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르네상스란?
(1) 르네상스 미술의 기원
(2) 르네상스의 특징
(3) 회화기법
2. 초기 르네상스
(1) 초기 르네상스의 성격
(2) 후원자들과 미술가들
3. 북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1) 베네치아 르네상스
(2) 지오반니 벨리니
4. 전성기 르네상스
(1) 레오나르도 다 빈치
(2) 미켈란젤로
(3) 라파엘로
5. 북유럽 르네상스
1) 플랑드르 르네상스
(1) 반 아이크 형제
(2) 브뤼겔
2) 독일의 르네상스
(1) 뒤러
(2) 홀바인
(3) 크라나하
Ⅲ. 결론
- 참고 문헌
Ⅱ. 본론
1. 르네상스란?
(1) 르네상스 미술의 기원
(2) 르네상스의 특징
(3) 회화기법
2. 초기 르네상스
(1) 초기 르네상스의 성격
(2) 후원자들과 미술가들
3. 북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1) 베네치아 르네상스
(2) 지오반니 벨리니
4. 전성기 르네상스
(1) 레오나르도 다 빈치
(2) 미켈란젤로
(3) 라파엘로
5. 북유럽 르네상스
1) 플랑드르 르네상스
(1) 반 아이크 형제
(2) 브뤼겔
2) 독일의 르네상스
(1) 뒤러
(2) 홀바인
(3) 크라나하
Ⅲ. 결론
- 참고 문헌
본문내용
초기 작품은 청순한 색채와 감미로운 음악적 리듬이 보이며, 격정이나 위대성을 강조하지 않고 부드러운 매력을 나타내려 하였다. 그는 페루지노의 기풍을 익혀 “성모대관”, “그리스도의 책형”, “성모의 결혼”등은 페루지노의 그림이라 착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공간처리나 환상적인 표현에는 그의 스승에게서 볼 수 없는 신선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 이후에 그는 바르톨로메오의 장대한 화면 구성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암법을 배워 페루지노의 화풍을 탈피하여, 피렌체의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그가 그린 초상화를 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성모의 자태나 피라미드형 구도에서도 역시 그렇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매장”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선의 움직임까지 모방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인의 기법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화면 구성에 있어서의 선의 율동적인 조화라든지 인물태도의 고요함이나 용모의 청순함 등에는 언제나 독자성을 나타내었다. 곧 라파엘로의 예술은 전성기 르네상스의 특징을 모두 집약해 놓은 것이다. 그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많은 걸작은 19세기 전반까지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5. 북유럽 르네상스
북유럽 르네상스는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각 유럽 국가에는 중세와 현저하게 다른 문화의 발전이 있었다. 천재가 활약할 수 있는 지적인 사회 분위기는 르네상스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에서 대두되었다. 그러나 북유럽 그림들은 중세 기원과 아주 가까웠다; 15세기와 16세기에서 초기 스타일의 후예인, 북유럽 국가들에서 그려진 그림들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이 그림들의 2차원적인 디자인들은 그 시대의 실내 장식용 비단과 색유리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고, 유행한 표면 패턴에서 사실적인 공간 지각력의 발전을 발견할 수 없다.
크고 상투적으로 그려진 사물들 뒤에 깊이가 없고 추상적인 황금 배경의 계속적인 사용은 15세기 말에도 중세 말기의 형태와 종교적인 상징성의 영향을 느낀 많은 북유럽 미술가들의 보수주의적 경향을 보여준다. 이들은 평범한 일상 생활이나 자연을 충실히 표현하려는 자연주의적인 사실주의였다. 이때의 그림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그림보다 색채가 어두운 반면 치밀한 묘사가 뛰어났다.
1) 플랑드르 르네상스
(1) 반 아이크 형제
북유럽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형인 후베르트는 유화 물감을 발명했으며 동생인 얀은 빛과 색채의 효과를 연구하고 유화 기법을 사용하여 사실주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수사본의 삽화가로서 수업을 쌓았던 얀 반 아이크는 선명한 색채로 거의 현미경으로 보는 듯한 미세한 세부까지도 설득력있게 묘사했다.
(2) 브뤼겔
농민의 생활과 하층민의 사회 풍속을 그린 민중 화가로서 작품으로는 “눈 속의 사냥꾼”, “농민의 결혼식”, “성 요한의 설교” 등이 있다.
