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삼십년 지나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다는 주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 바울의 초기 삶에 대하여 그가 모르는 부분이 이었다는 점과 그가 정보를 단순화시켰고 다시 정리하였다는 점 및 이제는 더 이상 적절하지 못하게 된 바울의 강조점들을 그가 참된 신학자로서 재고하였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세기 전승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그가 누가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나은 사람이라고 제안해야 할 중요한 이유도 없다. 누가는 확실한 바울서신(몬 24)에 오직 한 번, 제 2의 바울서신에서 두 번 (골 4:14 , 딤후 4:11)언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가공의 저자로 시선을 집중시킬만한 가장 분명한 바울의 등장인물은 거의 아니었다. “우리”구절이 지시하는 장소와 시간에 누가가 바울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그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다. 저자에 대한 이 제안이 다른 제안들보다 추천할 만하다. 그러나 주장되고 는 다른 제안들 모두가 불가능한 것들은 아니다.
5. 생각해 보아야 할 논쟁점과 문제점들.
(1) 사도행전은 다른 신약 책들보다 훨씬 중대한 사본 상의 문제를 갖고 있다. 서방 계통의 사본 상의 증거들이 8개 혹은 그 이상의 구절에서 보다 짧은 독법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서방 계통의 사본 상의 증거들이 이집트 혹은 알렉산드리아 사본 전승보다 1/10정도 더 긴 헬라어 사본을 가지고 있다. 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사도행전 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판에 관한 이론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다 1) 누가가 그것들 둘 다 기록하였다. 동방 사본이 두 번째의 것으로 보다 손질하여 만든 것이든 아니면 서방 사본이 두 번째의 것으로 확장시켜 만든 것이든 둘 다 기록하였다. 2) 두 번째 필사자가 누가가 남겨 놓아선 주해가 들어있었던 첫 번째의 것을 손질함으로 서방 사본을 만들었다.3)서방 사본이 원래의 판이며, 반면에 보다 짧은 판은 2세기에 보다 널리 유통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혹은 보다 잘 손질된 작품을 제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4)사도행전의 원판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방 사본으로부터 재구성한 것으로 저자가 서방 사본을 그의 주된 자료로 이용하였다. 또 다른 한 저자가 독자적으로 이용하였던 원래의 사본에 비추어 서방 사본을 개정함으로써 동방 사본을 만들었다. 해결책이 무엇이든, 대부분의 주석들은 보다 짧은 동방 사본을 기초로 하였다.
(2) 하나님의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 설립과 관련하여, 사도행전 1장 7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는 대부분의 교회에 응답이 되었다. 여기서 “기한”에 대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 기한을 알 수 있으리란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너무나 놀라운 방식으로 하나님이 언젠가는 그 나라를 세우실 것임을 똑같이 고백할 필요가 있다.
(3) 사도행전에 나오는 많은 설교나 담화들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구약의 이야기를 언급함으로써 시작한다. 그러한 형태는 오늘날 설교에서 강조될 필가 있을 지도 모른다. 수세기 동안 구약은 주일에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읽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2차 바티칸 공회의 결과로 그러한 단점은 보완되었다. 그렇지만 구약은 설교의 주제에서 소외되고 있다.
(4) 예수님은“비조직적”이었다. 그러나 부활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확신을 심어준 사람들을 함께 모아 놓고자 하는 충동을 보여준다. 기독교 교회들 사이에는 교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점들이 있다. 그렇지만, 보다 더 기본적인 불일치가 있을 수도 있다. 즉, “교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들과 교회가 혹은 백성의 일보로 구원을 받았다는 개념 없이 기독교는 사실상“예수님과 나”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차이이다.
(5) 새롭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첫 번 묘사에서(2:38-41),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신분이 확립되었다. 이것은 유대교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비록 사람들이 유대인을 ”모세의 제자들“로 부를 수 있지만(요 9:28), 그들이 모세의 개인적인 신분을 믿었다는 것 때문에 그들의 경계를 정하고자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6)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 교회의 모습 중 또 다른 면과 관련하여, 코이노니아(2:42에서 이야기하고있는 “교제”)에 대한 개념은 우리 시대에도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독교 교회들이 서로 코이노니아를 깨뜨리고 있다.
모든 기독교인은 코이노니아를 깨면 초대 교회와 같은 평가는 거의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7) 초대 기독교인들의 삶과 관습에 나타난 많은 유대적 모습들을 지적하고 있다. 유대적 형태는 성만찬 먹는 시간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선택에도 반영될 수 있다.어떻게 해서 “주의 날”로 알려졌는가에 기독교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일요일을 선택한 것은 토요일 해질녘에 끝이 나는 유대인의 안식일 형태로부터도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8) 상기 사도행전 6장 1-6절의 논의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 조직의 발전을 사회적 필요성에 의한 산물일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산물로 생각하게 해 준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조직에 대한 일부 기본적인 부분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로 생각한다. 어려운 일은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어떤 문제들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와 기독교인들 안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이 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할을 하신다.
(9) 사도행전 10,11,15장의 중요한 문제는 이방인들이 할례 받지 않고서 기독교인들의 코이노니아에 들어올 수 있었냐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살아계신 동안 예수님에 의해 해결된 문제는 아니다. 교회를 위하여 예수님이 미리 보여주신 청사진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에 관한 통찰력에 의존하여 해결하였다.
