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 론
Ⅰ. 칼빈 영성의 본질적 표현으로서의 경건
1. 경건
2. 영성의 본질적 표현
Ⅱ. 경건에 대한 칼빈의 정의
Ⅲ. 칼빈 영성의 독특성
1. 하나님 형상의 회복으로서의 성화
2. 질서의 개념과 영적 생활
3. 목회자의 영성
결 론
※ 참고도서
Ⅰ. 칼빈 영성의 본질적 표현으로서의 경건
1. 경건
2. 영성의 본질적 표현
Ⅱ. 경건에 대한 칼빈의 정의
Ⅲ. 칼빈 영성의 독특성
1. 하나님 형상의 회복으로서의 성화
2. 질서의 개념과 영적 생활
3. 목회자의 영성
결 론
※ 참고도서
본문내용
말아야 하는 반면, 이 결합을 가장 깊은 수준에서의 조화로 보아야지 다순한 의지의 조화로 보아서는 안된다. 칼빈은 그의 칭의와 성화 개념을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통합에 기초함으로써 그의 영성 안에 순수한 신비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Karl Reuter는 그가 기록할 대 분명히 과장했다. “칼빈에 의해서 발전된 경건의 개념은 모든 신비적 경향들에는 낯선 것이다. 그것은 오직 훈련으로만 인도한다.” Das Grundverstandnis der Thrologie Calvins (Neukirchen, 1963) 99. Richard. op. cit., p. 153. 재인용.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주관적인 체험을 교리의 실제적 기초로 취급했다.
2. 질서의 개념과 영적 생활
칼빈의 성화의 과정은 그것의 외적으로는 기독론적으로 보고, 그리고 내적으로는 성령론적 강조를 함으로, 하나님 형상과 기본적 질서 회복으로서 간주하고 있다.
인간에게 반사된 하나님의 형상은 자신의 질서를 통해서 표현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각인된 정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에 응답하는 살아있는 인간의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다. 칼빈의 하나님의 형상 개념과 질서의 개념은 상호 바꾸어 사용할 수 있다. 질서의 개념은 칼빈 신학의 근본적 범주에 속한다. 그것은 그의 사고의 많은 것을 위해 매개체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중심 개념의 견지에서 볼 때 그의 영성의 상당히 깊은 곳을 잘 이해할 수 있다. B. Milner, Calvin\'s Doctrin of the Church(Leiden, 1970) Richard. op., p. 157.
모든 사물은 창조와 구원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움직임에 따라서 배역되어 있다고 칼빈은 믿고 있었다. 창조 질서는 모든 피조물, 특히 인간에게 그의 운명과 존재 이유를 제시한다. 이 질서에서 인간은 정직하고 공정하게 살아간다. 역서 인간은 “그들의 창조이 법칙과 순수한 질서 속에서 살도록” 요청된다. Inst., Ⅰ, 3, 3.
그것이 우주 안에서나, 인간 또는 국가적이거나 가에 순수한 질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이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무질서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명이 된다. 첫째, 인간의 불순종 안에서 “모든 창조질서는 뒤집혀져 버렸다”고 칼빈은 설명했다. 그때부터 인간은 뒤집힌 창조질서에서 살게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께 의존하기보다 자신에게 의존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뒤집어 버릴 때 악은 발생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바로 인간 안에서 하나님 형상을 새롭게 함으로써 질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에 있어서 구체적인 행동들보다는 그의 영성의 전체적방향을 본받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특별히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십자가를 지는 것의 두가지 방법이 초점이 된다. Bousma, op. cit., 92. 참조.
칼빈 영성의 주요한 범주인 경건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조정된 인간의 태도이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 자신의 자리를 갖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 위치를 갖는다는 말은 순종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심을 믿음으로, 지신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움직임으로, 그리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만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3. 목회자의 영성
칼빈은 가장이 자녀를 양육하듯이 주님은 참되고 신실한 교사들로 하여금 영적 양식으로 우리를 양육한다고 말한다. 아모스 주석, 8:11-12.
따라서 목사의 직임이야말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초고의 직임이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많은 중요한 은사들 중에서 독특한 특권은 그가 사람들의 입과 혀를 자신을 위해 성별하고 그것들 안에서 자신으 음성이 울리게 한 것이다. Inst., Ⅳ, 1, 5.
그리스도는 설교자의 입이 곧 자기의 입으로 간주되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설교자는 결코 자만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을 기다려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결부된다. 그러나 구별된다. 이는 외적 말씀이 성령의 힘에 의해 생명이 불어넣어지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무용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에스겔 주석, 2:2.
설교에서 성령의 역사가 결정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교자가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무엇보다 먼저 학자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좋은 사역자가 결코 되지 못할 것이다. 출애굽기 설교, 5:23-27.
예언이란 성서에 대한 다순한 해석이 아니라 현재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을 포함하는 것이다(고전 14:6). 그래서 ”선하고 신실한 목자의 직임은 단순히 성서를 설명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힘과 능력을 더하기 위해 진지함과 예리함을 가져야 한다. 디모데전서 설교, 3:16.
목사의 설교는 두 가지 효력을 가진다. 즉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악인에게는 정죄의 효과가 있다. 이사야 주석, 55:11.
원래 복음은 구원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고린도후서 주석, 10:8.
그러나 인간이 죄악속에서 복음을 거부할 때 복음은 그를 정죄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두 음성을 가져야 하는데, 하나는 양떼를 모으는 음성이요, 다른 하나는 늑대나 도적들을 몰아내는 음성이다 디도서 주석, 1:9.
