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조선학` 진흥운동의 전개와 `조선학` 인식
3. `조선학` 진흥운동의 단군·실학론
1) 단군론
2) 실학론
4. 맺음말
2. `조선학` 진흥운동의 전개와 `조선학` 인식
3. `조선학` 진흥운동의 단군·실학론
1) 단군론
2) 실학론
4. 맺음말
본문내용
후기·한말을 대상으로 더욱 치밀하게 합리화되고 있었던 일제 관학의 '조선정체성론'을 타파하고자 한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내재적 발전이 어떻게 일제에 의해 파괴되고 왜곡되어 가는가를 밝힘으로써 정체성론에 근거하여 식민지 침략을 '은혜'로 분장하고 있는 일제와 관학자들의 식민지=자본주의 '미화론'의 허구를 폭로하고자 한 것이었다.
4. 맺음말
'조선학' 진흥운동은 1930년대 초반 新幹會運動의 좌절과 만주침략 이후 합법적인 영역에서의 일체의 정치운동이 불가능해진 상황속에서 새로운 운동의 대안으로 안재홍 등 일제에 대한 비타협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민족주의자와 백남운 등 맑스주의의 한 계열에서 참여한 학술적 성격의 운동이었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속에서 '조선학' 진흥운동은 일제 관학의 식민사관에 대항하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고, 그 발전과정의 정당성을 증명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역사인식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엄연히 존재해왔던 모순이나 갈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화된 시각속에서 출발하지 못한다면 민족사의 일방적인 강조나 미화로 흘러버릴 가능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학운동의 의의를 인정하고 있었던 백남운, 김태준 등 일부 맑스주의자의 참여는 조선학운동의 학문적 객관성과 과학성을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기초로 작용하였으며, 아울러 조선의 역사현실과 사회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평가속에서 식민지조선의 현재와 미래를 파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들의 참여는 기존 안재홍, 정인보 등의 조선학운동을 질적으로 보완·발전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1930년대 학술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이렇듯 상호간의 논쟁, 연구를 통해 각각 '조선인식'의 체계를 세우고, 민족주의·맑스주의 진영 모두 자기 정리를 통한 이론의 발전을 이루어나갔던 것이 중요한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이를 통해 일제 관학의 식민사관을 체계적으로 비판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학운동의 제 연구성과는 구체적인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시론적인 입장에서 제시되었던 백남운의 '자본주의맹아론'과 함께 해방 이후 1950·60년대 남북한에서 각각 발전적으로 계승되면서 해방 이후까지 남북한 역사인식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 근대역사인식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 것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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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식 편역, 1991-1993『백남운 전집(1-4)』이론과 실천
1994,『호암전집(1-4)』민속원
1981-1992, 『민세 안재홍선집(1-5)』지식산업사
김영복·강영주 편, 1997『홍기문 조선문화론선집』현대실학사
1997『김태준문학사론선집』현대실학사
김용섭, 1966「일본·한국에 있어서의 한국사서술」『역사학보』31
이기백, 1972「신민족주의 사관론」『문학과 지성』가을호(『한국의 역사인식』하, 창작과 비평사)
강만길, 1975「민족사학론의 반성」『역사학보』68(『한국의 역사인식』하, 창작과 비평사)
이기백, 1975「호암 문일평과 그의 사학」『호암사론선』탐구당
김용섭, 1976「우리나라 근대 역사학의 성립」『한국의 역사인식』하, 창작과 비평사
김용섭, 1976「우리나라 근대 역사학의 발달」『한국의 역사인식』하, 창작과 비평사
김정배, 1979「신민족주의사관」『문학과 지성』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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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1981『한국 근대역사학의 이해』문학과 지성사
강만길, 1985「일제시대의 반식민사학론」『한국사학사의 연구』을유문화사
진영일, 1985「위당 정인보의 사학사상」『공주교대논문집』21
진영일, 1986「위당 정인보의 고대사인식」『공주교대논총』22-1
천관우, 1986「위당 정인보의 사학」『한국근대사산책』,정음문화사
문철영, 1987「호암 문일평의 역사인식」『한국학보』46
한영우, 1987「안재홍의 신민족주의와 사학」『한국독립운동사연구』1
이만열, 1987「일제하의 문화운동」『한국현대사의 제문제』2, 을유문화사
조동걸, 1989「식민사학의 성립과 심화」『한민족독립운동사』5, 국사편찬위원회
이지원, 1991「일제하 안재홍의 현실인식과 민족해방운동론」『역사와 현실』6
이지원, 1994「1930년대 전반기 민족주의 문화운동론의 성격」『국사관논총』51
