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행사를 금지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과 무력사용의 문제점 개선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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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절 무력행사의 금지
Ⅰ. 전쟁관의 변천
1. 초기의 차별전쟁관
2. 근대의 무차별전쟁관
3.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차별전쟁관
Ⅱ. 무력행사를 금지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
1. 제1차대전 이전
2. 국제연맹규약
3. Kellogg-Briand조약 (不戰條約)
4. UN헌장

제2절 집단적 안전보장 (collective security)
Ⅰ. 집단안전보장의 개념
Ⅱ. 국제연맹의 집단안전보장체제
Ⅲ. 유엔의 집단안전보장체제
Ⅳ. 총회에 의한 안전보장조치
Ⅴ.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Peace-Keeping Operations, PKO)
Ⅵ. 유엔정치기관과 사범심사

*UN 헌장 제7장의 관행*
Ⅰ. 냉전기간 동안(1945~1990) 헌장 제7장의 관행
Ⅱ. 냉전종식 이후 헌장 제7장의 관행

*판례 정리*
무력사용에 관한 판례
CASE 1
CASE 2
CASE 3
CASE 4
CASE 5
CASE 6

본문내용

요청이 있는 경우, ICJ 규정 제65조에 따라 구속력 없는 '권고적' 의견의 형식을 빌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UN결의의 합법성에 관해 언급할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ICJ는 UN기관의 결의가 유효하게 채택된 것으로 추정되어야 한다며, 본 재판소는 UN결정에 대해 사법심사 혹은 상소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고 언급하였으나, 외견상 ,모순되게도 두 기관의 행동을 심사하였고 , 그 과정에서 다시금 매우 관대한 접근방법을 채택하였다. 총회는 남아프리카 가 나미비아에 계속 존재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천명한 안보리의 선언과 남아프리카와는 관계를 갖지 말라는 다른 국가들에 대한 안보리의 요구는 헌장 제25조 하의 구속력 있는 결정이라고 인정하였다. ICJ의 이 같은 입장은 구속력 있는 결정은 오로지 헌장 제7장에 의해서만 내려질 수 있다는 서구 국가들의 태도와는 相馳되는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CASE 6
< Lockerbie 사건 > : ICJ가 사법심사권을 행사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관한 문제
1. 당사자 : Libya vs. the United States( Provisional measures, 1992, ICJ )
2. 사건개요
1998년 12월 21일 미국의 Pan Am 103편 항공기가 스코틀랜드의 Lockribie 상공에 이르렀을 때 기내에 장치된 폭탄이 폭발하여 270명의 인원( 승객 및 승무원 259명 전원과 지상의 11명) 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였다. 두 명의 리비아인과 국가 관리들이 폭탄을 장치한 혐의로 미국과 스코틀랜드에서 기소되었다. 1991년 11월 27일의 공동선언에서 미국과 영국은 재판을 위해 혐의자를 인도해 주도록 리비아 측에 요청하였지만, 만족스런 반응이 없자 두 국가의 발의로 1992년 1월 21일 안보리 결의 731이 채택되었는데, 이것은 "국제 테러리즘의 제거에 기여하기 위하여 이들 요청에 대해 즉각 완전하고도 실효적인 반응을 보일 것"을 리비아 측에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결의는 명령적으로 표현되지 않았고 또 분명히 헌장 제 7장에 의거하여 채택된 것도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 결의를 채택하는 토의과정에서 두 국가는 리비아가 결의를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재를 부과하는 결의를 채택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 같은 위협에 대응하여 3월 3일 리비아는 1971년 Montreal Convention 제 14조 1항( ICJ 강제관할권 조항) 에 의거하여 ICJ 에 제소하면서 미국과 영국이 협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였다. 리비아는 특히 협약 제 5조 2항을 그 이유로 들었는데, 同條는 범인을 관련국가로 인도하든지 아니면 자국에서 소추할 의무를 체약국들에 지우고 있다. 리비아는 특히 협약 제 5조 2항을 자국의 관련 당국에 이미 회부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리비아는 ICJ 에 대해 미국과 영국이 피고인들을 인도받기 위해 리비아를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보전조치(provisional measures)를 지시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2. 쟁 점
① 안보리의 결의와 1971년 몬트리올 협약의 충돌 시 해석 및 적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② ICJ 가 UN 헌장 7장에 의거한 안보리에 의해 취해진 결정을 심사할 수 있는가?
3. 판시
가보전조치 요구에 대한 현 재판절차에서 ICJ는 그러한 조치를 시행하는 상황을 고려하도록 규정하는 동 규약규정 41조에 따랐다.
하지만 본안에 관련한 문제에 관한 어떤 명확한 사실 혹은 법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재판소는 Libya 와 United State는 UN의 회원국으로서 헌장의 25조에 따라 안보리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결정했다. ICJ는 이러한 의무는 혐의자들을 인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리비아에 제재를 부과한 안보리 748(1992) 에도 미치며, 헌장 제 103조에 따라 (제재를 부과한 안보리의 결의를 포함한) 헌장하의 의무는 몬트리올 협약을 포함한 기타 국제법 협정하의 의무에 우선한다고 결론지었다.
ICJ는 1998년 2월 27일의 결정에서 일반 재판관할권과 訴의 허용성을 인정하였다. 그 후 1998년 8월 27일 UN 안보리는 팬암 여객기 폭탄테러 용의자 두 명이 재판을 위해 제 3국 네덜란드에 도착하면 리비아에 대해 1992년부터 계속해 온 제재를 중지한다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결국 리비아 정부는 1999년 4월 5일 용의자 두명을 UN 측에 인도하였으며, 이로써 리비아에 대한 UN의 제재조치는 자동적으로 중지되었다. UN에 인도된 두 사람은 네델란드에서 스코틀랜드 재판관들에 의해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법에 따라 재판받는다.
4. 의의
사실 발달된 법치공동체인 국가나 초국가적 기구와는 달리 아직도 분권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 단계의 공동체인 안보리나 총회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특히 헌장 7장의 운영에 대해 사법심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 ICJ 가 국제공동체의 헌법재판소로 기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ICJ 재판관들이 물론 각기 정도를 달리하여 이 문제에 관하여 진보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재판소 다수의 의견라고는 볼 수 없다.
제1절 무력행사의 금지
Ⅰ. 전쟁관의 변천
1. 초기의 차별전쟁관
2. 근대의 무차별전쟁관
3.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차별전쟁관
Ⅱ. 무력행사를 금지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
1. 제1차대전 이전
2. 국제연맹규약
3. Kellogg-Briand조약 (不戰條約)
4. UN헌장
제2절 집단적 안전보장 (collective security)
Ⅰ. 집단안전보장의 개념
Ⅱ. 국제연맹의 집단안전보장체제
Ⅲ. 유엔의 집단안전보장체제
Ⅳ. 총회에 의한 안전보장조치
Ⅴ.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Peace-Keeping Operations, PKO)
Ⅵ. 유엔정치기관과 사범심사
*UN 헌장 제7장의 관행*
Ⅰ. 냉전기간 동안(1945~1990) 헌장 제7장의 관행
Ⅱ. 냉전종식 이후 헌장 제7장의 관행
*판례 정리*
무력사용에 관한 판례
CASE 1
CASE 2
CASE 3
CASE 4
CASE 5
CASE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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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7.20
  • 저작시기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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