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고전 구조주의에서 후기구조주의로
2. 본론 1) 해체주의 출현
2) 해체주의 비평 ①전개-데리다와 소쉬르, 라캉, 레비 스트로스
②개념-차연
③미국의 해체 비평-드 만과 밀러
3) 해체 독서와 비평①데리다의 분열적 글쓰기
②드 만과 ‘오독의 이론’, 밀러의 ‘측면의 꿈’
4) 해체 비평의 해체
3. 결론- 정리와 아포리아
2. 본론 1) 해체주의 출현
2) 해체주의 비평 ①전개-데리다와 소쉬르, 라캉, 레비 스트로스
②개념-차연
③미국의 해체 비평-드 만과 밀러
3) 해체 독서와 비평①데리다의 분열적 글쓰기
②드 만과 ‘오독의 이론’, 밀러의 ‘측면의 꿈’
4) 해체 비평의 해체
3. 결론- 정리와 아포리아
본문내용
심화시키는 일, 즉 해체의 도구로 작용한다.
자신의 글에서 드 만은 텍스트를 읽어 가면서 개념들을 엮어 낸다. 따라서 그의 문학비평이론은 대부분이 그의 글 속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 그는 자신의 해체 작업에 관한 어떠한 획기적 언급도 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고 신비로우며 때로는 모호하고 고집스럽도록 개성적인 드 만은 의도적으로, 지극히 정성을 들여 모범적인 텍스트들을 늘 숨막히게 독창적인 독서에의 길로 열어 놓는다.
또한 밀러의 견해에 따르면 기호란 변별적이고 다름이며 연기된 것이다. 기호는 이름 지어진 사물을 대치하고 사물의 출연을 연기하며 잉크를 실재로써 대치시킨다. 비평적 독서 작업에서 이 이론은 기호의 안정성을 끊임없이 전복한다. 그에 따라 의미가 미끄러져 감은 어찌할 수 없는, 치유 불가능한 상황이다. 진리는 언제나 빠져 달아난다. 게다가 밀러는 기호가 본질적으로 비유였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처음부터 허구적이고 가공적이다......’
따라서 사실상 진리는 빠져 달아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언어의 지시적 기능은 여기서 철저하게 손상을 입는다. 밀러는 데리다와 드 만의 기호이론이 가진 여러 요소를 통합하고 차이와 수사성을 혼합하여 해체 작업을 위한 도구를 만들어 낸다. 초기 데리다와는 달리 밀러는「해체수사학」을 적용해 텍스트 내에서 비유가 새어나가는 것과 지시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을 추적한다. 역사비평과 주제비평, 심리비평에 이어 밀러는 수사비평을 세우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해체수사학으로의 전의는 전통비평의 단순성으로부터 다행스레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 텍스트에 대한 당혹스런 인식론과의 투쟁이다. 글자와 실재는 일치하지 않으며 언어는 본래부터 비유적이기 때문에 이 비유적 단어들의 무한한 연쇄는 언어외적인 기원이나 종말이 없다. 결국 우리는 기호 해석의 수수께끼로 되돌아간다.
데리다로부터 드 만, 그리고 밀러에까지 이르는 해체론의 발달은 줄기차게 범위의 축소와 환원을 보여 준다. 해체의 대상은 서구 철학적 체계로부터 르네상스 이후 대륙 전통의 중요한 문학과 철학 텍스트로, 그리고 19~20세기의 중요한 영미 문학작품으로 옮겨진다.
3) 해체 독서와 비평
①데리다의 분열적 글쓰기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혹독한 비판과 구조주의에 대해 극적인 질문을 던진 것을 보면『기술학』은 후기 구조주의 시대의 문을 연 계기를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체론의 발전에서 이 독서는 하나의 전형을 이룬다.
데리다는『기술학』을 통틀어 혁신적인 독서 전략들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그것들을 살펴보고 다음 절에서 정리해 보자. 글쓰기라는 문제들이 흔적, 차연, 거리두기를 불러 일으키고 기호, 진리, 현존 등 전통 가치들을 붕괴시킨다는 것은 이미 얘기된 바 있다. 데리다가 공격의 표적으로 룻소의 글을 택한 이유는 르네상스 말기에서 모더니즘 초기에 이르는 기간의 글들 가운데 그것이 글쓰기에 대한 음성 중심, 이성 중심적 사고를 강렬히 옹호하기 때문이다. 룻소의 텍스트에서 보환(supplement)의 특수한 작용을 끌어내고 추적하면서 데리다는 해체론의 기획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분짓게 될 분석 전략을 수립한다.