칼빈은 목회자의 삶에도 관심을 가졌다. 목회자의 삶은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삶이며, 그래서 가난한 삶이 되어야 한다. “감독은 가난한 자들이 가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것을 바람직하게 보았다. Inst., Ⅳ, 7.
그래서 칼빈은 교회 수입에서 “적어도 절반”은 가난한 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고대 교회의 아카키우스 감독이 “우리 하나님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 때문에 잔이나 컵이 필요 없습니다”하고 말하고 교회의 그릇들을 녹여 팔아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양식을 사 준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교회가 가진 것은 무엇이나 곤궁한 자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는 암브로스의 말을 매우 진실된 말이라고 예찬했다. Inst., Ⅳ, 4, 7.
칼빈은, 하나님의 종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주관적인 체험을 교리의 실제적 기초로 취급했다.
2. 질서의 개념과 영적 생활
칼빈의 성화의 과정은 그것의 외적으로는 기독론적으로 보고, 그리고 내적으로는 성령론적 강조를 함으로, 하나님 형상과 기본적 질서 회복으로서 간주하고 있다.
인간에게 반사된 하나님의 형상은 자신의 질서를 통해서 표현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각인된 정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에 응답하는 살아있는 인간의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다. 칼빈의 하나님의 형상 개념과 질서의 개념은 상호 바꾸어 사용할 수 있다. 질서의 개념은 칼빈 신학의 근본적 범주에 속한다. 그것은 그의 사고의 많은 것을 위해 매개체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중심 개념의 견지에서 볼 때 그의 영성의 상당히 깊은 곳을 잘 이해할 수 있다. B. Milner, Calvin\'s Doctrin of the Church(Leiden, 1970) Richard. op., p. 157.
모든 사물은 창조와 구원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움직임에 따라서 배역되어 있다고 칼빈은 믿고 있었다. 창조 질서는 모든 피조물, 특히 인간에게 그의 운명과 존재 이유를 제시한다. 이 질서에서 인간은 정직하고 공정하게 살아간다. 역서 인간은 “그들의 창조이 법칙과 순수한 질서 속에서 살도록” 요청된다. Inst., Ⅰ, 3, 3.
그것이 우주 안에서나, 인간 또는 국가적이거나 가에 순수한 질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이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무질서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명이 된다. 첫째, 인간의 불순종 안에서 “모든 창조질서는 뒤집혀져 버렸다”고 칼빈은 설명했다. 그때부터 인간은 뒤집힌 창조질서에서 살게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께 의존하기보다 자신에게 의존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뒤집어 버릴 때 악은 발생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바로 인간 안에서 하나님 형상을 새롭게 함으로써 질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에 있어서 구체적인 행동들보다는 그의 영성의 전체적방향을 본받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특별히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십자가를 지는 것의 두가지 방법이 초점이 된다. Bousma, op. cit., 92. 참조.
칼빈 영성의 주요한 범주인 경건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조정된 인간의 태도이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 자신의 자리를 갖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 위치를 갖는다는 말은 순종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심을 믿음으로, 지신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움직임으로, 그리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만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3. 목회자의 영성
칼빈은 가장이 자녀를 양육하듯이 주님은 참되고 신실한 교사들로 하여금 영적 양식으로 우리를 양육한다고 말한다. 아모스 주석, 8:11-12.
따라서 목사의 직임이야말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초고의 직임이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많은 중요한 은사들 중에서 독특한 특권은 그가 사람들의 입과 혀를 자신을 위해 성별하고 그것들 안에서 자신으 음성이 울리게 한 것이다. Inst., Ⅳ, 1, 5.
그리스도는 설교자의 입이 곧 자기의 입으로 간주되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설교자는 결코 자만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을 기다려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결부된다. 그러나 구별된다. 이는 외적 말씀이 성령의 힘에 의해 생명이 불어넣어지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무용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에스겔 주석, 2:2.
설교에서 성령의 역사가 결정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교자가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무엇보다 먼저 학자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좋은 사역자가 결코 되지 못할 것이다. 출애굽기 설교, 5:23-27.
예언이란 성서에 대한 다순한 해석이 아니라 현재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을 포함하는 것이다(고전 14:6). 그래서 ”선하고 신실한 목자의 직임은 단순히 성서를 설명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힘과 능력을 더하기 위해 진지함과 예리함을 가져야 한다. 디모데전서 설교, 3:16.
목사의 설교는 두 가지 효력을 가진다. 즉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악인에게는 정죄의 효과가 있다. 이사야 주석, 55:11.
원래 복음은 구원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고린도후서 주석, 10:8.
그러나 인간이 죄악속에서 복음을 거부할 때 복음은 그를 정죄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두 음성을 가져야 하는데, 하나는 양떼를 모으는 음성이요, 다른 하나는 늑대나 도적들을 몰아내는 음성이다 디도서 주석, 1:9.
칼빈은 목회자의 삶에도 관심을 가졌다. 목회자의 삶은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삶이며, 그래서 가난한 삶이 되어야 한다. “감독은 가난한 자들이 가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것을 바람직하게 보았다. Inst., Ⅳ, 7.
그래서 칼빈은 교회 수입에서 “적어도 절반”은 가난한 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고대 교회의 아카키우스 감독이 “우리 하나님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 때문에 잔이나 컵이 필요 없습니다”하고 말하고 교회의 그릇들을 녹여 팔아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양식을 사 준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교회가 가진 것은 무엇이나 곤궁한 자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는 암브로스의 말을 매우 진실된 말이라고 예찬했다. Inst., Ⅳ, 4, 7.
칼빈은, 하나님의 종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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