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며
Ⅰ. 衣
1. 메소포타미아
1)수메르
2)바빌로니아
3)아시리아
4)메디아인과 페르시아인
2. 이집트
3. 에게문명
4. 그리스
5. 에트루리아
6. 로마
Ⅱ. 食
1. 메소포타미아
1)수메르
2)맥주의 기원
3)대추야자와 무화과
2. 이집트
1)이집트와 부풀린 빵의 발견
2)이집트인의 식품
3. 그리스
1)올리브
2)포도주
3)그리스의 음식과 요리
4. 로마
1)로마의 빵
2)음식과 그 재료
3)음식의 맛
4)식량의 무상배급
Ⅲ. 住
1. 메소포타미아
1)수메르
2)히타이트
3)아시리아
4)바빌론
5)페르시아
2. 이집트
1)고왕국의 건축
2)신왕조 시대의 건축
3. 에게문명
4. 그리스
1)신전건축
2)그리스의 도시와 공공건축물
3)극장
4)그리스의 주거
5. 에트루리아
6. 로마
1)건축의 구조기법
2)로마의 신전
3)도시와 광장
4)수도교
5)콜레세움 원형경기장
6)공공 목욕탕
7)개선문
8)주택
나오면서
Ⅰ. 衣
1. 메소포타미아
1)수메르
2)바빌로니아
3)아시리아
4)메디아인과 페르시아인
2. 이집트
3. 에게문명
4. 그리스
5. 에트루리아
6. 로마
Ⅱ. 食
1. 메소포타미아
1)수메르
2)맥주의 기원
3)대추야자와 무화과
2. 이집트
1)이집트와 부풀린 빵의 발견
2)이집트인의 식품
3. 그리스
1)올리브
2)포도주
3)그리스의 음식과 요리
4. 로마
1)로마의 빵
2)음식과 그 재료
3)음식의 맛
4)식량의 무상배급
Ⅲ. 住
1. 메소포타미아
1)수메르
2)히타이트
3)아시리아
4)바빌론
5)페르시아
2. 이집트
1)고왕국의 건축
2)신왕조 시대의 건축
3. 에게문명
4. 그리스
1)신전건축
2)그리스의 도시와 공공건축물
3)극장
4)그리스의 주거
5. 에트루리아
6. 로마
1)건축의 구조기법
2)로마의 신전
3)도시와 광장
4)수도교
5)콜레세움 원형경기장
6)공공 목욕탕
7)개선문
8)주택
나오면서
본문내용
은 반원형의 뻣뻣한 천을 잘라 만든 드레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노아인들도 처음에는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동물가죽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펫소파의 조상에서 보이는 장식적인 제재들을 살펴보면 이 때 이미 천을 짜는 기술에 능통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원전 3천년 경의 것으로 보이는 천을 짜는 도구들이 발견됨으로써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1750년부터 기원전 1580년대 사이의 문명 중기에 절정에 달했다. 크노소스 궁전 안에는 아직까지 양호한 보존 상태를 자랑하며 그 어떤 시기의 것보다 훌륭하고 중요한 작은 조상들과 함께 실을 잣고 천을 짜는 완벽한 공장이 세워져있다. 그 당시의 다른 문명들은 옷 자체의 재단보다는 작물에 주름을 넣는다거나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걸쳐서 맵시를 내는데 더 의존하였는데 미노아인들은 몸에 꽉 맞는 옷을 입었다.
미노아인들은 눈에 뛰게 가는 허리를 원하여 지나칠 정도로 몸에 꽉 끼는 벨트를 맸다. 벨트는 일반적으로 패드를 넣은 천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을 허리에 두 번 감고 나머지 끄트머리는 드레스의 앞자락에 길게 늘어뜨렸다. 그리고 미노아의 여성들은 역사상 최초로 모자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전혀 다른 두 가지 스타일이 잇었다. 한가지는 화분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형상을 한 것으로 드레스의 플라운스 주름장식을 그대로 본떠 세 겹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른 하나는 간단한 베레모이다. 또한 옷감의 색깔과 장식에 전례 없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대부분의 디자인은 대체로 같은 무늬가 계속 반복되는 기하학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상당부분 염색이 이용되었는데 자주색, 붉은색, 푸른색이 주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15세기에 크레타섬은 본토의 침략자에 의해 전복되고 결국 미케네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반대로 미케네인들이 미노아인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미케네인의 복식은 후기 미노아인의 복식과 거의 구별이 없다. 이후 기원전 1천2백년 경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미노아와 미케네 문명을 몰락하였고 수세기동안 문화적 정체를 겪었다. 복식의 전반적인 형태는 결정적인 변화 없이 그대로 지속되었다.
