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전후부흥기(패전후~1950년대 전반)
2. 경제 부흥 과정
(1) 제1단계 - 혼란기(종전~1946년)
(2) 제 2단계 - 재건을 향한 발족기(1947년~1948년)
(3) 제 3단계 - 경제 안정 계획기(1949년 초~1950년 중반)
(4) 제 4단계 - 한국전쟁 붐 및 조정기(1950년 이후)
(5) 제 5단계 - 긴축 정책기(1953년 이후)
3. 경제 안정 본부의 설치
2. 경제 부흥 과정
(1) 제1단계 - 혼란기(종전~1946년)
(2) 제 2단계 - 재건을 향한 발족기(1947년~1948년)
(3) 제 3단계 - 경제 안정 계획기(1949년 초~1950년 중반)
(4) 제 4단계 - 한국전쟁 붐 및 조정기(1950년 이후)
(5) 제 5단계 - 긴축 정책기(1953년 이후)
3. 경제 안정 본부의 설치
본문내용
기초 만들기 과정에서 *GHQ의 지도 아래 '경제 · 사회의 민주화'가 강력히 추진됐다. 다음 세가지 민주화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 GHQ 연합국 최고 사령관 총사령부의 약칭. 실제로는 미 태평양군 총사령부로서의 기능 을 갖 는 2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더글라스 맥아더가 쌍방의 총사령관을 겸임했다. 외교, 경제, 법무, 운 송, 통신 등 전반에 걸쳐 일본을 지배한 GHQSM 미국 점령 정책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① 농촌의 민주화⇒농지 개혁과 농업 단체의 재편(농업회의 해산과 농업협동조합의 결성)
② 노동의 민주화⇒노동 3법(노동기준법, 노동관계조정법, 노동조합법)의 제정과 그에 기초한 노동자의 단결권, 교섭권의 확립 등
③ 산업조직의 민주화⇒재벌 해체와 집중배제법 제정
가난과 혼란으로부터 경제 재건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합리적인 경제 운영이 필요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해 1946년 8월에 설립된 것이 '경제 안정 본부'다. 이 조직은 같은 해 2월에 만들어진 '경제 위기 긴급 대책' 을 통합 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최고 기획 조정 기구로 GHQ의 지원하에 탄생했다. 인사 · 조직상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① 총재를 내각 총리대신이 겸임하는 한편, 국무대신인 총무처장관을 둔다. 즉 두 사람의 대신을 둔다.
② 직위가 있는 민간인을 부장관 및 국장급으로 등용하고, 베테랑 관료가 국장, 차장 이하의 스태프로 배속된다.
③ 각 성의 청으로부터도 가장 우수한 인재를 보낸다.
GHQ 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강한 요청에 따라 1947년 5월 에는 경제 안정 본부의 기능이 강화, 확충됐다.
이와 함께 종래 각 성(省), 청(廳)이 갖고 있던 경제 관계 행정 대부분이 그 일에 종사했던 스태프를 따라 집중 이관됐다.
경제 안정 본부의 주요 역할을 기본 경제 정책의 입안과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종합 조정이다. 또 물가, 임금, 물류, 무역 등을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이기도 했다.
본부로서는 경제 설정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분석적으로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경제 안정 본부에 모인 다수의 정예 경제학자들이 만든 『경제백서』다. 이에 따라 실증적 자료에 기초한 과학적이고 실태에 맞는 경제 분석이 진행되고, 나아가 백성에 의거한 경제 정책에 실행에 옮겨지게 됐다.
1947년 7월에 발간된 첫 번째 『경제백서』는 「경제실상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이 백서는 종전 직후부터 1946년까지의 '혼란기'의 일본경제 실정을 있는 그대로, 자료에 기초해 알기 쉽게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쟁 전과 전시의 경제 정책이 '지배자에게 불리한 것은 일체 알리지 않고 다만 복종시키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민주적이고 실증적인 방향으로의 대전환을 많은 국민이 실감할 수 있었다.
『경제백서』는 그 뒤에도 매년 발간됐다. 통계가 제데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분석 내용은 실증적이었다. 최신 경제 이론이 일반 국민의 이해를 돕도록 잘 이용되었고, 분석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 GHQ 연합국 최고 사령관 총사령부의 약칭. 실제로는 미 태평양군 총사령부로서의 기능 을 갖 는 2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더글라스 맥아더가 쌍방의 총사령관을 겸임했다. 외교, 경제, 법무, 운 송, 통신 등 전반에 걸쳐 일본을 지배한 GHQSM 미국 점령 정책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① 농촌의 민주화⇒농지 개혁과 농업 단체의 재편(농업회의 해산과 농업협동조합의 결성)
② 노동의 민주화⇒노동 3법(노동기준법, 노동관계조정법, 노동조합법)의 제정과 그에 기초한 노동자의 단결권, 교섭권의 확립 등
③ 산업조직의 민주화⇒재벌 해체와 집중배제법 제정
가난과 혼란으로부터 경제 재건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합리적인 경제 운영이 필요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해 1946년 8월에 설립된 것이 '경제 안정 본부'다. 이 조직은 같은 해 2월에 만들어진 '경제 위기 긴급 대책' 을 통합 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최고 기획 조정 기구로 GHQ의 지원하에 탄생했다. 인사 · 조직상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① 총재를 내각 총리대신이 겸임하는 한편, 국무대신인 총무처장관을 둔다. 즉 두 사람의 대신을 둔다.
② 직위가 있는 민간인을 부장관 및 국장급으로 등용하고, 베테랑 관료가 국장, 차장 이하의 스태프로 배속된다.
③ 각 성의 청으로부터도 가장 우수한 인재를 보낸다.
GHQ 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강한 요청에 따라 1947년 5월 에는 경제 안정 본부의 기능이 강화, 확충됐다.
이와 함께 종래 각 성(省), 청(廳)이 갖고 있던 경제 관계 행정 대부분이 그 일에 종사했던 스태프를 따라 집중 이관됐다.
경제 안정 본부의 주요 역할을 기본 경제 정책의 입안과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종합 조정이다. 또 물가, 임금, 물류, 무역 등을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이기도 했다.
본부로서는 경제 설정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분석적으로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경제 안정 본부에 모인 다수의 정예 경제학자들이 만든 『경제백서』다. 이에 따라 실증적 자료에 기초한 과학적이고 실태에 맞는 경제 분석이 진행되고, 나아가 백성에 의거한 경제 정책에 실행에 옮겨지게 됐다.
1947년 7월에 발간된 첫 번째 『경제백서』는 「경제실상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이 백서는 종전 직후부터 1946년까지의 '혼란기'의 일본경제 실정을 있는 그대로, 자료에 기초해 알기 쉽게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쟁 전과 전시의 경제 정책이 '지배자에게 불리한 것은 일체 알리지 않고 다만 복종시키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민주적이고 실증적인 방향으로의 대전환을 많은 국민이 실감할 수 있었다.
『경제백서』는 그 뒤에도 매년 발간됐다. 통계가 제데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분석 내용은 실증적이었다. 최신 경제 이론이 일반 국민의 이해를 돕도록 잘 이용되었고, 분석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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