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장로회의 기원과 교회의 조직
2. 칼빈과 낙스의 교회관
3.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의 필요성
4. 스코틀란드에서의 종교개혁과 존 낙스
5.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종교개혁의 원리
6. 제임스 6세 치하의 교회와 국가
7. 잉글랜드 장로교회 운동과 카트라이트
8. 17세기 스콜틀랜드 언약도 운동
9.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에서 스코틀랜드 대표단의 역할
10. 17세기 스코틀랜드 교회생활
11. 18세기 장로회주의의 재형성
12. 18세기의 대부흥 운동
13. 18세기 온건주의 운동과 교회분열
14. 19세기 장로교회의 대분열
15. 미국 장로교회의 태동과 우리의 과제
서평
현대적 적용 - 장로교회의 미래전망
2. 칼빈과 낙스의 교회관
3.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의 필요성
4. 스코틀란드에서의 종교개혁과 존 낙스
5.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종교개혁의 원리
6. 제임스 6세 치하의 교회와 국가
7. 잉글랜드 장로교회 운동과 카트라이트
8. 17세기 스콜틀랜드 언약도 운동
9.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에서 스코틀랜드 대표단의 역할
10. 17세기 스코틀랜드 교회생활
11. 18세기 장로회주의의 재형성
12. 18세기의 대부흥 운동
13. 18세기 온건주의 운동과 교회분열
14. 19세기 장로교회의 대분열
15. 미국 장로교회의 태동과 우리의 과제
서평
현대적 적용 - 장로교회의 미래전망
본문내용
장로교 정치는 노회정치라는 말이 있듯이, 근대적인 형태의 4대 치리회를 확립시키고 발전시킨 배경에는 16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자리를 잡는다. 이 교회가 1560년에 ‘제1치리서’, 1578년에 ‘제2치리서’를 통하여 노회제도를 창출하고 거국적인 교회 정치 체제를 운영하였기 때문에 장로교의 본산지로 불리고, 노회제도 형성에 기여한 앤드류 멜빌이 장로교주의의 아버지로 호칭되는 것이다. 한국의 장로교가 성경적 장로제에 근거한 역사적인 교회 공동체임을 분명하게 구분한다면 모든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리라고 전망한다.
둘째로, 한국의 장로교가 청교도 전통을 비롯한 신학적 영향들을 명확하게 여과하고 있는지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청교도가 장로교도가 아니었음을 주지하고 있음이다. 16-17세기 당시 잉글랜드 청교도는 장로파, 독립파, 회중파, 자유파 등 다양한 종파들이 산재하고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장로교인들이 말하는 청교도는 장로파 청교도를 일컫는다. 안타깝게도 잉글랜드의 장로파 청교도들은 독립파에게 실권을 넘겨주었음으로 한 번도 거국적인 장로교 정치 체계를 이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신대륙(미국,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건너간 청교도 가운데 장로파가 아닌 다른 종파에 열성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정통 장로교의 유입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던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신학적 논쟁을 거치면서 장로교는 좌파, 중도, 우파로 나뉘어 반목하고 질시하게 된다. 구한말 미국을 위시한 장로교의 전파는 각 본토의 상황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하나의 예로, 장로교의 기본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무천년설을 지지하고, 대요리 문답과 소요리 문답이 후천년설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대주의적 또는 역사적 전천년설이 장로교의 정설처럼 이해되었던 점이다.