보환이란 무엇인가? 역사를 훑어보면 많은 저술가와 철학자들이 「자연 / 문화」 라는 대립을 상정하거나 사용한다. 전통적인 설명에 따른다면 순수하고 축복받은 자연 상태에 살고 있는 고대인은 이런저런 종류의 위험 또는 부족함에 부딪쳐 공동체에의 요구 또는 욕망을 갖게 된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사회로 옮겨 감에 따라 사회적 단계의 실존은 자연적인 행복한 상태에 대한 첨가물로 그려진다. 다시 말하자면 문화는 자연을 보충하는 것이다. 머지 않아 문화는 자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문화는 두 가지 방식으로 보환이 된다. 즉 문화는 자연에 첨가되며 자연을 대치한다. 동시에 그것은 잠재적으로는 유해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롭다.
중요한 것은 자연/문화라는 대립 구조가 다른 전통적인 대립들에서 되풀이 된다는 점이다. 이런 대립물들은 예컨대 건강/질병, 순수/오염, 선/악, 대상/재현, 동물성/인간성, 말/글 등이다. 각 쌍에서 첫 번째 개념이 시간적으로 앞선다. 두 번째 실체는 첫 번째 것에 대한 보환물로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각각의 대립 쌍에서 첫 번째 개념이 특권적이거나 더 나은 상태 또는 실체를 이룬다. 문화에 대한 자연의 우위인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보환성(suuplementary)의 힘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자연은 진리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보환되지 않은 본래의 자연이란 없으며 단지 그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창조해 낸 신화만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문화의 대립을 역전시키고 그에 따라 이 형이상학적이고 순수한 관념을 전복시킴으로써, 데리다는 보환이라는 결정지을 수 없는 개념의 발생에 주목하고 룻소의 텍스트 전체를 통해 스며든 이것의 줄기찬 작용을 추적한다. 그 결과는 자연과 문화를 해체시키며 문화가 자연을 보환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언제나 이미 보환된 실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구조, 기호 및 놀이」의 용어들을 사용해 해체론이 해석에 대한 두 개의 방법을 실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해체론은 전통적인 수동적 독서 전술들을 사용해 한 작품의 안정된 진리를 해독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수수께끼 같은 비결정인들을 능동적으로 생산하는 가운데 이와 같은 진리들을 문제시하고 전복시키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비결정인들이 읽혀진 텍스트들 내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바깥으로부터 유입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해체의 재료는 전통 내에 있다. 달리 말하자면 텍스트는 극히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해체에 내맡기는 것이다. 룻소에 대한 데리다의 엄밀한 독서는 이 점을 설득력있게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해체론의 혁명은 메시아적 대담성에 못지않게 전통적 작품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관습적인 비평의 역할에 관해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고전의 중요성들을 모두 인식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 적 비평의 온갖 수단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과 존중이 없이는 비평
자신의 글에서 드 만은 텍스트를 읽어 가면서 개념들을 엮어 낸다. 따라서 그의 문학비평이론은 대부분이 그의 글 속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 그는 자신의 해체 작업에 관한 어떠한 획기적 언급도 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고 신비로우며 때로는 모호하고 고집스럽도록 개성적인 드 만은 의도적으로, 지극히 정성을 들여 모범적인 텍스트들을 늘 숨막히게 독창적인 독서에의 길로 열어 놓는다.
또한 밀러의 견해에 따르면 기호란 변별적이고 다름이며 연기된 것이다. 기호는 이름 지어진 사물을 대치하고 사물의 출연을 연기하며 잉크를 실재로써 대치시킨다. 비평적 독서 작업에서 이 이론은 기호의 안정성을 끊임없이 전복한다. 그에 따라 의미가 미끄러져 감은 어찌할 수 없는, 치유 불가능한 상황이다. 진리는 언제나 빠져 달아난다. 게다가 밀러는 기호가 본질적으로 비유였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처음부터 허구적이고 가공적이다......’
따라서 사실상 진리는 빠져 달아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언어의 지시적 기능은 여기서 철저하게 손상을 입는다. 밀러는 데리다와 드 만의 기호이론이 가진 여러 요소를 통합하고 차이와 수사성을 혼합하여 해체 작업을 위한 도구를 만들어 낸다. 초기 데리다와는 달리 밀러는「해체수사학」을 적용해 텍스트 내에서 비유가 새어나가는 것과 지시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을 추적한다. 역사비평과 주제비평, 심리비평에 이어 밀러는 수사비평을 세우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해체수사학으로의 전의는 전통비평의 단순성으로부터 다행스레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 텍스트에 대한 당혹스런 인식론과의 투쟁이다. 글자와 실재는 일치하지 않으며 언어는 본래부터 비유적이기 때문에 이 비유적 단어들의 무한한 연쇄는 언어외적인 기원이나 종말이 없다. 결국 우리는 기호 해석의 수수께끼로 되돌아간다.
