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 론
●개 요
●프랑스의 역사적 과정
2. 파리 대개조 계획 Paris Grand Rebuilding
1)역사적 대개조계획
⑴ 중세 시대의 파리
⑵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파리
2) 파리 대개조 계획 (1853 - 1869 , 17년간)
⑴시대적 배경
⑵ 파리 대개조 계획이 성공적이었던 원인
⑶ 대개조에 따른 파리의 변화
⑷ 개조 방법
⑸ Haussmann의 계획에 대한 견해
⑹ 계획의 영향
3. 프랑스파리의 도시계획
3-1 파리혁명프로젝트
1) 파리개발의 도시계획 및 시스템
2) 파리의 역사문화유산에 관련된 개발방법
3) 도시기반시설의 재정비
4) 도시정책
5) 공공의 토지소유
3-2 지역중심의 신도시개발
1)신도시 망세르지-퐁뜨와즈
2) 프랑스 파리의 벡시(Bercy)
●개 요
●프랑스의 역사적 과정
2. 파리 대개조 계획 Paris Grand Rebuilding
1)역사적 대개조계획
⑴ 중세 시대의 파리
⑵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파리
2) 파리 대개조 계획 (1853 - 1869 , 17년간)
⑴시대적 배경
⑵ 파리 대개조 계획이 성공적이었던 원인
⑶ 대개조에 따른 파리의 변화
⑷ 개조 방법
⑸ Haussmann의 계획에 대한 견해
⑹ 계획의 영향
3. 프랑스파리의 도시계획
3-1 파리혁명프로젝트
1) 파리개발의 도시계획 및 시스템
2) 파리의 역사문화유산에 관련된 개발방법
3) 도시기반시설의 재정비
4) 도시정책
5) 공공의 토지소유
3-2 지역중심의 신도시개발
1)신도시 망세르지-퐁뜨와즈
2) 프랑스 파리의 벡시(Bercy)
본문내용
지역에 대하여 정부는 14년동안 이지역에서 팔려고 내놓은 토지를 구매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게 된다. 이때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ZAD로 지정되기 일년전의 시장가격을 지불하면 되도록 하고 있다. 이제도가 가지는 매력은 대단히 커서 1974년경에는 국토의 1%가 ZAD로 지정되었으며 이중 1/3이 파리지역이었다. 물론 이지역의 모두를 정부가 구매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이 지역을 구매할 선택권이 있다는 것은 토지시장에서 정부의 영향력을 매우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교통계획
자동차는 저밀도의 도시팽창을 유도하였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지방정부가 수립하는 도시계획에 유럽에서는 중앙정부가 훨씬 더 강한 영향를 행사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지역에서 도시계획의 책임은 중앙과 지방에 같이 분산되어 있다. 대부분 시공무원들은 종합적인 토지사용계획을 작성하고 이러한 계획은 해당 중앙정부부서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물론 중앙정부는 이러한 절차에 대한 대가로 지방정부에게 상당한 재정적 정치적인 지원을 해주게 되는데 이러한 중앙정부의 관여가 지방정부의 계획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파리의 지하철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이용율이 높은 지하철이지만 상당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1970년무렵 지하철요금의 수입은 지하철유지비용의 50%에 불과하였다. 나머지 돈은 정부의 재원으로 충당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면서도 파리공무원들은 개인승용차에 대한 어떤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예를들면 파리에서 주차미터기가 최초로 설치된 것은 겨우 1971년이었으며 대부분의 시에는 아직 주차미터기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인 의지가 없었을 뿐만아니라 파리시공무원은 지하철 설비를 개선시키려는 어떤 가시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결국 1970년 2월 중앙정부의 교통부장관이 주도권을 잡아나가기 시작한다. 장관은 시설세를 부과한다. 이 제안은 국가의회에서 제안된 것이었는데 대중교통수단은 파리시의 기업가들에게 노동시장을 늘림과 동시에 소비시장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업체들은 이 대중교통수단에 대한 경비를 같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장관의 제안은 상인들과 제조업자들로부터 거센 항의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이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추진시켜 1971년 7월부터 9명이상을 고용하는 파리의 기업체는 인건비의 1.7%에 해당하는 세금을 지하철재원보충으로 납부하게 된다.
