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다다이즘 ☙
ⅰ.개념
ⅱ.배경
ⅲ.전개
ⅳ.영향
☙ 대표작가 ☙
ⅰ.마르셸 뒤샹
생애(작품특징/작품세계)
작품1 -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벗겨지기까지 한 신부
작품2 - 자전거 바퀴
작품3 - 은밀한 소음과 함께
ⅱ.프랑시스 피카비아
생애(작품특징/작품세계)
작품1 - 뉴욕
작품2 - 여기 이곳이 스티글리츠다
작품3 - 기계, 빨리 돌리세요
ⅲ.장(한스) 아르프
생애(작품특징/작품세계)
작품1 - 우연의 법칙에 따라서 제작된 콜라주
작품2 - 숲, 지상의 형상들
작품3 - 토루소로 변형된 잎사귀
☙ 맺음말 ☙
ⅰ.개념
ⅱ.배경
ⅲ.전개
ⅳ.영향
☙ 대표작가 ☙
ⅰ.마르셸 뒤샹
생애(작품특징/작품세계)
작품1 -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벗겨지기까지 한 신부
작품2 - 자전거 바퀴
작품3 - 은밀한 소음과 함께
ⅱ.프랑시스 피카비아
생애(작품특징/작품세계)
작품1 - 뉴욕
작품2 - 여기 이곳이 스티글리츠다
작품3 - 기계, 빨리 돌리세요
ⅲ.장(한스) 아르프
생애(작품특징/작품세계)
작품1 - 우연의 법칙에 따라서 제작된 콜라주
작품2 - 숲, 지상의 형상들
작품3 - 토루소로 변형된 잎사귀
☙ 맺음말 ☙
본문내용
받아 새롭고도 도전적인자세를 취하며, 미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기존관념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다다이즘\'은 양식이라기 보다도 일종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미술 한 부분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문학과 음악 등의 다른 예술 분야 에서도 동시에 시작되며, 모든 예술장르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표현하는데 수단으로 삼았다. 이로서 다다는 총체적 예술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다다이스트들의 목적은 단 하나, 기존 문화에 대한 철저한 부정, 더 나아가 파괴였는데, 합리주의적이고 이성적인 아카데미 미술에 대한 거부로 이들은 \'우연의 원리\'를 선택했다.소음주의 음악, 아프리카 부족의 토속어로 지어진 시, 언어가 아닌 음성으로만 만들어진 음성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읊어 대는 동시시 등이 만들어지게 되고, 아무런 뜻도 알 수 없는 연극과 퍼포먼스가 상연되기도 했다. 뒤샹, 아르프, 피카비아, 슈비터스 등이 조형예술 분야의 주요 작가이며, 그들의 작품은 환상적, 상징적, 풍자적이어서 무정형 또는 기계 형태적인 구성을 취하였다. 차바퀴, 돌, 구두, 차표 등을 본래의 일상적인 용도에서 떼내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잠재한 환상이나 욕망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를 마르셀 뒤샹의 작품 \"자전거 바퀴\"에서 볼 수 있다. 이렇듯 오브제등의 자유로운 표현 형식을 창안하여 종종 무의미속의 해방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다다이즘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우연의 원리\'는 예술의 합리성과 논리성은 삶 자체가 가지고 있는 우연성을 표현해 내지 못하며, 따라서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는 예술이 \'우연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우연의 원리\'에 의한 행위 예술은 기존 체제를 벗어나는 수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이란 품위가 있어야 한다거나 실제적인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벗어난 것이기도 했다. 다다운동의 시초인 쮜리히 다다는 유럽전역에서 부터 전쟁을 피해 중립국 스위스로 온 작가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인과 음악가, 화가들이 모여 시 낭송 모임, 연주회, 전람회, 평론발표 등을 통해 서구 문화 전통을 신랄히 비판했다.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이들은 매우 염세적이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쮜리히 다다의 세 가지 특징적 요소는 소음과 동시성, 그리고 우연성이었다. 음악에서의 소음, 문학에서의 동시성, 그리고 미술에서의 우연성은 각각 그분야의 성질에 맞게 각색된 새로운 시도였다. 전쟁이 종반에 들어서면서 쮜리히 다다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마르셀 뒤샹과 피카비아가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뉴욕 다다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뉴욕 다다는 쮜리히 다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연한 운동이지만 뒤샹의 활약으로 독특한 특성을 갖게 된다. \'ready made\'나 반 미학사상이 그의 중요 특성이 되고 이런 활동은 뉴욕다다에 이어 나타난 미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독일 다다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좌익의성향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정치선진의 활동과 결부하게 된다. 미술의정치도구화가 여기서 발견된다. 독일 다다의 기법적특징으로 콜라주 사진기법이 있는데, 이것은 명확한사실성을 가진 요소들로 인하여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려는 데 의도가있었다. 이것은 입체파의 파피에 꼴레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photo -montage라고 불리우게 된다. 다다운동의 마지막 정착지는 파리였는데, 파리 다다의 특징은 문학적인 데가 있다. 잡지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이들의 운동은 선언문, 정기 간행물,사건등으로 수입된 다다양식이 아닌 프랑스 문학을 토대로 일구어 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학성이 강했던 이들의 운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1924년경 \'초현실주의\'라는 이름 아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ⅱ.배경
다다이즘은 명백히 말해 20세기라는 특유한 정신적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한 운동이었다.
