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전문가들의 모임이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며 또 이들이 얼마나 청소년 상담의 발전을 위해서 활동하는가 하는 것이 청소년 상담 발전의 기준이 된다.
이상과 같은 다양한 기준에 의해서 청소년 상담의 발전과정을 고찰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여기서는 제한된 범위내에서 다루고자 한다.
II. 상담의 역사적 배경
생활지도나 상담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같이 시작되고 발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전문적인 생활지도나 상담은 1908년, 미국에서 Frank Parsons가 BBoston시에 직업보도국(Vocation Bureau)을 설치해서 청소년들의 직업지도를 실시하고 직업상담을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을 훈련시킨데 기인하고 있다. Parsons는 “Choosing a Vocation”이라는 책을 1909년에 출판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상담자의 역할과 직업상담에 활용할 수 있는 기법을 다루고 있다. parsons는 고등학교 졸업자를 적재적소에 취직시키고, 청소년 범죄를 줄여서 청소년을 선도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또한 직업적 적응을 돕기 위해서는 첫째로 개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 둘째로 직업에 대한 이해, 셋째로 양자와 합리적 관련성을 찾도록 하는 추리력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직업지도운동은 Jesse Davis, Eli Weaver등의 노력으로 곧 미국 전역에 확산되었다. 이러한 직업지도운동 이외에도 유럽의 실험심리학, 정신장애에 대한 혁신적 치료방법, 정신 건강운동, 심리검사의 발달, 인본주의 심리학(Belkin, 1984), 또 연방정보의 법령(George & Cristiani,1981)등이 상담과 생활지도의 발달에 기여했다.
미국의 생활지도와 상담은 1908년부터 1958년까지의 초기 단계를 거쳐, 생활지도와 상담의 급성장기라고 하는 1960년대를 맞게 되었는데, 이 때는 특히 사회의 몰개성적인 사회적 충조에 대항하여 개인의 정레(identity)를 찾으려는 노력이 대두되었고 1957년에 소련에서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발사에 자극을 받아서 극방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을 제정하여 과학 영재들을 조기에 발견하게 함으로써 학교의 생활지도 활동을 강화하게 되었다. 이 때에 많은 대중즐이 감수성훈련집단(sensitivity group), T집단, 만남의 지단(encounter group) 등의 집단활동으 ㄹ통해서 자신을 발견하려고 시도하였다. 1976년도에 접어들면서 각 주마다 상담자의 자격인정과 면허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각 대학의 카운슬러 양성과정에 대한 자격기준도 강화하였다. 특히 진로교육과 진로지도 및 상담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생활지도와 상담에 대한 책무성(accountability)에 관심을 가지고 상담의 효과와 카운슬러의 자질등을 평가하는데 치중하면서 내실을 다지고 있다고 하겠다.( .. & Stone 1981)
미국에서도 상담의 시작부터가 바로 청소년지도와 상담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III. 한국 상담의 발전과정
미국의 상담과 같이 한국의 상담도 생활지도 활동의 일환으로, 또 생활지도와 상담이 별 구분없이 취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특히 상담발전의 초기단게에서는 생활지도와 상담을 따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여기에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활지도와 상담을 같이 다루기로 한다.
우리 나라의 생활지도 활동은 해방과 더불어 도입된 민주적인 교육사상에서 비롯하여 아동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면서 서서히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김정한,1982;황응연,윤희준,1983). 물론 오랜 세월을 두고 서당이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소학, 명심보감, 논어, 맹자 등을 가르치면서 지식 이외에도 현대적 의미의 생활지도는 아닐지라도 훈육이란 입장에서 생활지도가 이루어져 왔다 볼수 있다(김충기,1993). 일제시대에도 각급 학교에 훈육담당 부서가 있어서 학생들의 훈육문제를 담당해 왔고, 대도시에는 직업소개소가 설치되어서 일반인들의 직업알선을 해왔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서 운영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 나라의 생활지도는 해방이후 놀라운 발전을 가져온 반면에 많은 혼란을 빚어내기도 하였다. 즉 1950년대 초기의 심리측정의 도입을 비롯해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학생지도에 관한 많은 이론들이 소개되고, 많은 저서와 연구물들이 소개되어 생활지도의 발전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심리검사의 실시와 생활지도 및 카운슬링의 혼동, 생활지도와 훈육의 혼동, 아동중심교육과 비지시적 상담의 묘한 영합, 그리고 카운슬링 이론의 연구와 학교 현장에서 카운슬링 실제간에 거리가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바 있다(황응연.윤희준,1983).
