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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Ⅰ. 삼성에 대하여...
1. 삼성의 연혁
2. 삼성 그룹 역사
3. POTENTIAL SAMSUNG
4. 삼성의 회장
5. 삼성의 내부강점
6. 삼성의 외부강점
Ⅱ. 삼성 전자의 인사관리
1. 기업 소개
2. 경영철학 및 인재상
3. 채용관리 i) 모집 ii) 선발
4. 직무 관리 i) 직무 분석 ii) 직무 평가
5. 신분 관리 i) 교육, 훈련관리 ii) 경력개발 관리
6. 인사관리 i) 승진관리 ii) 징계관리 iii) 이직관리
7. 임금관리와 노사관계 i) 임금체계 ii) 노사관계
8. 복리 후생 관리
9. 견해
Ⅲ. 삼성 석유화학의 인사관리
1. 삼성화학 기업 소개 11. 직급체계 와 진급제도
2.삼성 석유화학의 경영 이념 및 비전 12. 보상제도
3. 삼성 석유화학의 사업부문 13. 진급제도
4. BP社 - 삼성석유화학의 동반자 - 의 소개 14. 인사평가제도
5. 삼성석유화학의 계획 15. 업적평가제도
6. 삼성석유화학의 조직 16. 삼성석유화학의 연봉제/평가제도의 장점
7. 조직의 장점과 문제점 17. 인사평가결과의 활용
8. 삼성석유화학의 지휘 18. 견해
9. 삼성석유화학의 기업문화
10. 교육훈련 및 인재육성
Ⅰ. 삼성에 대하여...
1. 삼성의 연혁
2. 삼성 그룹 역사
3. POTENTIAL SAMSUNG
4. 삼성의 회장
5. 삼성의 내부강점
6. 삼성의 외부강점
Ⅱ. 삼성 전자의 인사관리
1. 기업 소개
2. 경영철학 및 인재상
3. 채용관리 i) 모집 ii) 선발
4. 직무 관리 i) 직무 분석 ii) 직무 평가
5. 신분 관리 i) 교육, 훈련관리 ii) 경력개발 관리
6. 인사관리 i) 승진관리 ii) 징계관리 iii) 이직관리
7. 임금관리와 노사관계 i) 임금체계 ii) 노사관계
8. 복리 후생 관리
9. 견해
Ⅲ. 삼성 석유화학의 인사관리
1. 삼성화학 기업 소개 11. 직급체계 와 진급제도
2.삼성 석유화학의 경영 이념 및 비전 12. 보상제도
3. 삼성 석유화학의 사업부문 13. 진급제도
4. BP社 - 삼성석유화학의 동반자 - 의 소개 14. 인사평가제도
5. 삼성석유화학의 계획 15. 업적평가제도
6. 삼성석유화학의 조직 16. 삼성석유화학의 연봉제/평가제도의 장점
7. 조직의 장점과 문제점 17. 인사평가결과의 활용
8. 삼성석유화학의 지휘 18. 견해
9. 삼성석유화학의 기업문화
10. 교육훈련 및 인재육성
본문내용
후, 1938년 3월 자본금 3만 원으로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설립하였다.
1951년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세워 무역업을 하면서 1953∼1954년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 제조업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사업 영역을 크게 확대해갔으며,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1964년 동양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과 1965년 《중앙일보》를 창설하여 언론사 경영에 참여하였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하여 삼성그룹 육성의 도약대를 만들었다. 1974년 삼성석유화학·삼성중공업을 설립하여 중화학공업에 진출하였고, 이후 용인자연농원·삼성정밀 등을 설립하였다. 1982년 삼성반도체통신을 설립하였다. 이 밖에도 문화재단·장학회 등을 설립하였고, 백화점·호텔 등의 경영에도 참가해, 사업의 다각화를 통하여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고미술품에 심취해 많은 소장품을 수집·소장해 오다가 호암미술관을 건립하였고,국악과 서예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1982년에는 보스턴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금탑산업훈장을 비롯하여 세계최고경영인상을 받았다. 저서에 《우리가 잘사는 길》 《호암자전(湖巖自傳)》 등이 있다.
삼성 개혁의 선두 주자 - 이건희 회장
1942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李秉喆)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65년 3월 일본 와세다대학교[早稻田大學校]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 9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한 뒤, 1966년 9월 귀국해 삼성그룹 경영 일선에 참여했다.
