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본론-
1. 봉건제의 개념
2. 봉건제의 특징
(1)봉건제의 기원
(2)주종관계의 성립과 상호의무
(3)기사제도와 기사도
3.장원제도
(1)고전 장원의 구조와 특징
(2)영주의 경제외적 강제권
(3)농노의 부역 노동
(4)봉건제에 내재된 역동성
-결론-
-본론-
1. 봉건제의 개념
2. 봉건제의 특징
(1)봉건제의 기원
(2)주종관계의 성립과 상호의무
(3)기사제도와 기사도
3.장원제도
(1)고전 장원의 구조와 특징
(2)영주의 경제외적 강제권
(3)농노의 부역 노동
(4)봉건제에 내재된 역동성
-결론-
본문내용
본을 위시한 영미계통의 일련의 학자들도 봉건제란 고도로 조직화된 정치체제가 몰락 또는 약화될 때 이에 대한 응전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통치조직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막스 베버는 봉건제를 라이투르기적 봉건제, 가산제적 봉건제, 자유로운 봉건제 등으로 나누고, 다시 그중 마지막 자유로운 봉건제를 종사제적 봉건제, 녹봉적 봉건제, 레엔적 봉건제 등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되, 서유럽 봉건제의 이념형을 레엔적 봉건제로 보고, 그 법제적 특징들을 엄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봉건제를 하나의 지배형태로 파악하면서 레엔 봉건제하에서의 국가권력의 분산을 검토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의 견해 역시 봉건제에 관한 정치적 해석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하겠다.
봉건제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 해석은 동아시아에서의 봉건제의 개념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봉건제에 대한 법제사적 해석이 대체로 유럽 중심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데 비하여 정치적 해석이 세계사적 관점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전자가 주종제와 봉제도를 유럽 특유의 현상으로 보려는 데 대해서 후자가 동서양에서의 지방분권적 통치방식을유사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 하겠다.
봉건제의 정치적 측면을 강조한 정치적 해석과는 달리 그 경제적 측면을 중시한 것은 자칫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에 의해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실상 봉건제의 경제적 기반 연구에 전력했던 선구자들은 18세기 후반의 몇몇 학자들이다. 애덤 스미드에 의해서 마무리되는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봉건제의 경제적 기반은 바로 농촌의 장원제(seigneurie rurale)이며 따라서 봉건제란 바로 장원제를 의미하였다. 이들은 화폐사용과 상업이 쇠퇴함에 따라 토지재산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토지재산을 유력자들이 장악하게 됨에 따라 농민들은 모든 희망과 의욕을 잃게 되고 그 결과 경제는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1789년 8월 11일 프랑스 제헌의회가 봉건제의 폐지를 선언했을 때 그 의원들이 이해하고 있던 봉건제란 바로 장원제 아래서의 농민들의 부담들이었던 것이다. 혁명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미 법제사적 의미의 봉건제 즉 주종제와 봉제도, 또는 정치적 의미의 봉건제 즉 지방분권제는 사실상 소멸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봉건제의 경제적 측면에 주목하여 봉건제를 장원제나 자연경제와 거의 동일시하는 이러한 견해를 우리는 일부 마르크스주의 사가까지를 포함한 몇몇 유럽 경제사가에게서 볼 수 있다.
봉건제의 경제적 측면을 중시하되 그 개념을 극단적으로 확대한 것이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다. 그러나 봉건제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인 마르크스 자신은 정작 봉건제의 개념 자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리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봉건제에 대한 개념규정이나 논의는 마르크스 이후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서 여러모로 행해져오고 있다. 그들이 봉건제의 기본 성격을 그 상부구조인 군사제도나 법제도 또는 지방분권적 통치체제의 측면에서 파악하기보다는 이들의 하부구조로서의 경제적, 사회적 기반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거슨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봉건제의 개념규정에서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M. 돕과 같은 학자는 봉건제의 본질을 자본주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생산양식”이라 규정하면서, 봉건제를 사실상 “농노제”와 동일시한다.
경제구조를 계급구조를 계급구조의 주요한 바탕으로 보는 이러한 견해는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또는 정신적 삶의 제반과정을 조건짓는 “결정요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론과 결부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포크로프스키나 스위지 같은 사람들은 봉건제를 교환경제와 대비되는 자급자족적 “자연경제” 즉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 로 파악한다. 봉건제의 붕괴 원인 그리고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학자들 사이의 논쟁이 이러한 대립된 주장과 결부되어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봉건제의 개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 지니고 있는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봉건제를 인류역사 발전의 한 단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 사학자들은 스탈린에 의해서 제시된 바, 원시공동체사회, 노예제사회, 봉건제사회, 자본주의사회 및 사회주의사회를 인류역사 발전의 5단계로 규정한다. 이러한 5단계 발전설은 물론 유럽의 역사적 경험을 기준으로 하여 정식화된 것인데, 그들은 이것을 인류역사의 보편적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이래서 그들은 봉건제를 세계 대부분의 국민이 통과해 온 하나의 단계로 본다. 심지어는 반드시 겪어야 할 단계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들도 각 국민들이 처해 있던 발전의 상황에 따라 봉건제가 다양한 양상을 띠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 기본특징은 모든 국민, 적어도 주요한 대부분의 국민에게 그대로 적용되며 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 봉건제의 개념을 그 사회경제적 기반 위에 세우는 것은 분명히 봉건제의 기본 성격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하고 바람직한 일임에 특림없다. 봉건제의 기본성격을 그 사회경제적 기반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법제사적 측면이나 정치적 측면에서만 파악한다는 것은 그만큼 불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봉건제를 역사발전의 한 단계로 보면서 근대 자본즈의사회에 앞서는 중세사회를 봉건제사회로 규정하는 것 또한 인류역사 발전의 과정을 거시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을 정식화한 여러 발전 단계설 중 마르크스주의적 그것보다 더 체계적이며 포괄적인 이론은 아직 제시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유럽사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는 데 그것은 매우 유력한 작업가설임에 특림없으며, 중세 유럽 사회의 특지응ㄹ 이해하는 데 마르크스주의적 봉건제 해석은 매우 유용한 개념들임이 사실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럽사 해석에 유용한 이 이론을 이용하여 비유럽 세계에 대한 비교사학적 연구를 시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이처럼 유용하고 유력한 작업가설을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법칙으로 확대해석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이를 교조화하고 도식화하여 그 유연성을
봉건제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 해석은 동아시아에서의 봉건제의 개념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봉건제에 대한 법제사적 해석이 대체로 유럽 중심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데 비하여 정치적 해석이 세계사적 관점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전자가 주종제와 봉제도를 유럽 특유의 현상으로 보려는 데 대해서 후자가 동서양에서의 지방분권적 통치방식을유사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 하겠다.