박성수, 이재창, 김충기(1985) 등은 학국카운슬링의 발달과정을 우리 나라에 카운슬링이 도입되기 이전의 훈육지도, 1957년(한국카운슬링 30년사에 의하면 1958년)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가 40여명의 교사에게 상담교사 교육을 실시한 후에 이루어진 개혁으로 인해서 훈육실이 생활지도실로 변화하기 시작한 카운슬링의 태동, 1982년 서울대학교에 학생지도연구소가 설치된 이래 대학에서의 학생지도연구소가 법제화되어 대학의 생활지도와 상담이 강화된 점, 중고교에 교도교사 제도가 정착되면서 학교에 생활제도가 보편화된 점, 학교에서 시작된 생활 지도가 다른 사회기관에 의해서도 보급되어, 아동상담소, 부녀상담소, 가정상담소, 법륙상담소, 청소년상담소 등이 공립과 사립으로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는 점, 특히 197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유행하게된 전화상담의 보편화, 그리고 한국카운슬러협회의 발전 등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상담사는 크게 1) 도입과 혼란의 시기, 2) 개념의 모색기, 3) 전문성 확립에로의 노력기 등으로 구분 하고 있는데(황응연, 윤희준,1983), 최근에 이형득과 설기문(1993)은 발달상담의 도입기를 더 추가하고 있다. 한편 최광만(1993)은 학교교육에서 카운스링이 차지하는 위치를, 첫째, 학교교육이 교과교육과 도의교육의 두 부분으로 대별되는 유형, 둘
이상과 같은 다양한 기준에 의해서 청소년 상담의 발전과정을 고찰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여기서는 제한된 범위내에서 다루고자 한다.
II. 상담의 역사적 배경
생활지도나 상담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같이 시작되고 발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전문적인 생활지도나 상담은 1908년, 미국에서 Frank Parsons가 BBoston시에 직업보도국(Vocation Bureau)을 설치해서 청소년들의 직업지도를 실시하고 직업상담을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을 훈련시킨데 기인하고 있다. Parsons는 “Choosing a Vocation”이라는 책을 1909년에 출판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상담자의 역할과 직업상담에 활용할 수 있는 기법을 다루고 있다. parsons는 고등학교 졸업자를 적재적소에 취직시키고, 청소년 범죄를 줄여서 청소년을 선도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또한 직업적 적응을 돕기 위해서는 첫째로 개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 둘째로 직업에 대한 이해, 셋째로 양자와 합리적 관련성을 찾도록 하는 추리력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직업지도운동은 Jesse Davis, Eli Weaver등의 노력으로 곧 미국 전역에 확산되었다. 이러한 직업지도운동 이외에도 유럽의 실험심리학, 정신장애에 대한 혁신적 치료방법, 정신 건강운동, 심리검사의 발달, 인본주의 심리학(Belkin, 1984), 또 연방정보의 법령(George & Cristiani,1981)등이 상담과 생활지도의 발달에 기여했다.
