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뒤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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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르셀뒤샹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로티가 철저히 가치의 다양성에 입각한 정치 철학으로써의 논리를 전개했다면 뒤샹은 이것을 미학적 입장에서 드러내고 있다.
절대적인 미Beauty는 보편적인 미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왔다. 보편적이라는 의미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어느 세대, 어느 시대에 가더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미적 감각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하지만 현상적으로 분명한 것은 그러한 미가 변해왔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와 2000년대의 미적 관점이 다르듯 결국 보편적 미가 보편적 미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미는 존재하지 않는가? 현재 철학에 있어 그것에 대한 해답은 \'알 수 없다\'이다. 절대적인 미가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회의주의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미적 관점에 대해 합의하고, 가치를 결정하고, 그것을 그 시대의 미로 창조해 간다는 것이 현대 철학이 그리고 미학이 취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미학적 관점의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바로 뒤샹이며, 비록 그의 궤변에 가까운 사고와 행동이 전통 미학을 당혹케 했고, 많은 물의와 미학의 사생아들을 창출해 냈지만 그것으로써 그는 존재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 네오 다다 ( Neodadaism )
1. 의미
새로운 다다이즘이란 뜻으로 1957년경부터 미국의 미술계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의 전위적(前衛的)예술운동으로, 이 운동은 모든 전통적 가치나 이성의 우위 및 예술의 인습적 형식에 도전하여 미(美)의 가치 체계를 바꾸려고 하였으며, 일상적인 모티프나 흔히 있는 물품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드는 경향을 이전의 다다이즘에 비유하여 저널리스트가 붙인 이름이다. R.로셴버그J.존스J.체임벌린 등이 이를 대표한다. 이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표현주의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의 대립에 대해 전혀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 한 것으로, 당시 유럽에 서 일어나고 있던 신사실주의 운동에 호응한 것이다. 비에스테틱(비심미안적)한 성격의 다다이즘을 상기시키며, 추상표현주의의 그린다는 행위에 대하여 현실적인 기호나 일상적인 오브제를 도입해 신선한 느낌을 주며 새로운 가치를 낳고자 했다.
그들의 제작은 유럽의 누보리얼리즘과 궤도를 같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사실 양자는 합동전(合同展)을 개최하고 있으며 61년 파리의 J화랑에서의 누보리얼리즘전(展)에는 <다다의 상(上) 40°>란 표제가 붙어 있었다. 종전의 다다이즘이 예술의 백지환원(白紙還元)과 일상화를 요구하여 파괴와 부정의 운동을 추진한 데 대하여, 네오다다이즘은 현대의 도시적 현실에 정감을 나누지 않고 나타내는 것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反)예술적인 사고는 팝 아트(popart)에서 콘셉추얼 아트(conceptualart;개념예술)에 이르는 60년대의 새로운 여러 미술사조(美術思潮)에 투영되어 있다. 추상예술이 외계 사물과의 대응을 완전히 거부하고, 순수하게 형태와 색채의 구성 또는 기계적인 수법에 의한 우연성의 미학을 추구한 데 반해 네오다다에서는 작품 속에 외계의 기성(旣成) 오브제(objet)를 도입하려고 한다.
그때 현실세 계의 단편인 이들 오브제는 현실세계에서의 실용적공리적(功利的) 의미 및 역할을 잃어버리고, 단순히 조형적 소재로서 작품 속에 끼어들어온다. 게다가 이들 오브제는 외견상으로는 현실적인 것의 모습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회적 존재의 잔해(殘骸)로서 보는 이 앞에 놓인다. 거꾸로 말하면, 한때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던 것을 억지로 본래 의 장소에서 단절시킴으로써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혼란시키고, 새로운 가치체계 속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따라서 일찍이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다다이즘이 오브제를 작품 속에 끌어들이면서 그것을 오직 기성 미적 가치의 파괴라는 부정적 의미로만 사용했음에 반하여, 제2차 세계 대전 후 네오다다의 작가들은 이들 오브제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 것이다. 네오다다가 단순한 반예술활동이 아니라 적극적 창조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네오다다이즘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커다란 역할을 한 사람은 만년을 뉴욕에서 지내며 활동한 전날의 다다이스트인 마르셀 뒤샹이었다. 뒤샹 자신은 다다이즘의 활동에 참가한 후 실제의 제작활동에서는 멀어지고 말았지만, 그의 존재 자체는 미국의 젊은 화가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뒤샹의 정신을 이어받은 네오다다의 작가로는, 숫자글자기(旗)명함 등 아무데나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J.존스, 기름물감으로 그린 화면과 폐품을 짝지움으로써 이지적 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H.로젠버그, 고철조각이 된 쇠부스러기 같은 것을 소재로 하는 J.체임벌린, 얼빠진 유머를 화면에 감돌게 하는 J.다인, 조각가인 R.스탄키에비츠 등을 들 수 있다. .
이들 중 로젠버그존스다인 등과 같은 화가들은 신문의 보도사진, 명화(名畵)의 복사물, 통조림의 레테르 등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대중적 이미지를 화면에 이용하므로 역시 문명사회에서 대량생산되는 통속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다른 일군의 화가들과 함께 팝 아트(pop art)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존스의 깃발은 일상과 예술,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를 다시 묻고 생각하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형식주의 이론가 그린버그에 의하여 키치로 명명되었던 비속한 것을 예술로 끌어올렸다
이 명칭은 포퓰러 뮤직, 즉 통속음악을 팝 뮤직이라 약칭하는 것을 흉내내어 1950년대 초부터 쓰이기 시작한 말이며, 다다나 네오다다의 작가들이 오브제 그 자체를 작품세계 속에 끌어들여온 데 대해서, 오브제의 복제(複製)인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이미지를 작품에 이용하는 것에 커다란 특색이 있다. 1958년 1월 《아트뉴스》지에 익명으로 개재된 평론에서 존스, 캐프로, 라우센버그, 톰블리 등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사용되었다.
《아트뉴스》지에서 다다라는 이름과 연관시킨 것은 첫째는 재스퍼 존스의 과녁과 지도가 캔버스 화면 전체를 덮고있는 존스의 회화에 포함되어있는 다다와 같은 역설과 애매모호함 때문이다. 둘째 라우젠버그의 폐품과 함께 발견된 오브제는 뒤샹, 슈
  • 가격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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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2.15
  • 저작시기2004.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67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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