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A. 성적 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들
B. 오늘날 성적소수자들의 인권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배경
C. 한국의 실태
D. 성적소수자의 인권문제를 더욱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인터뷰
E.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의식 조사 설문지
F. 설문조사 분석
G. 과거부터 존재했던 성적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역사적인 면에서의-시각과 의식의 변화
(1) 19세기 말 개항이전의 한국사회에서의 동성애기록들
(2) 해방 이후
(3) 동성애 인권운동 촉발과 한국 자본주의 ― 자기 규정의 역사
H. 성적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인 면에서의 맹점-법적 미약성
(1)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2) 혼인의 자유
(3) '도덕적 소수자' 보호
I. 판례를 중심으로 한 성전환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적 태도
(1) 성전환의 법적 인정
(2) 성전환의 법적 불인정
(3) 대법원의 입장
J. 60억 인구, 60억개의 진실
B. 오늘날 성적소수자들의 인권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배경
C. 한국의 실태
D. 성적소수자의 인권문제를 더욱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인터뷰
E.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의식 조사 설문지
F. 설문조사 분석
G. 과거부터 존재했던 성적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역사적인 면에서의-시각과 의식의 변화
(1) 19세기 말 개항이전의 한국사회에서의 동성애기록들
(2) 해방 이후
(3) 동성애 인권운동 촉발과 한국 자본주의 ― 자기 규정의 역사
H. 성적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인 면에서의 맹점-법적 미약성
(1)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2) 혼인의 자유
(3) '도덕적 소수자' 보호
I. 판례를 중심으로 한 성전환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적 태도
(1) 성전환의 법적 인정
(2) 성전환의 법적 불인정
(3) 대법원의 입장
J. 60억 인구, 60억개의 진실
본문내용
위로 떠오른 것이다.
C. 한국의 실태
■국내 동성애자는 무도 11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이들은 주로 게이바, 게이사우나, 게이 극장이나 공원, 터미널, 공중화장실 등에서 교제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맹은 보고서에서 “국내 동성애자 현황파악은 어렵다”고 전제한 뒤 전국의 1백 50개의 게이바 등 이들의 교제장소에 대한 실사 등을 기초로 동성애자의 수를 11만명으로 추산했다. 이중에는 적극적 동성애자 1만명에다 한두번의 동성애 경험이 있거나 없더라도 게이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과정 중에 있는 소극적 동성애자가 포함됐다. 현맹측은 동성애자들의 에이즈 예방을 위해 전용상담소를 동성애자 밀집지역에 설치하고 어릴 때부터 성적 호기심이나 충격을 잘못 관리해 동성애에 빠져드는 경우가 없도록 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두개의 性’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
어린 시절 박정혜(26.가명)씨는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랐다. 그는 인형을 갖고 소꿉놀이를 해본 적이 없다. 대신 로봇과 총을 가지고 놀았다. 머리에 핀을 꽂는 것도 싫었고, 치마를 입으려 하지도 않았다. 한번은 어머니가 심하게 꾸짖으며 억지로 치마를 입히자 몰래 치마를 찢어버렸다. 학교에선 늘 ‘선머슴아’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사춘기 시절엔 같은 학교를 다니는 여자 후배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엔 혹시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닐까 하고 고민했다. 그러나 동성애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는 고교때부터 어렴풋이 자신의 내면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현수(34.가명)씨는 옛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싫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운동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다른 남자아이들보다 늘 뒤처졌다. 짓궂은 급우들은 얌전한 그를 계집애 같다며 심하게 놀렸다. 중고교 시절 그는 자신의 자연스런 행동에 왜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20세부터 시작된 군대생활은 악몽과도 같았다. 몇몇 선임병은 자신에게 다가와 몸을 비벼대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그는 총을 들고 다 죽여 버리겠다며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다. 대학 졸업 후 구한 직장도 견디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는 곧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 내면의 외침을 따르기로 했다. 박정혜씨와 이현수씨는 모두 ‘트랜스젠더’다. 이들은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하지 않는다. 막상 남성으로 태어났어도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거나 그 반대인 사람들이다. 성전환수술 여부는 트랜스젠더의 판단 기준이 못된다. 수술은 어디까지나 차후의 문제이며 실제로 수술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훨씬 더 많다. 박씨와 이씨도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은 경우다. ‘트랜스젠더’는 원래 정신의학 전문용어지만 요즘 이 말이 전혀 낯설지 않다.