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개념의 정의
1) 금융소득
(1) 이자소득
(2) 배당소득
2) 이자에 관한 일반적 이해
(1) 고전적 이자학설
(2) 근대적 이자학설
(3) 새로운 이자학설
문제 분석
성경적 반성
1) 돈에 관한 성경적 입장
2) 이자소득에 관한 성경적 입장
신학(교리)적 반성-칼빈을 중심으로
윤리적 논의들
1) 경제관에 관한 입장
2) 종교개혁 전 이자소득에 관한 입장
3) 종교개혁 당시 이자소득에 관한 입장
4) 현대에 나타나는 금융(이자)소득에 관한 입장
(1) 일반적인 이자에 관한 입장
(2) 주식에 관한 입장
교회의 실천
1) 목회적 실천
2) 사회적 실천
3) 법제정(법제화)을 통한 실천
결론
참고문헌
개념의 정의
1) 금융소득
(1) 이자소득
(2) 배당소득
2) 이자에 관한 일반적 이해
(1) 고전적 이자학설
(2) 근대적 이자학설
(3) 새로운 이자학설
문제 분석
성경적 반성
1) 돈에 관한 성경적 입장
2) 이자소득에 관한 성경적 입장
신학(교리)적 반성-칼빈을 중심으로
윤리적 논의들
1) 경제관에 관한 입장
2) 종교개혁 전 이자소득에 관한 입장
3) 종교개혁 당시 이자소득에 관한 입장
4) 현대에 나타나는 금융(이자)소득에 관한 입장
(1) 일반적인 이자에 관한 입장
(2) 주식에 관한 입장
교회의 실천
1) 목회적 실천
2) 사회적 실천
3) 법제정(법제화)을 통한 실천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기능을 수행한다. 주식의 매입을 통해서 여유자금이 있는 집단(주로 개인과 가계)이 자금이 부족한 집단(주로 기업)에게로 자금이 이동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생산을 결국 극대화하는 것이다.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하는 주식투자가 아니라면 모험을 무릅쓰고 투자함으로써 생겨나는 소득은 이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자가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 23:4)의 말씀과 같이 주식을 그 자체에 목적을 두지 말고 자본주의가 준 경제생활의 수단으로서 소신있게 투자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 얻은 소득을 다른 사람에게 삶의 지혜를 보여 주는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시는 길이 될 수 있다. 이는 기업이 번 돈을 배당해 주는 데 참여하여 산업발전과 자본주의의 경제발전에 동참하는 의미 또한 가진다. 단, 다른 사업을 하거나 직장에서 받는 봉급으로 돈을 벌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을 증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증권에 투자한다는 전제를 가져야 한다. 이만기, 『기독교와 경제윤리』, pp. 238-242.
그러나 주식을 논함에 있어서 그 부정적인 부분이 있음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칼 마르크스가 잉여가치의 학설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노동수입의 거의 전부가 불로소득, 은행 예금이나 채권이나 주식 등에서 생기는 이익, 다시 말하면 생산자본가의 자본의 이익으로 공제되어 버려서 실제로 생산을 위하여 노동한 사람들은 그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에밀 브루너, 『정의와 사회질서』, p. 211.
사실 주식에도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식투자인구가 700만을 넘어섰다는 88년 6월 말에 약 30억 주의 주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 50주(약 100만원 어치) 미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약 433만명으로(전체 투자자의 63.33%) 이들이 가진 주식을 모두 합해도 전체주식의 3.14%에 불과하였다. 반면에 1만주(약 2억원 상당) 이상을 가지고 있는 주주는 17500명으로 전체 주식투자인구의 0.25%에 그쳤으나 가지고 있는 주식수는 전체의 51.6%를 넘어섰다. 차성진, “주식투자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새가정』 통권 391호(1989, 5), pp. 108-113.
기업들이 주식회사로 운영되는 것은 투자자측에서 볼 때에는 작은 자금으로도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과 은행예금보다는 다소 큰 위험을 지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필요시에 쉽게 현금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국민경제적 시각에서 볼 때에는 시중의 유휴자금을 금융중개기관을 건치지 않고 직접 산업자금으로 동원할 수 있다는 점과 주식소유의 고도분산을 통해 소수 자본가의 산업지배로부터 벗어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함으로써 산업의 민주화와 기업의 사회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점이 현재 사회에서는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주식회사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거대기업들이 하나같이 개인자본가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서 사실상 개인기업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는 주식시장이 개인자본가들의 영리추구를 위한 도구로 이용될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제도로 역할할 수 없다. 박판영, “주식투자와 투기”, 『살림』 제 21권(1990.8), pp. 94-97.
또한 주식에 있어 하나의 문제는 정부의 정책과 각종 정치적 의도가 주식에 개입된다는 의혹이다. 위의 책, pp. 97-98.
