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배경설화
2.원문해석
3.문학적 연구
1)노래의 창작
2)모죽지랑가의 주지(主旨)
3) 노래의 성격
<참고문헌>
2.원문해석
3.문학적 연구
1)노래의 창작
2)모죽지랑가의 주지(主旨)
3) 노래의 성격
<참고문헌>
본문내용
급히 떠났기 때문에 낭에게 고하지도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죽지랑이 그 말을 듣고 말하기를 ‘그대의 아들이 사사로운 일로 갔다면 찾을 필요가 없지만 공사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대접해야겠소’ 하고 떡 한 합과 술 한 동이를 佐人(시골에서 개질이라 알고 있으니 종을 말한다)에게 딸려서 낭도 137명을 거느려 의례를 갖추고 따라갔다. 부산성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득오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지금 익선의 밭에서 列에 따라 부역하고 있다’고 하였다. …{죽지랑이 밭으로 찾아가서 술과 떡을 대접하고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여 득오와 같이 돌아가려 했으나 익선이 굳이 허락치 않았다. 이때 사리 간진(使吏 侃珍)이 추화군에게 거둔 조세 30석을 성중으로 나르다가 죽지랑이 선비를 존중히 여기는 정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변통성이 없는 익선을 비열하게 여겨 쌀 30석을 익선에게 주며 득오를 돌려 보내 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또한 듣지 아니하므로 진절 사지(珍節 舍知)의 안장까지 주니 그 때야 허락하였다. 조정 花主가 이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익선을 잡아다 그 더러운 때를 씻어 주려고 했더니 익선이 도망하여 숨어버렸으므로 그 장자를 잡아 갔다. 때마침 仲冬으로 극히 추운 날이었는데 성내의 못에서 몸을 씻겼더니 마침내 얼어 죽었다. 대왕이 이말을 듣고 벼슬하던 모량리 사람을 모두 내쫓아 다시는 관청에 발을 붙이지 말라 하고 승복도 입지 못하게 했으며 이미 중이 된 사람도 큰절에 들지 못하게 하였다. 반면에 간진의 자손을 올리어 평정호손(枰定戶孫)으로 삼아 표창하였다. 그때 圓測法師는 해동고승이었으나 모량리 사람이었으므로 승직을 주지 않았다.}…
②그 전의 일이다. 述宗公이 삭주 도독사가 되어 임지로 갈 때 마침 삼한에 병란이 있어 기마 삼천명으로 호송하였다. 술종공이 죽지령에 이르렀을 때 한 거사가 길을 닦고 있었다. 공은 그 일을 아름답게 여겼고 거사도 공의 위세와 인격에 감동했다. 공이 부임한 한달 후 공은 거사가 방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으므로 더욱 이상하게 여겼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었더니 일전에 죽었노라고 하였다. 죽었다는 날을 헤아려 보니 바로 꿈을 꾼 날이었다. 공이 말하기를 그 거사가 반드시 우리 집에 태어나리라 하고 군졸을 시켜 거사의 시체를 죽지령의 북쪽 봉우리에 다시 장사지내고 돌로써 미륵불을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워 주었다. 공의 아내는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로써 이름을 죽지라고 하였다. 거사는 벼슬을 하여 김유신의 부사가 되어 삼한을 통일시키고 진덕태종문무 신문왕 사대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③처음에 득오곡이 죽지랑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었으니 그 노래는<...>
2.원문해석
1)<양주동>
去隱春皆理米 간봄 그리메
毛冬居叱沙器室尸以憂音 모 것 우리 시름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아 나토샤온
史年數就音墮支行齊 즈 살㈓ 디니져
目煙廻於尸七史伊衣 눈 돌칠 이예
逢烏支惡知作乎下是 맛보디 지리
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郎이여 그릴 녀오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다
②그 전의 일이다. 述宗公이 삭주 도독사가 되어 임지로 갈 때 마침 삼한에 병란이 있어 기마 삼천명으로 호송하였다. 술종공이 죽지령에 이르렀을 때 한 거사가 길을 닦고 있었다. 공은 그 일을 아름답게 여겼고 거사도 공의 위세와 인격에 감동했다. 공이 부임한 한달 후 공은 거사가 방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으므로 더욱 이상하게 여겼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었더니 일전에 죽었노라고 하였다. 죽었다는 날을 헤아려 보니 바로 꿈을 꾼 날이었다. 공이 말하기를 그 거사가 반드시 우리 집에 태어나리라 하고 군졸을 시켜 거사의 시체를 죽지령의 북쪽 봉우리에 다시 장사지내고 돌로써 미륵불을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워 주었다. 공의 아내는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로써 이름을 죽지라고 하였다. 거사는 벼슬을 하여 김유신의 부사가 되어 삼한을 통일시키고 진덕태종문무 신문왕 사대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③처음에 득오곡이 죽지랑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었으니 그 노래는<...>
2.원문해석
1)<양주동>
去隱春皆理米 간봄 그리메
毛冬居叱沙器室尸以憂音 모 것 우리 시름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아 나토샤온
史年數就音墮支行齊 즈 살㈓ 디니져
目煙廻於尸七史伊衣 눈 돌칠 이예
逢烏支惡知作乎下是 맛보디 지리
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郎이여 그릴 녀오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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