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 존재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들을 둘러싼 오해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의 혼동이다.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동성애자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전혀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예컨대 게이는 분명히 자신을 남성으로 여기며 레즈비언도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는 다르다. 결과적으론 육체적 동성을 좋아하게 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적 정체성이 반대인 데서 비롯된다. 트랜스젠더들은 한결같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이 반대였다고 기억한다. 또 그 정체성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 소득도 거두지 못한다.“여자몸으로 태어났지만 내가 남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것을 고쳐보려고 남자 애인도 만들어보고 다른 여자들보다 더 화려한 옷도 입고 다녀봤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트랜스젠더 김현주(25가명)씨의 기억이다. 모든 트랜스젠더는 박정혜이현수씨와 같은 성장과정을 거친다. 어릴 때부터 행동이 남다르다. 그 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때부터 심각한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보수적 집안에서 성장했거나 종교가 있을 경우 더욱 고민이 커진다. 대부분의 경우 가족조차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으며 극심한 갈등과 외로움 속에 자해를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트랜스젠더 김한수(22가명)씨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자살을 세 번 기도했지만 그때마다 동생이 발견했고, 제발 죽지는 말라는 동생의 말에 조금은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고 털어놓았다. 트랜스젠더 상당수가 호르몬을 투약하는 것도 이같은 심적 갈등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다. 호르몬으로 투여하면 외모피부목소리가 어느 정도 변한다. 물론 경제력이 허락해 성전환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 단계까니가는 사람은 드물다(현재까지 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는 1백여명 정도로 추정). 비용도 만만치 않다. 최소 1천만원, 얼굴 성형까지 할 경우엔 수천만원이 든다. 국내에서도 이미10여년 전부터 성전환수술이 이뤄져 왔고, 현재 일부 대학병원과 성형외과에서 수술이 가능하다. 97년부터 이 수술을 해온 장송선(張松善)박사는 “매달 10~20건 정도의 수술 상담이 들어오지만 실제 수술 건수는 1년에 10명 정도”라고 말했다. 물론 수술 목적은 육체의 성을 정신의 성에 일치시키는 것이다. 수술 받은 사람은 대개 결과에 만족하지만 그렇다고 이 수술이 1백퍼센트 반대 성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골격과 성대까지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리수처럼 완벽하게 반대 성으로 거듭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수술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성호르몬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호르몬 주사를 평생 맞아야 한다. 트랜스젠더는 성전환수술 후의 삶이 더 어렵다. 막상 정신과 육체의 성은 일치됐지만 법적인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현선(31가명)씨는 자동차를 몰지만 운전면허증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신분증 제시 때마다 겪는 수모를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신분증을 본 경찰은 예외없이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박씨는 목소리와 외모는 ‘남성’이지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2’로 시작된다. 마침내 그는 96년 3차에 걸친 대수술
C. 한국의 실태
■국내 동성애자는 무도 11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이들은 주로 게이바, 게이사우나, 게이 극장이나 공원, 터미널, 공중화장실 등에서 교제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맹은 보고서에서 “국내 동성애자 현황파악은 어렵다”고 전제한 뒤 전국의 1백 50개의 게이바 등 이들의 교제장소에 대한 실사 등을 기초로 동성애자의 수를 11만명으로 추산했다. 이중에는 적극적 동성애자 1만명에다 한두번의 동성애 경험이 있거나 없더라도 게이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과정 중에 있는 소극적 동성애자가 포함됐다. 현맹측은 동성애자들의 에이즈 예방을 위해 전용상담소를 동성애자 밀집지역에 설치하고 어릴 때부터 성적 호기심이나 충격을 잘못 관리해 동성애에 빠져드는 경우가 없도록 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두개의 性’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
어린 시절 박정혜(26.가명)씨는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랐다. 그는 인형을 갖고 소꿉놀이를 해본 적이 없다. 대신 로봇과 총을 가지고 놀았다. 머리에 핀을 꽂는 것도 싫었고, 치마를 입으려 하지도 않았다. 한번은 어머니가 심하게 꾸짖으며 억지로 치마를 입히자 몰래 치마를 찢어버렸다. 학교에선 늘 ‘선머슴아’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사춘기 시절엔 같은 학교를 다니는 여자 후배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엔 혹시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닐까 하고 고민했다. 그러나 동성애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는 고교때부터 어렴풋이 자신의 내면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현수(34.