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3장 사역
Ⅱ. 3장의 구조
Ⅲ. 주석
Ⅳ. 결론
Ⅱ. 3장의 구조
Ⅲ. 주석
Ⅳ. 결론
본문내용
생긴다. 9-10절이 예언자 자신의 말인 것과는 달리 11절은 하나님이 말씀의 주체가 된다.
예레미아스는 적들이 누굴 가리키는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적의 신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그의 국가로서의 힘을 빼앗길 것이며, 점령된 국가가 될 서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이 단화의 주요 단어인 “궁전들”()이 모든 죄의 출발점으로서 응징의 장소가 되리라는 점이다. Jeremias, 58.
그러나 과연 예레미아스가 설명하듯이 이것이 이스라엘 국가의 멸망을 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는 11b에서 “너의 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아스는 “너의 힘”을 이스라엘 국가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라는 단어 뒤에는 접미어(여성, 단수)가 붙어 있으며, 이 접미사가 가리키는 것이 앞서의 “땅”() 이고 그 땅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사마리아다. 그렇다면 그 땅의 “힘”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가 땅, 특히 사마리아로 상징되는 땅과 결합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본래는 “잘 요새화된 땅”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의 상징적인 의미는 단지 “잘 요새화된 땅”의 의미라기보다는 “그 땅의 세력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그 다음 단락에서 “그러면 너의 궁전들은 약탈당할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지지받을 수 있다. 이 단락에서 “너의 궁전들”은 “너의 힘”과 평행구를 이루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궁전들”이라는 표현으로 알 수 있는 지도층과 부유계층에게 한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궁전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마리아 땅의 세력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12. 그러므로 야웨가 말씀하셨다.
목자가 사자의 입에서 다리 두 개나 귓볼을 끄집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므로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자들 곧 이스라엘 자손들이
침대의 모서리에서 그리고 침대의 발판에서 구원받으리라.
볼프는 이러한 언급이 아모스의 직업적 경험(즉 목자로서의 경험)에서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출 22:9-12에서 나타나는 목자들에게 적용되는 특정 법령들을 전제하고 있다. 만일 자신이 다른 사람의 가축을 돌보다가 도둑을 맞으면 그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 반면에 그것이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언하고, 그 찢긴 것에 대해서는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령이다. 그러므로 두 개의 다리와 귓불은 그 증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출된” 증거는 다름 아닌 완전한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이 “구출”이라는 단어는 바로 풍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3:11에서의 심판 선언을 더욱 확증해 준다. Wolff, 197-8.
또한 12b절은 상류계층의 풍족한 생활방식을 반영해 준다. 6:4a에 따르면, “앉는 것”()은 매우 흥청거리며 게으르고 빈둥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침대)와 (의자)는 또한 6:4에서도 역시 사용되며, 여기서도 역시 상류계층에 대한 생활상을 비판적으로 반영하면서 사용된 단어이다. 예레미아스는 여기에서 상류계층의 풍족한 생활상을 이야기 해주면서, 단지 그 편안한 생활의 기억만이 “구원될” 것임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Ibid. 198.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예레미아스는, 이 본문이 구원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선포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도 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심판 선포의 과정에서 기대치 않았던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아모스와 그의 대적자들 사이의 논쟁을 암시하며, 그 논쟁이 여기에 요약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그 대적자들은 이스라엘의 선택과 야웨의 “구원”적 개입에 대한 주장을 함으로써 아모스의 신학에 도전한다. 이들의 확고한 신념은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그의 백성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지 그들을 파괴하는 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러한 그들의 구원의 확신에 반대를 한다. “두 다리와 귓불을 건져내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어떠한 것도 이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예언자는 12절에서 전체 하나님의 백성의 멸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우선,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부한 사람이 해당된다. 아모스는 죄인과 고통받는 사람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 12절의 “침대”의 표현은 환락과 흥청거림의 표현이다. Jeremias, 59-61.
우리는 여기서 다시 눈길을 돌려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침대 모서리”( )와 “의자의 발판”( )이라는 표현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앞서 볼프와 예레미아스의 주장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침대”와 “의자”는 부유한 계층들의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단어이다. 이 단어에 “모서리”와 “발판”이라는 단어들이 함께 쓰이고 있다. 이것은 바로 보잘 것 없는 것, 또한 천한 것, 미천한 것, 그리고 침대나 의자에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항상 함께한다. 두 개는 분리되지 않는다. 즉, 침대가 있으면, 모서리가 있고 의자가 있으면 발판 사실 이것의 의미는 불명확하다. 한글 성경에서는 “방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도 있다. 즉, 두 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이다. 대입해 설명해 보면, 억압하는 자가 있으면 억압받는 자가 있는 것과 같다.
13. <너희는 들어라. 그리고 너희는 야곱의 집에 대해 증언하여라.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다).
여기에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청중들이 야곱의 집에 대해 증언하도록 종용된다. 물론 이 알 수 없는 청중은 앞서 9절에서 보았던 청중과 같다. 지금까지 보았던 야곱의 집의 죄상에 대해 이제 그 알 수 없는 청중은 증인이 된다.
14. 내가 이스라엘의 죄를 그에게 보복하는 그 날에,
(내가 벧엘의 제단들을 보복하리라.)
