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무신란의 발생
2. 무인의 정권교체
3. 최씨 무신정권의 성립과 그 지배기구
4. 무신집권기의 사회
(1) 지배층의 재편성
(2) 농민봉기와 종속구역의 변화
5. 무신집권기의 문화
(1) 불교계의 변화와 조계종의 성립
(2) 문인들의 동향과 문학
2. 무인의 정권교체
3. 최씨 무신정권의 성립과 그 지배기구
4. 무신집권기의 사회
(1) 지배층의 재편성
(2) 농민봉기와 종속구역의 변화
5. 무신집권기의 문화
(1) 불교계의 변화와 조계종의 성립
(2) 문인들의 동향과 문학
본문내용
장경, 즉 팔만대장경의 판각이었다. 현재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이 대장경 판은 자체가 미려하고 목판제작이 정교한 것으로 유명하며, 68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불교 전적들의 교정이 정확한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 세계적인 문화재이다..
(2) 문인들의 동향과 문학
문인들은 무신정권아래서 문필과 행정사무의 기능인으로서 벼슬을 구하거나 그 문객이 되어 무인지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시나 문장을 짓곤 하였다. 그들은 개인적인 창작에서도 정치와 사회에 대한 견해를 지극히 조심스럽게 표명하였다. 사상 면에서 보면 고려전기 유학 발전의 여파로 임춘과 같은 인물에서는 새로운 유학인 성리학에 대한 소양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가 벼슬길에도 나아가지 못하고 가난에 시달리다 끝내 젊은 나이로 죽고 말았듯이, 새로운 사상이 뻗어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규보는 최씨 정권 아래서 재상의 직위에까지 오른 바 있지만, 재정 지원이 없어 국학이 유명무실해진 현실을 탄식하며 국학의 부흥에 기약 없는 희망을 갖는 데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문학에서는 시화, 고사, 전설 등을 소재로 하여 이를 소일거리 이야기 형태로 표현한 글들이 유행하였다.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 이규보의 ‘백운소설’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었는데, 이러한 작품들의 작자는 당대의 손꼽히는 문필가로서 최씨 정권에 발탁되어 활동한 인물들이었다.
이 작품들은 비록 한담 식의 글들이지만, 그 속에는 무신정권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나마 종종 작자 나름의 생각이 담기곤 하였다. 특히 고사를 다룬 글들 중에는 ‘삼국사기’에서 소홀히 다룬 전통문화에 대한 사실들에 주목하여, 새로운 역사인식을 모색하는 면도 엿보인다. 그러한 역사인식은 다른 형태로도 저술되었으니, 이규보는 서사시 ‘동명왕편’에서 고대 신화에 대해 부정적인 김부식의 역사이해에서 벗어나, 고대 문화에 내재된 기상과 활력을 새로이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무신정권의 기반이 확고해진 이후 문인들은 무신들이 주도하는 현실에 순응하면서도, 억눌린 현실로부터 무언가 변화를 꿈꾸었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체가라는 새로운 유형의 문인 시가가 등장하여, 이후 고려후기와 조선전기에 걸쳐 유행하였다. 최씨 집권기에 지어진 ‘한림별곡’은 당시 문인들의 문필 재능과 지식을 과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당시 문인들의 주변에서 높게 평가되거나 애호되는 것들을 호쾌한 기분으로 노래 한 것이다.
(2) 문인들의 동향과 문학
문인들은 무신정권아래서 문필과 행정사무의 기능인으로서 벼슬을 구하거나 그 문객이 되어 무인지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시나 문장을 짓곤 하였다. 그들은 개인적인 창작에서도 정치와 사회에 대한 견해를 지극히 조심스럽게 표명하였다. 사상 면에서 보면 고려전기 유학 발전의 여파로 임춘과 같은 인물에서는 새로운 유학인 성리학에 대한 소양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가 벼슬길에도 나아가지 못하고 가난에 시달리다 끝내 젊은 나이로 죽고 말았듯이, 새로운 사상이 뻗어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규보는 최씨 정권 아래서 재상의 직위에까지 오른 바 있지만, 재정 지원이 없어 국학이 유명무실해진 현실을 탄식하며 국학의 부흥에 기약 없는 희망을 갖는 데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문학에서는 시화, 고사, 전설 등을 소재로 하여 이를 소일거리 이야기 형태로 표현한 글들이 유행하였다.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 이규보의 ‘백운소설’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었는데, 이러한 작품들의 작자는 당대의 손꼽히는 문필가로서 최씨 정권에 발탁되어 활동한 인물들이었다.
이 작품들은 비록 한담 식의 글들이지만, 그 속에는 무신정권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나마 종종 작자 나름의 생각이 담기곤 하였다. 특히 고사를 다룬 글들 중에는 ‘삼국사기’에서 소홀히 다룬 전통문화에 대한 사실들에 주목하여, 새로운 역사인식을 모색하는 면도 엿보인다. 그러한 역사인식은 다른 형태로도 저술되었으니, 이규보는 서사시 ‘동명왕편’에서 고대 신화에 대해 부정적인 김부식의 역사이해에서 벗어나, 고대 문화에 내재된 기상과 활력을 새로이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무신정권의 기반이 확고해진 이후 문인들은 무신들이 주도하는 현실에 순응하면서도, 억눌린 현실로부터 무언가 변화를 꿈꾸었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체가라는 새로운 유형의 문인 시가가 등장하여, 이후 고려후기와 조선전기에 걸쳐 유행하였다. 최씨 집권기에 지어진 ‘한림별곡’은 당시 문인들의 문필 재능과 지식을 과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당시 문인들의 주변에서 높게 평가되거나 애호되는 것들을 호쾌한 기분으로 노래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