미국의 생활지도와 상담은 1908년부터 1958년까지의 초기 단계를 거쳐, 생활지도와 상담의 급성장기라고 하는 1960년대를 맞게 되었는데, 이 때는 특히 사회의 몰개성적인 사회적 충조에 대항하여 개인의 정레(identity)를 찾으려는 노력이 대두되었고 1957년에 소련에서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발사에 자극을 받아서 극방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을 제정하여 과학 영재들을 조기에 발견하게 함으로써 학교의 생활지도 활동을 강화하게 되었다. 이 때에 많은 대중즐이 감수성훈련집단(sensitivity group), T집단, 만남의 지단(encounter group) 등의 집단활동으 ㄹ통해서 자신을 발견하려고 시도하였다. 1976년도에 접어들면서 각 주마다 상담자의 자격인정과 면허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각 대학의 카운슬러 양성과정에 대한 자격기준도 강화하였다. 특히 진로교육과 진로지도 및 상담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생활지도와 상담에 대한 책무성(accountability)에 관심을 가지고 상담의 효과와 카운슬러의 자질등을 평가하는데 치중하면서 내실을 다지고 있다고 하겠다.( .. & Stone 1981)
미국에서도 상담의 시작부터가 바로 청소년지도와 상담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III. 한국 상담의 발전과정
미국의 상담과 같이 한국의 상담도 생활지도 활동의 일환으로, 또 생활지도와 상담이 별 구분없이 취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특히 상담발전의 초기단게에서는 생활지도와 상담을 따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여기에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활지도와 상담을 같이 다루기로 한다.
우리 나라의 생활지도 활동은 해방과 더불어 도입된 민주적인 교육사상에서 비롯하여 아동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면서 서서히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김정한,1982;황응연,윤희준,1983). 물론 오랜 세월을 두고 서당이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소학, 명심보감, 논어, 맹자 등을 가르치면서 지식 이외에도 현대적 의미의 생활지도는 아닐지라도 훈육이란 입장에서 생활지도가 이루어져 왔다 볼수 있다(김충기,1993). 일제시대에도 각급 학교에 훈육담당 부서가 있어서 학생들의 훈육문제를 담당해 왔고, 대도시에는 직업소개소가 설치되어서 일반인들의 직업알선을 해왔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서 운영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 나라의 생활지도는 해방이후 놀라운 발전을 가져온 반면에 많은 혼란을 빚어내기도 하였다. 즉 1950년대 초기의 심리측정의 도입을 비롯해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학생지도에 관한 많은 이론들이 소개되고, 많은 저서와 연구물들이 소개되어 생활지도의 발전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심리검사의 실시와 생활지도 및 카운슬링의 혼동, 생활지도와 훈육의 혼동, 아동중심교육과 비지시적 상담의 묘한 영합, 그리고 카운슬링 이론의 연구와 학교 현장에서 카운슬링 실제간에 거리가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바 있다(황응연.윤희준,1983).
박성수, 이재창, 김충기(1985) 등은 학국카운슬링의 발달과정을 우리 나라에 카운슬링이 도입되기 이전의 훈육지도, 1957년(한국카운슬링 30년사에 의하면 1958년)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가 40여명의 교사에게 상담교사 교육을 실시한 후에 이루어진 개혁으로 인해서 훈육실이 생활지도실로 변화하기 시작한 카운슬링의 태동, 1982년 서울대학교에 학생지도연구소가 설치된 이래 대학에서의 학생지도연구소가 법제화되어 대학의 생활지도와 상담이 강화된 점, 중고교에 교도교사 제도가 정착되면서 학교에 생활제도가 보편화된 점, 학교에서 시작된 생활 지도가 다른 사회기관에 의해서도 보급되어, 아동상담소, 부녀상담소, 가정상담소, 법륙상담소, 청소년상담소 등이 공립과 사립으로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는 점, 특히 197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유행하게된 전화상담의 보편화, 그리고 한국카운슬러협회의 발전 등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상담사는 크게 1) 도입과 혼란의 시기, 2) 개념의 모색기, 3) 전문성 확립에로의 노력기 등으로 구분 하고 있는데(황응연, 윤희준,1983), 최근에 이형득과 설기문(1993)은 발달상담의 도입기를 더 추가하고 있다. 한편 최광만(1993)은 학교교육에서 카운스링이 차지하는 위치를, 첫째, 학교교육이 교과교육과 도의교육의 두 부분으로 대별되는 유형,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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