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요약 -
Ⅰ. 序 論 (경영학부 차민아)
Ⅱ. 本 論
1. 봉건제 의미
1) 봉건제 개념
2) 봉건 사회의 구조
3) 봉건제의 특징
2. 서양의 봉건제 (사학과 최가영)
3. 중국의 봉건제 (경제학부 채기석)
4. 한국의 봉건제 (경영학부 최민혜)
1) 정치적 측면에서의 봉건제 성립 여부
2) 경제적 측면에서의 봉건제 성립 여부
Ⅲ. 結 論 (경영학부 차민아)
< 참 고 문 헌 >
Ⅰ. 序 論 (경영학부 차민아)
Ⅱ. 本 論
1. 봉건제 의미
1) 봉건제 개념
2) 봉건 사회의 구조
3) 봉건제의 특징
2. 서양의 봉건제 (사학과 최가영)
3. 중국의 봉건제 (경제학부 채기석)
4. 한국의 봉건제 (경영학부 최민혜)
1) 정치적 측면에서의 봉건제 성립 여부
2) 경제적 측면에서의 봉건제 성립 여부
Ⅲ. 結 論 (경영학부 차민아)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가면서 소경영의 자립이라는 생산적 기초의 측면에서 조선후기는 서양봉건사회와 동일시 될 수 있지만 소경영의 자립을 가능하게 했던 제 사회적 조건의 구체적 형태에 있어서는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발달이라는 봉건제와는 전혀 상이한 발전계열에 있다. 조선의 지리적기후적 여건에서 잦은 외침과 가뭄, 홍수의 피해에 국가적 규모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상황에서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될 만 하다. 즉 조선은 지방 영주가 예속 농노를 통제하던 서유럽의 봉건제와는 다른 지배형태와 예농제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조선의 토지경영을 볼 때에도 사전주에 예속되어 노동력을 제공했던 일반민 혹은 농노가 완전히 사전주에게 구속되는 일 없이 국가의 공민으로서도 존재했다는 사실이 서양 봉건제와 구분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영호 교수는 다른 논문에서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이해한 것에 대해 3가지 측면 즉, 주호경영이 양반과 양인의 신분구별을 떠나 예속적 노동력에 포함되는 복합적 구조로 해석함으로써 양반의 농장경영이 봉건제와는 다르다는 점, 그리고 노비가 그 주인에 대한 인격적 예속과 그 소경영으로서의 비자립성 및 공동체의 결여라는 점에서 농노=노비 라는 봉건제설을 비판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사회의 사적대토지 소유가 존재형태나 소유론적 구조에서 봉건적 토지소유와 같지 않으므로 조선사회를 봉건사회로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강만길, 도진순 등 『한국사23 - 한국사의 이론과 방법』한길사 1994.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사에 봉건제가 존재하였는지에 대한 결론은 어떻게 맺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보면, 한국의 정치적경제적 측면을 비추어 볼 때, 나말여초의 녹읍과 고려 초의 농장이 비록 서구의 봉건제적 요소와 비슷하다 하여도 이는 근본적으로 같지 않으며, 한국의 중세는 서유럽식의 봉건제 사회가 아니었고, 봉건적 요소도 거의 발견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는 한국의 역사상에 나타난 녹읍과 농장 등 일부 봉건제적 요소들은 천년이상 장구한 세월동안 유지된 서유럽의 봉건제와는 달리 그 존재 시기가 짧았으며, 한국의 경우 신라의 녹읍혁파, 고려말 사전혁파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이 인위적으로 이러한 제도 등을 폐지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이는 이러한 인위적 폐지노력이 없었던 서양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즉 한국의 중세가 과연 봉건적 사회였는가는 서구의 봉건제도와 비교해 공통된 요소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있는 것인데, 한국의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간혹 1~2개 정도가 맞는다고 해서 한국의 중세를 봉건적 사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 지역의 역사인 서유럽의 봉건제로 세계사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이 때문에 한국사를 설명하는데 있어 ‘봉건제’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중세사회에 있어 서유럽과 일본에 봉건제도가 있었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에서는 나름대로의 특수성을 유지하며, 사회발전단계를 이룬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과거 일인학자들이 주장했던 봉건제의 유무로 우리 역사의 발전후진성을 논할 수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봉건제가 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 후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말한다. 따라서 한국사의 시대구분에 있어서도 서구의 봉건제를 억지로 우리 역사 속에서 끼워 맞추려는 사고를 버리고 우리나라 나름대로의 중세사회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은 생각일 것이다.
< 참 고 문 헌 >
강만길, 도진순 등 『한국사23 - 한국사의 이론과 방법』한길사 1994.
강만길, 도진순 등 『한국사 24 - 한국사의 이론과 방법 Ⅱ』 한길사 1994
강진철 『한국중세토지소유연구』 일조각 1989
김상기 『고려시대사』 서울대학교출판부 펴냄, 1985년
김재명 <한국의 중세는 과연 봉건적 사회였는가> 한국 정신문화연구원 1985
양병우, <우리나라에도 봉건제도가 있었는가>,『역사란 무엇인가』, 문학과 지성사, 1995.
李春植, 『中國史序說』 교보문고, 1991
마르크 블로크 『봉건사회2』한길사 2001.
