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없음
본문내용
세기 한국사에는 큰 파장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점은 그들을 추모하며 기리기 위한 여러 가지 국책사업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점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며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그들의 넋을 기리는 좀 더 가치 있고 좀 더 내실 있는 사업을 기대하며 진정한 의미를 고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발통문, 무명농민군기념탑사진)
(첫번째 사진은 옆에 돌에 새겨진 한문을 번역하고 계신모습을 찍었고 세 번째는 무명농민군기념탑을 찍은 사진이다)
이제 이 유적지까지 정읍에서의 답사가 끝나게 되었으며 차에 올라타서 마지막 유적지인 삼례봉기역사광장에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 버스에서 감상문제출을 하였는데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어떻게 쓰냐고 누군가 질문을 하였는데 교수님께서는 그냥 대충 쓰라고 하셨던 것 같았다. 보아하니 기념 사업회에서 형식적으로 실시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충 썼으나 쓰는 도중에 이 감상문을 제출하여 성적이 조금이라도 반영한다면 답사에 참가하여 열심히 듣고 보고 배울 것 이라고 생각을 했다. 다음 답사에서부터는 시정되었으면 하는 부분이란 바람을 가져보았다.
이제 마지막 답사지역인 삼례지역에 도착하였다. 먼저 이 삼례지역이 갖는 역사적 의의와 상징적 의의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동학농민혁명의 1차 봉기가 부정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반봉건 운동이었다면 2차 봉기가 일어난 삼례지역에서는 불평등하게 체결된 강화도조약이후 조선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일본군의 외세침탈을 배격하며 일어난 농민군의 항일 투쟁운동의 지역 이였으며 우리민족의 가장 위대했던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계기가 되는 분수령 이였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삼례지역이 우리의 항일농민의병의 발상지가 되었으며 근대민족운동의 횃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사광장에서 눈에 띄는 조형물이 하나있다. 하나 되어란 조형물인데 누구든지 소망을 담은 돌을 얹어놓는 행위를 통해서 무한 다수 공동제작의 개념과 참여의식의 발현에 의한 지속적 확산과 계승을 의도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본질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도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며 또 팔뚝은 민중의 힘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음으로 이 삼례지역이 봉기를 일으키기 위해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자면 92-3년에 이루어진 교조신원운동으로써 죽창을 만들며 투쟁하게 됨으로써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교통의 중심지로 사람들이 집결하기 좋은 장소였기에 가능했던 것이 라는 걸 알 수 있다. 또 이 삼례봉기광장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점을 생각해보자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지역에 의미를 재조명하며 삼례봉기의 위대한 정신을 되살리기 위하며 또 그런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며 진정한의미로 되살리면서 기념사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실천한다는
점은
실로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삼례광장사진)
마지막으로 운동장에서 택견 시범을 보고 오늘의 모든 답사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첫 답사지역 백산 봉기터에서 마지막 답사 지역인 삼례봉기 역사광장까지 숨가쁜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유적지 하나하나에 서려있는 그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며 100년전으로 돌아가 그 당시에 이루어졌던 사건과 상황을 생각하며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민족의 앞날과 사회적 모순등을 바로 잡으려 하는 농민군들의 구체적이며 능동적인 시대정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였으며 또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살아가야 할것이다 라는걸 느끼게 되었다.
현재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통일문제, 정치권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기싸움, 세계적 열강들 사이에서의 피말리는 경쟁등으로 한치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혼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반봉건 민주화, 반외세 자주화라는 두 가지 화두를 내걸고 싸웠던100년전의 불안정한 사회상황과 지금의 현 상황과는 조금도 다르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하며 확실한 방향설정을 하지 못한다면 돌이 킬 수 없는 역사적인 과오를 다시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구질서를 유지하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적사고, 또는 수동적 사고는 우리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모든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다. 즉, 계속변화하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현 상황에서 우리가 누구를 상대로 싸워나가야 하며 또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으며 또한 그 정신으로 우리는 열심히 싸워야만 할 것이다. 이것으로써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 감상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있었으면
좋겠다.
