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고산(孤山) 윤선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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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학사]고산(孤山) 윤선도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Ⅰ. 고산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Ⅱ. 고산의 사상적 배경
1. 도산의 종교적 사상
1) 불교적 사상
2) 도교적 사상
3) 유교적 사상

2. 고산의 인생관

3. 고산의 자연관

4. 고산의 문학관

5. 고산작품의 문학사적 의의


Ⅲ. 고산 연구
1. 고산에 대한 평가

2. 고산 작품연구와 문학관
1) 고산유고의 구성
2) 고산의 작품에 나타난 특징
① 예술애호가적 측면
② 자연적 측면
③ 사친적 측면
④ 우시연군적 측면

3) 고산의 작품론
1) 시조 작품론
2) 한시작품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품은 고산의 예술관의 일단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내용의 실질을 숭상하는 기풍을 채색화보다는 수묵화의 평담(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며 욕심이 없다.)을 취한 사례를 소재로 하여 토로하였다. ‘복사꽃 오얏꽃’은 내용의 실질을 떠난 부박경조(浮薄輕躁-실없고 경솔하며 행동이 가볍고 성미가 급하다.) 를 비유한다.
(2) 낙서재에서 우연히 읊다. (樂書齋偶吟)
눈은 청산에 있고 귀는 거문고에 있으니 眼在靑山耳在琴 (안재청산이재금)
세상의 무슨 일이 내 마음에 이르리요 世間何事到吾心 (세간하사도오심)
가슴 가득한 호연지기를 알아주는 이 없으니 滿腔浩氣無人識 (만강호기무인식)
한 곡조 미친 노래를 홀로 읊어 보노라 一曲狂歌獨自吟 (일곡광가독자음)
전 영혼이 자연과 예술에 투사되어 있는 자는 속세적 가치의 우열을 초극한다. 이 경지는 상대성을 부정하는 절대적인 경지이다. 여기서는 우연이야말로 아무런 관계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필연이다. 시인의 개성이 순연하게 드러나는 상태가 이 작품에서 실현되었다. 구애받지 않는 시상의 흐름과 더불어 음악의 소리인 듯 혹은 물소리나 바람소리인 듯한 음률의 흐름이 좋은 소리의 울림 속에 고산의 예술가적 전 면모가 약여하게 드러났다.
② 자연적 측면
고산이 자연에 들게 된 직접적 동기는 병자호란(1636)에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연에 들고자 하는 마음이 병자호란 이전에 이미 굳어져 있었다. 그는 광해군 때 31세의 포의지사(布衣之士)로서 당시의 정국(政局)을 세도(勢道)하던 이이첨을 극렬히 비판하는 항소를 올렸다가 경원과 기장에 8년간 유배를 당한다. 그러나 다시 정치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고산에게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하였다. 그 냉혹함은 당쟁의 결과였다. 향리로 돌아온 고산에게는 이미 이때 자연에 들고자 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산의 마음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것은 그를 욕하고 비방하는 소리였다. 이런 소리에 몰리고 몰린 고산의 마음은 동서남북 갈 데가 없었다. 그래서 강과 바다, 산을 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병자호란의 계기가 아니더라도 그는 어차피 자연에 들었을 것 이다. 마음을 자연에 맡겼을 때 자연은 곧 마음이 된다. 그것은 자연을 관념하는 경지이다. 보길도에 있을 때 지은 시들을 통해 고산이 객관적 존재로서의 자연을 어떻게 순수정신의 세계로 초연(超然)시켰는지 보고자 한다.
(1) 소은병(小隱屛)
푸른 병풍 석벽 하늘로부터 만들어지고 蒼屛自天造 (창병자천조)
소은이란 이름은 사람이 붙인 것 小隱因人名 (소은인인명)
멀리 티끌 세상 떨어져 있으니 邈矣塵凡隔 (막의진범격)
후련히 마음 자리 맑아지도다 소然心地淸 (소연심지청)
(2) 격자봉(格紫峰)
큰 파도 거대한 물결속에 洪濤巨浪中 (홍도거랑중)
우뚝 서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도다 持立不前却 (지립부전각)
