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 론
2. 신동엽의 경험세계
3. 신동엽의 문학세계
1) 시세계
2) <금강>의 역사의식
4. 결 론
2. 신동엽의 경험세계
3. 신동엽의 문학세계
1) 시세계
2) <금강>의 역사의식
4. 결 론
본문내용
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2. 신동엽의 경험세계
신동엽은 농촌 공동체적인 세계를 이상향으로 그리워했다. 그는 처음부터 극히 소박하면서도 자신의 나름대로 꿋꿋한 태도로서 詩作에 임하였고 시단의 관습이나 유행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1930년 충남 부여읍에서 태어나 부여초등학교, 전주사범학교,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은 조선의 병참기지화로 식민지 수탈체제가 더 악랄해지던 때라 가난은 민중의 보편적인 모습이 되었고, 이러한 농촌의 궁핍상은 그의 유년기 속에서 그의 시풍을 결정짓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식민지 경험과 분단 상황의 경험을 장년기 이전에 겪었으며, 이러한 경험에 대한 자기 이해를 마련한 후, 시작 행위를 시작한 사실이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의 세계관과 시적 이념을 형성하고, 그 한계를 결정지은 경험적 세계는 이미 청년기까지의 생애에서 마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세계의 자기수용과 자기이해의 시기인 청년기에 분단 상황을 경험한 점에서도 그렇다.
청년기까지의 경험적 세계와 그것이 형성한 세계관은, 그의 전기적 정보와 문학적 생애의 초상에 따르는 것이라며 민병욱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충남 부여라는 전형적인 식민지 농촌에서의 향토경험(1930~43)과 그것이 형성한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가난 인식과 농촌의 대지정신.
둘째, 유교적 가족질서 아래서의 삶과 식민지 농촌에서의 삶이 동시적으로 작용한 가족경험(1930~)과 그것에 의하여 형성된 삶의 유교적 규범의식과 삶의 직정적 정서.
셋째, 전주사범 시절의 사회과학적 교양경험과 기타 실천적 행동의 경험(1943~48), 그리고 그것들이 형성한 이데올로기의 인간화와 공동체적 삶 의식.
넷째, 국민방위군 입대와 귀향 등의 6.25 경험(1950~53)과 그것에 의하여 형성된 이데올로기의 인간화와 민족질서 혹은 화해의식 사이의 동시적인 연계성.
다섯째, 단국대 사학과 . 전시연합대학 수학이라는 역사적 교양경험(1949~53)과 민족질서(혹은 화해)에의 역사의식. 민병욱, 「신동엽의 서사시세계와 서사정신」,태학사,1998.
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동엽의 경험세계가 민족문학으로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3. 신동엽의 문학세계
1) 신동엽의 시와 역사의식
신동엽의 최대 관심은 민족이 처한 현실적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에 있다. 그래서 민족의 꽃이라 할 언어로써 시를 쓰는 시인은 ‘그 민족의 공동체적 상황을 歷史感覺으로 感愛받은 시’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오늘처럼 조국과 민족이 그 인간이 굶주리고 학대받고 外侵되어 울부짖고 있을 때, 어떻게 해서 찡그림 속의 살 아픈 언어가 아니 나올 수 있는가’ 신동엽, ‘六十年大의 詩壇分布圖’,「전집」,p.379.
라고 반문한다. 신동엽에게 현실은 민족적 비극으로 다가왔으며 그는 이러한 비극 앞에서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 민족의 역사 현실에 대한 극복 의지를 굳게 견지하였고, 내일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보여주었다. 신동엽은 현실 극복 차원에서 우리 민족사의 비극적 뿌리 인식에 깊이 몰두하였다. 그의 시가 4.19 혁명 이후 민족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고조됨에 따라 예리한 관심을 끌게 되었고, 쉽고 단조로운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다른 시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민족의 역사에 대한 뜨겁고 원대한 비젼을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 역사의 주체성추구, 남북 분단 상황에서 민족적 동질성의 회복 및 현실과의 대결을 시로써 펼쳐 보임으로써, 분단 상황을 넘어선 조국을 지향하고 있다. 김창완, 대전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회『대전대어문학 제12집』,p.6.
