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미-소 공동위원회의 성립배경
3.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 진행과정
(1) 예비회담
(2) 제 1차 미-소 공동위원회
(3) 제 5호 성명과 무기휴회
(4) 미-소 공동위원회 재개교섭
(5) 제 2차 미-소 공동위원회
4.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의 결과
5. 맺음말
2. 미-소 공동위원회의 성립배경
3.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 진행과정
(1) 예비회담
(2) 제 1차 미-소 공동위원회
(3) 제 5호 성명과 무기휴회
(4) 미-소 공동위원회 재개교섭
(5) 제 2차 미-소 공동위원회
4.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의 결과
5. 맺음말
본문내용
없었던 것이다. 단지 우호적인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미군의 경우는 일본점령기의 억압적인 제반기구와 인원을 온존시킨 채 이를 활용하여 민중의 광범위한 불만을 산 반면에, 소련군의 경우는 이에 대한 철저한 개혁을 통해 소외되었던 민중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구성된 미-소 공위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미국과 소련사이에 발생한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그리고 반탁진영과 찬탁진영사이에 발생한 견해 차이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미-소간의 이해관계의 대립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미국으로서는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반탁진영의 주도권을 장악한 정부를 수립하려 했으며, 소련으로서는 3상회의 결정의 충실한 지지라는 명분으로 찬탁진영이 지배하는 정부를 수립하려 했다. 그러나 미-소 공위 자체가 3상회의 결정에 따라 설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이 3상회의 결정의 정신에 입각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음을 상기할 때에,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객관적인 설득력을 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의사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3상회의 결정을 실현해야 할 마당에 이를 전면에서 부인하는 정치세력을 비호한다는 것은 3상회의결정의 정신에 합치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양국의 이해관계의 양상에서 볼 수 있듯이 미-소 양국은 한반도에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점에서 각자 자국의 이데올로기에 부합되지 않는 정치세력을 배제하려 했고, 이를 관철하려는 의도에서 미-소 공위에 임했기 때문에 미, 소 공위는 결국 결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 맺음말
해방정국에서 미-소 공동위원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한반도를 분할점령하고 있던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한반도 안에서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마련했던 공식기구가 미-소 공동위원회였고, 이를 위해 두 나라는 2년에 가까운 협상을 벌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 한민족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한반도를 절반씩 나눈 이들 두 나라는 전후문제의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자, 한반도로 눈을 돌려 이미 점령하고 있던 반쪽 지역 이외도 상대방이 차지하고 있던 나머지 반쪽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했다. 분할의 장본인들이 그 분할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구실로 미-소 공동위원회를 구성했으나, 결과적으로 볼 때에 이는 분할을 더욱 고정시킨 데에 지나지 않았다. 62차례나 열렸던 이 회의에서 두 나라는 외면적으로 분단이라고 하는 비정상적인 상태의 교정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내면적으로는 자국의 이념과 이익에 부합되는 국내의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상대방 세력을 배제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결국 결렬되고 만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과정과 결과는 협상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늘날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먼저 우리는, 협상에서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동료와 적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 기준이 된다. 미국과 소련은 분명한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존재했고, 당시 세계의 흐름은 이 두 축으로 인해 냉전시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처럼 이데올로기 차의 영향은 미소공동위원회의 협상진행과정에서 보여준 양국의 끊임없는 불신처럼, 신뢰성 문제를 가져오며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더욱 복잡해짐은 물론 협상 당사자로 하여금 견고한 입장을 취하도록 만든다.
둘째, 우리는 미-소공위의 협상결렬을 통해 협상의 규칙이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협상의 규칙에는 여러 개가 있으나 미-소공위에서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바로 ‘유연성’이다.
협상에 있어서 유연성을 가지는 것은 협상을 탄력적으로 진행시키는 데에 필수적 요건이다.
유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입장만을 완강하게 표현하지 말고 적어도 중간정도의 수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미-소 양국은 제의와 대응제의를 하는 과정에서 조차도 결국 자신의 입장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제안에 자신의 입장이 지켜지는 범위에서만 숙고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여 협상을 더욱 교착상태에 빠지게 하였다. 이는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어 내는 데에 치명적이다.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은 철저하게 분배적 협상의 유형을 고수하고 있다.
양국은 협상에서 자국은 이기고 상대방은 져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끊임없이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이익을 최대한으로 많이 내는 것을 추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국을 중심으로 한 협상진행을 추구하게 되므로 입장협상 전략을 고수하게 되며 결국 자신의 입장에만 집착하는 모든 전략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협상은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게 되고 양국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과정과 결과를 시대적 요인이 맞물려 나타난 양상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오늘날의 한-미 FTA라든지, 북-미 간의 핵문제 등에서도 한 치의 양보 없는 협상의 탈을 쓴 전쟁의 면모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협상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닌 양 다자간의 모두의 승리로 보아야 비로소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입으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의식은 아직도 ‘우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아이러니함을 극복하고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라는 개념은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지 않게 하며, 쌍방 모두의 이익을 찾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분배적 협상에서 통합적 협상으로 협상의 유형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열릴 수많은 협상에서 일반적으로 내 입장만을 고려하는 경성협상 전략을 지양하고 쟁점에 초점을 맞추어 객관적이고 이슈 중심적이라 하는 것을 포괄해야 한다.
