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대사] 오·초 7국의 난을 통해본 한제국의 왕권강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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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고대사] 오·초 7국의 난을 통해본 한제국의 왕권강화정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한의 군국제
2. 이성제후왕의 제거 과정
3. 동성제후왕의 반란
4. 제후왕 대책
5. 오·초 칠국의 난과 그 결과

Ⅲ. 결 론

본문내용

증액한다든지 별도명목으로 과세하는 것을 금지한 '부익의 율', 중앙파견의 관리가 제후왕의 죄를 묵인하는 것에 대한 벌칙을 규정한 '아당의 율' 등이 제정되었다. 이렇게 하여 무제 이후에는 제왕국은 약소화되고 다시 오·초 칠국의 난과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왕국의 사정은 중앙직할의 군과 거의 차이가 없게 되고 중앙의 통일적인 정책이 왕국내에도 똑같이 시행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중앙집권적인 제국이 완성되었다.
Ⅲ. 결 론
이상으로 오·초 칠국의 난의 배경과 그 결과에 대해 알아보았다. 초기의 한은 진제국처럼 일률적인 군현제를 실시하여 한제국 전역을 다스릴만한 힘이 없었을 뿐 아니라, 한초전에서의 공신들에게 왕을 분봉하였고, 또한 그들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서 봉건제와 군현제를 절충한 군국제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제후국들은 한왕조의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유방은 생전에 이성제후왕들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자신과 일족인 동성제후왕들로 교체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동성제후왕들과 황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한 중앙정부와 제후국들 사이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오·초 칠국의 난은 앞에서 본 것처럼 단순히 황제 찬탈을 위한 동성제후왕들의 반란이 아니라, 봉건제와 군현제를 절충한 군국제의 모순이 표출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앙집권화를 추진하는 한 중앙정부와 자신들의 왕국을 부강하게 하고 지방분권화를 향해 치닫던 제후국들의 갈등이 쌓인 결과이다. 중앙집권화를 추구하는 한왕조와 자신들의 왕국의 부강함과 이익을 추구하는 제후국들은 결국은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또한 이것은 앞서 한왕조의 왕권강화를 위해 이성제후왕들을 제거하였던 유방의 정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가장 상반되면서 모순적인 제후국들을 제거하여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초 칠국의 난을 계기로 제후국의 세력은 한 조정에 의해 완전히 제거되어 다시는 오·초 칠국의 난처럼 한황실을 위협하지 못하게 되었고 제후국 자체가 완전히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한제국의 일반 군현과 다를바 없게 되어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 참고문헌 ♠
이근명, 《중국역사(上)》, 신서원, 1997
이춘식, 《중국고대사의 전개》, 신서원, 1995
니시지마 사다오 저, 최덕경·임대희 역, 《진한사》, 2004
신채식, 《동양사개론》, 삼영사, 2003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6.02.14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6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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