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저작 연대 및 시기 설명
2. 역사적 배경(1)(2)(3)(4)
3. 이사야서의 주제
4. 내용 전개와 문단 구분
5. 문단별 내용과 역사적 배경
5.1. 이사야가 부르는 노래-예루살렘을 향한 탄식(1-5장)
5.2. 이사야가 품은 희망(6-12장)
5.3. 나의 백성 애굽,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 나의 산업 이스라엘(13-23장)
5.4. 그 날에 부를 노래(24-27장)
5.5. 쓸모 없는 조약에 매달리지 말아라(28-29, 30-31장)
5.6. 공의로 다스릴 왕(32-35장)
5.7. 앗시리아의 예루살렘 침공(36장)
5.8. 이사야와 히스기야(37-39장)
2. 역사적 배경(1)(2)(3)(4)
3. 이사야서의 주제
4. 내용 전개와 문단 구분
5. 문단별 내용과 역사적 배경
5.1. 이사야가 부르는 노래-예루살렘을 향한 탄식(1-5장)
5.2. 이사야가 품은 희망(6-12장)
5.3. 나의 백성 애굽,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 나의 산업 이스라엘(13-23장)
5.4. 그 날에 부를 노래(24-27장)
5.5. 쓸모 없는 조약에 매달리지 말아라(28-29, 30-31장)
5.6. 공의로 다스릴 왕(32-35장)
5.7. 앗시리아의 예루살렘 침공(36장)
5.8. 이사야와 히스기야(37-39장)
본문내용
신을 보내어 도움을 청하였다 (왕하 16:7-9).
이 사건이 이사야가 첫 번 공적 사역을 행한 역사적 배경으로 보인다. 이사야에 의하면 유다는 친앗수르(pro-Assyirian)도 아니요, 반앗수르(anti-Assyirian)도 아니어야 했다. 오직 하나님편(pro-God)에만 서면 되었다. 이사야는 유다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떠나서 쉽게 인간적 화려함과 정책들과 힘들을 의존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사 1:21-23, 2:12-17). 이 모든 것은 북조 이스라엘이 행하던 것이었고, 단지 그것을 조금 늦지만 뒤따라가며 지금 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앗수르는 유다의 진정한 친구는 될 수 없었다. 정복자는 유다가 조공으로 내어놓은 것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남은 것도 강제로 빼앗아 갔다 (사 8:5-8). 유다의 행위는 다른 쥐를 이기기 위해서 고양이의 도움을 청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는 오직 고양이만이 승리자가 될 뿐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남조 유다와 북조 이스라엘이 서로를 향해서 같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생각은 없었고 오직 외적이고 정치적인 실체로만 서로를 파악할 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앗수르왕이 이스라엘의 베가를 폐하고 다메섹을 멸망시켰을 때 (732B.C.) 아하스는 자신의 외교정책을 수정하지 않았다. 그는 폐허된 도시인 다메섹으로 앗수르 왕에게 불려갔다.
(4) 앗수르 왕 Tiglath-pileser III의 죽음과 Shalmaneser V의 등극
이런 앗수르의 왕 Tiglath-pileser III이 727B.C.에 죽었다. 열방들은 이 때가 앗수르의 압제에서 벋어나는 기회로 알고 희망에 들떴다. 도전이 사방에서 순식간에 일어났는데 그 중에 북조 이스라엘의 통치자 호세아가 앞장을 섰다. 그러나 이것이 북조의 영원한 재앙이 되었다. Tiglath-pileser III를 이은 Shalmaneser V는 능력있는 왕이었다. 724B.C.까지 제국의 동방의 반역들을 정리하고 난 뒤에 곧 서방으로 향해서 사마리아를 에워쌌다 (왕하 17:3-7). 사마리아 사람들은 포위된 성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인 공포를 3년동안 경험하였다 (왕하 6:24-29). 약 50년 전의 아모스(암 3:9-11)와 호세아(호 8:5-5, 14:1)의 예언이 이제 성취되게 되었다.
(5) Sargon의 등극과 정복 그리고 의문의 돌연사
사마리아의 함락 전후로 Shalmaneser V는 사망하였고 이어서 Sargon이 등극하였다. 다시 반역이 일어났다. 반란은 바벨론에서 주로 일어났는데 그 왕은 성경에 Merodacklaladan으로 표현된 Marduk-apal-iddina (왕하 20:12, 사 39:1). Sargon은 북쪽에 있는 Urartu의 문제에 7년동안 집중하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없었다. 이 기회는 바벨론뿐 아니라 애굽과 다른 약소국가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사람이 히스기야였다. 그의 정책은 아버지 아하스와는 정반대로 반앗수르였다. 유다는 이제 앗수르가 아니라 애굽을 의지하게 되었다.
