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인간 토함산 석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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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와 인간 토함산 석불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순 서


■ 리포트를 시작하며...

■ 토함산 석불사 (상)

■ 토함산 석불사 (중)

■ 토함산 석불사 (하)

■ 리포트를 마무리하며...

본문내용

불국사와 석굴암의 측량을 도맡았다. 요나다가 세상을 떠난 후 그가 7년간 측량하여 얻은 분석 자료를 모아 『조선상대건축의 연구』를 펴냈다.
요네다의 책에 실린 「경주 석굴안의 조형계획」은 석불사 석굴의 과학적 신비를 푸는 첫 실마리이자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요네다는 측량의 정확성을 위하여 통일신라 석공이 사용했을 자와 똑같은 자를 쇠자로 만들고 그것으로 측량하였다. 그 결과 석굴의 평면계획을 보면 주실은 반지름 12자의 원이다. 원형 주실의 입구 또한 12자로 이는 원에 내접하는 육각형의 한 변에 해당한다. 주실의 대좌는 원의 중심에 놓인 것이 아니라 약간 뒤쪽으로 물러나 있는데 그 위치는 입구의 12자를 한 변으로 하는 정삼각형을 그렸을 때 그 꼭지점이 대좌의 앞끝에 닿도록 했다. 그리고 대좌의 높이는 한 변을 12자로 하는 정삼각형의 높이의 2분의 1로 하였다. 현재의 전실은 조금 변형이 되었으나 요네다 측량 당시의 모습으로 보았을 때 주실 입구에는 대좌 앞을 잇는 12자 정삼각형을 3배로 연결한 상태의 밑변에서 전실의 입구가 설정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석굴의 입면계획에서도 주벽의 조각과 받침돌을 합친 길이가 12자이고, 감실의 높이는 12×√2자이고, √2는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이다. 그리고 감실의 천장에서 석굴 천장에 이르는 길이는 12자를 반지름으로 하는 반원을 이룬다. 그리고 본존상과 대좌의 높이를 합치면 12×√2자가 된다.
대좌는 정팔각형으로 간석이 끼여 있는데 간석받침의 지름은 한 변을 12자로 한 정삼각형의 높이의 2분의 1인 5.2자를 기본으로 하여 5.2자의 정사각형이 이루는 대각선 길이가 되며, 대좌의 아래쪽 받침은 5.2자가 만든 정팔각형의 내접원과 일치한다.
이와 같은 수리관계로 요네다는 석굴의 조영이 12자를 기본으로 하면서 정사각형과 그 대각석의 길이인 √2의 응용, 정삼각형의 높이의 응용, 원에 내접하는 육각형과 팔각형 등의 비례구성으로 이루어졌음을 풀어내었다.
불상의 크기는 11.53자인데 이 수치를 11.0자로 요약하여 무릎과 무릎사이는 8.8자, 어깨의 너비는 6.6자, 가슴너비 4.4자, 얼굴폭 2.2자라는 수치를 얻을 수 있다. 또 양무릎 8.8자를 한변으로 하는 정삼각형을 그리면 꼭지점은 턱에 닿는다.
그는 짧은 삶을 살았지만 백면의 기술자이고 무명의 건축학도였던 그가 7년간 말없이 성실하고 치밀하게 측량했던 그 경험을 토대로 불과 3년 만에 이처럼 위대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 신라인의 과학과 기술
김용운 교수는 신라에 재정 회계 등을 담당하는 기술 관리의 양성을 목적으로 설치된 수학교육기관이 있었으나 거기에는 서양적이 뜻에서의 기하학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면서도 석굴의 구조처럼 기하학적인 수법이 정교하게 이용된 것은 여러모로 생각하게 한다고 하였다.
-응용의 내용 열 가지 (1-기본단위의 설정, 2-기존단위의 분수점 등분, 3-정가각형과 그대각선으로 전개, 4-등급차수를 이용한 본존불 형상의 결정, 5-정삼삿형과 그 수직선의 분할, 6-정육각형의 한 변과 외접원, 7-정팔각형과 내접원, 8-원과 원주율, 9-구면, 10-타원)
석굴은 경이적인 정확도로써 기하학적으로 건립되었다. 이 정확도는 1천분의 1, 아니 1만분의 1에 달한다. 1만분의 1이란 10m에 대하여 1mm의 오차를 말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석굴의 각 석재가 얼마나 정확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뜻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석굴본당은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원호를 구성하고 있는 조각의 숫자만도 15구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거대한 화강암의 암석을 갖고 마치 밀가루반죽이라도 다루듯 자유자재로 다듬어놓았던 신라인의 기하학에 대해서도 경탄할 뿐이다.
● 석굴 밑에서 샘이 솟는 이유
석불사의 석굴에 오르면 우리는 넓은 공터에서 석굴을 마주보게 된다. 바로 그 공터 맞은편 바위에서는 천연샘이 솟아나고 이를 감로수라고 부른다. 이 감로수는 신비하게도 석굴 본당의 암반 밑에서 용출하는 두개의 샘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1913년에 시작된 보수공사 때 일제는 콘크리트벽을 세우기 위하여 암반을 파고들다가 이 샘을 발견하고는 그 습기가 석굴 내부로 스며 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연관을 묻었다. 1963년 다시 석궁 수리공사 때 삭아버린 연관을 대신하여 튼튼한 동 파이프를 묻어 석굴 밖으로 빼내었다. 그 후 계속 습기가 차자 이 감로수의 문제로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결국 이 문제는 이태영 박사가 그 신비를 풀어내었다. 그의 「석굴암의 구조와 습기문제」라는 논문을 보면 다음과 감은 내용이 실려 있다.
석굴암 석면의 결로 현상은 석면의 온도조절이 균형을 잃은 데서 일어난다. 일제 때 보수하기 전에는 석굴 밑에 있는 두 개의 샘물 때문에 석굴바닥의 온도가 조각이 있는 벽면보다 낮아 바닥돌에서만 결로 현상이 나타나고 풍화작용도 이곳에서만 심했다. 그러나 일제 때 두 차례의 보수공사에서 바닥을 강회로 보강하고 샘물을 연관으로 돌리고 요석 뒷면에 콘크리트를 다져넣었기 때문에 온도가 낮아야 할 바닥돌의 온도가 높아지고 반대로 요석부분의 온도가 낮아져 정교한 조각이 있는 벽면에 물기가 돌고 있는 것이다.
진짜 과학이란 모름지기 자연현상을 거스르지 않으며,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해는 동쪽애서 떠오른다
석굴암의 방향에 대하여 많은 가설과 논쟁이 있었다. 그중 남천우 박사는 곧 석굴의 방향은 대왕암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동짓날 해뜨는 방향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석굴암에서 망각된 고도의 신라과학」에서 발표하였다.
석불사의 석굴이 지금처럼 목조전실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개방구조가 원형이라고 생각할 때 동짓날 일출이 지나는 의미는 자못 큰 것이다. 동지는 일년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한다. 석불구조의 수리적 관계를 생각할 때 동짓날 일출의 방향은 설득력을 더하게 된다.
● 김대성의 키는 170cm?
김익수 교수는 석굴의 원형은 남천우 박사가 주장하는 개방설과 전실은 전개가 아니라 굴절이라는 주장에 동조하면서 김대성의 키는 170cm라고 추정하는 신기한 주장을 폈다.
김교수는 조각가 입장에서 본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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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01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0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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