이제는, 미-소 양국으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의 냉전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협상은 나를, 가족을, 사회를, 더 나아가 세계를 ‘우리’로 만들어 나가는 대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과 상대의 이익을 함께 획득할 수 있는 협상은 결국,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자 시대적 요청인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구성된 미-소 공위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미국과 소련사이에 발생한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그리고 반탁진영과 찬탁진영사이에 발생한 견해 차이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미-소간의 이해관계의 대립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미국으로서는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반탁진영의 주도권을 장악한 정부를 수립하려 했으며, 소련으로서는 3상회의 결정의 충실한 지지라는 명분으로 찬탁진영이 지배하는 정부를 수립하려 했다. 그러나 미-소 공위 자체가 3상회의 결정에 따라 설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이 3상회의 결정의 정신에 입각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음을 상기할 때에,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객관적인 설득력을 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의사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3상회의 결정을 실현해야 할 마당에 이를 전면에서 부인하는 정치세력을 비호한다는 것은 3상회의결정의 정신에 합치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양국의 이해관계의 양상에서 볼 수 있듯이 미-소 양국은 한반도에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점에서 각자 자국의 이데올로기에 부합되지 않는 정치세력을 배제하려 했고, 이를 관철하려는 의도에서 미-소 공위에 임했기 때문에 미, 소 공위는 결국 결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 맺음말
해방정국에서 미-소 공동위원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한반도를 분할점령하고 있던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한반도 안에서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마련했던 공식기구가 미-소 공동위원회였고, 이를 위해 두 나라는 2년에 가까운 협상을 벌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 한민족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한반도를 절반씩 나눈 이들 두 나라는 전후문제의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자, 한반도로 눈을 돌려 이미 점령하고 있던 반쪽 지역 이외도 상대방이 차지하고 있던 나머지 반쪽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했다. 분할의 장본인들이 그 분할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구실로 미-소 공동위원회를 구성했으나, 결과적으로 볼 때에 이는 분할을 더욱 고정시킨 데에 지나지 않았다. 62차례나 열렸던 이 회의에서 두 나라는 외면적으로 분단이라고 하는 비정상적인 상태의 교정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내면적으로는 자국의 이념과 이익에 부합되는 국내의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상대방 세력을 배제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결국 결렬되고 만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과정과 결과는 협상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늘날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먼저 우리는, 협상에서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동료와 적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 기준이 된다. 미국과 소련은 분명한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존재했고, 당시 세계의 흐름은 이 두 축으로 인해 냉전시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처럼 이데올로기 차의 영향은 미소공동위원회의 협상진행과정에서 보여준 양국의 끊임없는 불신처럼, 신뢰성 문제를 가져오며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더욱 복잡해짐은 물론 협상 당사자로 하여금 견고한 입장을 취하도록 만든다.
둘째, 우리는 미-소공위의 협상결렬을 통해 협상의 규칙이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협상의 규칙에는 여러 개가 있으나 미-소공위에서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바로 ‘유연성’이다.
협상에 있어서 유연성을 가지는 것은 협상을 탄력적으로 진행시키는 데에 필수적 요건이다.
유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입장만을 완강하게 표현하지 말고 적어도 중간정도의 수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미-소 양국은 제의와 대응제의를 하는 과정에서 조차도 결국 자신의 입장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제안에 자신의 입장이 지켜지는 범위에서만 숙고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여 협상을 더욱 교착상태에 빠지게 하였다. 이는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어 내는 데에 치명적이다.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은 철저하게 분배적 협상의 유형을 고수하고 있다.
양국은 협상에서 자국은 이기고 상대방은 져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끊임없이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이익을 최대한으로 많이 내는 것을 추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국을 중심으로 한 협상진행을 추구하게 되므로 입장협상 전략을 고수하게 되며 결국 자신의 입장에만 집착하는 모든 전략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협상은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게 되고 양국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과정과 결과를 시대적 요인이 맞물려 나타난 양상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오늘날의 한-미 FTA라든지, 북-미 간의 핵문제 등에서도 한 치의 양보 없는 협상의 탈을 쓴 전쟁의 면모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협상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닌 양 다자간의 모두의 승리로 보아야 비로소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입으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의식은 아직도 ‘우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아이러니함을 극복하고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라는 개념은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지 않게 하며, 쌍방 모두의 이익을 찾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분배적 협상에서 통합적 협상으로 협상의 유형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열릴 수많은 협상에서 일반적으로 내 입장만을 고려하는 경성협상 전략을 지양하고 쟁점에 초점을 맞추어 객관적이고 이슈 중심적이라 하는 것을 포괄해야 한다.
이제는, 미-소 양국으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의 냉전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협상은 나를, 가족을, 사회를, 더 나아가 세계를 ‘우리’로 만들어 나가는 대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과 상대의 이익을 함께 획득할 수 있는 협상은 결국,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자 시대적 요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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