1959년 4.19와 5.16을 거치는 동안 그는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그 가을>,<아사녀의 울리는 축고>,<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빛나는 눈동자>,<산에 언덕에>등을 발표하였다. 4.19와 5.16등의 희망과 좌절의 시기를 거치면서 그의 생활과 더불어 시 세계에 안정이 찾아든다. 그리고 이러한 안정은 정신주의의 침잠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신동엽의 장시<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그의 시에서는 드물게 함축적인 표현을 하고 있지만, 그의 역사의식의 향방을 보이는 일종의 ‘총론적 시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쟁기꾼의 이야기하는 대지’라는 뜻으로, ‘쟁기꾼’은 ‘전경인(全耕人)’곧 전인적 인간상을 가리킨다. 그는 「시인정신론」에서 현대의 인류는 전경인정신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종횡무진의 역사의식이 피력된 구조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장시는 序話, 제1화~6화, 後話 로 구성되어 있다.
신동엽의 역사관은 절대 다수인 민중 편이었고, 지배계급이란 하늘을 가리는 검은 구름장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민중이 주축이 된 갑오농민전쟁, 3.1운동, 4월 혁명이 시의 주요 테마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갑오농민전쟁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좌절되었고, 근대국가를 수립하려고 각성을 했지만 일본에 합병되고 만다. 해방 되는가 했더니, 남북이 분단되어 참혹한 살육전을 벌였고, 4월 혁명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는가 했더니, 5.16혁명이 일어나 군사독재로 이어졌다.
그의 역사에의 허무의식은 혐오와 분노를 넘어 때로는 선사시대를 그리워하며, 거기서 맑은 영혼을 대면하고자 하기도 한다.
싸우고 싶은 자 저희끼리 싸우게 하고
獨尊하고 싶은 자 철창속에 독존케 하라.
투구를 쓰고 싶어하는 자
쇠항아릴 만들어 깊숙히 씌워 주라.
영웅이 되고파 서두르는 자 로켓트에 매달아
대기밖으로 내던져 버리라.
- 「제 3화」에서
가리워진 안개를 걷게 하라.
국경이며 탑이며 어용학의 울타리며
죽 가래 밀어 바다로 몰아 넣라.
하여 하늘을 흐르는 날새처럼
한 세상 한 바람 한 햇빛 속에
만 가지와 만 노래를 한가지로 흐르게 하라.
- 「제 5화」에서
이러한 울분어린 시구는 직설적인 표현이면서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대지와 인간애의 기본적 모티브를 형성, 유연성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생리적으로 모더니즘의 난해한 언어를 싫어했고,
2. 신동엽의 경험세계
신동엽은 농촌 공동체적인 세계를 이상향으로 그리워했다. 그는 처음부터 극히 소박하면서도 자신의 나름대로 꿋꿋한 태도로서 詩作에 임하였고 시단의 관습이나 유행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1930년 충남 부여읍에서 태어나 부여초등학교, 전주사범학교,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은 조선의 병참기지화로 식민지 수탈체제가 더 악랄해지던 때라 가난은 민중의 보편적인 모습이 되었고, 이러한 농촌의 궁핍상은 그의 유년기 속에서 그의 시풍을 결정짓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식민지 경험과 분단 상황의 경험을 장년기 이전에 겪었으며, 이러한 경험에 대한 자기 이해를 마련한 후, 시작 행위를 시작한 사실이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의 세계관과 시적 이념을 형성하고, 그 한계를 결정지은 경험적 세계는 이미 청년기까지의 생애에서 마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세계의 자기수용과 자기이해의 시기인 청년기에 분단 상황을 경험한 점에서도 그렇다.
청년기까지의 경험적 세계와 그것이 형성한 세계관은, 그의 전기적 정보와 문학적 생애의 초상에 따르는 것이라며 민병욱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충남 부여라는 전형적인 식민지 농촌에서의 향토경험(1930~43)과 그것이 형성한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가난 인식과 농촌의 대지정신.
둘째, 유교적 가족질서 아래서의 삶과 식민지 농촌에서의 삶이 동시적으로 작용한 가족경험(1930~)과 그것에 의하여 형성된 삶의 유교적 규범의식과 삶의 직정적 정서.
셋째, 전주사범 시절의 사회과학적 교양경험과 기타 실천적 행동의 경험(1943~48), 그리고 그것들이 형성한 이데올로기의 인간화와 공동체적 삶 의식.
넷째, 국민방위군 입대와 귀향 등의 6.25 경험(1950~53)과 그것에 의하여 형성된 이데올로기의 인간화와 민족질서 혹은 화해의식 사이의 동시적인 연계성.