2) 독일의 르네상스
(1) 뒤러
첫번째 북유럽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는 사실주의라는 북유럽 미술의 특성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혁신적인 요소들을 결합시킨 화가이며 세밀화에 능했다. 그는 회화, 조각, 판화 등의 작품들을 남겼으며 종교화, 초상화, 풍경화등의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뒤러가 북유럽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서 명성을 날린 원인은 그의 판화 작품에 있다. 뒤러 이전의 판화는 흑백의 대조를 위주로 한 단순한 장르에 불과했으나 그는 동판화의 해칭기법을 목판화에 사용하여 유화 못지 않게 세밀한 질감과 색조를 묘사해 낸 것이다. 뒤러는 판화를 미술의 주요 표현 수단으로 사용한 첫번째 화가였다.
(2) 홀바인
한스 폴바인 또한 뒤러와 마찬가지로 북부의 장점과 남부의 장점을 모두 취하였는데 그 세밀한 필치와 깨끗한 화면 구성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로 알려져 있다. 홀바인도 뒤러와 같이 정확도를 가해 인물의 얼굴을 묘사하고 있으나, 뒤러 작품의 긴장감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이탈리아적인 표정 없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또 많은 풍속화를 남겼으며 작품으로는 에라스무스의 죽음, 죽음의 무도, 기제의 초상, 유년의 에드워드 6세 등이 있다.
(3) 크라나하
독특하고 신경질적인 필치로 전형적인 인물을 표현했으며 그의 작품으로는 봄의 요정, 유디트, 안나의 초상 등이 있다.
Ⅲ 결론
이상, 지역별과 시기별로 르네상스의 특징과 작가들을 조사 해 보았다. 르네상스는 서양 사상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는 운동이며, 르네상스 시대는 세계사상 위대한 전환기의 하나로 침체한 중세기의 종말을 가져오고 생동하는 근대의 동이 거기에서 터왔다고도 볼 수 있다. 르네상스는 문예부흥으로 옮겨지고 있으나, 그것은 결코 문학이나 미술에만 국한된 문화 운동이 아니고, 정치와 경제와 사상의 인류 생활의 온 영역에 걸친 일대 개조 갱신 운동으로, 무릇 근대사의 흐름치고 거기에 말미암지 않은것이 없으며, 근대 문명의 모든 요소와 요인이 또한 거기에서 싹드지 않은 것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법칙적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합리성에 의해 모든 것을 사고하려는 세계관이 생겨났다. 화가들은 ‘회화적’인 것과 대립되는 개념의 조형성 예술을 입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시기인 것이다. 르네상스에 관한 조사와 정리를 수행하면서 그 흐름과 르네상스의 특징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관련서적을 여러권 보는 과정에서 몰랐던 그림들도 많이 접했기에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과제였다. 워낙 자료들이 방대해서 르네상스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되는 이 시기가 바야흐로 2세기라는 긴 시간동안 세계 여러 곳곳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는 사실은 이제서야 실감이 된다. 르네상스에 관한 한 이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고 다른 시대 또한 이처럼 조사하고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리포트를 마친다.
참고 문헌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예경, 1997
로자 마리아 레츠 <<르네상스의 미술>> 예경산업사, 1991
수잔나 파르취 <<당신의 미술관2>> 현암사, 1999
W.K퍼거슨 <<르네상스>> 1984
캐롤 스트릭랜드 <<클릭,서양미술사>> 예경, 2002
5. 북유럽 르네상스
북유럽 르네상스는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각 유럽 국가에는 중세와 현저하게 다른 문화의 발전이 있었다. 천재가 활약할 수 있는 지적인 사회 분위기는 르네상스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에서 대두되었다. 그러나 북유럽 그림들은 중세 기원과 아주 가까웠다; 15세기와 16세기에서 초기 스타일의 후예인, 북유럽 국가들에서 그려진 그림들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이 그림들의 2차원적인 디자인들은 그 시대의 실내 장식용 비단과 색유리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고, 유행한 표면 패턴에서 사실적인 공간 지각력의 발전을 발견할 수 없다.
크고 상투적으로 그려진 사물들 뒤에 깊이가 없고 추상적인 황금 배경의 계속적인 사용은 15세기 말에도 중세 말기의 형태와 종교적인 상징성의 영향을 느낀 많은 북유럽 미술가들의 보수주의적 경향을 보여준다. 이들은 평범한 일상 생활이나 자연을 충실히 표현하려는 자연주의적인 사실주의였다. 이때의 그림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그림보다 색채가 어두운 반면 치밀한 묘사가 뛰어났다.
