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이사야서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서
다니엘서및 12소선지서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서
다니엘서및 12소선지서
본문내용
2. 스키티아인들은 러시아의 남부 스텝 지방에 거하던 유목민이었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티아인들이 프삼메티쿠스1세의 치세 때 아스글론이란 블레셋의 도시와 이집트에 침략을 감행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침략은 633년에서 610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의 침략에 대해서 신빙성이 있기는 하지만, 헤로도투스의 언급은 아주 간략한 편이며, 해변가의 국제적인 간선도로를 따라 위치한 장소들에 국한되어 유다에게 주는 직접적인 영향은 거의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
3. 스바냐는 주변 국가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앗시리아 자체에 영향을 미칠 여호와의 날의 재앙에 대해서 예견하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 멸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럴 경우 대적은 바벨론이 된다.
3.문학형식과 구조
4.주요메시지
1. 여호와의 날은 선지서들에 자주 나오는 주제이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명예를 지키시고 열방들이나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날이다. 스바냐의 이 날은 역사속에서 기대되는 것이었으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이러한 역사적 행위는 또한 죄가 이 땅으로부터 제하여지는 종말론적인 심판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2.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운 기대와 병행해서 남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라는 주제가 또한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지금 당장 주어진 심판에 의해서 좌절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남은 자들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은 보호를 받을 것이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우주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는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시며, 자신의 거룩성과 그들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따라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신다.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항상 모든 열방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계신다.
신약으로의 접근
스바냐는 임박한 역사적인 재난과 하나님의 심판을 기대했다. 바울은 여호와의 날, 그리스도의 날에 대해서 자주 언급했으며,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나타나셔서 최종적으로 자신을 옹호하실 날을 고대하고 있다. 또한 요한은 용사이신 하나님이 심판을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오시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스바냐는 하나님 자신이 드릴 끔찍한 희생제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요한은 여호와의 날을 기술하면서 같은 이미지를 사용했다(계19:17~18).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스바냐는 모든 열방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배할 날을 고대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져 있는 교회가 볼 때에는 이것은 이미 현재에 실현된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 역시 이 세상이 진정한 왕의 다스림을 인정할 때가 올 것임을 알고 소망하면서 살고 있다.
학 개 서
1.저자
학개서는 구약에서 가장 짧은 책 중의 하나이며, 학개는 스가랴와 같은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 학개라는 이름은 “축제, 절기” 등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점은 그가 이스라엘의 절기들 중의 하나에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제롬의 학개서 주석에 따르면 이 선지자는 또한 동시대인인 스가랴와 마찬가지로 제사장이었다고 하지만, 증명할 길은 없다.
2.시대적 배경
바벨론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중 대부분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자신들이 포로생활중에 쌓아 올린 재정적인 안정과 위안을 선택했다. 귀환을 결정한 포로들은 약 오만명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이 귀환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폐허가된 땅들이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보다는 오히려 집을 지어야 했고, 농경지를 복구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 주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를 세우셨다. 이들은 백성들이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고 성전을 건설할 것을 촉구했다. 백성들은 이 두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에 순종해서 516년에 성전을 완성시켰다.
학개서는 어떤 선지서들 보다 더 연대에 대한 언급들의 밀도가 높다. 이 책에 나오는 네 개의 신탁들은 연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알려진 네 달 동안의 대중 사역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학개의 운명에 대해서 아무런 아는 것이 없다.
3.문학형식과 구조
학개서는 다리우스1세 제 2 년이라는 연대가 주어진 네 개의 신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선지서들과는 달리 학개서는 직접적으로 설파된 신탁들이 산문으로 된 네러티브 틀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하기 때문에 이 책은 마치 학개의 말들과 그 말들이 청중들에게 끼친 효과에 대한 보고서인양 보인다.
4.주요메시지
첫 번째 신탁(1:1~11)은 주전 520년 8월 29일에 주어졌다. 아마도 신년 축제를 위해서 선포되었을 것이다. 귀환자들이 집과 경제를 재건하는데 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성전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23일 후에 일이 시작되었다.
학개의 두 번째 신탁은 성전 작업이 시작된 지 한달이 못된 520년 10월 17일에 주어졌다. 아마도 이날은 장막절 절기의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성전 경내에 모였을 때 선포되었다. 학개는 다시 짓고있는 두 번째 성전의 영광이 첫 번째의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신탁은 520년 12월 18일 같은 날에 주어졌다. 그는 성전이 마술적인 부적이 아니라는 세 번째 신탁에서 선포한다. 성전을 짓는 것이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 네 번째 신탁에서 스룹바벨에게 주어졌다.
