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생존의 현장으로 돌아온다.
그의 시세계의 특징 중 하나는 가난과 초월의식이 나타나고 있음이다. 가난의 문제는 그의 시 전반에 걸쳐 스며있는 소재다. 그의 삶은 '여비가 없어 고향에도 못 가는' 질곡의 삶이었지만 가난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겸허한 울림으로 퍼져 나온다. 거기에는 삶의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그의 초월의식이 베여있기 때문이다.
내가 시를 감상하고 느꼈던 천상병의 시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시를 써냈지만 우리가 느끼기에 어렵고 난해한 시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또는 누군가가 보아도 잔잔한 감동과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시였다.
<<천상병 시인의 나에게 쓰는 ‘편지’>>
편지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 69. 11. 「현대시학」에 발표.
「편지」는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지난날의 내게 쓴 편지형식의 시다. ‘가난’을 통해서 통찰한 자아의 모습을 노래한다. ‘배부른 나’와 ‘배고팠던 나’를 인격화하면서 가난을 살아가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배부른’의 상황은 분명 예전보다 나아진 상황일 테고, 화자는 혹시나 배고팠던 기억을 잊을까봐 스스로에게 걱정이 된다고 한다. 지금 이 시의 화자가 자신의 처지에 자족하고 있는 것은 ‘점심을 얻어먹고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한 그릇 점심을 배불리 먹은 것에서도 지난날의 배고팠던 자신을 반추해보고 미안해하기까지 하는 그의 겸허한 자세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이 시의 화자는 어떤 물욕으로부터도 초극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고팠던 나’가 혹여 섭섭해 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 경계의 의지가 나타나 있다. 즉,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가 그것이다. 차비가 없거나 배가 고프기도 한 일상적 조건들은 살아가면서 부딪게 되는 사소한 좌절들이다. 그러나 천상병은 이런 사소한 좌절을 통해서 삶의 본질을 밝혀내고 있다.
이렇듯 그는 자신의 삶을 아주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기엔 뿌리 깊은 가난으로부터 그가 겪어야 하는 생생한 일상의 모습이 있고, 인생과 삶을 바라보는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이는 곧 그의 빈곤에 대한 관조적인 자세와 초월의지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편지」라는 시를 감상하고 난 나는 천상병 시인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는데 소박하지만 항상 긍정적이고 또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인물일 것이라고 그려졌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배부른 내가 /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 나는 /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라는 구절이다. 자신의 어려웠던 때를 잊지 않으려는 ‘배부른 나’의 다짐이 나에게는 이 시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하고 감동을 주는 구절이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의 가난은’>>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이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70. 7 「시인」에 발표.
천상병의 시에는 천상병 나름의 행복론이 담겨져 있다. 즉, 물질적 풍요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정신이다. 가난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 사랑의 정신을 확립해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진정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이다. ‘가난’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에게 ‘행복’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이다.
「나의 가난은」에서 1연은 작은 물질적 행복에 만족해하는 이 시인의 심경 토로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2연에서는 내일의 일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적 의식이 노래된다. 이런 현실이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록, 현실에 매인 자신이 조금쯤 서러운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가난은 ‘직업’이고 내일 일을 걱정해야 하는 불편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라고 말하며, 무한한 자연과 햇빛 앞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평등하기 때문에 그의 가난은 떳떳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부의 축적에 애쓰는 사람들의 가슴을 뜨끔하게 해줄 풍자적인 의미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마지막 연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선 /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 씽씽 바람 불어라……’라는 표현에서는 삶의 비장함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고, 이 는 가난으로부터 진정 해방된 그의 초월의식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가난은」에서 시인은 행복한 것도 ‘다소’, 서러운 것도 ‘다소’라고 말한다. 이 시는 나에게 ‘나는 항상 내 분수를 몰랐던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용돈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짜증내고 화를 냈던 나를 반성하게 한다. 풍족하고 부자인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원망하기도 했던 나와 반대로 가난을 직업이라고 하며 버스값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시인의 모습이 인상 깊은 시였다.