산업혁명이후 급속히 변화한 물질과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합리적이라 여겨졌던 문명이 1차대전을 야기하게 되자 물질문명의 결과로서 노출된 인간의 제위치에 대한 회의를 재인식하게 되었는데 예술적 조류들에 의해서 만이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 발전되어나온 물질만능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게 된다. 다다라는 용어를 누가 처음 사용했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역할을 주장하고 있어 누구라고 명확하게 가려내기가 어렵지만, 그것이 탄생된 장소는 반박의 여지없이 취리히이다. 1차대전이 한창일때 이 도시에는 몇몇 독일인들이 피신해 있었고 그 중에는 시인 휴고 발과 그의 애인 에미 헤닝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1916년 2월 5일 카바레 볼테르라고 하는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카바레를 열었다.
며칠 후 휴고 발과 그의 동향인 리하르트 휄젠벡, 루마니아에서 이민온 트리스탕 짜라와 마르셀 얀코, 알자스인인 쟝 아르프등이 모여 다다를 탄생시켰다. 다다라는 단어는 휴고 발이 <카바레 볼테르>라는 제목으로 취리히에서 발간하던 \"문학 및 예술에 관한 글 모음\"에 1916년 5월 처음으로 인쇄되어 발표되었다. 역시 1916년에는 트리스탕 짜라의 <안티피린씨의 최초의 천상 여행>과 쟝 아르프가 삽화를 그린 휄젠벡의 <환상적인기도> 등 두권의 책을 펴냄으로써 다다 총서도 시작되었다. 이어서 1917년 3월에는 다다 화랑이 취리히에 문을 열었다. 짜라는 다다운동 진행에 큰역할을 했다. 그는 1918년에 <다다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그 이론적 배경을 제시했으며, 1919년 파리로 이주한 이후로는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무대에서 다다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ⅲ.전개
다다이즘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 되었다. 1916년 2월 작가겸 연출가인 휴고 발이 카페 볼테르를 개점하고 시인 트리스탄 짜라와 장 아르프, 마르셀 앙코, 휄젠벡 등과 함께 과거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비합리성, 반도덕, 비심미안적인 것을 찬미 하였다.
잡지 \'다다\'가 발간되고 우연을 이용한 추상시, 음향시가 발표되는 등 이 취리히 다다는 20년 까지 계속되었다. 독일에 있어서 다다이즘은 베를린, 하노바,
다다이스트들의 목적은 단 하나, 기존 문화에 대한 철저한 부정, 더 나아가 파괴였는데, 합리주의적이고 이성적인 아카데미 미술에 대한 거부로 이들은 \'우연의 원리\'를 선택했다.소음주의 음악, 아프리카 부족의 토속어로 지어진 시, 언어가 아닌 음성으로만 만들어진 음성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읊어 대는 동시시 등이 만들어지게 되고, 아무런 뜻도 알 수 없는 연극과 퍼포먼스가 상연되기도 했다. 뒤샹, 아르프, 피카비아, 슈비터스 등이 조형예술 분야의 주요 작가이며, 그들의 작품은 환상적, 상징적, 풍자적이어서 무정형 또는 기계 형태적인 구성을 취하였다. 차바퀴, 돌, 구두, 차표 등을 본래의 일상적인 용도에서 떼내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잠재한 환상이나 욕망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를 마르셀 뒤샹의 작품 \"자전거 바퀴\"에서 볼 수 있다. 이렇듯 오브제등의 자유로운 표현 형식을 창안하여 종종 무의미속의 해방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다다이즘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우연의 원리\'는 예술의 합리성과 논리성은 삶 자체가 가지고 있는 우연성을 표현해 내지 못하며, 따라서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는 예술이 \'우연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우연의 원리\'에 의한 행위 예술은 기존 체제를 벗어나는 수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이란 품위가 있어야 한다거나 실제적인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벗어난 것이기도 했다. 다다운동의 시초인 쮜리히 다다는 유럽전역에서 부터 전쟁을 피해 중립국 스위스로 온 작가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인과 음악가, 화가들이 모여 시 낭송 모임, 연주회, 전람회, 평론발표 등을 통해 서구 문화 전통을 신랄히 비판했다.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이들은 매우 염세적이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쮜리히 다다의 세 가지 특징적 요소는 소음과 동시성, 그리고 우연성이었다. 