Rushton Coulborn, 『봉건제의 이해』 민음사, 1996
♠ 감 상 ♠
차 민 아 : 평소에 역사 과목을 그저 암기 과목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게 이번 한국 경제사 레포트는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역사의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역사 해석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해 주체적 역사 인식으로 나의 의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역사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마음이 끌리고 흥미 있는 것은 역사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일이다. - 네루’ 라는 말처럼 나 스스로도 역사의 주체적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채 기 석 : 팀 레포트라는 거 처음 해보는 건데 혼자서 작성하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성들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알고 있던 단편적인 의미의 봉건제라는 단어 안에 다양한 다른 의미들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 가 영 : 사학과 학생으로서 만 2년 동안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항상 느껴왔으며 이번 한국경제사 수업을 위해 레포트를 쓰면서도 느꼈던 것은 과거의 사실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그리고 오늘날에 끼친 영향 등을 모두 종합하여 사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번 레포트 작업도 종합적 사고를 요하는 것이라서 주제선정부터 난관이 많았는데 이러한 사고를 해야 내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인 ‘역사를 바르게 아는 자 미래를 통찰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 뜻 깊은 경험이었다.
최 민 혜 : 두 번째 듣는 과목이기에 이번 레포트도 두 번째 쓰는 것이었는데 처음 쓸 때와는 많이 달랐다. 혼자가 아닌 팀으로 쓰는 것이라서 책임감을 같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부족한 점도 채워갈 수 있어서 대학 마지막 학기에 좋은 경험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자세히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영호 교수는 다른 논문에서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이해한 것에 대해 3가지 측면 즉, 주호경영이 양반과 양인의 신분구별을 떠나 예속적 노동력에 포함되는 복합적 구조로 해석함으로써 양반의 농장경영이 봉건제와는 다르다는 점, 그리고 노비가 그 주인에 대한 인격적 예속과 그 소경영으로서의 비자립성 및 공동체의 결여라는 점에서 농노=노비 라는 봉건제설을 비판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사회의 사적대토지 소유가 존재형태나 소유론적 구조에서 봉건적 토지소유와 같지 않으므로 조선사회를 봉건사회로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강만길, 도진순 등 『한국사23 - 한국사의 이론과 방법』한길사 1994.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사에 봉건제가 존재하였는지에 대한 결론은 어떻게 맺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보면, 한국의 정치적경제적 측면을 비추어 볼 때, 나말여초의 녹읍과 고려 초의 농장이 비록 서구의 봉건제적 요소와 비슷하다 하여도 이는 근본적으로 같지 않으며, 한국의 중세는 서유럽식의 봉건제 사회가 아니었고, 봉건적 요소도 거의 발견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는 한국의 역사상에 나타난 녹읍과 농장 등 일부 봉건제적 요소들은 천년이상 장구한 세월동안 유지된 서유럽의 봉건제와는 달리 그 존재 시기가 짧았으며, 한국의 경우 신라의 녹읍혁파, 고려말 사전혁파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이 인위적으로 이러한 제도 등을 폐지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이는 이러한 인위적 폐지노력이 없었던 서양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즉 한국의 중세가 과연 봉건적 사회였는가는 서구의 봉건제도와 비교해 공통된 요소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있는 것인데, 한국의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간혹 1~2개 정도가 맞는다고 해서 한국의 중세를 봉건적 사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 지역의 역사인 서유럽의 봉건제로 세계사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이 때문에 한국사를 설명하는데 있어 ‘봉건제’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중세사회에 있어 서유럽과 일본에 봉건제도가 있었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에서는 나름대로의 특수성을 유지하며, 사회발전단계를 이룬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과거 일인학자들이 주장했던 봉건제의 유무로 우리 역사의 발전후진성을 논할 수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봉건제가 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 후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말한다. 따라서 한국사의 시대구분에 있어서도 서구의 봉건제를 억지로 우리 역사 속에서 끼워 맞추려는 사고를 버리고 우리나라 나름대로의 중세사회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은 생각일 것이다.
< 참 고 문 헌 >
강만길, 도진순 등 『한국사23 - 한국사의 이론과 방법』한길사 1994.
강만길, 도진순 등 『한국사 24 - 한국사의 이론과 방법 Ⅱ』 한길사 1994
강진철 『한국중세토지소유연구』 일조각 1989
김상기 『고려시대사』 서울대학교출판부 펴냄, 1985년
김재명 <한국의 중세는 과연 봉건적 사회였는가> 한국 정신문화연구원 1985
양병우, <우리나라에도 봉건제도가 있었는가>,『역사란 무엇인가』, 문학과 지성사, 1995.
李春植, 『中國史序說』 교보문고, 1991
마르크 블로크 『봉건사회2』한길사 2001.
Rushton Coulborn, 『봉건제의 이해』 민음사, 1996
♠ 감 상 ♠
차 민 아 : 평소에 역사 과목을 그저 암기 과목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게 이번 한국 경제사 레포트는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역사의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역사 해석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해 주체적 역사 인식으로 나의 의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역사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마음이 끌리고 흥미 있는 것은 역사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일이다. - 네루’ 라는 말처럼 나 스스로도 역사의 주체적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채 기 석 : 팀 레포트라는 거 처음 해보는 건데 혼자서 작성하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성들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알고 있던 단편적인 의미의 봉건제라는 단어 안에 다양한 다른 의미들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 가 영 : 사학과 학생으로서 만 2년 동안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항상 느껴왔으며 이번 한국경제사 수업을 위해 레포트를 쓰면서도 느꼈던 것은 과거의 사실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그리고 오늘날에 끼친 영향 등을 모두 종합하여 사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번 레포트 작업도 종합적 사고를 요하는 것이라서 주제선정부터 난관이 많았는데 이러한 사고를 해야 내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인 ‘역사를 바르게 아는 자 미래를 통찰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 뜻 깊은 경험이었다.
최 민 혜 : 두 번째 듣는 과목이기에 이번 레포트도 두 번째 쓰는 것이었는데 처음 쓸 때와는 많이 달랐다. 혼자가 아닌 팀으로 쓰는 것이라서 책임감을 같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부족한 점도 채워갈 수 있어서 대학 마지막 학기에 좋은 경험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자세히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