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감독 소개 - 미야자키 하야오
<2> 등장 인물 분석
<3> 내용 분석
<4>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를 보고...그 결론에 대하여
<2> 등장 인물 분석
<3> 내용 분석
<4>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를 보고...그 결론에 대하여
본문내용
주치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한 산과 그녀를 사랑하는 아시타카,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제철마을에 머물게 된 아시타카는 재앙신이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인간들과 싸우다 에보시의 총에 맞은 멧돼지신인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이렇게 큰일이 터지게 된 것을 파악하게 된 아시타카는 어떻게 자연과 인간세계를 화해시켜 공존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그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한다. 아시타카가 마을을 떠나려는 순간 에보시의 목숨을 노린 산이 제철마을을 습격한다. 물론 이때도 아시타카는 에보시와 산의 싸움을 말리고, 더 이상의 무모한 전쟁을 막기위한 자신의 의지를 목숨을 내어 놓음으로써 모두에게 보여준다. 신중의 신인 사슴신도 이러한 아시타카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시타카에게 다시 새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생명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사슴신, 그의 존재만으로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무엇이든 차지하려고만 하는 인간 소유를 위해선 다른세계의 파괴에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는 인간세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지코스승이 에보시를 부추겨 인간과 신의 갈등은 점점 더 심각해지게 되고 그 사이에 인간들은 또 다른 인간과의 전쟁으로 서로의 것을 앗아가려한다.
미야자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이후 일관되게 유지해온 문명비판 메시지를 강조한다. 인간 때문에 재앙신이 되어버린 멧돼지 신이 죽어가면서 “역겨운 인간들이여, 내 괴로움, 증오를 아느냐”고 한 것이나, 아시타카가 만난 지코가 “세상이 재앙 그 자체”라고 한 발언에는 자연파괴와 인간문명에 대한 비판이 깔려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인간이 잘못했고 자연은 보존해야만하는 대상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산과 신들의 논리 외에도 숲을 개발해 삶의 터전을 가꾸려는 에보시의 입장을 그리는 데도 상당부분 할애한다.
영화는 이렇게 묻는다.‘자연이 먼저인가, 인간 발전이 먼저인가’라고. 그리고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의 지혜’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인간이 자신의 생존방식을 조금씩 양보하면 자연은 더 큰 것을 되돌려준다”는 아시타카의 말에는 작가의 의도가 실려있는 듯하다. 이는 산과 에보시가 각각 제 갈길을 고수하지만 ‘아시타카’가 어느 한쪽에 서지 않고 둘 사이를 중재하려는 인물로 그려지는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산과 에보시 등 강인한 캐릭터는 여성 히로인을 선호하는 감독의 특성이 반영된 부분이다. 제철마을에서는 여성들이 제철이나 제강 등의 힘든 일을하고 남성들은 단지 식량과 물품 보급만을 담당한다. 제철마을의 두목인 에보시도 여성이고 마을의 운영체제 또한 여성우위의 사회로 설정해 놓음으로써 성차별을 우회적으로 꼬집었으며, 문둥병 환자를 보살피고 그들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줌으로써 에보시를 통해 병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여전한 관심을 표시했다. 이는 에보시가 "남자들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야, 여자들에게 다들 자신을 지킬 수 있게 가르쳤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
영화의 종반부분에서 끝내 에보시는 사슴신을 죽이게 되고, 목이 떨어져 분노한 사슴신은 밤의 모습(디다라봇지)으로 그의 목을 찾아 숲전체를 뒤덮게 된다. 디다라봇지의 형체에 닿는 순간 인간은 그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런 위험을 무릎쓰고도 아시타카는 사슴신의 목을 찾아 산과 함께 사슴신에게 돌려준다. 영화의 엔딩부분은 인간과 자연과의 갈등을 극대화하고 있는 반면 화해 또한 그리고 있다. 에보시는 한쪽 팔을 잃게되고, 사슴신에게 그의 목을 돌려줌으로써 아시타카는 저주를 풀게된다. 그리고 숲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인류의 역사가 뒤로 돌아갈 수 없다. 어쨌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갖가지 물건을 획득하고, 그것을 위해 뭔가를 죽이고, 희생하여 인간이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풍요로워지고, 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서, 자연으로부터의 복수를 받기 시작하는 지금, 우리들은 이러한 삶의 방법을 근본에서부터 반성하는 것이 부득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가며 전진해 왔던 과정에서, 자기들이 도대체,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잘라 버려 왔던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을 똑바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연은 그렇게 연약한 것이 아니므로,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 자신도 그렇기에 둘은 서로 파괴하기보다는 서로 공존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제철마을에 머물게 된 아시타카는 재앙신이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인간들과 싸우다 에보시의 총에 맞은 멧돼지신인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이렇게 큰일이 터지게 된 것을 파악하게 된 아시타카는 어떻게 자연과 인간세계를 화해시켜 공존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그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한다. 아시타카가 마을을 떠나려는 순간 에보시의 목숨을 노린 산이 제철마을을 습격한다. 물론 이때도 아시타카는 에보시와 산의 싸움을 말리고, 더 이상의 무모한 전쟁을 막기위한 자신의 의지를 목숨을 내어 놓음으로써 모두에게 보여준다. 신중의 신인 사슴신도 이러한 아시타카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시타카에게 다시 새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생명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사슴신, 그의 존재만으로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무엇이든 차지하려고만 하는 인간 소유를 위해선 다른세계의 파괴에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는 인간세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지코스승이 에보시를 부추겨 인간과 신의 갈등은 점점 더 심각해지게 되고 그 사이에 인간들은 또 다른 인간과의 전쟁으로 서로의 것을 앗아가려한다.
