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구조주의의 개념
Ⅱ. 구조주의의 역사
Ⅲ. 구조주의의 이론
Ⅳ. 구조주의의 과제
Ⅱ. 구조주의의 역사
Ⅲ. 구조주의의 이론
Ⅳ. 구조주의의 과제
본문내용
고, 신화·민담·소설 등 산문 분야에서 주된 성과를 올렸다. 따라서 시의 체계적인 분석에 있어서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작업 이상으로 진전되었다고는 보기 어려우며, 실제로 시를 분석한 예도 별로 많지 않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실은 구조주의 이론이 시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는 어떤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문학구조의 해명을 위한 구조주의의 문학연구가 문학을 가능한 단순화된 논리의 틀로서 접근해 보고자 한 때문이다. 분명 시의 언어는 소설의 언어에 비하여 보다 복잡하면서도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시는 운율·음성 등 여러 형태의 특성이 복합되어 있다. 따라서 소설에서 기능단위로 서술 체계를 파악하고, 주제 혹은 인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구조적 특징을 파악하는 작업처럼 시를 유형화된 논리의 틀로서 접근하기란 매우 힘든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시의 연구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시의 유형화와 그 유형적 특징을 추출할 수 있는 체계적인 이론의 정립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구조주의 문학연구는 또한 문학작품에서 '문학성'을 찾아내는 것이 궁극적인 과제이지만 이를 찾아내는 방법론이 '문학성'을 얼마나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문학작품에서 '문학성'을 찾아내는 방법론이 '절단'과 '조립'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 문학작품에서 유기적인 총체성을 해체시킬 우려가 이러한 방법론 속에 다분히 내재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마치 생물학자가 생명체를 해부하는 것과 같다. 해부를 한 순간 생명체의 내부 구조는 파악 할 수 있지만, 생명체의 진정한 생명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의 총체적인 구조를 가능한 파괴하지 않고 작품을 치밀히 분석하고 조립한다면 이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즉 부분의 의미 있는 총체가 문학이라는 것을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문학이 부분의 의미 있는 총체이되, 그 총체는 항상 문학을 감싸는 보다 큰 구조 즉 철학, 역사, 사회 등과 서로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진다. 즉 문학은 작가와 독자를 둘러싼 사회의 전체 '세계관'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문학은 작가와 독자가 있을 때 문학으로서의 존재의미를 갖게된다. 문학이 전체 '세계관'의 표현이라면, 이세계관이 어떻게 표현되고 어떠한 관계구조를 가지는지 중요하다. 이는 물론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바이지만, 아직 충분히 심화된 이론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라르, 루카치, 골드망 등이 한 작업들이 대부분 근대 이후 현대 소설에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선택적이라는 인상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문학이 전후 시대의 문학을 다 통괄하지 못하고 몇 편의 두드러진 작품이라도 그 시대의 전 작품을 다 통괄하지 못한다. 또한 문학은 문학만으로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 전체의 구조와 맥락에서 가지는 문학의 의미와 기능을 파악할 때 문학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진정한 문학사를 쓸 수 있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작품도 전후 시대 전체작품의 양상과 관련성을 가능한 면밀히 검토하고 이에 따른 이론을 수립해야 한다.
문제를 이렇게 인식할 때,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노력에는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그것은 이른바 이데올로기에 의한 문학의 결정론적인 해석이다. 골드망의 소설 사회학은 이런 점에서 극복해야 할 두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는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하에서 상부구조는 하부구조 즉 기초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관점이며, 둘째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방적인 해석이다. 골드망은 자본주의 사회가 경제사회의 교환구조에서 일어난 물신현상으로 말미암아 인간들 사이의 어떠한 질적인 관계도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보면서, 이러한 사회에서는 어떤 사회집단도 그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을 소유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첫번째 골드망의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사회적 구조 즉 기초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상부구조가 가능한지 그 범위만을 결정한다는 그람치(Antonio Gramsci)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다.
H. Stuat Hughes, "postcript: Gramsci and Maxist Humanism", Consciousness and Society (New York: Vintage Books, 1958) pp.96∼104.
그리고 두번째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 막스 베버(Max Weber)의 견해를 수용할 수 있다.
H. H. Gerth and C. Wright Mills (ed.), From Max Weber: Essay on Sociology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58), p.293.