봉건제의 정치적 측면을 강조한 정치적 해석과는 달리 그 경제적 측면을 중시한 것은 자칫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에 의해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실상 봉건제의 경제적 기반 연구에 전력했던 선구자들은 18세기 후반의 몇몇 학자들이다. 애덤 스미드에 의해서 마무리되는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봉건제의 경제적 기반은 바로 농촌의 장원제(seigneurie rurale)이며 따라서 봉건제란 바로 장원제를 의미하였다. 이들은 화폐사용과 상업이 쇠퇴함에 따라 토지재산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토지재산을 유력자들이 장악하게 됨에 따라 농민들은 모든 희망과 의욕을 잃게 되고 그 결과 경제는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1789년 8월 11일 프랑스 제헌의회가 봉건제의 폐지를 선언했을 때 그 의원들이 이해하고 있던 봉건제란 바로 장원제 아래서의 농민들의 부담들이었던 것이다. 혁명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미 법제사적 의미의 봉건제 즉 주종제와 봉제도, 또는 정치적 의미의 봉건제 즉 지방분권제는 사실상 소멸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봉건제의 경제적 측면에 주목하여 봉건제를 장원제나 자연경제와 거의 동일시하는 이러한 견해를 우리는 일부 마르크스주의 사가까지를 포함한 몇몇 유럽 경제사가에게서 볼 수 있다.
봉건제의 경제적 측면을 중시하되 그 개념을 극단적으로 확대한 것이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다. 그러나 봉건제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인 마르크스 자신은 정작 봉건제의 개념 자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리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봉건제에 대한 개념규정이나 논의는 마르크스 이후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서 여러모로 행해져오고 있다. 그들이 봉건제의 기본 성격을 그 상부구조인 군사제도나 법제도 또는 지방분권적 통치체제의 측면에서 파악하기보다는 이들의 하부구조로서의 경제적, 사회적 기반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거슨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봉건제의 개념규정에서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M. 돕과 같은 학자는 봉건제의 본질을 자본주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생산양식”이라 규정하면서, 봉건제를 사실상 “농노제”와 동일시한다.
경제구조를 계급구조를 계급구조의 주요한 바탕으로 보는 이러한 견해는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또는 정신적 삶의 제반과정을 조건짓는 “결정요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론과 결부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포크로프스키나 스위지 같은 사람들은 봉건제를 교환경제와 대비되는 자급자족적 “자연경제” 즉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 로 파악한다. 봉건제의 붕괴 원인 그리고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학자들 사이의 논쟁이 이러한 대립된 주장과 결부되어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봉건제의 개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 지니고 있는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봉건제를 인류역사 발전의 한 단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 사학자들은 스탈린에 의해서 제시된 바, 원시공동체사회, 노예제사회, 봉건제사회, 자본주의사회 및 사회주의사회를 인류역사 발전의 5단계로 규정한다. 이러한 5단계 발전설은 물론 유럽의 역사적 경험을 기준으로 하여 정식화된 것인데, 그들은 이것을 인류역사의 보편적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이래서 그들은 봉건제를 세계 대부분의 국민이 통과해 온 하나의 단계로 본다. 심지어는 반드시 겪어야 할 단계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들도 각 국민들이 처해 있던 발전의 상황에 따라 봉건제가 다양한 양상을 띠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 기본특징은 모든 국민, 적어도 주요한 대부분의 국민에게 그대로 적용되며 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 봉건제의 개념을 그 사회경제적 기반 위에 세우는 것은 분명히 봉건제의 기본 성격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하고 바람직한 일임에 특림없다. 봉건제의 기본성격을 그 사회경제적 기반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법제사적 측면이나 정치적 측면에서만 파악한다는 것은 그만큼 불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봉건제를 역사발전의 한 단계로 보면서 근대 자본즈의사회에 앞서는 중세사회를 봉건제사회로 규정하는 것 또한 인류역사 발전의 과정을 거시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을 정식화한 여러 발전 단계설 중 마르크스주의적 그것보다 더 체계적이며 포괄적인 이론은 아직 제시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유럽사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는 데 그것은 매우 유력한 작업가설임에 특림없으며, 중세 유럽 사회의 특지응ㄹ 이해하는 데 마르크스주의적 봉건제 해석은 매우 유용한 개념들임이 사실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럽사 해석에 유용한 이 이론을 이용하여 비유럽 세계에 대한 비교사학적 연구를 시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이처럼 유용하고 유력한 작업가설을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법칙으로 확대해석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이를 교조화하고 도식화하여 그 유연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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