1966년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68년 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삼성물산주식회사 부회장, 1980년 중앙일보 이사를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이 되었다. 회장이 된 뒤 이듬해에 제2창업을 선언하고, 인간중심·기술중시·자율경영·사회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그룹의 21세기 비전으로 정하였다. 1993년 6월 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시작하여, 모든 직원에게 ‘가족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러한 ‘신 경영’을 통해 획기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해 나갔다.
1981년 2월 한·일 경제협회 부회장, 1982년 1월 한국청소년연맹 이사, 1987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3년 3월 KOC(Korea Olympic Committee: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1996년 7월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같은해 9월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1998년 4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같은해 8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1999년 4월 전경련 금융제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84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 1991년 IOC 올림픽훈장, 1993년 문화부장관 감사패, 한국경영학회 제정 경영자대상, 1994년 한국무역학회 무역인대상, 1996년 한국능률협회 선정 ‘최고의 경영자상’, 200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1999년 매일경제신문사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선정한 ‘21세기를 빛낸 기업인 2위’에 뽑혔다. 주요저서에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 등이 있다.
5. 삼성의 내부강점
이건희 회장의 오너쉽
먼저 내부적으로 삼성전자가 이만큼 성장한 것에 대하여 이건희 회장의 경영수완과 절묘한 투자 타이밍이 큰 역할로 작용했다고 본다. 삼성은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로에 섰을 때가 있었다. 자본을 최대한으로 끌어 들여서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사업을 잘 이끌고 갈 것인가? 그 때 삼성은 과감하게 투자하였다. 이는 “미덥지 못하면 맡기지를 말고, 썼으면 믿고 맡기라”는 최고경영자의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 들게 된 것도 삼성의 발빠른 투자와 고(故) 이병철 회장의 선견지명에 의한 것이었다. 경영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고경영자는 ‘밀어붙이기’를 감행하였고 이러한 투자가 있었기에 삼성이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체계적 인재관리
우리가 생각하기에 어떤 기업이 크게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라는 집단이 사람으로 구성된 이상, 뛰어난 인적 자원이 기초가 된다고 보는데 삼성은 이러한 것을 위해서 최고의 인적 자원을 영입했고, 이러한 인적자원을 체계적인 관리를 하였다. 물론, 이러한 관리 이전에 먼저 국내에 유례가 없는 한 달간의 합숙으로 삼성맨을 먼저 만든 것은 물론이다.
.고강도 구조조정 및 체계적 경영진단
비록 제살을 깎아 내는 고통이 있으나, IMF이전에 먼저 구조조정을 실시하여 집단을 유연하게 하였고, 이러한 집단 안 과 밖이 투명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체계적인 경영진단을 실시함으로 조직을 건전하고 비전이 있는 집단으로 만들었다.
교육제도
처음에 입사하였을 때의 ‘삼성맨 만들기’ 연수는 아주 고강도라고 한다. 신문에는 오전 5시 50분부터 저녁 9시까지의 강행군이라고 언급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밤 늦게까지 지속된다고 했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연수생들에게 숙제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고된 강의 후에도 주어지는 숙제로 인해 쉴새없이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입사 후에도 지속적인 교육이 제도화되어 있어서, 신기술이 유입되거나 새로운 사업에 발을 들여놓을 때 사원들을 재교육시키고 교육 내용을 일신하고 있다. 사원들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회사 내부에서 느끼는 최대 장점일 것이다.
6. 삼성의 외부강점
.전략적 제휴
희비가 엇갈리는 여러 상황마다 삼성전자는 제휴를 통해서 그것을 타계해 나갔다. 사실상, 이것은 1억만 주면 1주일 만에 걸려 가져올 기술을 10억, 20억씩 들여 3-5년에 걸쳐 가져 올 필요가 없다는 이건희 회장의 실용주의적 사고와 결합되면서, 실용적 제휴전략으로 완성되면서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그 예로써는 램버스 D램,
1951년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세워 무역업을 하면서 1953∼1954년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 제조업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사업 영역을 크게 확대해갔으며,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1964년 동양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과 1965년 《중앙일보》를 창설하여 언론사 경영에 참여하였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하여 삼성그룹 육성의 도약대를 만들었다. 1974년 삼성석유화학·삼성중공업을 설립하여 중화학공업에 진출하였고, 이후 용인자연농원·삼성정밀 등을 설립하였다. 1982년 삼성반도체통신을 설립하였다. 이 밖에도 문화재단·장학회 등을 설립하였고, 백화점·호텔 등의 경영에도 참가해, 사업의 다각화를 통하여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고미술품에 심취해 많은 소장품을 수집·소장해 오다가 호암미술관을 건립하였고,국악과 서예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1982년에는 보스턴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금탑산업훈장을 비롯하여 세계최고경영인상을 받았다. 저서에 《우리가 잘사는 길》 《호암자전(湖巖自傳)》 등이 있다.