2세기 전승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그가 누가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나은 사람이라고 제안해야 할 중요한 이유도 없다. 누가는 확실한 바울서신(몬 24)에 오직 한 번, 제 2의 바울서신에서 두 번 (골 4:14 , 딤후 4:11)언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가공의 저자로 시선을 집중시킬만한 가장 분명한 바울의 등장인물은 거의 아니었다. “우리”구절이 지시하는 장소와 시간에 누가가 바울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그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다. 저자에 대한 이 제안이 다른 제안들보다 추천할 만하다. 그러나 주장되고 는 다른 제안들 모두가 불가능한 것들은 아니다.
5. 생각해 보아야 할 논쟁점과 문제점들.
(1) 사도행전은 다른 신약 책들보다 훨씬 중대한 사본 상의 문제를 갖고 있다. 서방 계통의 사본 상의 증거들이 8개 혹은 그 이상의 구절에서 보다 짧은 독법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서방 계통의 사본 상의 증거들이 이집트 혹은 알렉산드리아 사본 전승보다 1/10정도 더 긴 헬라어 사본을 가지고 있다. 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사도행전 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판에 관한 이론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다 1) 누가가 그것들 둘 다 기록하였다. 동방 사본이 두 번째의 것으로 보다 손질하여 만든 것이든 아니면 서방 사본이 두 번째의 것으로 확장시켜 만든 것이든 둘 다 기록하였다. 2) 두 번째 필사자가 누가가 남겨 놓아선 주해가 들어있었던 첫 번째의 것을 손질함으로 서방 사본을 만들었다.3)서방 사본이 원래의 판이며, 반면에 보다 짧은 판은 2세기에 보다 널리 유통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혹은 보다 잘 손질된 작품을 제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4)사도행전의 원판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방 사본으로부터 재구성한 것으로 저자가 서방 사본을 그의 주된 자료로 이용하였다. 또 다른 한 저자가 독자적으로 이용하였던 원래의 사본에 비추어 서방 사본을 개정함으로써 동방 사본을 만들었다. 해결책이 무엇이든, 대부분의 주석들은 보다 짧은 동방 사본을 기초로 하였다.
(2) 하나님의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 설립과 관련하여, 사도행전 1장 7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는 대부분의 교회에 응답이 되었다. 여기서 “기한”에 대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 기한을 알 수 있으리란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너무나 놀라운 방식으로 하나님이 언젠가는 그 나라를 세우실 것임을 똑같이 고백할 필요가 있다.
(3) 사도행전에 나오는 많은 설교나 담화들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구약의 이야기를 언급함으로써 시작한다. 그러한 형태는 오늘날 설교에서 강조될 필가 있을 지도 모른다. 수세기 동안 구약은 주일에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읽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2차 바티칸 공회의 결과로 그러한 단점은 보완되었다. 그렇지만 구약은 설교의 주제에서 소외되고 있다.
(4) 예수님은“비조직적”이었다. 그러나 부활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확신을 심어준 사람들을 함께 모아 놓고자 하는 충동을 보여준다. 기독교 교회들 사이에는 교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점들이 있다. 그렇지만, 보다 더 기본적인 불일치가 있을 수도 있다. 즉, “교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들과 교회가 혹은 백성의 일보로 구원을 받았다는 개념 없이 기독교는 사실상“예수님과 나”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차이이다.
(5) 새롭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첫 번 묘사에서(2:38-41),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신분이 확립되었다. 이것은 유대교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비록 사람들이 유대인을 ”모세의 제자들“로 부를 수 있지만(요 9:28), 그들이 모세의 개인적인 신분을 믿었다는 것 때문에 그들의 경계를 정하고자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6)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 교회의 모습 중 또 다른 면과 관련하여, 코이노니아(2:42에서 이야기하고있는 “교제”)에 대한 개념은 우리 시대에도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독교 교회들이 서로 코이노니아를 깨뜨리고 있다.
모든 기독교인은 코이노니아를 깨면 초대 교회와 같은 평가는 거의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7) 초대 기독교인들의 삶과 관습에 나타난 많은 유대적 모습들을 지적하고 있다. 유대적 형태는 성만찬 먹는 시간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선택에도 반영될 수 있다.어떻게 해서 “주의 날”로 알려졌는가에 기독교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일요일을 선택한 것은 토요일 해질녘에 끝이 나는 유대인의 안식일 형태로부터도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8) 상기 사도행전 6장 1-6절의 논의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 조직의 발전을 사회적 필요성에 의한 산물일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산물로 생각하게 해 준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조직에 대한 일부 기본적인 부분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로 생각한다. 어려운 일은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어떤 문제들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와 기독교인들 안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이 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할을 하신다.
(9) 사도행전 10,11,15장의 중요한 문제는 이방인들이 할례 받지 않고서 기독교인들의 코이노니아에 들어올 수 있었냐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살아계신 동안 예수님에 의해 해결된 문제는 아니다. 교회를 위하여 예수님이 미리 보여주신 청사진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에 관한 통찰력에 의존하여 해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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