1973년 6월 이법은 인구50만 이상의 다른 시에도 파급된다. (292)
공공부분-민간부분의 파트너쉽(public-private partnership)
도시계획은 그 성격상 분배정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도시계획의 목적은 도시전체를 통하여 사람의 분포와 경제활동의 배분에 영향을 주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다른말로 표현하면 도시계획가는 도시공간을 서로다른 사회경제적 집단, 기업, 그리고 다른 토지용도에 부여하는 것이다.
파리의 도시외곽은 거주자들의 공산당에 대한 지지로 붉은벨트(red belt)로 불릴 지경이었다. 2차대전이후 도심의 인구와 밀집된 경제활동을 도심외로, 교외로 분산시켜나가는데 주된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도심으로부터 사무직을 교외로 분산시키기는 제조업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분산정책이 너무 많이 진척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도심의 인구절대량이 줄기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심인구의 감소현상이 도심경제활동의 분산을 유도한 정책의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어떤 연구는 제조업체를 외곽으로 이전시킨 정책이 도심의 인구분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제조업체의 외곽분산이 없었더라도 도심의 인구는 어차피 분산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영국과 불란서에서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도심주민들이 도심외곽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고용의 분산정책이 있기 이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주의 패턴이 대단히 선택적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이주하는 자들은 대체로 젊고, 잘교육받고, 직업을 가지기 쉬운 자들이 도심으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다시 외곽은 젊고 부유한 층들이 도심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파리의 도시재개발프로그램은 도심내 주택보다 사무실의 개발을 강조하였다. 개발업자들은 물론 계획가들에게 어떤 명시적인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공무원들이 자신의 이익과 합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개발론자들의 이익과 그대로 일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시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많은 연구결과들은 지방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자들의 정치적인 성향은 지방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3-2 지역중심의 신도시개발
현재 프랑스에서는 총 9개의 신도시에 약 85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파리주변에 5개의 신도시(세르지-퐁뜨와즈, 마른느 라발레, 믈랭 세나르, 에브리, 생깡땡 앙 이브린)가 있으며, 지방(릴 근처 릴에스트, 루앙근처 보드뢰이유, 리용근처 리슬다보, 마르세이유근처 리브 드 레땅 드 베르)에 4개의 신도시가 있다. 그중 65만 명 이상이 파리 근처 신도시에 살고 있으며, 그중 맛세르지-퐁뜨와즈에 약 18만 명이 살고 있다.
1)신도시 망세르지-퐁뜨와즈
(1) 배경 및 목적
세계 제2차 대전 후 50년대의 baby boom으로 인하여 프랑스 파리주변의 도시개발이 가속화되었으나, 대부분 팽창하는 파리의 인구분산에 급급한 나머지 파리주변을 이곳 저곳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새로 작은 마을을 건설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하여 프랑스 정부는 급격히 늘어나는 파리의 인구를 효율적으로 분산시키고 수도권의 체계화된 도시개발을 위하여 60년대 중반부터 신도시를 계획했다.
파리 주변의 신도시 개발은 196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프랑스 정부는 공공개발공사(EPA)를 설립하고 토지수용기반시설 구축에 착수하였다. EPA는 프랑스 수상실 산하 도시계획부 소속 기구로 신도시개발의 전권을 갖고 있었다. EPA는 맛세르지-퐁뜨와즈
교통계획
자동차는 저밀도의 도시팽창을 유도하였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지방정부가 수립하는 도시계획에 유럽에서는 중앙정부가 훨씬 더 강한 영향를 행사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지역에서 도시계획의 책임은 중앙과 지방에 같이 분산되어 있다. 대부분 시공무원들은 종합적인 토지사용계획을 작성하고 이러한 계획은 해당 중앙정부부서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물론 중앙정부는 이러한 절차에 대한 대가로 지방정부에게 상당한 재정적 정치적인 지원을 해주게 되는데 이러한 중앙정부의 관여가 지방정부의 계획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파리의 지하철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이용율이 높은 지하철이지만 상당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1970년무렵 지하철요금의 수입은 지하철유지비용의 50%에 불과하였다. 나머지 돈은 정부의 재원으로 충당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면서도 파리공무원들은 개인승용차에 대한 어떤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예를들면 파리에서 주차미터기가 최초로 설치된 것은 겨우 1971년이었으며 대부분의 시에는 아직 주차미터기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인 의지가 없었을 뿐만아니라 파리시공무원은 지하철 설비를 개선시키려는 어떤 가시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결국 1970년 2월 중앙정부의 교통부장관이 주도권을 잡아나가기 시작한다. 장관은 시설세를 부과한다. 이 제안은 국가의회에서 제안된 것이었는데 대중교통수단은 파리시의 기업가들에게 노동시장을 늘림과 동시에 소비시장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업체들은 이 대중교통수단에 대한 경비를 같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장관의 제안은 상인들과 제조업자들로부터 거센 항의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이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추진시켜 1971년 7월부터 9명이상을 고용하는 파리의 기업체는 인건비의 1.7%에 해당하는 세금을 지하철재원보충으로 납부하게 된다.