음악에서의 소음, 문학에서의 동시성, 그리고 미술에서의 우연성은 각각 그분야의 성질에 맞게 각색된 새로운 시도였다. 전쟁이 종반에 들어서면서 쮜리히 다다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마르셀 뒤샹과 피카비아가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뉴욕 다다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뉴욕 다다는 쮜리히 다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연한 운동이지만 뒤샹의 활약으로 독특한 특성을 갖게 된다. \'ready made\'나 반 미학사상이 그의 중요 특성이 되고 이런 활동은 뉴욕다다에 이어 나타난 미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독일 다다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좌익의성향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정치선진의 활동과 결부하게 된다. 미술의정치도구화가 여기서 발견된다. 독일 다다의 기법적특징으로 콜라주 사진기법이 있는데, 이것은 명확한사실성을 가진 요소들로 인하여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려는 데 의도가있었다. 이것은 입체파의 파피에 꼴레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photo -montage라고 불리우게 된다. 다다운동의 마지막 정착지는 파리였는데, 파리 다다의 특징은 문학적인 데가 있다. 잡지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이들의 운동은 선언문, 정기 간행물,사건등으로 수입된 다다양식이 아닌 프랑스 문학을 토대로 일구어 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학성이 강했던 이들의 운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1924년경 \'초현실주의\'라는 이름 아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ⅱ.배경
다다이즘은 명백히 말해 20세기라는 특유한 정신적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한 운동이었다.
산업혁명이후 급속히 변화한 물질과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합리적이라 여겨졌던 문명이 1차대전을 야기하게 되자 물질문명의 결과로서 노출된 인간의 제위치에 대한 회의를 재인식하게 되었는데 예술적 조류들에 의해서 만이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 발전되어나온 물질만능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게 된다. 다다라는 용어를 누가 처음 사용했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역할을 주장하고 있어 누구라고 명확하게 가려내기가 어렵지만, 그것이 탄생된 장소는 반박의 여지없이 취리히이다. 1차대전이 한창일때 이 도시에는 몇몇 독일인들이 피신해 있었고 그 중에는 시인 휴고 발과 그의 애인 에미 헤닝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1916년 2월 5일 카바레 볼테르라고 하는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카바레를 열었다.
며칠 후 휴고 발과 그의 동향인 리하르트 휄젠벡, 루마니아에서 이민온 트리스탕 짜라와 마르셀 얀코, 알자스인인 쟝 아르프등이 모여 다다를 탄생시켰다. 다다라는 단어는 휴고 발이 <카바레 볼테르>라는 제목으로 취리히에서 발간하던 \"문학 및 예술에 관한 글 모음\"에 1916년 5월 처음으로 인쇄되어 발표되었다. 역시 1916년에는 트리스탕 짜라의 <안티피린씨의 최초의 천상 여행>과 쟝 아르프가 삽화를 그린 휄젠벡의 <환상적인기도> 등 두권의 책을 펴냄으로써 다다 총서도 시작되었다. 이어서 1917년 3월에는 다다 화랑이 취리히에 문을 열었다. 짜라는 다다운동 진행에 큰역할을 했다. 그는 1918년에 <다다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그 이론적 배경을 제시했으며, 1919년 파리로 이주한 이후로는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무대에서 다다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ⅲ.전개
다다이즘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 되었다. 1916년 2월 작가겸 연출가인 휴고 발이 카페 볼테르를 개점하고 시인 트리스탄 짜라와 장 아르프, 마르셀 앙코, 휄젠벡 등과 함께 과거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비합리성, 반도덕, 비심미안적인 것을 찬미 하였다.
잡지 \'다다\'가 발간되고 우연을 이용한 추상시, 음향시가 발표되는 등 이 취리히 다다는 20년 까지 계속되었다. 독일에 있어서 다다이즘은 베를린, 하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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