가명)씨는 옛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싫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운동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다른 남자아이들보다 늘 뒤처졌다. 짓궂은 급우들은 얌전한 그를 계집애 같다며 심하게 놀렸다. 중고교 시절 그는 자신의 자연스런 행동에 왜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20세부터 시작된 군대생활은 악몽과도 같았다. 몇몇 선임병은 자신에게 다가와 몸을 비벼대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그는 총을 들고 다 죽여 버리겠다며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다. 대학 졸업 후 구한 직장도 견디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는 곧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 내면의 외침을 따르기로 했다. 박정혜씨와 이현수씨는 모두 ‘트랜스젠더’다. 이들은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하지 않는다. 막상 남성으로 태어났어도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거나 그 반대인 사람들이다. 성전환수술 여부는 트랜스젠더의 판단 기준이 못된다. 수술은 어디까지나 차후의 문제이며 실제로 수술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훨씬 더 많다. 박씨와 이씨도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은 경우다. ‘트랜스젠더’는 원래 정신의학 전문용어지만 요즘 이 말이 전혀 낯설지 않다.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 존재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들을 둘러싼 오해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의 혼동이다.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동성애자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전혀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예컨대 게이는 분명히 자신을 남성으로 여기며 레즈비언도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는 다르다. 결과적으론 육체적 동성을 좋아하게 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적 정체성이 반대인 데서 비롯된다. 트랜스젠더들은 한결같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이 반대였다고 기억한다. 또 그 정체성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 소득도 거두지 못한다.“여자몸으로 태어났지만 내가 남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것을 고쳐보려고 남자 애인도 만들어보고 다른 여자들보다 더 화려한 옷도 입고 다녀봤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트랜스젠더 김현주(25가명)씨의 기억이다. 모든 트랜스젠더는 박정혜이현수씨와 같은 성장과정을 거친다. 어릴 때부터 행동이 남다르다. 그 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때부터 심각한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보수적 집안에서 성장했거나 종교가 있을 경우 더욱 고민이 커진다. 대부분의 경우 가족조차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으며 극심한 갈등과 외로움 속에 자해를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트랜스젠더 김한수(22가명)씨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자살을 세 번 기도했지만 그때마다 동생이 발견했고, 제발 죽지는 말라는 동생의 말에 조금은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고 털어놓았다. 트랜스젠더 상당수가 호르몬을 투약하는 것도 이같은 심적 갈등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다. 호르몬으로 투여하면 외모피부목소리가 어느 정도 변한다. 물론 경제력이 허락해 성전환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 단계까니가는 사람은 드물다(현재까지 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는 1백여명 정도로 추정). 비용도 만만치 않다. 최소 1천만원, 얼굴 성형까지 할 경우엔 수천만원이 든다. 국내에서도 이미10여년 전부터 성전환수술이 이뤄져 왔고, 현재 일부 대학병원과 성형외과에서 수술이 가능하다. 97년부터 이 수술을 해온 장송선(張松善)박사는 “매달 10~20건 정도의 수술 상담이 들어오지만 실제 수술 건수는 1년에 10명 정도”라고 말했다. 물론 수술 목적은 육체의 성을 정신의 성에 일치시키는 것이다. 수술 받은 사람은 대개 결과에 만족하지만 그렇다고 이 수술이 1백퍼센트 반대 성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골격과 성대까지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리수처럼 완벽하게 반대 성으로 거듭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수술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성호르몬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호르몬 주사를 평생 맞아야 한다. 트랜스젠더는 성전환수술 후의 삶이 더 어렵다. 막상 정신과 육체의 성은 일치됐지만 법적인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현선(31가명)씨는 자동차를 몰지만 운전면허증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신분증 제시 때마다 겪는 수모를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신분증을 본 경찰은 예외없이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박씨는 목소리와 외모는 ‘남성’이지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2’로 시작된다. 마침내 그는 96년 3차에 걸친 대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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