여기에 이사야는 전에 아하스에게 비판하였던 것과 같이, 어떤 면에서 더 신날하게(사 29-31장) 비판하였다. 앗수르는 힘이라도 있었지만, 애굽은 힘도 없을 뿐 아니라 필요한 도움의 시기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사 20장).
가나안 지경의 국가들의 앗수르에 대한 반역에 히스기야가 어떻게 참여하였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715-713B.C.). 그러나 Sargon이 714 B.C.에 Urartu에 대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서방으로 진격하여 반란군의 지휘자였던 아소돗왕을 비롯한 서방의 반란을 제압하였다. 이 중에서 히스기야에게 어떤 해를 가한 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Sargon은 이제 남방으로 내려가서 바벨론왕 Mreodach-baladan을 결정적으로 패배시켰다 (710 B.C.). 그는 이제 모든 방향에서 반란을 제압하였다. 그를 기념하여 세운 새 도시인 Dur-Sharrukin(\"mountain of Sargon\")에서 발굴된 비문에 자신의 공적을 화려하게 묘사하였고 자신을 우주의 주로 표현하였다 (ARAB II:53). 이것이 아마 사 14장의 묘사와 잘 맞는 것 같다.
이렇게 Sargon이 이런 상황과 맞는 것은 다른 내용에서도 그러하다. 즉 그는 곧 죽었거나 살해되었다는 보고이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궁전인 Dur-Sharrukin을 706년에 봉헌하고 난 뒤에 1년이 안되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2.3. 구체적 역사적 배경(2) :BC605-539 (사40-55장)
페르샤 제국의 3황제와 이사야서의 관계
(1) Cyrus I (41-48장 사이) : 41:25, 42:1-4, 44:28, 45:1-8, 13, 24, 46:10b-13, 48:14-15
(2) Darius I : 49:5-8, 51:4-8, 52:1,6,13-15, 53:10, 54:11-15, 55:11, 56:1,8, 57:1,11.
(3) Artaxerxes I : 58:1-14, 59:4-15, 60:1,17-1, 61:3b,7-11, 63:1-5.
이 왕이 에스라와 느혜미야에게 성전을 재건하고 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을 재허락한 왕이다.
2.4. 구체적 역사적 배경(3) : BC539-500 (사56-66장)
구체적 역사적 배경이라고 하였지만 사실상 이 장들에서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사항을 거의 알 수 없다. 이것은 1-39장 뿐 아니라 다른 예언서와도 다른 현상이다 (“no historical indicatiors here\", G.I. Emmerson, Isaiah 56-66, 12). 이것은 저자가 의도적으로 감추었다기 보다, 이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저자가 직접 겪을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3. 이사야서의 주제
이사야는 우상 숭배와 사회적 불의 속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민인 유다 백성들로부터 시작하여 타락한 세상 모든 국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 이후에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로 말미암아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룩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자 본서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더
이 사건이 이사야가 첫 번 공적 사역을 행한 역사적 배경으로 보인다. 이사야에 의하면 유다는 친앗수르(pro-Assyirian)도 아니요, 반앗수르(anti-Assyirian)도 아니어야 했다. 오직 하나님편(pro-God)에만 서면 되었다. 이사야는 유다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떠나서 쉽게 인간적 화려함과 정책들과 힘들을 의존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사 1:21-23, 2:12-17). 이 모든 것은 북조 이스라엘이 행하던 것이었고, 단지 그것을 조금 늦지만 뒤따라가며 지금 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앗수르는 유다의 진정한 친구는 될 수 없었다. 정복자는 유다가 조공으로 내어놓은 것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남은 것도 강제로 빼앗아 갔다 (사 8:5-8). 유다의 행위는 다른 쥐를 이기기 위해서 고양이의 도움을 청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는 오직 고양이만이 승리자가 될 뿐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남조 유다와 북조 이스라엘이 서로를 향해서 같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생각은 없었고 오직 외적이고 정치적인 실체로만 서로를 파악할 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앗수르왕이 이스라엘의 베가를 폐하고 다메섹을 멸망시켰을 때 (732B.C.) 아하스는 자신의 외교정책을 수정하지 않았다. 그는 폐허된 도시인 다메섹으로 앗수르 왕에게 불려갔다.
