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야 교육론-조기교육과 아이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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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야 교육론-조기교육과 아이들의 삶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문제의 제기

2. 누구의 잘못인가

3. 유아기의 재음미

4. 유아교육 사상가들이 본 아이들의 발달과업

5. 맺는 글

본문내용

고 있으며, 이런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3. 유아기의 재음미
아이들은 어떤 존재이며 어린 시절(childhood)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와다슈우지는 어린이는 불완전한 인간 상태이며 하루라도 빨리 자라야 하는 것으로, 또 사랑해야 할 존재로, 장래의 시민으로, 정치적 변혁의 도구로는 생각되어 왔지만 어린이가 그 자체로서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은 오랫동안 정식으로 문제시된 적이 없었다고 지적하고, 어린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향하고 경험하고 있는 의미에 비추어 이해하려는 ‘어린이의 인간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박선영 외, 1997). 인간의 삶은 의미의 체험과 의미실현의 과정으로서 영위되고 있는데 객관적이고 법칙적인 과학주의적 인간이해는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 어린이의 존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어린이가 어린이일 수 있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무엇이고, 어린이가 어린이로 존재하는 것을 왜 허용해야 하는 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어린이 자신이 자신과 세계에 대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사태가 어린이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파악해보려는 것이 어린이의 인간학의 관심사이다. 어린이가 무엇을 경험하고 현재 어떤 의미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이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린이의 인간학은 특정의 이론이나 방법으로 무자하여 어린이를 보는 것을 삼가고, 대신 어린이의 상황을 주의 깊게 응시하여 어린이의 경험을 기술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으로 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에 관한 모든 지식이나 방법을 어린이를 이해하는 하나의 수단 혹은 시점으로서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박선영 외, 1997). 어린이의 인간학에서 보면 어린이는 아직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어른의 적절한 도움이 이루어지면, 어린이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세계와 자기의 발견을 지향하여 끊임없이 탐색하고 스스로 무엇인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성장해 가는 존재이다. 어린이도 세상의 의미를 알려고 주변의 것에 관심을 보이며 아이 나름으로 세상을 해석하기 시작한다.(박선영 외, 1997)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그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자신도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을 통찰하여 그것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어린이를 일반화된 ‘대중’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늘 개별적 관심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자신에게도 이해되는 형태로 확인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이다. 아이들은 동화의 내용 속에서 자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기 존재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수란스키(Suransky)와 비슷하다. 수란스키에 의하면 지금까지 역사적 분석이나 여성 해방론자의 분석에서 어느 하나도 어린이 스스로가 느끼는 세상에 대한 이식과 의식을 탐구하려는 시도가 없었다(윤종희 외, 1992)는 것이다. 어린이는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거 또 자신을 의미창조가가 되ㅏ도록 도와주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을 형성해 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재구성하는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어린 시절이 갖는 경험과 의미를 파악하려면 자신이 어린이가 되어 아동기 문화의 본질과 근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도구적 조작주의 및 기계적 심리주의를 버릴 것이 요구된다.(윤종희 외, 1992) 수란스키는 아동기의 실종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 어린이가 자신의 존재 양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놀이와 작업을 수행해야 하며,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주어져야 하고, 반항할 수 있는 자유마저 허용되어야 하며, 더 이상 ‘길들이기 식’교육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아이들의 성장에는 꼭 필요한 ‘숙성의 시간’을 요한다. 재촉하고 어른의 시간표에 짜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수란스키는 아이가 자기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반항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윤종희 외, 1992) 복종하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잇을 때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세계와 의미 잇는 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삶의 양식인 아동의 생활세계는 탐색과 관련되어 있다. 아이들은 세상과 유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경험을 하면서 살아간다. 아이들의 놀이를 할 때 이 세상과 마음을 터놓고 주고받음으로서 자신과 세계에 대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틀에 박힌 것을 따라가는 것보다 아이들 스스로가 탐색하는 활동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수란스키는 브론펜브레너(Bronfenbrenner)의 주장에 동조하여 유아기의 탈 제도화를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윤종희 외, 1992). 하나는 정상적으로 발달하기 위해서 아이는 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조건 없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공공정책은 부모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도록 뒷받침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시설보다 그들이 안심하고 함께 있고 싶어하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유아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린이 존재의 권리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동 권리 협약’은 아동의 권리를 인정하고 지키고자 하는 우리 어른들의 약속이다. 아동의 권리를 온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아동은 결코 불완전한 존재도 아니며, 재화나 수혜의 보호 대상도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인식되어야 한다(김정래, 2002). 그렇다면 유아기는 왜 중요한가. 새삼스런 질문을 던져보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대답을 우리는 외면하면서 남에게만 우기듯 강요하지 않았는가. 어릴 때가 중요한 것은 어릴 때일수록 무엇이든지 잘 배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기를 놓치면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없게 되거나 전혀 엉뚱한 것을 배우게 되어 ㅓ리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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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6.12.08
  • 저작시기2006.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8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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