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일제시대 전체주의 식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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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A+ 일제시대 전체주의 식민정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일본통치에 대한 순응과 이탈
1. 순응
2. 이탈
3.1운동과 이상주의

강요된 현대화

식민지 지배하의 정치와 대중사회

관료조직과 군부의 결합

대일협력과 사회분열

본문내용

점이다. 하지만 전쟁이 동화를 가져왔다. 종전 당시에 반수 이상의 정부관리가 조선인으로, 좀더 많은 조선인들이 1930년대 후기와 1940년대 전기에 높은 지위로 승진했다. 이제 국가는 대중사회에 대해 경찰을 이용한 억제력이 필요하게 됐으며, 거꾸로 사회에서는 하층 계급이 출세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경찰을 이용했다. 이에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제공하는 어떤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런 조선인들의 존재는 전시동원이 내려진 정부와 공직에서 무한하게 증대하는 업무수요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1930년 이후 아시아에서 일본의 팽창과 대동아공영권 구상에서 나온 전 아시아인의 동지적 협력이라는 개념이 발전함으로써 큰 변화가 생겼다. 조선인들은 더 이상 대세의 저변에 있지 않았다.1931년 이후, 그리고 만보산 사건(萬寶山 )이후 중간급 특권을 가진 일본 제국의 중간 파트너가 된 것이다. 도쿄의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 또한 소수였지만 조선인이 많이 입학하여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소수의귀공자체재에 귀속 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일본군이 조선인들을 징모했던 방법으로써, 일본제국지배 후기에 조선인들이 얼마나 깊이, 얼마나 여러 분야에서 일본에 동화되어 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점점 더 유동적으로 되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사회에서, 빈틈없는 내부훈련의 안정된 제도에서 성장한 이런 조직이 놀라울 정도로 충성과 결속의 강력한 중심이 된 것이다. 그런 종류의 관료들을 제외하고도 잠재적인 조선인 지도력은 계속 붕괴돼갔다. 극소수의 민족주의자들 이외에는 이 극한적인 억압의 세월을 타협없이 살아갈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해외독립운동의 허약성을 감안하면 이것은 해방 후의 정당이 주로 사회로부터 유리된 지도층에 이해 형성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대일협력과 사회분열
표면적으로 전쟁은 사람들을 이리 저리 이동시키고 교통과 통신을 증대시키며, 그리고 분파주의를 격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약화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전시기간 동안 정치적으로 구분됐던 분열현상은 많은 부분들이 가려졌었지만, 사회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선 통치 최후 15년간의 동원시기에 약간의 출세 기회를 잡으려고 너나없이 동분서주했었다. 이는 일본과 일본의 정치를 마음속 진정으로 좋아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핵심이 아니었다. 문제는, 일본정부에 굴복하거나 권력의 유혹에 넘어간 개개인의 태도를 어느 선가지 엄격하게 제재하느냐 하는 점이다. 대일협력 문제를 놓고 보면 두 서너개의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협력자와 비 협력자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다. 한편,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조선인들의 사회는 작은 그룹과 친목단체로서 사회를 분열하는 한 단위를 형성하게 된다. 제차세계대전이 가져온 환경은 이런 세포들에게 자양분을 주었다.
조선합병이 조선의 정치패턴에 여러 영향을 미쳤지만, 식민지 조선의 관료주의적 계획과는 상반된 것이다. 즉, 대중적 행정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쇠퇴하지 않았다. 민족주의가 일어나 전면에 모습을 나타냈다. 처음으로 한국사회의 절대 다수가 증오스런 외국의 지배라는 사실에 의해 단결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을 가지게 됐다. 일본의 전시동원은 민족주의를 약화시켰다. 동시에 일본은 조선내부의 경제발전 및 근대화에 걸맞은 충분한 사회적*정치적 체제를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일본은 자신이 만든 제도에 조선인들이 참여하는 것을 억제하고, 그것에 전시의 광적인 성장속도를 부과함으로써 그런 제도의 영속성과 그 효과를 약화시켰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일본은 전쟁기간에 중앙정부의 노골적인 조종과 동원에 의해 애착이나 충성심도 없는, 그리고 이전에도 없었던 유동적이고 원자화된 형태로 민중의 힘을 방출시키는 패턴을 만들어 냈다. 제 2차세계대전 중에 일본은 다른 것에서는 꽤 보기 힘든 식민지 전체주의 형태를 조선에 만들어 놓았다.
끝으로 매우 중요한 것은, 일본 식민주의가 공공연하게 정치활동을 금지함으로써 조선인들이 조선 말기에 시해된 옛 조선의 정치패턴과 정치적 본성을 동결시키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다. 해방이 되었을 때, 일부는 조선시대로부터 물려받고, 일부는 근대의 도시화에서 비롯된 중앙권력에 대한 통제 없이 원자적인 접근을 도모하는 오래된 본성이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조선인들이 만족할 수 있고 안정성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를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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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4.09.10
  • 저작시기2004.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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