4.그리스
그리스의 복식은 특기할 정도로 스타일에 변함이 없었으며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그 오랜 세월동안에도 아주 미미한 변화만이 발견될 분이다.
처음 몇세기 동안은 종모양의 스커트와 꼭 끼는 보디스(옷의 몸통부분)로 대표되는 크레타인의 옷차림이 계속 유행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고대그리스 복식의 기본형식인 도리아식 Chiton과 함께 나란히 존재했다. 길게 늘어뜨린 두 겹의 사각형 천을 헐렁하게 어깨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몸통에 둘렀던 이 옷은 거의 5세기 넘도록 남녀가 모두 입었다.
이 시대에는 두 가지 기본스타일이 있었는데 초기에 존재했던 도리아식과 그 이후에 채택되었던 이오니아식이 그것이다. 여성들이 입었던 가장 기본적인 겉옷은 기원전 6세기초까지 입었던 도리아식 peplos였다. 이 옷은 폭은 6피트, 길이는 사람의 키보다 더 긴 4각형의 천으로 만들어졌다. 키보다 더 긴 여분의 천은 접어 젖혀서 몸통에 둘렀으며 이 접어 젖혀 포갠 부분은 짧게는 허리까지 그리고 길게는 엉덩이까지 내려왔다. 이 옷은 양어깨에 핀을 꽂아 고정시켰다. 페플러스의 어께부분을 고정시키는 데 사용되었던 핀은 원래는 앞머리에 장식이 달린 잠그지 않는 핀이었으나 후에 fibula(잠금쇠) 혹은 브로치로 대체되엇다.
도리아식 페플로스는 트여 있는 옆구리를 허리에서부터 옷 끝단까지만 꿰매어 붙이고 여분의 천을 접어 젖혀 늘어뜨리는 대신 앞가슴 바로 밑에 띠를 둘러 그 밑을 지나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할 수도 있었다.
이오니아식 키톤은 전반적인 구조는 도리아식과 비슷했다. 다른 점은 양털로 짠 직물이 얇은 리넨이나 실크로 대체되었고 페플로스에 사용되었던 것보다 폭이 더 넓어지고 높이는 여분 없이 어느 것이나 발목까지 정확히 그 길이를 재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기간에 입었던 또 다른 옷으로 남성들의 겉옷으로 him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양털로 짠 사각형의 천으로 만들어졌는데 처음에는 외출복으로 입기 시작했으나 더 가벼운 천으로 만든 이오니아식 키톤이 생기면서 언제라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하미티온은 고대의 초기에는 비교적 작고 일반적으로 망토처럼 어깨에 둘러서 입었다. 나중에는 목이나 오른쪽 어깨에 피뷸로를 채워 고정시켰다. 기원전 5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걸치는 방법이 점차 정교해졌고 길거나 짧은 키톤 위에 입거나 그것만 걸칠 수도 있었다. 폭도 5피트에서 10피트 혹은 12피트로 늘어났다.
