
5.화학혁명
6.화학혁명의 원인
7.라부아지에 이후
본문내용
구체적 사실들을 집어넣어 주었던 것이다.
라부아지에 이후 화학의 시급한 문제는 알려져 있는 수많은 물질들 중 어느 것이 원소이고 어느 것이 화합물인지를 구별하는 것과 화합물의 조성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중 조성의 문제와 관련해서 베르톨레(Claude Louis Berthollet, 1748∼1822)가 성분비가 여러 가지 변하는 값을 가질 수 있음을 주장한 데 반해, 프루스트(Joseph Louis Proust, 1754∼1826)는 '일정성분비'(definite proportion)의 법칙을 주장한 것이다. 이 논쟁은 곧 프루스트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 이유는 돌튼(John Dalton, 1766∼1844)에 의해서야 제대로 설명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돌튼이 제안한 원자론(atomic theory)이 라부아지에 체계의 틈을 채우는 데 중요한 이론적 도구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1808년 돌튼은 『화학 철학의 새로운 체계』(A New System of Chemical Philosophy)라는 책에서 화학원소의 궁극적 단위는 원자이고 화합물은 이들 원자가 같은 조성과 배열로 결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라부아지에의 이론이 돌튼의 원자론에 의해 보완되어 새로운 이론체계가 갖추어졌고, 베르셀리우스(Jons Jacob Berzelius, 1779∼1848)에 의해 화학 결합의 법칙을 시험하고 원자량을 결정하는 정량 분석이 광범위하게 실시되면서 배수 비율의 법칙은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이리하여 1820년경까지에는 라부아지에에 의해 시작된 화학혁명이 완성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라부아지에 이후 화학의 시급한 문제는 알려져 있는 수많은 물질들 중 어느 것이 원소이고 어느 것이 화합물인지를 구별하는 것과 화합물의 조성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중 조성의 문제와 관련해서 베르톨레(Claude Louis Berthollet, 1748∼1822)가 성분비가 여러 가지 변하는 값을 가질 수 있음을 주장한 데 반해, 프루스트(Joseph Louis Proust, 1754∼1826)는 '일정성분비'(definite proportion)의 법칙을 주장한 것이다. 이 논쟁은 곧 프루스트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 이유는 돌튼(John Dalton, 1766∼1844)에 의해서야 제대로 설명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돌튼이 제안한 원자론(atomic theory)이 라부아지에 체계의 틈을 채우는 데 중요한 이론적 도구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1808년 돌튼은 『화학 철학의 새로운 체계』(A New System of Chemical Philosophy)라는 책에서 화학원소의 궁극적 단위는 원자이고 화합물은 이들 원자가 같은 조성과 배열로 결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라부아지에의 이론이 돌튼의 원자론에 의해 보완되어 새로운 이론체계가 갖추어졌고, 베르셀리우스(Jons Jacob Berzelius, 1779∼1848)에 의해 화학 결합의 법칙을 시험하고 원자량을 결정하는 정량 분석이 광범위하게 실시되면서 배수 비율의 법칙은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이리하여 1820년경까지에는 라부아지에에 의해 시작된 화학혁명이 완성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