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 론
2. 문화대혁명이란?
3. 문혁과 영화
4. 작품소개
1) 패왕별희
2) 마지막 황제
3) 인생
4) 아이들의 왕
5)부용진
5. 결 론
참고문헌
2. 문화대혁명이란?
3. 문혁과 영화
4. 작품소개
1) 패왕별희
2) 마지막 황제
3) 인생
4) 아이들의 왕
5)부용진
5.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암울, 절망 그 자체였다.전통과 희망이 사라지고, 모택동이 어쩌구 저쩌구해도 결국은 모든것이 멈춰버린 세월이었던것이다. 그러나 중국인도 인간이기에,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의 인간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다. 앞에서 살펴본 영화들은 결국 지난 수십년 그런 바보같고, 우스꽝스런 집단광기의 희생자는 바로 중국인민이었음을 보여주고, 나아가 그러한 운명조차 받아 들이는 인민이 있기에 사회는 진화하고 국가는 발전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1] 문혁의 선두에 나섰던 것이 중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홍위병이었다.이들은 전국을 떠돌며 선전 선동을 했는데, 점점 그 수가 늘어나 나중에는 행패부리고 비판하기를 일삼는등 전국을 혼란에 빠뜨 렸다.
[2] 섭원재라는 인물을 예를 들어 보자. 그녀는 항일전쟁시기에 공산당에 입당했던 고급간부로 66년 북경대학 철학과 공산당 총지부 서기였으며, 45세라는 나이는 홍위병의 엄마뻘 되는 나이었다.그러나 북경대학에서 첫 번쩨로 '마르크스레닌주의 대자보'를 썼다는 것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83년에는 체포되어 11년형을 선고 받지만 84년에 출옥하였고, 그후 사업에 눈을 돌린 섭원재는 고급 간부들과의 관계를 이용,상당한 돈을 벌었다고한다.
[3] 제처업으로 시작되어 620만 톤의 목표량을 800 850만톤까지 올린다는 전혀 불가능한 목표달성을 위한 준국민 제철운동이 벌어졌다.이 운동으로 인력과 자원의 낭비는 엄청났다.결국 모든 경제 여건을 무시하고 공 농업생산의 높은 목표만 세운 실속없는 경제 비약운동이었다.
[4] 역사학자 오함(1909 1969)이 쓴 연극대본.
[5] 제4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에 주은래가 입원하였을때 등소평이 대신 사무를 관장할때가 있었다.이때 등소평이 문혁의 착오를 차근차근 수정해가는것을 보고 모택동은 못마땅 하여 '이것은 右傾 번안풍이다'고 지적했다.곧 보수적인경향이 다시 번진다는 말로, 우경은 보수적 경향을 뜻한다.
[6] 陳伯達을 조장으로 康生을 고문으로 장춘교등을 부조장으로 하며,이후 이 소조는 중앙의 많은 주요권 력을 장악,문혁의 총지휘부가 되어버렸다.
[7] 문혁때 林彪,강청등이 혁명을 구실로 악행을 일삼는것을 폭로. 투옥되었다가 75년 4월에 피살됨(여)
[8] 아홉번째로 따돌림받는 자라는 뜻으로,문혁때 지식인을 경멸하여 부르던말.
[9] 舊文化, 舊思想, 舊風俗, 舊制度를 이르는말.
★참고문헌★
이강윤<"뭐,괜찮은 영화 없을까?">책이있는 마을p368 369
구회영<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것들>한울
이경기<94년판 아카데미 영화제>세광음악출판사
강영희<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주)사회평론
조기정<중국 문화대혁명의 이해>
이승규<영화이야기&음악>현대 음악출판사
http://www.movieline.co.kr/look/
http://www2.nownuri.net/
user/파/파파야향.html/movie_9.htm
http://www.dongah.co.kr/magazine/1998/2/8.htm
http://channel.shinbiro.com/@cine/china.htm
[1] 문혁의 선두에 나섰던 것이 중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홍위병이었다.이들은 전국을 떠돌며 선전 선동을 했는데, 점점 그 수가 늘어나 나중에는 행패부리고 비판하기를 일삼는등 전국을 혼란에 빠뜨 렸다.
[2] 섭원재라는 인물을 예를 들어 보자. 그녀는 항일전쟁시기에 공산당에 입당했던 고급간부로 66년 북경대학 철학과 공산당 총지부 서기였으며, 45세라는 나이는 홍위병의 엄마뻘 되는 나이었다.그러나 북경대학에서 첫 번쩨로 '마르크스레닌주의 대자보'를 썼다는 것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83년에는 체포되어 11년형을 선고 받지만 84년에 출옥하였고, 그후 사업에 눈을 돌린 섭원재는 고급 간부들과의 관계를 이용,상당한 돈을 벌었다고한다.
[3] 제처업으로 시작되어 620만 톤의 목표량을 800 850만톤까지 올린다는 전혀 불가능한 목표달성을 위한 준국민 제철운동이 벌어졌다.이 운동으로 인력과 자원의 낭비는 엄청났다.결국 모든 경제 여건을 무시하고 공 농업생산의 높은 목표만 세운 실속없는 경제 비약운동이었다.
[4] 역사학자 오함(1909 1969)이 쓴 연극대본.
[5] 제4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에 주은래가 입원하였을때 등소평이 대신 사무를 관장할때가 있었다.이때 등소평이 문혁의 착오를 차근차근 수정해가는것을 보고 모택동은 못마땅 하여 '이것은 右傾 번안풍이다'고 지적했다.곧 보수적인경향이 다시 번진다는 말로, 우경은 보수적 경향을 뜻한다.
[6] 陳伯達을 조장으로 康生을 고문으로 장춘교등을 부조장으로 하며,이후 이 소조는 중앙의 많은 주요권 력을 장악,문혁의 총지휘부가 되어버렸다.
[7] 문혁때 林彪,강청등이 혁명을 구실로 악행을 일삼는것을 폭로. 투옥되었다가 75년 4월에 피살됨(여)
[8] 아홉번째로 따돌림받는 자라는 뜻으로,문혁때 지식인을 경멸하여 부르던말.
[9] 舊文化, 舊思想, 舊風俗, 舊制度를 이르는말.
★참고문헌★
이강윤<"뭐,괜찮은 영화 없을까?">책이있는 마을p368 369
구회영<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것들>한울
이경기<94년판 아카데미 영화제>세광음악출판사
강영희<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주)사회평론
조기정<중국 문화대혁명의 이해>
이승규<영화이야기&음악>현대 음악출판사
http://www.movieline.co.kr/look/
http://www2.nownuri.net/
user/파/파파야향.html/movie_9.htm
http://www.dongah.co.kr/magazine/1998/2/8.htm
http://channel.shinbiro.com/@cine/china.htm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