전시기에 걸쳐서 입었던 남성용 의복의 형태들은 여성복의 경우와 흡사하였다. 기본적인 두 가지 옷이었던 키톤과 히마티온은 남녀가 함께 입었지만 눈에 띄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기원전 6세기와 7세기, 두 세기 동안 남성용 키톤은 폭이 거의 7피트에 이르는 사각형의 모직물로 만들어졌으며 여분의 천을 남기지 않고 어깨부터 발목까지 전신에 늘어뜨리는 옷이었다. 여성용 키톤과는 달리 남성용 키톤은 옆구리를 모두 꿰매어 붙였으며 갖가지 방법으로 허리에 띠를 둘러 졸라맸다. 또한 남성들은 옷을 어깨에 단단히 고정시킬 필요성으로 인해 폭이 좁은 끈을 목에 둘러 양어깨와 겨드랑이 사이를 지나게 하여 다시 그 끄트머리를 목뒤에 있는 끈으로 된 고리에 동여 맺다. 어깨에서부터 발목까지 길게 흘러내린 키톤은 기원전 5세기까지 모든 그리스 남성들이 입는 일반적인 복식이었다. 그러나 무릎 길이의 짧은 키톤이 유행하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전신에 걸치는 키톤은 입지 않게 되었다.
짧은 겉옷인 chlamys는 남성들만이 입었던 그리스 의복의 한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짧은 키톤 위에 입었던 클라미스는 히마티온보다 거추장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마부, 여행자,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클라미스도 양털로 짠 한 장의 사각형 천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반적으로 어깨 위에 걸쳐서 늘어뜨리고 모이나 오른쪽 어깨에 피뷸러를 채워 고정시켰다.
고대 시기의 옷들은 일반적으로 흰색이나 회색을 띤 흰색이었다. 평민들은 극장이나 공공장소에서는
미노아인들도 처음에는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동물가죽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펫소파의 조상에서 보이는 장식적인 제재들을 살펴보면 이 때 이미 천을 짜는 기술에 능통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원전 3천년 경의 것으로 보이는 천을 짜는 도구들이 발견됨으로써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1750년부터 기원전 1580년대 사이의 문명 중기에 절정에 달했다. 크노소스 궁전 안에는 아직까지 양호한 보존 상태를 자랑하며 그 어떤 시기의 것보다 훌륭하고 중요한 작은 조상들과 함께 실을 잣고 천을 짜는 완벽한 공장이 세워져있다. 그 당시의 다른 문명들은 옷 자체의 재단보다는 작물에 주름을 넣는다거나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걸쳐서 맵시를 내는데 더 의존하였는데 미노아인들은 몸에 꽉 맞는 옷을 입었다.
미노아인들은 눈에 뛰게 가는 허리를 원하여 지나칠 정도로 몸에 꽉 끼는 벨트를 맸다. 벨트는 일반적으로 패드를 넣은 천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을 허리에 두 번 감고 나머지 끄트머리는 드레스의 앞자락에 길게 늘어뜨렸다. 그리고 미노아의 여성들은 역사상 최초로 모자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전혀 다른 두 가지 스타일이 잇었다. 한가지는 화분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형상을 한 것으로 드레스의 플라운스 주름장식을 그대로 본떠 세 겹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른 하나는 간단한 베레모이다. 또한 옷감의 색깔과 장식에 전례 없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대부분의 디자인은 대체로 같은 무늬가 계속 반복되는 기하학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상당부분 염색이 이용되었는데 자주색, 붉은색, 푸른색이 주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15세기에 크레타섬은 본토의 침략자에 의해 전복되고 결국 미케네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반대로 미케네인들이 미노아인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미케네인의 복식은 후기 미노아인의 복식과 거의 구별이 없다. 이후 기원전 1천2백년 경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미노아와 미케네 문명을 몰락하였고 수세기동안 문화적 정체를 겪었다. 복식의 전반적인 형태는 결정적인 변화 없이 그대로 지속되었다.
4.그리스
그리스의 복식은 특기할 정도로 스타일에 변함이 없었으며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그 오랜 세월동안에도 아주 미미한 변화만이 발견될 분이다.
처음 몇세기 동안은 종모양의 스커트와 꼭 끼는 보디스(옷의 몸통부분)로 대표되는 크레타인의 옷차림이 계속 유행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고대그리스 복식의 기본형식인 도리아식 Chiton과 함께 나란히 존재했다. 길게 늘어뜨린 두 겹의 사각형 천을 헐렁하게 어깨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몸통에 둘렀던 이 옷은 거의 5세기 넘도록 남녀가 모두 입었다.
