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진달래꽃'의 문학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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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집 '진달래꽃'의 문학사적 의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김소월의 생애
2. 시집 『진달래꽃』
1) 서지적 고찰
2) 시적 변천 과정
3. 작품세계
1) 한의 미학
2) 여성편향성
3) 민요시
4) 민족의식의 형상화

Ⅲ. 결론

본문내용

고 있다. 이와같이 소월은 대체로 3마디로 하나의 시행을 구성하는 전통 시가의 규범을 피하고3마디를 둘로 나누어서 2행으로 만들되 첫 마디를 독립시키는 경우, 마지막 마디를 독립시키는 경우, 3마디를 각가 독립시켜 3행으로 만드는 경우를 실험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통 시가를 답습하여 3마디를 그대로 하나의 시행으로 묶기도 하였다.
시 정서면에서 소월은 한과 여성 정조를 노래함으로써 민요에 접근하고 있다. 한은 민요에서 쉽게 발견되는 보편적 정서이고 여성정조 역시 민요의 주조음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향토적 소재와 민담의 차용도 민요시의 한 특질로 드러난다. 또한 그 지방의 전설이나 민담을 소재로 함으로써 향토성을 살려내기도 하였다. 「접동새」(곽산지방), 「팔베개 노래」(진주지방), 「춘향과 이도령」(남원지방), 「물마름」(신미도) 등이 그 좋은 예다. 이와 같이 지명이나 지방의 전설을 시화(詩化)하였다. 그리고 시어의 운용과 기법 면에서도 소월의 시는 민요의 것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여음(餘音)이나 동일음의 반복이 현저하게 나타나는데 “새소리 뻐꾹/뻐꾹 뻐꾹/여기서 뻐꾹 저기서 뻐꾹”(「자전거」), “산에도 가시나무 가시덤불은 덤불덤불 산마루로 뻗어 올랐오”(「가시나무」)같은 것이 그 예이다. 도한 관습적인 수사법이나 언어표현도 자주 동원되고 있다. “세월은 물과 같이 흘러가건만”(「님의 말씀」), “바다가 뽕나무밭 된다고”(「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같은 것이 그 예이다.
4) 민족의식의 형상화
김소월은 흔히 생각하기에 민족의식의 형상화, 즉 민족주의적 시들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김소월도 또한 일제 강점하의 식민지 시대를 살았으며, 그 시대의 지식인의 한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인들의 폭행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으며, 31운동의 여파로 인하여 모교인 오산 학교는 일경에 의하여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일본으로 유학 갔을 무렵에는 관동대지진이후 일본인들에게 조선인들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또한 그 역시도 단편 소설 「함박눈」을 발표한 다음에 일경들에게 주재소로 불려가 모욕을 받거나 써놓은 작품들을 검열의 명목으로 빼앗기기도 하였다. 식민지 상처로 인하여 큰 고통과 충격을 받았던 그이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민족의식의 형상화와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소월의 민요시 창작을 일종의 문화적 저항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요조 가락에 우리의 정서와 혼을 불어넣으면서 민족 공동체 의식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민요시의 창작으로 인하여 우회적이고 간접적으로 민족의식의 고취에 기여하였고, 결국에는 좀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민족의식의 표출을 위하여 민족주의 저항시들을 쓰게 되었다. 김소월의 민족주의 저항시 중 하나인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농기구
대일 땅이 있었다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나는 엿노라, 동무들과내가 가즈란히
벌의하로일을 다맛추고
夕陽에 마을로 도라오는을,
즐거히, 가운데.
그러나 집일흔 내몸이어,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보섭대일이 잇섯드면!
이처럼 도르랴. 아츰에점을손에
새라새롭은歎息을 어드면서.
東이랴, 南北이랴,
내몸은 가나니, 볼지어다,
希望의반임은, 별빗치아득임은.
물결 올나라, 기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엇지면 황송한이心情을! 날로 나날이 내압페는
자츳가느른길이 니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거름, 한거름. 보이는山비탈엔
온새벽 동무들 저저혼자……山耕을김매이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 대일 땅이 있었더면」
위에서도 말을 했던 것처럼 이 시가 쓰여 졌던 시기는 김소월이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난 후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후의 두 번째이다. 이 무렵 조선의 상황은 토지조사 사업을 명목으로 일제가 농민들의 땅을 빼앗는 등, 수탈이 심했을 때이다. 즉, 관동대지진 후 유학에서 돌아와 농민들이 땅을 빼앗기는 설움을 맛보는 것을 본 김소월이 일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쓴 시인 것이다. 시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면 일단 제목에서 나오는 보섭(보습)이라는 것은 농기구를 의미한다. 즉, 농민들이 땅을 빼앗긴 상황을 말하면서 우리에게 우리의 농기구 대일 땅이 있었다면 하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꿈에서 동무들과 벌판 가장자리의 일을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광경. 하지만 그네들은 집을 잃고, 땅을 잃어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을 갈구한다. 땅이 있다면 떠돌지 않아도 될 터인데, 뿔뿔이 흩어져 버린 친구들의 모습, 아침과 저녁 무렵에 새로운 탄식을 쉬면서 동으로 서로, 북으로 남으로 떠나가게 된다. 희망과 별빛은 물결로만 존재하게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그저 슬픔이 가득한 상황. 하지만 김소월은 여기서 시를 마무리 짓지 않는다. 내 앞에는 가느르지만 길이 이어져 있다. 산비탈이 거칠고 힘들어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며 동무들은 각자 산경. 즉, 산에 있는 경작지를 김매고 있다. 아무리 지금 당장의 앞날이 힘들어도 밝은 미래가 올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 나는 산경의 김을 매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보이는 것만 같다. 일제의 수탈아래서는 산비탈을 올라가는 거친 여정의 산경이라도 김을 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화자는 그러한 역경들을 견뎌내며 산경의 김을 맬 것임을 말하고 있다. 모진 핍박과 고통을 겪어도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상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김소월에게도 서정시뿐만 아니라 이러한 민족의식을 형상화한 시가 많다.
이 시 말고도 다른 시들도 있는데, 그 중에서 「밭고랑 위에서」라는 시를 보도록 하자.
우리두사람은
키놉피가득자란 보리밧, 밧골아우헤 안자서라.
일을畢하고 쉬이는동안의깃븜이어.
지금 두사람의니야기에는 치잼.
오오 빗나는太陽은 나렷조이며
새무리들도 즐겁은노래, 노래불너라.
오오 恩惠여, 사라잇는몸에는 넘치는恩惠여,
모든은근스럽음이 우리의맘속을 차지하여라.
世界의튼 어듸? 慈愛의하눌은 넓게도덥혓는데,
우리두사람은 일하며, 사라잇섯서,
하눌과太陽을 바라보아라, 날마다날마다도,
새라새롭은歡喜를 지어내며, 늘 갓튼우헤서.
다시한番 活氣잇게 웃고나서, 우리두사람은
바람에일니우는 보리밧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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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1.05
  • 저작시기2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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