다섯째, 단국대 사학과 . 전시연합대학 수학이라는 역사적 교양경험(1949~53)과 민족질서(혹은 화해)에의 역사의식. 민병욱, 「신동엽의 서사시세계와 서사정신」,태학사,1998.
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동엽의 경험세계가 민족문학으로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3. 신동엽의 문학세계
1) 신동엽의 시와 역사의식
신동엽의 최대 관심은 민족이 처한 현실적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에 있다. 그래서 민족의 꽃이라 할 언어로써 시를 쓰는 시인은 ‘그 민족의 공동체적 상황을 歷史感覺으로 感愛받은 시’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오늘처럼 조국과 민족이 그 인간이 굶주리고 학대받고 外侵되어 울부짖고 있을 때, 어떻게 해서 찡그림 속의 살 아픈 언어가 아니 나올 수 있는가’ 신동엽, ‘六十年大의 詩壇分布圖’,「전집」,p.379.
라고 반문한다. 신동엽에게 현실은 민족적 비극으로 다가왔으며 그는 이러한 비극 앞에서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 민족의 역사 현실에 대한 극복 의지를 굳게 견지하였고, 내일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보여주었다. 신동엽은 현실 극복 차원에서 우리 민족사의 비극적 뿌리 인식에 깊이 몰두하였다. 그의 시가 4.19 혁명 이후 민족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고조됨에 따라 예리한 관심을 끌게 되었고, 쉽고 단조로운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다른 시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민족의 역사에 대한 뜨겁고 원대한 비젼을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 역사의 주체성추구, 남북 분단 상황에서 민족적 동질성의 회복 및 현실과의 대결을 시로써 펼쳐 보임으로써, 분단 상황을 넘어선 조국을 지향하고 있다. 김창완, 대전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회『대전대어문학 제12집』,p.6.
1959년 4.19와 5.16을 거치는 동안 그는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그 가을>,<아사녀의 울리는 축고>,<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빛나는 눈동자>,<산에 언덕에>등을 발표하였다. 4.19와 5.16등의 희망과 좌절의 시기를 거치면서 그의 생활과 더불어 시 세계에 안정이 찾아든다. 그리고 이러한 안정은 정신주의의 침잠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신동엽의 장시<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그의 시에서는 드물게 함축적인 표현을 하고 있지만, 그의 역사의식의 향방을 보이는 일종의 ‘총론적 시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쟁기꾼의 이야기하는 대지’라는 뜻으로, ‘쟁기꾼’은 ‘전경인(全耕人)’곧 전인적 인간상을 가리킨다. 그는 「시인정신론」에서 현대의 인류는 전경인정신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종횡무진의 역사의식이 피력된 구조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장시는 序話, 제1화~6화, 後話 로 구성되어 있다.
신동엽의 역사관은 절대 다수인 민중 편이었고, 지배계급이란 하늘을 가리는 검은 구름장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민중이 주축이 된 갑오농민전쟁, 3.1운동, 4월 혁명이 시의 주요 테마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갑오농민전쟁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좌절되었고, 근대국가를 수립하려고 각성을 했지만 일본에 합병되고 만다. 해방 되는가 했더니, 남북이 분단되어 참혹한 살육전을 벌였고, 4월 혁명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는가 했더니, 5.16혁명이 일어나 군사독재로 이어졌다.
그의 역사에의 허무의식은 혐오와 분노를 넘어 때로는 선사시대를 그리워하며, 거기서 맑은 영혼을 대면하고자 하기도 한다.
싸우고 싶은 자 저희끼리 싸우게 하고
獨尊하고 싶은 자 철창속에 독존케 하라.
투구를 쓰고 싶어하는 자
쇠항아릴 만들어 깊숙히 씌워 주라.
영웅이 되고파 서두르는 자 로켓트에 매달아
대기밖으로 내던져 버리라.
- 「제 3화」에서
가리워진 안개를 걷게 하라.
국경이며 탑이며 어용학의 울타리며
죽 가래 밀어 바다로 몰아 넣라.
하여 하늘을 흐르는 날새처럼
한 세상 한 바람 한 햇빛 속에
만 가지와 만 노래를 한가지로 흐르게 하라.
- 「제 5화」에서
이러한 울분어린 시구는 직설적인 표현이면서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대지와 인간애의 기본적 모티브를 형성, 유연성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생리적으로 모더니즘의 난해한 언어를 싫어했고,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