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와 고대(古代)의 사람들이 남긴 보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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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선사(先史)와 고대(古代)의 사람들이 남긴 보물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패총이란
1) 패총의 개념
2) 패총을 연구하는 이유

3. 신석기시대의 패총
1) 통영 연대도유적
2) 하동 목도패총
4. 원삼국시대의 패총
1) 사천 늑도유적
2) 해남 군곡리패총

5. 맺음말

6. 세미나후기

본문내용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패총은 내만과 갯벌이 형성되어 있는 서해안과 남해안의 바닷가와 섬에 많이 분포한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동해안은 산맥이 해안까지 발달해 있고 절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다. 그로인해 두만강 하구와 중부의 만입한 곳을 제외하면 갯벌이 발달한 곳이 없어 패류가 서식하기에 부족하다. 서해안은 제일 깊은 곳이 100m전후로 하여 갯벌이 발달하여 굴, 바지락, 피뿔고동 등의 패류가 서식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대부분의 섬에서 패총이 많이 존재한다. 남해안은 서해안보다 비교적 깊고 해안선이 복작하여 많은 섬들이 있어 다도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적당한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만입부에는 갯벌이 발달하여 굴, 꼬막, 백합 등의 내만성패류와 전복, 소라 등의 외양성패류가 서식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패총은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에 전국적으로 형성되었고,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는 서해안 중부지방과 남해안지방에 한정되어 형성되었다. 이후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에 전국적으로 패총이 형성되지만, 남해안 지방의 패총이 대규모이며, 그 수도 많아 남해안이 중심지로 파악된다.
2) 패총을 연구하는 이유
앞서 말한바와 같이 패총에는 조개껍질을 포함한 동물과 물고기의 뼈, 당시에 사용했던 도구 등이 같이 버려져 있기 때문에 당시의 생활과 문화ㆍ자연환경을 복원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패총은 사람들이 일정한 장소에 오랜 시간 머무는 동안 패류를 먹고 버린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패총의 근처에는 당시 사람들이 머물렀던 장소나 취락이 있을 것이다. 그로인해 당시 사람들의 취락의 구조나 임시 거주지의 형태나 구조 등을 알아 낼 수 있으며, 인골의 경우에는 과거 사람들의 지역 차와 이들의 생활습관, 각종 질병과 건강상태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패총에서 조개껍질이나 물고기ㆍ동물의 뼈 등으로 당시 식생활의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당시의 식료의 종류, 그것을 얻기 위한 방법, 당시 사람들의 영양상태 등 당시 사람들의 기술적, 경제적 측면을 아는데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게다가 뼈나 사슴의 뿔, 동물의 이빨, 조개껍질에 의한 각종 어구(漁具)나 장신구도 출토되고 있어 그것의 제작기법이나 사용기술, 도구의 지역성 등의 연구를 할 수 있으며, 패총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패총이 형성되는 연대를 측정하는데 커다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게 되면, 패총이 형성되었던 당시의 자연환경을 말해주고 있어 자연환경의 복원이나 당시 사람들이 그러한 자연환경을 어떻게 이용하고 개발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패총에 대한 연구성을 좀 더 인지하여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3.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의 패총(貝塚)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패총은 두만강과 웅기만 그리고 나진만 연안지역의 동북해안지방(東北海岸地方), 남해안(南海岸)과 남해도서지방(南海島嶼地方), 중부서해도서지방(中部西海島嶼地方)에 밀집된 상태로 분포되어 있는데 이지역들이 인간이 거주하기에 좋은 인문(人文)·자연적(自然的) 환경조건을 갖추고 있는 외에도 큰 강의 하류를 끼고 입강지역(入江地域)이 깊고 내만(內灣)이 잘 형성되어 있어 조개류가 서식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해도서지방은 간만(干滿)의 차(差)가 크고 석호(潟湖)가 넓게 형성되어 있으며 내만이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어 앞으로도 더 많은 패총이 발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의 패총은 대부분이 소규모로 단기간에 형성된 것으로 판된되지만. 궁산리, 동삼동, 상노대도(上老大島), 연대도(煙臺島), 범방(凡方) 등의 장기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대규모의 패총도 존재한다.
1)통영 연대도(統營 烟臺島)유적
① 조사배경
통영시내의 여러 섬들에는 선사시대의 유적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주로 신석기의 패총 유적이며, 상노대도의 상리(上里)·산등(山登)패총, 욕지도패총 등이 이미 조사 보고되어 있으며, 이들 유적외에도 인근의 여러 섬들에 많은 패각 포함층 유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유적은 다른 고고유적과는 달리 도굴에 의한 파괴는 거의 없는 반면, 태풍·파도 등에 의한 wkdurs적 피해와 더불어 어패류배양장 건설, 사료용 패각의 채취, 경작, 민가건축 등에 의한 인위적 피해는 극히 심한 편이다. 연대도 유적은 1980년대 초 처음 학계에 알려진 이래 1987년 태풍 셀마호에 의해 다다에 접해 있던 밭이 까여나가 단애부(斷崖部)를 이루면서 크게 노출되었다. 태풍이 지나간 후 이곳을 답사한 동아대학교 심봉근 교수가 패총 유적의 파괴상태를 진주박물관에 통보해 주었고, 진주박물관에서는 이듬해인 1988년 봄 정밀지표조사를 거쳐 연차적 발굴조사 계획을 수립하여 조사에 들어갔다.
국립진주박물관에 의해 1988년, 1989년, 1990년, 1991~1992년의 4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② 유적의 위치와 환경
연대도 유적은 한려해상국립공원내의 경남(慶南) 통영시(統營市) 산양읍(山陽邑) 연곡리(煙谷里) 연대도(煙臺島)에 위치해 있다. 연대 혹은 연곡이라는 지명은 이 섬의 주봉에 봉수(烽燧)가 있었던 데서 연유하는 것이며, 지금도 산정상에 흔적에 남아있다.
섬의 북으로는 학림도(鶴林島), 저도(楮島)가 인접하여 있고 약간 떨어져 미륵도(彌勒盜)가 있으며 직선거리로 약 11km가량에 통영시가 있다. 동으로는 오곡도(烏谷島), 용초도(龍草島)가, 서로는 바로 붙어 만지도(晩地島)가 있으며, 남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연화도(蓮花島), 상·하 노대도(老大島), 욕지도(欲知島), 두미도(頭尾島)가 있다.
섬의 주봉(主峰)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삼각주상의 대지가 현재 유적이 위치하는 곳이며 경작이나 주거에 용이한 곳이기도 하다. 섬의 주봉은 해발 220.3m로서 섬의 크기에 비해 높고 식수 또한 풍족한 편으로, 이런 조건이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 섬은 인근의 다른 섬들보다 연안의 섬뿌리가 얕고 평평하게 잘 발달되어 있으며, 양식업 이외에도 천연의 전복, 해삼, 각종 어패류가 번성하고 있어 선사시대 이래 인간의 거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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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1.29
  • 저작시기2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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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9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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