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회) 학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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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사회) 학벌사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는 단지 노예적인 훈육의 장일뿐이다. 전인교육은 또한 미적취미 역시 도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창조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활동 중 가장 자유로운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은 억압적 방법이 아닌 자유로운 방법을 통해 인간성을 육체적 존재로부터 정신적 존재로 이끌어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예술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입시교육에서 왜곡된다. 아름다움은 자유로운 유희 속에서만 진정 향유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적인 시험과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서 예술은 자연적인 쾌락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성적과 시험의 스트레스만 있다. 예술은 향유가 아닌 외우는 공부가 되고 점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예술의 감상은 자유로운 해석을 통해서만 온전히 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학교에서는 고정된 해석을 학습하고, 정답을 고르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기존의 예술 교육은 학생들에게 상상력과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오히려 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시험과 점수로 인해서 억압하고 정해진 노선 즉 정해진 정답만을 맞추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생을 지극히 노예로 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학교의 파탄은 전인교육뿐만 아니라 개성적인 전문교육에도 있다. 학생들의 개성적 적성과 재능을 계발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하고 있다. 어떤 과목에 흥미를 갖게 되더라도 맹목적인 암기와 과도한 학습으로 그 흥미를 잃게 되고 매력이 좌절하게 된다. 공부에 흥미를 갖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학생들을 개성적 소질에 따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적에 따라 획일적으로 줄을 세운다. 또한 성적과 관계없는 재능은 모두 무가치한 재능으로 여겨진다. 즉 학교교육에서는 시험에서 일등 하는 것이 목표이고 그 결과 시험의 재능만 살아남고 참된 창조성은 외면당하고 억압된다. 그리고 이것은 개성적인 재능교육을 불가능하게 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적성과 흥미를 찾을 수 있도록 조건과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가질 수 없게 하고, 개성도 천재성도 살리지 못하고 범속한 시험선수들이나 만들어내는 교육이 한국의 교육이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입시경쟁이 있고 다시 그 바탕에는 학벌사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인교육도 개성적인 전문 교육도 못하는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의심마저 든다. 획일적인 시험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교육이 과연 이 사회에서 참된 교육인가를 묻고 싶다. 사회에 나가서나 미래에 획일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창의력이나 개성을 잃은 채 낙오자가 될 지도 모른다. 우리가 교육을 함은 사회에서 모두 낙오자가 되지 않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기관인데 오히려 우리교육은 이를 억압하고 낙오자로 만들고 있다.
이런 개성적 재능의 억압은 국가 국가경쟁력의 위기를 가져온다. 국가경쟁력이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소질과 능력을 가장 탁월하게 발휘할 수 있을 때 극대화된다. 교육은 인간의 재능을 계발하기 위해 각각의 재능을 계발하고 육성할 수 있는 합목적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반목적적이다. 교육이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계발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교육이 개성적 재능의 계발을 위해 걸림돌이 되는 일을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한국의 교육이다. 즉 타인과의 경쟁이 삶의 목적이 된 사회에서는 그 사회 경쟁력은 하락한다. 내적인 희열 때문에 어떤 일에 몰입하는 사회만이 진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학벌사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는 것만이 목적이 되어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즐겁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학벌로 인해 대학교육에도 위기가 오고 있다. 대학과 전문대학 사이의 구별은 뒤섞여 학교의 개성을 찾아볼 수 없고, 자기의 본래성에 벗어나 혼성성을 가진다. 단지 대학은 다양성을 잃고 서열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입시교육과 수능시험으로 인해 대학에서 학문할 수 있는 능력인 물음을 던지는 능력을 학생들에게서 빼앗았다. 단순히 서양 학자들을 따라 그들이 제기한 문제가 아니면 무엇이 물음을 던져야 할 문제인지 스스로 찾아내지 못한다. 학생들은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인해 급급히 서열에 따라 대학에 입학했을 뿐 전공에 따라 선택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기가 배우는 전공에 무관심하고, 지루하고 흥미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이렇게 들어온 대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대학서열에 조금이라도 더 상위학교로 진입하기 위해 반수와 편입시험을 선택하게 된다. 학문의 가치로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분위기와 대학의 서열로서 자신의 진로와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행위와 마찬가지라 본다. 이것은 학벌사회로 인해 자신의 개성과 흥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벌주의 때문에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을 학벌을 가지고 평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한 비판은 어렵게 되고, 그 결과 학문은 활력을 잃고 고착되는 것이다. 즉 학벌은 진정한 경쟁과 공정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학문의 발전이나 국가 경쟁력을 방해하는 사회악일 뿐이다. 학벌사회로 인해 사교육의 폐해도 생겨난다. 사교육은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말하는데 사교육비는 공교육의 부실이나 내실화와는 상관이 없다. 학벌사회에서 공교육은 모두를 위한 교육이지 나만을 위한 교육일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모두를 위한 공교육 밖에서 나만을 위한 사교육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학벌구조가 존속하는 한 사교육은 없어질 수 없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더 많은 사교육비를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되고 경쟁은 무한히 계속되고 사교육비의 지출도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사교육이 유발하는 효과는 사교육을 행하는 당사자에게서 멈추기 때문에 경제활동은 자폐적이다. 사교육비를 보다 생산적인 부분에 투자할 수 있다면 아마 이 사회는 보다 더 경쟁력이 생기고 경제가 더 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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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6.11.28
  • 저작시기2005.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78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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