<<시인 천상병과 나>>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그냥 예전에 고등학교 때 배웠던 시인이라고만 생각했었을 시인 천상병에 대해 알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또 알수록 매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 역시 느꼈다. 시인은 시로서 말하고 독자는 시인의 시를 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상병 시인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게 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세계의 특징 중 하나는 가난과 초월의식이 나타나고 있음이다. 가난의 문제는 그의 시 전반에 걸쳐 스며있는 소재다. 그의 삶은 '여비가 없어 고향에도 못 가는' 질곡의 삶이었지만 가난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겸허한 울림으로 퍼져 나온다. 거기에는 삶의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그의 초월의식이 베여있기 때문이다.
내가 시를 감상하고 느꼈던 천상병의 시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시를 써냈지만 우리가 느끼기에 어렵고 난해한 시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또는 누군가가 보아도 잔잔한 감동과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시였다.
<<천상병 시인의 나에게 쓰는 ‘편지’>>
편지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 69. 11. 「현대시학」에 발표.
「편지」는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지난날의 내게 쓴 편지형식의 시다. ‘가난’을 통해서 통찰한 자아의 모습을 노래한다. ‘배부른 나’와 ‘배고팠던 나’를 인격화하면서 가난을 살아가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배부른’의 상황은 분명 예전보다 나아진 상황일 테고, 화자는 혹시나 배고팠던 기억을 잊을까봐 스스로에게 걱정이 된다고 한다. 지금 이 시의 화자가 자신의 처지에 자족하고 있는 것은 ‘점심을 얻어먹고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한 그릇 점심을 배불리 먹은 것에서도 지난날의 배고팠던 자신을 반추해보고 미안해하기까지 하는 그의 겸허한 자세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이 시의 화자는 어떤 물욕으로부터도 초극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고팠던 나’가 혹여 섭섭해 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 경계의 의지가 나타나 있다. 즉,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가 그것이다. 차비가 없거나 배가 고프기도 한 일상적 조건들은 살아가면서 부딪게 되는 사소한 좌절들이다. 그러나 천상병은 이런 사소한 좌절을 통해서 삶의 본질을 밝혀내고 있다.
이렇듯 그는 자신의 삶을 아주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기엔 뿌리 깊은 가난으로부터 그가 겪어야 하는 생생한 일상의 모습이 있고, 인생과 삶을 바라보는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이는 곧 그의 빈곤에 대한 관조적인 자세와 초월의지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편지」라는 시를 감상하고 난 나는 천상병 시인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는데 소박하지만 항상 긍정적이고 또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인물일 것이라고 그려졌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배부른 내가 /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 나는 /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라는 구절이다. 자신의 어려웠던 때를 잊지 않으려는 ‘배부른 나’의 다짐이 나에게는 이 시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하고 감동을 주는 구절이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의 가난은’>>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이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70. 7 「시인」에 발표.
천상병의 시에는 천상병 나름의 행복론이 담겨져 있다. 즉, 물질적 풍요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정신이다. 가난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 사랑의 정신을 확립해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진정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이다. ‘가난’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에게 ‘행복’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이다.
「나의 가난은」에서 1연은 작은 물질적 행복에 만족해하는 이 시인의 심경 토로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2연에서는 내일의 일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적 의식이 노래된다. 이런 현실이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록, 현실에 매인 자신이 조금쯤 서러운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가난은 ‘직업’이고 내일 일을 걱정해야 하는 불편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라고 말하며, 무한한 자연과 햇빛 앞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평등하기 때문에 그의 가난은 떳떳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부의 축적에 애쓰는 사람들의 가슴을 뜨끔하게 해줄 풍자적인 의미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마지막 연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선 /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 씽씽 바람 불어라……’라는 표현에서는 삶의 비장함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고, 이 는 가난으로부터 진정 해방된 그의 초월의식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가난은」에서 시인은 행복한 것도 ‘다소’, 서러운 것도 ‘다소’라고 말한다. 이 시는 나에게 ‘나는 항상 내 분수를 몰랐던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용돈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짜증내고 화를 냈던 나를 반성하게 한다. 풍족하고 부자인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원망하기도 했던 나와 반대로 가난을 직업이라고 하며 버스값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시인의 모습이 인상 깊은 시였다.
<<시인 천상병과 나>>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그냥 예전에 고등학교 때 배웠던 시인이라고만 생각했었을 시인 천상병에 대해 알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또 알수록 매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 역시 느꼈다. 시인은 시로서 말하고 독자는 시인의 시를 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상병 시인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게 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