(4) 앗수르 왕 Tiglath-pileser III의 죽음과 Shalmaneser V의 등극
이런 앗수르의 왕 Tiglath-pileser III이 727B.C.에 죽었다. 열방들은 이 때가 앗수르의 압제에서 벋어나는 기회로 알고 희망에 들떴다. 도전이 사방에서 순식간에 일어났는데 그 중에 북조 이스라엘의 통치자 호세아가 앞장을 섰다. 그러나 이것이 북조의 영원한 재앙이 되었다. Tiglath-pileser III를 이은 Shalmaneser V는 능력있는 왕이었다. 724B.C.까지 제국의 동방의 반역들을 정리하고 난 뒤에 곧 서방으로 향해서 사마리아를 에워쌌다 (왕하 17:3-7). 사마리아 사람들은 포위된 성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인 공포를 3년동안 경험하였다 (왕하 6:24-29). 약 50년 전의 아모스(암 3:9-11)와 호세아(호 8:5-5, 14:1)의 예언이 이제 성취되게 되었다.
(5) Sargon의 등극과 정복 그리고 의문의 돌연사
사마리아의 함락 전후로 Shalmaneser V는 사망하였고 이어서 Sargon이 등극하였다. 다시 반역이 일어났다. 반란은 바벨론에서 주로 일어났는데 그 왕은 성경에 Merodacklaladan으로 표현된 Marduk-apal-iddina (왕하 20:12, 사 39:1). Sargon은 북쪽에 있는 Urartu의 문제에 7년동안 집중하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없었다. 이 기회는 바벨론뿐 아니라 애굽과 다른 약소국가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사람이 히스기야였다. 그의 정책은 아버지 아하스와는 정반대로 반앗수르였다. 유다는 이제 앗수르가 아니라 애굽을 의지하게 되었다.
여기에 이사야는 전에 아하스에게 비판하였던 것과 같이, 어떤 면에서 더 신날하게(사 29-31장) 비판하였다. 앗수르는 힘이라도 있었지만, 애굽은 힘도 없을 뿐 아니라 필요한 도움의 시기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사 20장).
가나안 지경의 국가들의 앗수르에 대한 반역에 히스기야가 어떻게 참여하였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715-713B.C.). 그러나 Sargon이 714 B.C.에 Urartu에 대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서방으로 진격하여 반란군의 지휘자였던 아소돗왕을 비롯한 서방의 반란을 제압하였다. 이 중에서 히스기야에게 어떤 해를 가한 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Sargon은 이제 남방으로 내려가서 바벨론왕 Mreodach-baladan을 결정적으로 패배시켰다 (710 B.C.). 그는 이제 모든 방향에서 반란을 제압하였다. 그를 기념하여 세운 새 도시인 Dur-Sharrukin(\"mountain of Sargon\")에서 발굴된 비문에 자신의 공적을 화려하게 묘사하였고 자신을 우주의 주로 표현하였다 (ARAB II:53). 이것이 아마 사 14장의 묘사와 잘 맞는 것 같다.
이렇게 Sargon이 이런 상황과 맞는 것은 다른 내용에서도 그러하다. 즉 그는 곧 죽었거나 살해되었다는 보고이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궁전인 Dur-Sharrukin을 706년에 봉헌하고 난 뒤에 1년이 안되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2.3. 구체적 역사적 배경(2) :BC605-539 (사40-55장)
페르샤 제국의 3황제와 이사야서의 관계
(1) Cyrus I (41-48장 사이) : 41:25, 42:1-4, 44:28, 45:1-8, 13, 24, 46:10b-13, 48:14-15
(2) Darius I : 49:5-8, 51:4-8, 52:1,6,13-15, 53:10, 54:11-15, 55:11, 56:1,8, 57:1,11.
(3) Artaxerxes I : 58:1-14, 59:4-15, 60:1,17-1, 61:3b,7-11, 63:1-5.
이 왕이 에스라와 느혜미야에게 성전을 재건하고 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을 재허락한 왕이다.
2.4. 구체적 역사적 배경(3) : BC539-500 (사56-66장)
구체적 역사적 배경이라고 하였지만 사실상 이 장들에서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사항을 거의 알 수 없다. 이것은 1-39장 뿐 아니라 다른 예언서와도 다른 현상이다 (“no historical indicatiors here\", G.I. Emmerson, Isaiah 56-66, 12). 이것은 저자가 의도적으로 감추었다기 보다, 이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저자가 직접 겪을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3. 이사야서의 주제
이사야는 우상 숭배와 사회적 불의 속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민인 유다 백성들로부터 시작하여 타락한 세상 모든 국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 이후에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로 말미암아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룩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자 본서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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