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크리스찬 디올, 이세이 미야케 3인의 생애와 작품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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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샤넬, 크리스찬 디올, 이세이 미야케 3인의 생애와 작품특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1.샤넬[Chanel, Gabrielle, 1883 ~1971]
1-1. 샤넬(chanel)의 삶
1-2. 작품 세계
①오뜨 꾸뛰르의 장인 정신
②진정한 창조주의자
③<샤넬 룩> 에서 <샤넬 스타일>로의 발전
④단순하고 명료한 디자인
1-3. 샤넬의 철학
① 옷으로부터의 여성 해방
②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
③ 토탈룩(Total Look)
2. 크리스챤 디올 [Christian Dior 1905 ~ 1957]
2-1.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의 삶
2-2. 작품 세계
①미니스커트
②아름다운 혁명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의 뉴룩
③갈리아노로 이어진 꺼지지 않는 정신
2-3. 디올의 업적
3. 이세이 미야케 [Issey Miyake 1938 ~ ]
3-1. 이세이 미야케의 삶
3-2. 미야키의 패션 철학
3-3. 작품세계
①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②나는 순간적인 유행이 아니라 영원한 스타일을 만드는 디자이너다.
③전위적인 패션 혁명가

결론

참고자료

본문내용

8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이세이 미야케는 도쿄의 타마 예술대학에서 그래픽 아트를 전공하고 문화복장학원에서 의상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63년 최초의 컬렉션 ‘천과 돌의 시’를 통해 호평을 받은 그는 이후 파리와 뉴욕을 무대로 기라로슈, 지방시, 그리고 제프리 빈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옷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거듭한다. 1970년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고, 1973년 파리 컬렉션을 전환점으로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그는 기존의 서구 스타일이나 일본의 전통문화, 모두에서 자유로운 독특한 그만의 스타일을 창조한다. 항상 그의 관심사였던 옷의 정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탐구는 결국 그에게 서구의 모드를 뛰어넘는 가장 혁신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디자이너라는 명성을 가져다 주는 중요한 개념이 된다. 옷의 형태는 입는 사람의 신체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옷은 신체의 자유를 증대시켜야 하며 자연스럽게 옷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누가 그것을 디자인했는지도 잊을 때 비로소 편안한 옷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세이 미야케에 대한 찬사와 전폭적인 지지는 그가 누구보다 옷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대중을 위해 존재하는 패션의 기능을 완벽하게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낸 데 대한 경의감의 표시였다. 1990년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Energieen’ 전시회에서 처음 선보여 패션사에 한 획을 그은 플리츠는 그의 혁신적인 디자인 철학이 작품으로 승화된 대표적인 예다. 주름을 이용하여 독특한 조형미를 추구한 플리츠는 그가 늘 소망했던 ‘자유’를 인간에게 부여한 혁신적인 아이템이었다. 오직 인간의 움직임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스타일이 창조되는 플리츠는 이후 ‘플리츠 플리스(Pleats Please)’라는 독립 브랜드로 이어져 전 세계에서 4년 동안 6십8만 벌의 의상이 판매되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으며 오늘날 이세이 미야케의 아이덴티티를 대표하는 아이템이 되고 있다. 나는 전통으로 돌아가거나 역사를 답습하고 싶지 않다. 서구적이지도 않으면서 동양적이지도 않은, 그러나 그 안에서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스타일을 지향한다. 옷의 형태에 인간의 몸을 끼워 맞추는 유럽의 전통적인 재단 방식을 거부한 독창적인 아이템, 플리츠 라인을 통해 옷의 형태와 기능 그리고 아름다움을 가장 잘 조화시킨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받은 이세이 미야케는 동양과 서양, 예술과 패션, 그리고 끝과 영원의 간극을 자유롭게 넘나든 디자이너다. 특히 그의 미학적이고, 기술적인 재능은 형태와 컬러, 그리고 패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전통복식의 구성법을 차용하되 첨단 소재의 개발과 서구의 미의식을 절묘히 조화시켜 이세이 미야케만의 독창성을 탄생시켰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일본전통복식의 흔적은 파격적인 형태와 감각적인 컬러를 통해 서구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서양의 이방인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동양적인 아름다운 선과 형태에 매혹되었으며 서구화된 감각적인 컬러와 스타일을 통해 편안함을 느꼈다.
이세이 미야케라는 이름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한 이래 나는 줄곧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는 데 전력투구해 왔다. 새로운 방법,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소재와 기술, 혹은 프로세스를...
과거를 말하기보다는 현재, 그리고 미래를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그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패션계의 변함 없는 지지를 받으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는 데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에너지의 원천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1976년 세이부 극장에서 선보인 ‘이세이 미야케와 12인의 흑인여성들’이라는 패션쇼, 일본의 기모노에서 영감을 받아 유럽 패션계를 뒤흔든 1977년 파리의 컬렉션 ‘A Piece of Cloth’, 천이 아니라 나무와 철사, 플라스틱 등을 사용한 의상을 발표하여 충격을 던져준 ‘Spectacle Body Works’, 그리고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그가 전개할 새로운 패션 아이콘 ‘A-POC’까지 모든 것을 담아낸 ‘Issey Miyake Making Things’ 전시회까지. 그는 한 번도 대중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 환호한 대중은 수많은 상과 상업적인 성공을 안겨줌으로 그에게 보답했지만 그의 창작에의 허기를 다 채워주진 못한 것 같다. 1999년 디자이너 나오키 타카자와에게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를 내어주고,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세이 미야케는 옷을 입는 사람이 직접 재단하여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A-Poc’라는 새로운 브랜드 개발로 또 하나의 혁신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결론
3인의 패션 디자이너들을 조사하면서 생각하게 된 점은 화해와 통합이었다. 20세기 인류사에 큰 고통을 안겨준 1,2차 세계대전의 중심에서 이들이 보여준 것은 전쟁으로 갈라진 인류의 삶을 예술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정화하고 통합하여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각자의 삶이 보여준 모습은 달랐지만 이들을 통하여 우리는 자연스럽게 전쟁으로 인해 대립되었던 세계의 통로를 찾은 것이다. 샤넬의 삶이 구습의 타파라면 디올은 전통의 존중이라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올은 그러면서도 다음 세계로서의 돌파구를 마련하였다. 그 가능성의 세계를
이세이는 인종과 동서양의 융합이라는 메시지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인간 육체의 자유를 표현 한 것이다. 샤넬, 디올, 이세이, 이들은 모두 의복으로부터 여성의 육체를 해방시키는데 노력하였다. 그들은 여성들을 옷으로부터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는데 지금의 여성들은 그들의 옷에 구속되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참고자료
1. 세계의 패션 디자이너1, 2 라사라패션정보, 2000.3
2. 패션비즈니스사전 (교학연구사. 1997)
3. 패션의 역사 (디디에 구룸바크. 1994)
4. 이세이 미야케의 패션철학을 통해 나타난 디자인 특징에 관한 연구, 김미성.배수정
복식학회 2003.
5. 이세이 미야케에 관한 연구 [정재연, 디자인문화학회, 2004]
6. 샤넬 슈트의 디자인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복식학회, 이미숙, 1999 ]
7. 코코 샤넬 (내가 곧 스타일이다 ) 카타리나 칠코프스키 지음 유영미 옮김 솔
8. 월간<디자인> 2003.10
  • 가격3,5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7.03.07
  • 저작시기2005.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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