셋째로, 장로교의 기본 정신인 ‘개혁’, ‘변화’, ‘혁신’의 정신이 올바르게 자리 매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6세기 장로교의 창설자들은 ‘변화’와 ‘개혁’에 자신의 생명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적 청교도인 ‘언약도’들이 비근한 실예가 된다. 장로교의 형성자들은 이 땅에 등장하는 그 어떠한 제도나 규범도 인위적인 영향으로 말미암아 생명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야 언제나 불변하지만, 제도는 상황에 따라 개혁될 수 있다고 천명하였다. 17세기 당시 독립파 청교도인 올리버 크롬웰이 스코틀랜드를 침공하였을 때, 그가 장로교의 노회제도가 감독정치의 다른 형태라고 치부해 버린 것도 인위적인 교권주의자들로 인하여 노회정치의 생명력이 사라질 위험 때문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현재 한국 장로교회의 노회를 비롯한 각 치리회에서 인적 질서를 무시하자는 견해가 아니라, 교권의 독점과 인위적인 남용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교권의 횡포에 맞서 50년 간 피 흘리며 저항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 개혁적인 희생의 결과는 장로교회의 최종 결정권이 회중들, 즉 개 교인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16-17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인위적인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를 체험적으로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장로교인들 위에 군림하려는 어떤 형태의 교권도 용납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 교회가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담임 목사 청빙의 과정에서 특정 인물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이미 장로교임을 거부하는 행동이고, 더 나아가 장로교 순교자들의 희생을 욕되게 함은 물론 장로교회에 대한 반역 행위인 것이다. 장로교의 창설자들은 예배의 갱신 부분에 대하여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무조건적 수용이나 거부가 아니라, 혁신적인 개혁이 그 중심에 있었음이다. 그들은 공예배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지, 절대적인 원칙과 결정을 공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각 지 교회가 지역별 특성에 맞게 예식을 집행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했음이다. 과도한 진취적 ‘변화’는 ‘변질’이 되기 쉽고, 과도한 수구적 ‘변화’는 기형적 ‘변화’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분명한 사실은 ‘변화’하지 않는 교회야말로 개혁교회로서의 본질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성경적, 역사적, 신학적, 실제적 측면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정체성 문제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앞으로 장로교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가 혁신적으로 전개되어야 함을 과제로 제시하는 바이다.
현대적 적용 - 장로교회의 미래전망
장로교회인들은 현재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어려움들과 더불어 앞으로의 전망에 대하여 구체적인 감각을 지닐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고무적인 일들을 인식해야 하며 교회에 자극을 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하나로 묶어 줄 성경적인 개념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장로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는 내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서구 장로교 교회내에서 나타난 성경에 대한 태도 변화는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됨에 따라 선교에 대한 열심을 약화 시켰다. 시간에 따라 많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와 구제, 사회사업, 가난하고 불의하며 압제적인 세계사이의 간격을 메워야 한다는 인식들이 높아져서 선교의 문이 많이 열리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 공동체 내에 활력이 생겼고,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자료들이 풍부해졌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장로교회의 앞날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은 결코 교회를 버리지 않으시며 세상 끝날까지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며, 주의 복음을 온전히 전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장로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의 역사를 바꾸실 것이라 믿는다.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라고 외쳤던 누군가의 절규가 가슴으로 다가오는 시대이다. 과연 설교는 설교자를 넘어갈 수 없음을 인식해 볼 때 오늘의 교회가 과연 우리들은 이 어두운 세상을 불꽃과 같이 찬란하게 살아서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 우리 성도들이라면 과연 그 무엇으로 맛을
둘째로, 한국의 장로교가 청교도 전통을 비롯한 신학적 영향들을 명확하게 여과하고 있는지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청교도가 장로교도가 아니었음을 주지하고 있음이다. 16-17세기 당시 잉글랜드 청교도는 장로파, 독립파, 회중파, 자유파 등 다양한 종파들이 산재하고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장로교인들이 말하는 청교도는 장로파 청교도를 일컫는다. 안타깝게도 잉글랜드의 장로파 청교도들은 독립파에게 실권을 넘겨주었음으로 한 번도 거국적인 장로교 정치 체계를 이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신대륙(미국,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건너간 청교도 가운데 장로파가 아닌 다른 종파에 열성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정통 장로교의 유입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던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신학적 논쟁을 거치면서 장로교는 좌파, 중도, 우파로 나뉘어 반목하고 질시하게 된다. 구한말 미국을 위시한 장로교의 전파는 각 본토의 상황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하나의 예로, 장로교의 기본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무천년설을 지지하고, 대요리 문답과 소요리 문답이 후천년설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대주의적 또는 역사적 전천년설이 장로교의 정설처럼 이해되었던 점이다.
