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는 말-김현승 시인에 대하여
2. 본론
1) ~ 12)시인의 작품 분석
3. 결론
2. 본론
1) ~ 12)시인의 작품 분석
3. 결론
본문내용
- 目 次 -
Ⅰ. 들어가는 말
- 김현승 시인에 대하여
Ⅱ. 본 론
- 김현승 시의 주제의식이 변모ㆍ발전되어 가는 양상에 대하여
1. 자연과 민족(1930년대 일제강점기 ~ 광복까지)
1) 작품1.『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2) 작품2.『아침』
3) 작품3.『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2. 양심과 기도(시대적 전환기, 광복에서 ~ 1960년대 초반)
1) 작품4.『플라타너스』
2) 작품5.『양심의 금속성』
3) 작품6.『가을의 기도』
3. 신과 고독(신으로부터의 이탈 그리고 고독, 1960년대 중반이후)
1) 작품7.『제목』
2) 작품8.『절대고독』
3) 작품9.『고독의 순금』
4) 작품10.『눈물』
4. 고독의 극복(신으로의 회귀 그리고 회개, 1970년대 ~ 그의 생애 마지막 날까지)
1) 작품11.『절대신앙』
2) 작품12.『신년기원』
3) 작품13.『부활절에』
Ⅲ. 맺는 말
- 김현승 시인에 대한 평가
Ⅰ. 들어가는 말 - 김현승 시인에 대하여
흔히 \'고독의 시인\'으로 불리는 茶兄 김현승.그는 일생을 올곧게 살아오면서 발표작과 미발표작을 합쳐 총 275편의 시작품을 남겼다.
전북출신으로 목사인 아버지 김창국(金昶國)과 어머니 양응도(梁應道)사이에서 1913년 4월 4일 아버지의 신학유학지인 평양에서 6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부친이 평양신학교를 마치고 제주도 성내교회를 거쳐 광주로 오게 되자 그는 광주 숭일초등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중학에 진학하기 까지 10년간 광주에서 살았다.
그가 문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1932년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면서부터 이 학교에는 양주동과 이효석선생이 교수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선생의 소개로 1934년 5월 25일<동아일보>에 발표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앙시와 양심의 시를 개척했는데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관념의 세계를 신앙적 정면대결 정신으로 극복하였고, 윤리적으로는 인간의 실존적 자아 탐구에 고뇌, 끝내는 신의 절대주의적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의 시의 중심 사상이 된 고독은 신을 잃어 버렸기 때문인데 그는 여기에서 절망이나 회의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는 자아 탐색을 통하여 인간 생명과 진실을 노래, 보편적 진리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그는 사상이 없는 시는 무정란이라는 시론까지 전개하며 사상과 시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종교와 철학의 추상과 관념을 물화하여 형이상성으로 시를 감각화했다. 투명한 언어의 엄격성, 함축미, 간결한 정제미 등은 그의 시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는 다형의 시를 1기(30년대-8.15해방까지), 2기(8.15해방부터 60년대 중반까지), 3기(60년대 중반 이후), 4기(70년대) 등으로 나누어 전반적으로 고찰, 시의 주제의식이 변모ㆍ발전되어가는 과정을 구명하고자 한다.
Ⅱ. 본 론
- 김현승 시의 주제의식이 변모ㆍ발전되어 가는 양상에 대하여
1. 자연과 민족(1930년대 일제강점기 ~ 광복까지)
김현승 시인의 30년대 초기 시는 일제 식민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연을 예찬하고 동경하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민족적 센티멘탈리즘이 짙게 깔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김현승 시인은 말한다. “그 무렵 나의 시에는 자연미에 대한 예찬과 동경이 짙게 풍기고 있었다. 이점 또한 그 당시의 한 경향이었다. 불행한 현실과 고초의 현실에 처한 시인들에게 저들의 국토에서 자유로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은 거기서는 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자연뿐이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흉악한 인간, 일인들과 같은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지향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고, 지상에서 빼앗긴 자유를 광대무변한 천상에서 찾는 의미로 함축되어 있었다.”
그의 이와 같은 진술은 30년대가 망국민족이라는 일제하의 암울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자연을 통하여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로맨티시즘이나 센티멘탈리즘으로 나타낸 것이다. 불행한 현실 아래에서 자유롭게 대면할 수 있는 것은 자연뿐이고 그 자연을 통해서 민족의 염원이나 미래의 희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현실극복과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가장 친근한 존재였던 것이다.