1) 플랑드르 르네상스
(1) 반 아이크 형제
북유럽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형인 후베르트는 유화 물감을 발명했으며 동생인 얀은 빛과 색채의 효과를 연구하고 유화 기법을 사용하여 사실주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수사본의 삽화가로서 수업을 쌓았던 얀 반 아이크는 선명한 색채로 거의 현미경으로 보는 듯한 미세한 세부까지도 설득력있게 묘사했다.
(2) 브뤼겔
농민의 생활과 하층민의 사회 풍속을 그린 민중 화가로서 작품으로는 “눈 속의 사냥꾼”, “농민의 결혼식”, “성 요한의 설교” 등이 있다.
2) 독일의 르네상스
(1) 뒤러
첫번째 북유럽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는 사실주의라는 북유럽 미술의 특성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혁신적인 요소들을 결합시킨 화가이며 세밀화에 능했다. 그는 회화, 조각, 판화 등의 작품들을 남겼으며 종교화, 초상화, 풍경화등의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뒤러가 북유럽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서 명성을 날린 원인은 그의 판화 작품에 있다. 뒤러 이전의 판화는 흑백의 대조를 위주로 한 단순한 장르에 불과했으나 그는 동판화의 해칭기법을 목판화에 사용하여 유화 못지 않게 세밀한 질감과 색조를 묘사해 낸 것이다. 뒤러는 판화를 미술의 주요 표현 수단으로 사용한 첫번째 화가였다.
(2) 홀바인
한스 폴바인 또한 뒤러와 마찬가지로 북부의 장점과 남부의 장점을 모두 취하였는데 그 세밀한 필치와 깨끗한 화면 구성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로 알려져 있다. 홀바인도 뒤러와 같이 정확도를 가해 인물의 얼굴을 묘사하고 있으나, 뒤러 작품의 긴장감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이탈리아적인 표정 없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또 많은 풍속화를 남겼으며 작품으로는 에라스무스의 죽음, 죽음의 무도, 기제의 초상, 유년의 에드워드 6세 등이 있다.
(3) 크라나하
독특하고 신경질적인 필치로 전형적인 인물을 표현했으며 그의 작품으로는 봄의 요정, 유디트, 안나의 초상 등이 있다.
Ⅲ 결론
이상, 지역별과 시기별로 르네상스의 특징과 작가들을 조사 해 보았다. 르네상스는 서양 사상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는 운동이며, 르네상스 시대는 세계사상 위대한 전환기의 하나로 침체한 중세기의 종말을 가져오고 생동하는 근대의 동이 거기에서 터왔다고도 볼 수 있다. 르네상스는 문예부흥으로 옮겨지고 있으나, 그것은 결코 문학이나 미술에만 국한된 문화 운동이 아니고, 정치와 경제와 사상의 인류 생활의 온 영역에 걸친 일대 개조 갱신 운동으로, 무릇 근대사의 흐름치고 거기에 말미암지 않은것이 없으며, 근대 문명의 모든 요소와 요인이 또한 거기에서 싹드지 않은 것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법칙적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합리성에 의해 모든 것을 사고하려는 세계관이 생겨났다. 화가들은 ‘회화적’인 것과 대립되는 개념의 조형성 예술을 입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시기인 것이다. 르네상스에 관한 조사와 정리를 수행하면서 그 흐름과 르네상스의 특징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관련서적을 여러권 보는 과정에서 몰랐던 그림들도 많이 접했기에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과제였다. 워낙 자료들이 방대해서 르네상스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되는 이 시기가 바야흐로 2세기라는 긴 시간동안 세계 여러 곳곳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는 사실은 이제서야 실감이 된다. 르네상스에 관한 한 이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고 다른 시대 또한 이처럼 조사하고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리포트를 마친다.
참고 문헌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예경, 1997
로자 마리아 레츠 <<르네상스의 미술>> 예경산업사, 1991
수잔나 파르취 <<당신의 미술관2>> 현암사, 1999
W.K퍼거슨 <<르네상스>> 1984
캐롤 스트릭랜드 <<클릭,서양미술사>> 예경,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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