신약으로의 접근
두 번째 성전을 지었고, 스룹바벨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차 올 일들에 대한 임시적인 단계일 뿐이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게 될 때 비로소 가시적인 하나님의 임재가 제 2성전에 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의 도성에서 하나님과 사람들이 함께 거하며, 모든 눈물이 닦여질 바로 그 때를 향한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스룹바벨이 선택받은 것은 단지 다윗 계보의 통치가 시작된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3. 스바냐는 주변 국가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앗시리아 자체에 영향을 미칠 여호와의 날의 재앙에 대해서 예견하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 멸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럴 경우 대적은 바벨론이 된다.
3.문학형식과 구조
4.주요메시지
1. 여호와의 날은 선지서들에 자주 나오는 주제이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명예를 지키시고 열방들이나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날이다. 스바냐의 이 날은 역사속에서 기대되는 것이었으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이러한 역사적 행위는 또한 죄가 이 땅으로부터 제하여지는 종말론적인 심판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2.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운 기대와 병행해서 남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라는 주제가 또한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지금 당장 주어진 심판에 의해서 좌절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남은 자들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은 보호를 받을 것이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우주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는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시며, 자신의 거룩성과 그들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따라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신다.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항상 모든 열방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계신다.
신약으로의 접근
스바냐는 임박한 역사적인 재난과 하나님의 심판을 기대했다. 바울은 여호와의 날, 그리스도의 날에 대해서 자주 언급했으며,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나타나셔서 최종적으로 자신을 옹호하실 날을 고대하고 있다. 또한 요한은 용사이신 하나님이 심판을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오시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스바냐는 하나님 자신이 드릴 끔찍한 희생제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요한은 여호와의 날을 기술하면서 같은 이미지를 사용했다(계19:17~18).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스바냐는 모든 열방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배할 날을 고대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져 있는 교회가 볼 때에는 이것은 이미 현재에 실현된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 역시 이 세상이 진정한 왕의 다스림을 인정할 때가 올 것임을 알고 소망하면서 살고 있다.
학 개 서
1.저자
학개서는 구약에서 가장 짧은 책 중의 하나이며, 학개는 스가랴와 같은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 학개라는 이름은 “축제, 절기” 등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점은 그가 이스라엘의 절기들 중의 하나에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제롬의 학개서 주석에 따르면 이 선지자는 또한 동시대인인 스가랴와 마찬가지로 제사장이었다고 하지만, 증명할 길은 없다.
2.시대적 배경
바벨론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중 대부분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자신들이 포로생활중에 쌓아 올린 재정적인 안정과 위안을 선택했다. 귀환을 결정한 포로들은 약 오만명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이 귀환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폐허가된 땅들이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보다는 오히려 집을 지어야 했고, 농경지를 복구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 주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를 세우셨다. 이들은 백성들이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고 성전을 건설할 것을 촉구했다. 백성들은 이 두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에 순종해서 516년에 성전을 완성시켰다.
학개서는 어떤 선지서들 보다 더 연대에 대한 언급들의 밀도가 높다. 이 책에 나오는 네 개의 신탁들은 연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알려진 네 달 동안의 대중 사역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학개의 운명에 대해서 아무런 아는 것이 없다.
3.문학형식과 구조
학개서는 다리우스1세 제 2 년이라는 연대가 주어진 네 개의 신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선지서들과는 달리 학개서는 직접적으로 설파된 신탁들이 산문으로 된 네러티브 틀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하기 때문에 이 책은 마치 학개의 말들과 그 말들이 청중들에게 끼친 효과에 대한 보고서인양 보인다.
4.주요메시지
첫 번째 신탁(1:1~11)은 주전 520년 8월 29일에 주어졌다. 아마도 신년 축제를 위해서 선포되었을 것이다. 귀환자들이 집과 경제를 재건하는데 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성전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23일 후에 일이 시작되었다.
학개의 두 번째 신탁은 성전 작업이 시작된 지 한달이 못된 520년 10월 17일에 주어졌다. 아마도 이날은 장막절 절기의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성전 경내에 모였을 때 선포되었다. 학개는 다시 짓고있는 두 번째 성전의 영광이 첫 번째의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신탁은 520년 12월 18일 같은 날에 주어졌다. 그는 성전이 마술적인 부적이 아니라는 세 번째 신탁에서 선포한다. 성전을 짓는 것이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 네 번째 신탁에서 스룹바벨에게 주어졌다.
신약으로의 접근
두 번째 성전을 지었고, 스룹바벨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차 올 일들에 대한 임시적인 단계일 뿐이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게 될 때 비로소 가시적인 하나님의 임재가 제 2성전에 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의 도성에서 하나님과 사람들이 함께 거하며, 모든 눈물이 닦여질 바로 그 때를 향한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스룹바벨이 선택받은 것은 단지 다윗 계보의 통치가 시작된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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