미야자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이후 일관되게 유지해온 문명비판 메시지를 강조한다. 인간 때문에 재앙신이 되어버린 멧돼지 신이 죽어가면서 “역겨운 인간들이여, 내 괴로움, 증오를 아느냐”고 한 것이나, 아시타카가 만난 지코가 “세상이 재앙 그 자체”라고 한 발언에는 자연파괴와 인간문명에 대한 비판이 깔려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인간이 잘못했고 자연은 보존해야만하는 대상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산과 신들의 논리 외에도 숲을 개발해 삶의 터전을 가꾸려는 에보시의 입장을 그리는 데도 상당부분 할애한다.
영화는 이렇게 묻는다.‘자연이 먼저인가, 인간 발전이 먼저인가’라고. 그리고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의 지혜’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인간이 자신의 생존방식을 조금씩 양보하면 자연은 더 큰 것을 되돌려준다”는 아시타카의 말에는 작가의 의도가 실려있는 듯하다. 이는 산과 에보시가 각각 제 갈길을 고수하지만 ‘아시타카’가 어느 한쪽에 서지 않고 둘 사이를 중재하려는 인물로 그려지는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산과 에보시 등 강인한 캐릭터는 여성 히로인을 선호하는 감독의 특성이 반영된 부분이다. 제철마을에서는 여성들이 제철이나 제강 등의 힘든 일을하고 남성들은 단지 식량과 물품 보급만을 담당한다. 제철마을의 두목인 에보시도 여성이고 마을의 운영체제 또한 여성우위의 사회로 설정해 놓음으로써 성차별을 우회적으로 꼬집었으며, 문둥병 환자를 보살피고 그들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줌으로써 에보시를 통해 병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여전한 관심을 표시했다. 이는 에보시가 "남자들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야, 여자들에게 다들 자신을 지킬 수 있게 가르쳤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
영화의 종반부분에서 끝내 에보시는 사슴신을 죽이게 되고, 목이 떨어져 분노한 사슴신은 밤의 모습(디다라봇지)으로 그의 목을 찾아 숲전체를 뒤덮게 된다. 디다라봇지의 형체에 닿는 순간 인간은 그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런 위험을 무릎쓰고도 아시타카는 사슴신의 목을 찾아 산과 함께 사슴신에게 돌려준다. 영화의 엔딩부분은 인간과 자연과의 갈등을 극대화하고 있는 반면 화해 또한 그리고 있다. 에보시는 한쪽 팔을 잃게되고, 사슴신에게 그의 목을 돌려줌으로써 아시타카는 저주를 풀게된다. 그리고 숲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인류의 역사가 뒤로 돌아갈 수 없다. 어쨌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갖가지 물건을 획득하고, 그것을 위해 뭔가를 죽이고, 희생하여 인간이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풍요로워지고, 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서, 자연으로부터의 복수를 받기 시작하는 지금, 우리들은 이러한 삶의 방법을 근본에서부터 반성하는 것이 부득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가며 전진해 왔던 과정에서, 자기들이 도대체,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잘라 버려 왔던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을 똑바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연은 그렇게 연약한 것이 아니므로,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 자신도 그렇기에 둘은 서로 파괴하기보다는 서로 공존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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