베버는 인간이란 사회적 세계에서 일반 질서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근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인간은 주어진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왜 질서가 특정 방식으로 설정되어 있는가를 해석하려 한다. 베버의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문학에서도 세계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여전히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사회적 상황에 대한 사회집단과 작가의 새로운 의미체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계관을 구성하려는 추구가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며, 그러한 의식의 영역이 경제적인 기초의 영향을 받지만 일정 범위 안에서 자율성을 누린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하튼 문학의 '문학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문학의 이론 수립은 실로 어려운 관제이다. 이것은 어쩌면 앞으로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그러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학연구의 이론을 정립하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일단 이 작업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준 것이 구조주의의 문학연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앞으로 구조주의 문학연구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결정론적인 관점을 극복하고 문학작품을 두루 포괄할 수 있는 논리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이론을 정립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이는 문학이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 따지는 데서 이루어질 수 있다.
구조주의 문학연구는 또한 문학작품에서 '문학성'을 찾아내는 것이 궁극적인 과제이지만 이를 찾아내는 방법론이 '문학성'을 얼마나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문학작품에서 '문학성'을 찾아내는 방법론이 '절단'과 '조립'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 문학작품에서 유기적인 총체성을 해체시킬 우려가 이러한 방법론 속에 다분히 내재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마치 생물학자가 생명체를 해부하는 것과 같다. 해부를 한 순간 생명체의 내부 구조는 파악 할 수 있지만, 생명체의 진정한 생명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의 총체적인 구조를 가능한 파괴하지 않고 작품을 치밀히 분석하고 조립한다면 이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즉 부분의 의미 있는 총체가 문학이라는 것을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문학이 부분의 의미 있는 총체이되, 그 총체는 항상 문학을 감싸는 보다 큰 구조 즉 철학, 역사, 사회 등과 서로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진다. 즉 문학은 작가와 독자를 둘러싼 사회의 전체 '세계관'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문학은 작가와 독자가 있을 때 문학으로서의 존재의미를 갖게된다. 문학이 전체 '세계관'의 표현이라면, 이세계관이 어떻게 표현되고 어떠한 관계구조를 가지는지 중요하다. 이는 물론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바이지만, 아직 충분히 심화된 이론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라르, 루카치, 골드망 등이 한 작업들이 대부분 근대 이후 현대 소설에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선택적이라는 인상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문학이 전후 시대의 문학을 다 통괄하지 못하고 몇 편의 두드러진 작품이라도 그 시대의 전 작품을 다 통괄하지 못한다. 또한 문학은 문학만으로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 전체의 구조와 맥락에서 가지는 문학의 의미와 기능을 파악할 때 문학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진정한 문학사를 쓸 수 있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작품도 전후 시대 전체작품의 양상과 관련성을 가능한 면밀히 검토하고 이에 따른 이론을 수립해야 한다.
문제를 이렇게 인식할 때,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노력에는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그것은 이른바 이데올로기에 의한 문학의 결정론적인 해석이다. 골드망의 소설 사회학은 이런 점에서 극복해야 할 두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는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하에서 상부구조는 하부구조 즉 기초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관점이며, 둘째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방적인 해석이다. 골드망은 자본주의 사회가 경제사회의 교환구조에서 일어난 물신현상으로 말미암아 인간들 사이의 어떠한 질적인 관계도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보면서, 이러한 사회에서는 어떤 사회집단도 그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을 소유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첫번째 골드망의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사회적 구조 즉 기초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상부구조가 가능한지 그 범위만을 결정한다는 그람치(Antonio Gramsci)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다.
H. Stuat Hughes, "postcript: Gramsci and Maxist Humanism", Consciousness and Society (New York: Vintage Books, 1958) pp.96∼104.
그리고 두번째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 막스 베버(Max Weber)의 견해를 수용할 수 있다.
H. H. Gerth and C. Wright Mills (ed.), From Max Weber: Essay on Sociology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58), p.293.
베버는 인간이란 사회적 세계에서 일반 질서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근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인간은 주어진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왜 질서가 특정 방식으로 설정되어 있는가를 해석하려 한다. 베버의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문학에서도 세계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여전히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사회적 상황에 대한 사회집단과 작가의 새로운 의미체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계관을 구성하려는 추구가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며, 그러한 의식의 영역이 경제적인 기초의 영향을 받지만 일정 범위 안에서 자율성을 누린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하튼 문학의 '문학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문학의 이론 수립은 실로 어려운 관제이다. 이것은 어쩌면 앞으로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그러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학연구의 이론을 정립하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일단 이 작업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준 것이 구조주의의 문학연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앞으로 구조주의 문학연구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결정론적인 관점을 극복하고 문학작품을 두루 포괄할 수 있는 논리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이론을 정립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이는 문학이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 따지는 데서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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