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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을 확실히 인식한 민중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반침략전쟁을 전개해 나간 귀중한 경험이었다. 동학농민군 내부에서도 문제점이 많이 여러 가지 노출이 되어 정부측과 타협, 농민군 내부에서의 상이한 계층적 기반 등으로 인한 문제점을 지닌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요구한 폐정개혁안의 혁명성은 획기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농민적 토지소유의 확립을 비롯하여 농민층의 사회 경제적 요구를 가장 선명하게 부각시킨 것이었으며 이미 해체되어 가고 있던 봉건체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이었다. 또한 전쟁 자체로는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정부로 하여금 농민층의 요구를 반영한 갑오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한 데에서도 갑오농민혁명이 당시 사회에 끼친 충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농민전쟁을 통해 성장한 농민군의 구성원들은 그 뒤에 일어난 반일의병전쟁이나 민족의 지도자라고 하는 김구선생도 동학군의 접주라는 이야기도 있어 동학농민운동 이후에도 반봉건 반침략운동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갑오농민전쟁은 실로 자주적인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민족운동의 최고봉이었으며 한국근대사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이렇듯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대사의 분수령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혁명이 나의 고향 정읍에서 출발한 것에 대해 매우 자부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동학농민혁명은 그 사실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채 많은 부분들이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고 한다. 이제 동학농민혁명의 연구는 지방사의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근대화 운동에 앞장섰던 발상지에서 태어나고 자라 온 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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