셋째로, 장로교의 기본 정신인 ‘개혁’, ‘변화’, ‘혁신’의 정신이 올바르게 자리 매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6세기 장로교의 창설자들은 ‘변화’와 ‘개혁’에 자신의 생명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적 청교도인 ‘언약도’들이 비근한 실예가 된다. 장로교의 형성자들은 이 땅에 등장하는 그 어떠한 제도나 규범도 인위적인 영향으로 말미암아 생명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야 언제나 불변하지만, 제도는 상황에 따라 개혁될 수 있다고 천명하였다. 17세기 당시 독립파 청교도인 올리버 크롬웰이 스코틀랜드를 침공하였을 때, 그가 장로교의 노회제도가 감독정치의 다른 형태라고 치부해 버린 것도 인위적인 교권주의자들로 인하여 노회정치의 생명력이 사라질 위험 때문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현재 한국 장로교회의 노회를 비롯한 각 치리회에서 인적 질서를 무시하자는 견해가 아니라, 교권의 독점과 인위적인 남용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교권의 횡포에 맞서 50년 간 피 흘리며 저항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 개혁적인 희생의 결과는 장로교회의 최종 결정권이 회중들, 즉 개 교인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16-17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인위적인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를 체험적으로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장로교인들 위에 군림하려는 어떤 형태의 교권도 용납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 교회가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담임 목사 청빙의 과정에서 특정 인물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이미 장로교임을 거부하는 행동이고, 더 나아가 장로교 순교자들의 희생을 욕되게 함은 물론 장로교회에 대한 반역 행위인 것이다. 장로교의 창설자들은 예배의 갱신 부분에 대하여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무조건적 수용이나 거부가 아니라, 혁신적인 개혁이 그 중심에 있었음이다. 그들은 공예배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지, 절대적인 원칙과 결정을 공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각 지 교회가 지역별 특성에 맞게 예식을 집행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했음이다. 과도한 진취적 ‘변화’는 ‘변질’이 되기 쉽고, 과도한 수구적 ‘변화’는 기형적 ‘변화’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분명한 사실은 ‘변화’하지 않는 교회야말로 개혁교회로서의 본질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성경적, 역사적, 신학적, 실제적 측면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정체성 문제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앞으로 장로교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가 혁신적으로 전개되어야 함을 과제로 제시하는 바이다.
현대적 적용 - 장로교회의 미래전망
장로교회인들은 현재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어려움들과 더불어 앞으로의 전망에 대하여 구체적인 감각을 지닐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고무적인 일들을 인식해야 하며 교회에 자극을 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하나로 묶어 줄 성경적인 개념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장로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는 내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서구 장로교 교회내에서 나타난 성경에 대한 태도 변화는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됨에 따라 선교에 대한 열심을 약화 시켰다. 시간에 따라 많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와 구제, 사회사업, 가난하고 불의하며 압제적인 세계사이의 간격을 메워야 한다는 인식들이 높아져서 선교의 문이 많이 열리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 공동체 내에 활력이 생겼고,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자료들이 풍부해졌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장로교회의 앞날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은 결코 교회를 버리지 않으시며 세상 끝날까지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며, 주의 복음을 온전히 전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장로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의 역사를 바꾸실 것이라 믿는다.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라고 외쳤던 누군가의 절규가 가슴으로 다가오는 시대이다. 과연 설교는 설교자를 넘어갈 수 없음을 인식해 볼 때 오늘의 교회가 과연 우리들은 이 어두운 세상을 불꽃과 같이 찬란하게 살아서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 우리 성도들이라면 과연 그 무엇으로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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