그리고 그 제단의 뿔들이 잘리어져서 땅에 떨어지리라.>
완전한 심판의 첫 번째 증거는 바로 제단에서 시작된다. 피의 보복이나 추격자들에게
예레미아스는 적들이 누굴 가리키는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적의 신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그의 국가로서의 힘을 빼앗길 것이며, 점령된 국가가 될 서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이 단화의 주요 단어인 “궁전들”()이 모든 죄의 출발점으로서 응징의 장소가 되리라는 점이다. Jeremias, 58.
그러나 과연 예레미아스가 설명하듯이 이것이 이스라엘 국가의 멸망을 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는 11b에서 “너의 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아스는 “너의 힘”을 이스라엘 국가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라는 단어 뒤에는 접미어(여성, 단수)가 붙어 있으며, 이 접미사가 가리키는 것이 앞서의 “땅”() 이고 그 땅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사마리아다. 그렇다면 그 땅의 “힘”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가 땅, 특히 사마리아로 상징되는 땅과 결합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본래는 “잘 요새화된 땅”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의 상징적인 의미는 단지 “잘 요새화된 땅”의 의미라기보다는 “그 땅의 세력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그 다음 단락에서 “그러면 너의 궁전들은 약탈당할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지지받을 수 있다. 이 단락에서 “너의 궁전들”은 “너의 힘”과 평행구를 이루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궁전들”이라는 표현으로 알 수 있는 지도층과 부유계층에게 한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궁전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마리아 땅의 세력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12. 그러므로 야웨가 말씀하셨다.
목자가 사자의 입에서 다리 두 개나 귓볼을 끄집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므로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자들 곧 이스라엘 자손들이
침대의 모서리에서 그리고 침대의 발판에서 구원받으리라.
볼프는 이러한 언급이 아모스의 직업적 경험(즉 목자로서의 경험)에서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출 22:9-12에서 나타나는 목자들에게 적용되는 특정 법령들을 전제하고 있다. 만일 자신이 다른 사람의 가축을 돌보다가 도둑을 맞으면 그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 반면에 그것이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언하고, 그 찢긴 것에 대해서는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령이다. 그러므로 두 개의 다리와 귓불은 그 증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출된” 증거는 다름 아닌 완전한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이 “구출”이라는 단어는 바로 풍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3:11에서의 심판 선언을 더욱 확증해 준다. Wolff, 197-8.
또한 12b절은 상류계층의 풍족한 생활방식을 반영해 준다. 6:4a에 따르면, “앉는 것”()은 매우 흥청거리며 게으르고 빈둥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침대)와 (의자)는 또한 6:4에서도 역시 사용되며, 여기서도 역시 상류계층에 대한 생활상을 비판적으로 반영하면서 사용된 단어이다. 예레미아스는 여기에서 상류계층의 풍족한 생활상을 이야기 해주면서, 단지 그 편안한 생활의 기억만이 “구원될” 것임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Ibid. 198.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예레미아스는, 이 본문이 구원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선포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도 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심판 선포의 과정에서 기대치 않았던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아모스와 그의 대적자들 사이의 논쟁을 암시하며, 그 논쟁이 여기에 요약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그 대적자들은 이스라엘의 선택과 야웨의 “구원”적 개입에 대한 주장을 함으로써 아모스의 신학에 도전한다. 이들의 확고한 신념은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그의 백성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지 그들을 파괴하는 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러한 그들의 구원의 확신에 반대를 한다. “두 다리와 귓불을 건져내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어떠한 것도 이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예언자는 12절에서 전체 하나님의 백성의 멸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우선,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부한 사람이 해당된다. 아모스는 죄인과 고통받는 사람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 12절의 “침대”의 표현은 환락과 흥청거림의 표현이다. Jeremias, 59-61.
우리는 여기서 다시 눈길을 돌려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침대 모서리”( )와 “의자의 발판”( )이라는 표현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앞서 볼프와 예레미아스의 주장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침대”와 “의자”는 부유한 계층들의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단어이다. 이 단어에 “모서리”와 “발판”이라는 단어들이 함께 쓰이고 있다. 이것은 바로 보잘 것 없는 것, 또한 천한 것, 미천한 것, 그리고 침대나 의자에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항상 함께한다. 두 개는 분리되지 않는다. 즉, 침대가 있으면, 모서리가 있고 의자가 있으면 발판 사실 이것의 의미는 불명확하다. 한글 성경에서는 “방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도 있다. 즉, 두 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이다. 대입해 설명해 보면, 억압하는 자가 있으면 억압받는 자가 있는 것과 같다.
13. <너희는 들어라. 그리고 너희는 야곱의 집에 대해 증언하여라.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다).
여기에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청중들이 야곱의 집에 대해 증언하도록 종용된다. 물론 이 알 수 없는 청중은 앞서 9절에서 보았던 청중과 같다. 지금까지 보았던 야곱의 집의 죄상에 대해 이제 그 알 수 없는 청중은 증인이 된다.
14. 내가 이스라엘의 죄를 그에게 보복하는 그 날에,
(내가 벧엘의 제단들을 보복하리라.)
그리고 그 제단의 뿔들이 잘리어져서 땅에 떨어지리라.>
완전한 심판의 첫 번째 증거는 바로 제단에서 시작된다. 피의 보복이나 추격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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