하늘의 마음에 이르고자 한다면 欲格紫微心 (욕격자미심)
요컨대 먼저 부끄러워하고 바로잡아야 하리라 要先恥且格 (요선치차격)
③ 사친적 측면(思親的 側面)
고산에게는 시조이든 한시이든 사친을 주제로 한 것은 그의 나이 30대 전반에 대부분이 이루어졌다. 이는 그가 올린 <병진소(丙辰疏)>9)가 화근이 되어 그의 아버지에까지 미치고 자신도 경원으로 유배되니 어비이에 대한 회한이 사친이라는 효성으로 첨가되었음도 사실이다. 그의 나이 31세 되던 2월에 경원으로 유배되었다가 32세 되던 겨울에 기장으로 이배(移配)되니 그는 이곳에서 <遣懷謠(견회요)> 5수와 <雨後謠(우후요> 1수를 남기고 있다. 견회요<遣懷謠(견회요)> 5수중 孝(효)를 노래한 <遣懷謠 4>를 소개한다.
뫼 길고길고 믈은 멀고멀고 산은 길고 길고 물은 멀고 멀어
어버이 그린 뜯은 만코만코 하고하고 어버이 그리워 하는 뜻은 많고 많고
어듸셔 외기러기 울고 울고 가니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어울어 가는가?
④ 우시연군적 측면(憂時戀君的 側面)
사친적 측면(思親的 側面)과는 달리 그 우시연군에 대한 표현은 그의 생애 전반을 통해 그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 유학적 이념에 바탕을 두고 살았던 학자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다음에 소개될 한시는 경원 유배 때인 31세에 지어진 작품이다.
수각사친이수(睡覺思親二首) 제2수
(庭?溫淸誠宜念:정위온청성의념) 어버이의 안부도 진실로 염려해야 마땅하지만
(宗社安危豈忍看:종사안위개인간) 종사의 안위를 어찌 차마 보고만 있으리오
(以孝爲忠忠便孝:이효위충충변효) 효로써 충을 하면 충이 곧 효이런만
(孰云忠孝兩全難:숙운충효양전난) 누가 충과 효는 아우르기 어렵다 이르는가
3) 孤山의 작품론
고산은 多作의 인물은 아니었지만, 일단 저술을 하게 되면, 그 글의 독창적 요소가 많았다. 따라서 「孤山遺稿」의 가치도 이러한 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밖에 고산 자신이 친필로 쓴 가첩이 고산 종가에 전하는데 그 표제가 하나는 <山中新曲>이고, 다른 하나는 <金洞集古>이다. 여기에서는 고산의 작품을 가지고 시조작품론, 한시작품론 순으로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원용문, 『윤선도문학연구』국학자료원, 1989
1) 시조 작품론
① 미의식의 硏究
원래 미학이란 감성적 인식의 학문이란 뜻을 가진 말이다. 즉 美를 논하는 학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미학이 윤선도의 문학작품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 自然, 서경적인 작품
츄셩딘호루 밧긔 우러녜 뎌시내야
무 호리라 듀야의 흐르다
님 향 내 뜯을 조차 그칠 뉘 모로다 <견회요, 3>
경원성 진호루 밖에 울며 흐르는 저 시냇물아!
무엇하러 밤낮으로 그칠 줄 모르고 흐르는가?
임 향한 내 뜻을 따라 그칠 줄을 모르는가?
위의 작품은 자연서경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의 자연물은 자신의 이념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빌려온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자연물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 미의식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위의 <견회요> 에서 나타나는 미의식을 살펴보면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이 영원히 상충되고 모순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비장미’가 드러나 있다.
산슈간 바회아래 띠집을 짓노라 니
그 모든 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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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4.25
  • 저작시기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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