이러한 빈익빈부익부 현상, 기업의 개인자본가의 절대적인 영향력, 정부의 개입 등이 주식투자자들로 하여금 주식의 긍정적인 면만을 볼 수 없게 한다. 게다가 여유자금이 아닌 살림자금을 주식에 투자하며 요행을 바라는 투자자들의 면모는 주식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주식투자는 그 유용성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지지만을 얻기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주식투자가 기독교윤리적으로 보다 인정받는 행위가 되려면 그 안에 청지기적 의식을 가진 투자자로서의 마음이 요구될 뿐 아니라 사회적인 제도와 법률 등에서, 그리고 그 실행에 있어서 변혁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만약 그러한 변화가 불가능하다면 주식은 그 원래의 의도에서 벗어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청지기적인 의식을 가진 투자자들에 관하여 대천덕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출처 불명
“어떤 크리스천 그룹이 합법적이며 훌륭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사업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시장에 상장해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 크리스천 그룹은 그 회사의 대부분의 주식을 구입해 노동자들에게 적정수준의 임금을 주고 값싸고 품질좋은 제품을 만들도록 회사에 압력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식을 팔 경우에는 자신이 투자한 금액에다가 인플레로 인한 손실액만큼만 찾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결코 주식만 가지고 놀고 먹을 수는 없는 거시고, 잉여금을 그 회사에 투자하게 될 것이며 결국 자신의 밥벌이는 자신이 노력해서 벌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기독인들이 고액의 이익을 요구하지 않고 청지기의 신분으로서 주식을 산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실업자와 불운한 사람들은 줄어들 것이며 그들은 ‘자비’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게 될 것입니다. 미가서 6장 8절은 정의를 첫 번째로, 자비를 두 번째로,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종교를 세 번째로 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명령에 순종할 것이며, 정의와 자비에 유의할 것입니다.”
주식투자를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사회는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잠 15:6), “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잠 15:27),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그러나 주식을 논함에 있어서 그 부정적인 부분이 있음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칼 마르크스가 잉여가치의 학설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노동수입의 거의 전부가 불로소득, 은행 예금이나 채권이나 주식 등에서 생기는 이익, 다시 말하면 생산자본가의 자본의 이익으로 공제되어 버려서 실제로 생산을 위하여 노동한 사람들은 그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에밀 브루너, 『정의와 사회질서』, p. 211.
사실 주식에도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식투자인구가 700만을 넘어섰다는 88년 6월 말에 약 30억 주의 주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 50주(약 100만원 어치) 미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약 433만명으로(전체 투자자의 63.33%) 이들이 가진 주식을 모두 합해도 전체주식의 3.14%에 불과하였다. 반면에 1만주(약 2억원 상당) 이상을 가지고 있는 주주는 17500명으로 전체 주식투자인구의 0.25%에 그쳤으나 가지고 있는 주식수는 전체의 51.6%를 넘어섰다. 차성진, “주식투자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새가정』 통권 391호(1989, 5), pp. 108-113.
기업들이 주식회사로 운영되는 것은 투자자측에서 볼 때에는 작은 자금으로도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과 은행예금보다는 다소 큰 위험을 지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필요시에 쉽게 현금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국민경제적 시각에서 볼 때에는 시중의 유휴자금을 금융중개기관을 건치지 않고 직접 산업자금으로 동원할 수 있다는 점과 주식소유의 고도분산을 통해 소수 자본가의 산업지배로부터 벗어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함으로써 산업의 민주화와 기업의 사회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점이 현재 사회에서는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주식회사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거대기업들이 하나같이 개인자본가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서 사실상 개인기업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는 주식시장이 개인자본가들의 영리추구를 위한 도구로 이용될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제도로 역할할 수 없다. 박판영, “주식투자와 투기”, 『살림』 제 21권(1990.8), pp. 94-97.
또한 주식에 있어 하나의 문제는 정부의 정책과 각종 정치적 의도가 주식에 개입된다는 의혹이다. 위의 책, pp. 97-98.
이러한 빈익빈부익부 현상, 기업의 개인자본가의 절대적인 영향력, 정부의 개입 등이 주식투자자들로 하여금 주식의 긍정적인 면만을 볼 수 없게 한다. 게다가 여유자금이 아닌 살림자금을 주식에 투자하며 요행을 바라는 투자자들의 면모는 주식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주식투자는 그 유용성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지지만을 얻기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주식투자가 기독교윤리적으로 보다 인정받는 행위가 되려면 그 안에 청지기적 의식을 가진 투자자로서의 마음이 요구될 뿐 아니라 사회적인 제도와 법률 등에서, 그리고 그 실행에 있어서 변혁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만약 그러한 변화가 불가능하다면 주식은 그 원래의 의도에서 벗어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청지기적인 의식을 가진 투자자들에 관하여 대천덕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출처 불명
“어떤 크리스천 그룹이 합법적이며 훌륭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사업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시장에 상장해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 크리스천 그룹은 그 회사의 대부분의 주식을 구입해 노동자들에게 적정수준의 임금을 주고 값싸고 품질좋은 제품을 만들도록 회사에 압력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식을 팔 경우에는 자신이 투자한 금액에다가 인플레로 인한 손실액만큼만 찾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결코 주식만 가지고 놀고 먹을 수는 없는 거시고, 잉여금을 그 회사에 투자하게 될 것이며 결국 자신의 밥벌이는 자신이 노력해서 벌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기독인들이 고액의 이익을 요구하지 않고 청지기의 신분으로서 주식을 산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실업자와 불운한 사람들은 줄어들 것이며 그들은 ‘자비’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게 될 것입니다. 미가서 6장 8절은 정의를 첫 번째로, 자비를 두 번째로,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종교를 세 번째로 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명령에 순종할 것이며, 정의와 자비에 유의할 것입니다.”
주식투자를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사회는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잠 15:6), “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잠 15:27),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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