삼성 개혁의 선두 주자 - 이건희 회장
1942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李秉喆)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65년 3월 일본 와세다대학교[早稻田大學校]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 9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한 뒤, 1966년 9월 귀국해 삼성그룹 경영 일선에 참여했다.
1966년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68년 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삼성물산주식회사 부회장, 1980년 중앙일보 이사를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이 되었다. 회장이 된 뒤 이듬해에 제2창업을 선언하고, 인간중심·기술중시·자율경영·사회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그룹의 21세기 비전으로 정하였다. 1993년 6월 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시작하여, 모든 직원에게 ‘가족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러한 ‘신 경영’을 통해 획기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해 나갔다.
1981년 2월 한·일 경제협회 부회장, 1982년 1월 한국청소년연맹 이사, 1987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3년 3월 KOC(Korea Olympic Committee: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1996년 7월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같은해 9월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1998년 4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같은해 8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1999년 4월 전경련 금융제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84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 1991년 IOC 올림픽훈장, 1993년 문화부장관 감사패, 한국경영학회 제정 경영자대상, 1994년 한국무역학회 무역인대상, 1996년 한국능률협회 선정 ‘최고의 경영자상’, 200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1999년 매일경제신문사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선정한 ‘21세기를 빛낸 기업인 2위’에 뽑혔다. 주요저서에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 등이 있다.
5. 삼성의 내부강점
이건희 회장의 오너쉽
먼저 내부적으로 삼성전자가 이만큼 성장한 것에 대하여 이건희 회장의 경영수완과 절묘한 투자 타이밍이 큰 역할로 작용했다고 본다. 삼성은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로에 섰을 때가 있었다. 자본을 최대한으로 끌어 들여서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사업을 잘 이끌고 갈 것인가? 그 때 삼성은 과감하게 투자하였다. 이는 “미덥지 못하면 맡기지를 말고, 썼으면 믿고 맡기라”는 최고경영자의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 들게 된 것도 삼성의 발빠른 투자와 고(故) 이병철 회장의 선견지명에 의한 것이었다. 경영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고경영자는 ‘밀어붙이기’를 감행하였고 이러한 투자가 있었기에 삼성이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체계적 인재관리
우리가 생각하기에 어떤 기업이 크게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라는 집단이 사람으로 구성된 이상, 뛰어난 인적 자원이 기초가 된다고 보는데 삼성은 이러한 것을 위해서 최고의 인적 자원을 영입했고, 이러한 인적자원을 체계적인 관리를 하였다. 물론, 이러한 관리 이전에 먼저 국내에 유례가 없는 한 달간의 합숙으로 삼성맨을 먼저 만든 것은 물론이다.
.고강도 구조조정 및 체계적 경영진단
비록 제살을 깎아 내는 고통이 있으나, IMF이전에 먼저 구조조정을 실시하여 집단을 유연하게 하였고, 이러한 집단 안 과 밖이 투명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체계적인 경영진단을 실시함으로 조직을 건전하고 비전이 있는 집단으로 만들었다.
교육제도
처음에 입사하였을 때의 ‘삼성맨 만들기’ 연수는 아주 고강도라고 한다. 신문에는 오전 5시 50분부터 저녁 9시까지의 강행군이라고 언급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밤 늦게까지 지속된다고 했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연수생들에게 숙제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고된 강의 후에도 주어지는 숙제로 인해 쉴새없이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입사 후에도 지속적인 교육이 제도화되어 있어서, 신기술이 유입되거나 새로운 사업에 발을 들여놓을 때 사원들을 재교육시키고 교육 내용을 일신하고 있다. 사원들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회사 내부에서 느끼는 최대 장점일 것이다.
6. 삼성의 외부강점
.전략적 제휴
희비가 엇갈리는 여러 상황마다 삼성전자는 제휴를 통해서 그것을 타계해 나갔다. 사실상, 이것은 1억만 주면 1주일 만에 걸려 가져올 기술을 10억, 20억씩 들여 3-5년에 걸쳐 가져 올 필요가 없다는 이건희 회장의 실용주의적 사고와 결합되면서, 실용적 제휴전략으로 완성되면서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그 예로써는 램버스 D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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