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녹두장군(綠豆將軍)』을 통해 살펴본 동학의 사상과 사회변혁에의 의지 (송기숙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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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설『녹두장군(綠豆將軍)』을 통해 살펴본 동학의 사상과 사회변혁에의 의지 (송기숙 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펼치는 말
 1. 동학의 창도 및 주요 사상 개관
 2. 송기숙 장편소설『녹두장군』
 3. 소설『녹두장군』의 내용분석을 통해 살펴 본 동학사상의 수용형태
 4. 소설『녹두장군』을 통해 살펴 본 사회변혁에의 의지

Ⅲ. 나오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295

당시 각 지방의 지방관들은 대부분 재물을 이용하여 매관매직을 한 관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들어간 만큼 본전을 찾아야겠다는 것이 목민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앞섰음은 안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위에 나열된 세미의 종류만 봐도 당시 지방관의 수탈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위에 세미의 종류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는지 몇 가지를 직접 살펴보자. 가승미란 말질을 할 때 말질을 하고 나서 다시 해보면 부종한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벌충하자고 받는 세미이며, 곡상미는 쥐 같은 것이 먹어 축날 때 벌충하는 것이고, 낙정미는 말질할 때 마당에 떨어져서 축나는 것을 벌충하자는 것이고, 간색미는 색대로 쌀을 뽑아 미질을 검사할 때 축나는 것을 방지하자고 받는 쌀이다. 이렇듯 당시 지방관들은 있건 없건 농민의 생활이 어찌되었건 그에 상관없이 백성들을 쥐어짜듯 수탈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특히 동학도들의 경우는 동학을 나라에서 국법으로 금지하자 지방관들은 이를 빌미로 동학도들에게 많은 수탈을 가하였다.
이러한 수탈에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깨닫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삼례대집회와 고부봉기 등을 통해 민중들은 그것을 스스로 깨달아 갔으며, 그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으로 발전하여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아주 단기간 실천되었던 것이지만 실질적인 성과도 있었다. 바로 1차 봉기 이후 맺은 전주화약을 통해 집강소를 설치한 것이다. 집강소 체제는 농민군이 지방행정에 참여하여 폐정개혁을 실시하였던 단계로 수령, 지방권력과는 별도로 농민권력이 수립되어 주체적으로 기능한 시기였다. 한국민족주의 역사상 동학농민혁명은 민중이 민족주의운동에 주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치의 주체로서 스스로 인식한 과제를 현실화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김혜승,「동학농민운동의 민족주의적 평가에 기초한 한국민족주의의 민중화에 대한 검토」, 『동양정치사상사』2권 2호, (동양정치사상학회, 2003) p.176
어째든 이러한 자각의식은 작품 속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이주호 집 머슴살이를 하다가 호방에게 아내 유월례를 빼앗긴 후 장흥으로 도망친 만득이의 변신은 민중들이 점차 깨달아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만득이는 예전의 만득이가 아니다. 만득이는 농민전쟁에서 작두장사라 불리며 오히려 한 부대의 지휘관이 되기도 한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또한 1차 봉기 후 전주성에서 화약을 맺으며 집강소를 세우게 된다. 집강소는 관(官)에서 세운 기관이 아닌 농민들이 스스로의 항쟁을 통해 쟁취해낸 결과물이다. 물론 당시 일본과 청국이 동학농민혁명을 빌미로 조선으로 군대를 파병하였기에 이를 막기 위한 미봉책이었지만, 이러한 사건은 민중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자각의 의식과 성취는 하나의 정신으로 생생하게 살아 이어져 3.1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민중의 깨달음과 단합된 모습은 사회가 어려울 때 더욱 더 힘을 발휘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작가 역시 격동의 시기에(구체적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전ㆍ후 해서) 이 작품을 쓴 것을 다행이라 말할 정도로 그 영향력을 밝히고 있다. 작가의 후기를 빌어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의 격동기에 농민전쟁을 붙잡고 살았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한 편을 쓴 것 못지않게 다행한 일이었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험난한 현실을 역사의 맥락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을 붙들고 소설로 꾸미는 사이 민중이 자발적인 합의에 이르면 엄청난 힘이 분출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광주항쟁 때도 느낀 사실이지만 나의 민중사관에 대한 낙관론은 이런 데서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송기숙,『녹두장군』12권 (창작과 비평사, 1994), p.328
(『녹두장군』12권 저자 후기 中)
이러한 사회변혁에 대한 의지의 표출은 민중 스스로 깨닫고 실천한 것이다. 그 깨달음과 실천의 정신은 오늘날까지 살아 숨쉬며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비록 동학농민혁명이 외세의 개입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사회변혁에의 의지표출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근대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의 크고 작은 민중의 항쟁들 속에서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Ⅲ. 나오는 말
지금까지 송기숙 장편소설『녹두장군』을 중심으로 작품 속에서 동학의 주요사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민중의 사회변혁에 대한 의지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19세기 말 동학은 여러 혼란 요인으로 인해 창도되었다. 그에 이은 동학농민혁명 역시 이러한 혼란 요인의 상처가 곪고 곪아서 터져버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동학의 창도와 동학농민혁명은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은 단일 역사적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소설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그 중 송기숙 장편소설『녹두장군』은 이러한 동학 소설 중 정상권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에는 민중과 전봉준을 중심으로 19세기 말의 혼란상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또한 ‘인간이 하늘이고 하늘이 곧 인간이다.’라는 동학의 기본 사상을 농민이 스스로 자각하는 과정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자각은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혁명의 주체가 민중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으며, 또한 그 정신은 그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후대로 계승되어 역사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민중이 주체가 되어 힘을 발휘하는데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한 것은 동학농민혁명이 갖는 큰 의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작가가 격동의 시기에 이 작품을 지어가며 민중의 이러한 힘을 이끌어 내고자 하였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설『녹두장군』은 전봉준에 대한 서술을 지나치게 영웅화시켜 서술하였다는 것은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었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전체 이야기 배분 시간이 균형있게 이루어 지지 못한 것도 이 작품의 한계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조병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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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8.31
  • 저작시기2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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