데리다로부터 드 만, 그리고 밀러에까지 이르는 해체론의 발달은 줄기차게 범위의 축소와 환원을 보여 준다. 해체의 대상은 서구 철학적 체계로부터 르네상스 이후 대륙 전통의 중요한 문학과 철학 텍스트로, 그리고 19~20세기의 중요한 영미 문학작품으로 옮겨진다.
3) 해체 독서와 비평
①데리다의 분열적 글쓰기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혹독한 비판과 구조주의에 대해 극적인 질문을 던진 것을 보면『기술학』은 후기 구조주의 시대의 문을 연 계기를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체론의 발전에서 이 독서는 하나의 전형을 이룬다.
데리다는『기술학』을 통틀어 혁신적인 독서 전략들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그것들을 살펴보고 다음 절에서 정리해 보자. 글쓰기라는 문제들이 흔적, 차연, 거리두기를 불러 일으키고 기호, 진리, 현존 등 전통 가치들을 붕괴시킨다는 것은 이미 얘기된 바 있다. 데리다가 공격의 표적으로 룻소의 글을 택한 이유는 르네상스 말기에서 모더니즘 초기에 이르는 기간의 글들 가운데 그것이 글쓰기에 대한 음성 중심, 이성 중심적 사고를 강렬히 옹호하기 때문이다. 룻소의 텍스트에서 보환(supplement)의 특수한 작용을 끌어내고 추적하면서 데리다는 해체론의 기획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분짓게 될 분석 전략을 수립한다.
보환이란 무엇인가? 역사를 훑어보면 많은 저술가와 철학자들이 「자연 / 문화」 라는 대립을 상정하거나 사용한다. 전통적인 설명에 따른다면 순수하고 축복받은 자연 상태에 살고 있는 고대인은 이런저런 종류의 위험 또는 부족함에 부딪쳐 공동체에의 요구 또는 욕망을 갖게 된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사회로 옮겨 감에 따라 사회적 단계의 실존은 자연적인 행복한 상태에 대한 첨가물로 그려진다. 다시 말하자면 문화는 자연을 보충하는 것이다. 머지 않아 문화는 자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문화는 두 가지 방식으로 보환이 된다. 즉 문화는 자연에 첨가되며 자연을 대치한다. 동시에 그것은 잠재적으로는 유해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롭다.
중요한 것은 자연/문화라는 대립 구조가 다른 전통적인 대립들에서 되풀이 된다는 점이다. 이런 대립물들은 예컨대 건강/질병, 순수/오염, 선/악, 대상/재현, 동물성/인간성, 말/글 등이다. 각 쌍에서 첫 번째 개념이 시간적으로 앞선다. 두 번째 실체는 첫 번째 것에 대한 보환물로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각각의 대립 쌍에서 첫 번째 개념이 특권적이거나 더 나은 상태 또는 실체를 이룬다. 문화에 대한 자연의 우위인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보환성(suuplementary)의 힘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자연은 진리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보환되지 않은 본래의 자연이란 없으며 단지 그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창조해 낸 신화만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문화의 대립을 역전시키고 그에 따라 이 형이상학적이고 순수한 관념을 전복시킴으로써, 데리다는 보환이라는 결정지을 수 없는 개념의 발생에 주목하고 룻소의 텍스트 전체를 통해 스며든 이것의 줄기찬 작용을 추적한다. 그 결과는 자연과 문화를 해체시키며 문화가 자연을 보환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언제나 이미 보환된 실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구조, 기호 및 놀이」의 용어들을 사용해 해체론이 해석에 대한 두 개의 방법을 실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해체론은 전통적인 수동적 독서 전술들을 사용해 한 작품의 안정된 진리를 해독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수수께끼 같은 비결정인들을 능동적으로 생산하는 가운데 이와 같은 진리들을 문제시하고 전복시키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비결정인들이 읽혀진 텍스트들 내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바깥으로부터 유입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해체의 재료는 전통 내에 있다. 달리 말하자면 텍스트는 극히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해체에 내맡기는 것이다. 룻소에 대한 데리다의 엄밀한 독서는 이 점을 설득력있게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해체론의 혁명은 메시아적 대담성에 못지않게 전통적 작품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관습적인 비평의 역할에 관해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고전의 중요성들을 모두 인식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 적 비평의 온갖 수단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과 존중이 없이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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