1973년 6월 이법은 인구50만 이상의 다른 시에도 파급된다. (292)
공공부분-민간부분의 파트너쉽(public-private partnership)
도시계획은 그 성격상 분배정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도시계획의 목적은 도시전체를 통하여 사람의 분포와 경제활동의 배분에 영향을 주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다른말로 표현하면 도시계획가는 도시공간을 서로다른 사회경제적 집단, 기업, 그리고 다른 토지용도에 부여하는 것이다.
파리의 도시외곽은 거주자들의 공산당에 대한 지지로 붉은벨트(red belt)로 불릴 지경이었다. 2차대전이후 도심의 인구와 밀집된 경제활동을 도심외로, 교외로 분산시켜나가는데 주된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도심으로부터 사무직을 교외로 분산시키기는 제조업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분산정책이 너무 많이 진척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도심의 인구절대량이 줄기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심인구의 감소현상이 도심경제활동의 분산을 유도한 정책의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어떤 연구는 제조업체를 외곽으로 이전시킨 정책이 도심의 인구분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제조업체의 외곽분산이 없었더라도 도심의 인구는 어차피 분산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영국과 불란서에서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도심주민들이 도심외곽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고용의 분산정책이 있기 이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주의 패턴이 대단히 선택적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이주하는 자들은 대체로 젊고, 잘교육받고, 직업을 가지기 쉬운 자들이 도심으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다시 외곽은 젊고 부유한 층들이 도심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파리의 도시재개발프로그램은 도심내 주택보다 사무실의 개발을 강조하였다. 개발업자들은 물론 계획가들에게 어떤 명시적인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공무원들이 자신의 이익과 합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개발론자들의 이익과 그대로 일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시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많은 연구결과들은 지방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자들의 정치적인 성향은 지방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3-2 지역중심의 신도시개발
현재 프랑스에서는 총 9개의 신도시에 약 85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파리주변에 5개의 신도시(세르지-퐁뜨와즈, 마른느 라발레, 믈랭 세나르, 에브리, 생깡땡 앙 이브린)가 있으며, 지방(릴 근처 릴에스트, 루앙근처 보드뢰이유, 리용근처 리슬다보, 마르세이유근처 리브 드 레땅 드 베르)에 4개의 신도시가 있다. 그중 65만 명 이상이 파리 근처 신도시에 살고 있으며, 그중 맛세르지-퐁뜨와즈에 약 18만 명이 살고 있다.
1)신도시 망세르지-퐁뜨와즈
(1) 배경 및 목적
세계 제2차 대전 후 50년대의 baby boom으로 인하여 프랑스 파리주변의 도시개발이 가속화되었으나, 대부분 팽창하는 파리의 인구분산에 급급한 나머지 파리주변을 이곳 저곳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새로 작은 마을을 건설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하여 프랑스 정부는 급격히 늘어나는 파리의 인구를 효율적으로 분산시키고 수도권의 체계화된 도시개발을 위하여 60년대 중반부터 신도시를 계획했다.
파리 주변의 신도시 개발은 196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프랑스 정부는 공공개발공사(EPA)를 설립하고 토지수용기반시설 구축에 착수하였다. EPA는 프랑스 수상실 산하 도시계획부 소속 기구로 신도시개발의 전권을 갖고 있었다. EPA는 맛세르지-퐁뜨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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