한영우, 1994「1930년대 민중적·신민족주의적 사학과 조선학운동」『한국민족주의역사학』
홍성찬, 1994「일제하 연전상과의 경제사상과 '경제연구회사건'」『연세경제연구』1
홍성찬, 1996「한국 근현대 이순탁의 정치경제사상 연구」『역사문제연구』창간호
남궁효, 1996「정인보의 '조선학'이론에 관한 연구」『실학사상연구』8, 무악실학회
이지원, 1996「일제하 문화운동 연구의 현황과 과제」『한국사론』국사편찬위원회
이수일, 1996「일제하 박문규의 현실인식과 경제사상 연구」『역사문제연구』창간호
방기중, 1997「해방 후 국가건설문제와 역사학」『김용섭교수정년기념한국사학론총 1-한국사인식과 역사이론』지식산업사
이수일, 1997「1930년대 사회주의자들의 현실인식과 마르크스주의 이해-'城大그룹'을 중심으로」『김용섭교수정년기념한국사학논총 3 - 한국 근현대의 민족문제와 신국가건설』지식산업사
鶴園裕, 1997「近代朝鮮における國學の形成-<朝鮮學>を中心に」『朝鮮史硏究會論文集』35
백일, 1998「1930년대 조선학운동의 전개와 그 성격」국민대 국사학과 석사학위논문
전윤선, 1998「1930년대 '조선학' 진흥운동 연구」연세대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김명구, 2002「한말 일제강점기 민족운동론과 민족주의 사상」부산대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이만열, 1981『한국근대역사학의 이해』문학과 지성사
이기백, 1991『韓國史像의 再構成』일조각
방기중, 1992『한국근현대사상사연구-1930·40년대 백남운의 학문과 정치경제사상』, 역사비평사
조동걸·한영우·박찬승 엮음, 1994『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 비평사
4. 맺음말
'조선학' 진흥운동은 1930년대 초반 新幹會運動의 좌절과 만주침략 이후 합법적인 영역에서의 일체의 정치운동이 불가능해진 상황속에서 새로운 운동의 대안으로 안재홍 등 일제에 대한 비타협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민족주의자와 백남운 등 맑스주의의 한 계열에서 참여한 학술적 성격의 운동이었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속에서 '조선학' 진흥운동은 일제 관학의 식민사관에 대항하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고, 그 발전과정의 정당성을 증명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역사인식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엄연히 존재해왔던 모순이나 갈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화된 시각속에서 출발하지 못한다면 민족사의 일방적인 강조나 미화로 흘러버릴 가능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학운동의 의의를 인정하고 있었던 백남운, 김태준 등 일부 맑스주의자의 참여는 조선학운동의 학문적 객관성과 과학성을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기초로 작용하였으며, 아울러 조선의 역사현실과 사회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평가속에서 식민지조선의 현재와 미래를 파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들의 참여는 기존 안재홍, 정인보 등의 조선학운동을 질적으로 보완·발전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1930년대 학술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이렇듯 상호간의 논쟁, 연구를 통해 각각 '조선인식'의 체계를 세우고, 민족주의·맑스주의 진영 모두 자기 정리를 통한 이론의 발전을 이루어나갔던 것이 중요한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이를 통해 일제 관학의 식민사관을 체계적으로 비판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학운동의 제 연구성과는 구체적인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시론적인 입장에서 제시되었던 백남운의 '자본주의맹아론'과 함께 해방 이후 1950·60년대 남북한에서 각각 발전적으로 계승되면서 해방 이후까지 남북한 역사인식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 근대역사인식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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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중, 1997「해방 후 국가건설문제와 역사학」『김용섭교수정년기념한국사학론총 1-한국사인식과 역사이론』지식산업사
이수일, 1997「1930년대 사회주의자들의 현실인식과 마르크스주의 이해-'城大그룹'을 중심으로」『김용섭교수정년기념한국사학논총 3 - 한국 근현대의 민족문제와 신국가건설』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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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1998「1930년대 '조선학' 진흥운동 연구」연세대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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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걸·한영우·박찬승 엮음, 1994『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 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