이 시대에는 두 가지 기본스타일이 있었는데 초기에 존재했던 도리아식과 그 이후에 채택되었던 이오니아식이 그것이다. 여성들이 입었던 가장 기본적인 겉옷은 기원전 6세기초까지 입었던 도리아식 peplos였다. 이 옷은 폭은 6피트, 길이는 사람의 키보다 더 긴 4각형의 천으로 만들어졌다. 키보다 더 긴 여분의 천은 접어 젖혀서 몸통에 둘렀으며 이 접어 젖혀 포갠 부분은 짧게는 허리까지 그리고 길게는 엉덩이까지 내려왔다. 이 옷은 양어깨에 핀을 꽂아 고정시켰다. 페플러스의 어께부분을 고정시키는 데 사용되었던 핀은 원래는 앞머리에 장식이 달린 잠그지 않는 핀이었으나 후에 fibula(잠금쇠) 혹은 브로치로 대체되엇다.
도리아식 페플로스는 트여 있는 옆구리를 허리에서부터 옷 끝단까지만 꿰매어 붙이고 여분의 천을 접어 젖혀 늘어뜨리는 대신 앞가슴 바로 밑에 띠를 둘러 그 밑을 지나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할 수도 있었다.
이오니아식 키톤은 전반적인 구조는 도리아식과 비슷했다. 다른 점은 양털로 짠 직물이 얇은 리넨이나 실크로 대체되었고 페플로스에 사용되었던 것보다 폭이 더 넓어지고 높이는 여분 없이 어느 것이나 발목까지 정확히 그 길이를 재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기간에 입었던 또 다른 옷으로 남성들의 겉옷으로 him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양털로 짠 사각형의 천으로 만들어졌는데 처음에는 외출복으로 입기 시작했으나 더 가벼운 천으로 만든 이오니아식 키톤이 생기면서 언제라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하미티온은 고대의 초기에는 비교적 작고 일반적으로 망토처럼 어깨에 둘러서 입었다. 나중에는 목이나 오른쪽 어깨에 피뷸로를 채워 고정시켰다. 기원전 5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걸치는 방법이 점차 정교해졌고 길거나 짧은 키톤 위에 입거나 그것만 걸칠 수도 있었다. 폭도 5피트에서 10피트 혹은 12피트로 늘어났다.
전시기에 걸쳐서 입었던 남성용 의복의 형태들은 여성복의 경우와 흡사하였다. 기본적인 두 가지 옷이었던 키톤과 히마티온은 남녀가 함께 입었지만 눈에 띄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기원전 6세기와 7세기, 두 세기 동안 남성용 키톤은 폭이 거의 7피트에 이르는 사각형의 모직물로 만들어졌으며 여분의 천을 남기지 않고 어깨부터 발목까지 전신에 늘어뜨리는 옷이었다. 여성용 키톤과는 달리 남성용 키톤은 옆구리를 모두 꿰매어 붙였으며 갖가지 방법으로 허리에 띠를 둘러 졸라맸다. 또한 남성들은 옷을 어깨에 단단히 고정시킬 필요성으로 인해 폭이 좁은 끈을 목에 둘러 양어깨와 겨드랑이 사이를 지나게 하여 다시 그 끄트머리를 목뒤에 있는 끈으로 된 고리에 동여 맺다. 어깨에서부터 발목까지 길게 흘러내린 키톤은 기원전 5세기까지 모든 그리스 남성들이 입는 일반적인 복식이었다. 그러나 무릎 길이의 짧은 키톤이 유행하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전신에 걸치는 키톤은 입지 않게 되었다.
짧은 겉옷인 chlamys는 남성들만이 입었던 그리스 의복의 한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짧은 키톤 위에 입었던 클라미스는 히마티온보다 거추장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마부, 여행자,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클라미스도 양털로 짠 한 장의 사각형 천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반적으로 어깨 위에 걸쳐서 늘어뜨리고 모이나 오른쪽 어깨에 피뷸러를 채워 고정시켰다.
고대 시기의 옷들은 일반적으로 흰색이나 회색을 띤 흰색이었다. 평민들은 극장이나 공공장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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