(작품1)
해를
Ⅰ. 들어가는 말
- 김현승 시인에 대하여
Ⅱ. 본 론
- 김현승 시의 주제의식이 변모ㆍ발전되어 가는 양상에 대하여
1. 자연과 민족(1930년대 일제강점기 ~ 광복까지)
1) 작품1.『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2) 작품2.『아침』
3) 작품3.『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2. 양심과 기도(시대적 전환기, 광복에서 ~ 1960년대 초반)
1) 작품4.『플라타너스』
2) 작품5.『양심의 금속성』
3) 작품6.『가을의 기도』
3. 신과 고독(신으로부터의 이탈 그리고 고독, 1960년대 중반이후)
1) 작품7.『제목』
2) 작품8.『절대고독』
3) 작품9.『고독의 순금』
4) 작품10.『눈물』
4. 고독의 극복(신으로의 회귀 그리고 회개, 1970년대 ~ 그의 생애 마지막 날까지)
1) 작품11.『절대신앙』
2) 작품12.『신년기원』
3) 작품13.『부활절에』
Ⅲ. 맺는 말
- 김현승 시인에 대한 평가
Ⅰ. 들어가는 말 - 김현승 시인에 대하여
흔히 \'고독의 시인\'으로 불리는 茶兄 김현승.그는 일생을 올곧게 살아오면서 발표작과 미발표작을 합쳐 총 275편의 시작품을 남겼다.
전북출신으로 목사인 아버지 김창국(金昶國)과 어머니 양응도(梁應道)사이에서 1913년 4월 4일 아버지의 신학유학지인 평양에서 6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부친이 평양신학교를 마치고 제주도 성내교회를 거쳐 광주로 오게 되자 그는 광주 숭일초등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중학에 진학하기 까지 10년간 광주에서 살았다.
그가 문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1932년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면서부터 이 학교에는 양주동과 이효석선생이 교수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선생의 소개로 1934년 5월 25일<동아일보>에 발표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앙시와 양심의 시를 개척했는데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관념의 세계를 신앙적 정면대결 정신으로 극복하였고, 윤리적으로는 인간의 실존적 자아 탐구에 고뇌, 끝내는 신의 절대주의적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의 시의 중심 사상이 된 고독은 신을 잃어 버렸기 때문인데 그는 여기에서 절망이나 회의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는 자아 탐색을 통하여 인간 생명과 진실을 노래, 보편적 진리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그는 사상이 없는 시는 무정란이라는 시론까지 전개하며 사상과 시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종교와 철학의 추상과 관념을 물화하여 형이상성으로 시를 감각화했다. 투명한 언어의 엄격성, 함축미, 간결한 정제미 등은 그의 시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는 다형의 시를 1기(30년대-8.15해방까지), 2기(8.15해방부터 60년대 중반까지), 3기(60년대 중반 이후), 4기(70년대) 등으로 나누어 전반적으로 고찰, 시의 주제의식이 변모ㆍ발전되어가는 과정을 구명하고자 한다.
Ⅱ. 본 론
- 김현승 시의 주제의식이 변모ㆍ발전되어 가는 양상에 대하여
1. 자연과 민족(1930년대 일제강점기 ~ 광복까지)
김현승 시인의 30년대 초기 시는 일제 식민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연을 예찬하고 동경하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민족적 센티멘탈리즘이 짙게 깔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김현승 시인은 말한다. “그 무렵 나의 시에는 자연미에 대한 예찬과 동경이 짙게 풍기고 있었다. 이점 또한 그 당시의 한 경향이었다. 불행한 현실과 고초의 현실에 처한 시인들에게 저들의 국토에서 자유로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은 거기서는 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자연뿐이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흉악한 인간, 일인들과 같은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지향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고, 지상에서 빼앗긴 자유를 광대무변한 천상에서 찾는 의미로 함축되어 있었다.”
그의 이와 같은 진술은 30년대가 망국민족이라는 일제하의 암울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자연을 통하여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로맨티시즘이나 센티멘탈리즘으로 나타낸 것이다. 불행한 현실 아래에서 자유롭게 대면할 수 있는 것은 자연뿐이고 그 자연을 통해서 민족의 염원이나 미래의 희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현실극복과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가장 친근한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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