(사발통문, 무명농민군기념탑사진)
(첫번째 사진은 옆에 돌에 새겨진 한문을 번역하고 계신모습을 찍었고 세 번째는 무명농민군기념탑을 찍은 사진이다)
이제 이 유적지까지 정읍에서의 답사가 끝나게 되었으며 차에 올라타서 마지막 유적지인 삼례봉기역사광장에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 버스에서 감상문제출을 하였는데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어떻게 쓰냐고 누군가 질문을 하였는데 교수님께서는 그냥 대충 쓰라고 하셨던 것 같았다. 보아하니 기념 사업회에서 형식적으로 실시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충 썼으나 쓰는 도중에 이 감상문을 제출하여 성적이 조금이라도 반영한다면 답사에 참가하여 열심히 듣고 보고 배울 것 이라고 생각을 했다. 다음 답사에서부터는 시정되었으면 하는 부분이란 바람을 가져보았다.
이제 마지막 답사지역인 삼례지역에 도착하였다. 먼저 이 삼례지역이 갖는 역사적 의의와 상징적 의의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동학농민혁명의 1차 봉기가 부정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반봉건 운동이었다면 2차 봉기가 일어난 삼례지역에서는 불평등하게 체결된 강화도조약이후 조선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일본군의 외세침탈을 배격하며 일어난 농민군의 항일 투쟁운동의 지역 이였으며 우리민족의 가장 위대했던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계기가 되는 분수령 이였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삼례지역이 우리의 항일농민의병의 발상지가 되었으며 근대민족운동의 횃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사광장에서 눈에 띄는 조형물이 하나있다. 하나 되어란 조형물인데 누구든지 소망을 담은 돌을 얹어놓는 행위를 통해서 무한 다수 공동제작의 개념과 참여의식의 발현에 의한 지속적 확산과 계승을 의도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본질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도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며 또 팔뚝은 민중의 힘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음으로 이 삼례지역이 봉기를 일으키기 위해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자면 92-3년에 이루어진 교조신원운동으로써 죽창을 만들며 투쟁하게 됨으로써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교통의 중심지로 사람들이 집결하기 좋은 장소였기에 가능했던 것이 라는 걸 알 수 있다. 또 이 삼례봉기광장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점을 생각해보자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지역에 의미를 재조명하며 삼례봉기의 위대한 정신을 되살리기 위하며 또 그런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며 진정한의미로 되살리면서 기념사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실천한다는
점은
실로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삼례광장사진)
마지막으로 운동장에서 택견 시범을 보고 오늘의 모든 답사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첫 답사지역 백산 봉기터에서 마지막 답사 지역인 삼례봉기 역사광장까지 숨가쁜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유적지 하나하나에 서려있는 그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며 100년전으로 돌아가 그 당시에 이루어졌던 사건과 상황을 생각하며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민족의 앞날과 사회적 모순등을 바로 잡으려 하는 농민군들의 구체적이며 능동적인 시대정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였으며 또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살아가야 할것이다 라는걸 느끼게 되었다.
현재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통일문제, 정치권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기싸움, 세계적 열강들 사이에서의 피말리는 경쟁등으로 한치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혼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반봉건 민주화, 반외세 자주화라는 두 가지 화두를 내걸고 싸웠던100년전의 불안정한 사회상황과 지금의 현 상황과는 조금도 다르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하며 확실한 방향설정을 하지 못한다면 돌이 킬 수 없는 역사적인 과오를 다시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구질서를 유지하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적사고, 또는 수동적 사고는 우리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모든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다. 즉, 계속변화하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현 상황에서 우리가 누구를 상대로 싸워나가야 하며 또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으며 또한 그 정신으로 우리는 열심히 싸워야만 할 것이다. 이것으로써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 감상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