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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와 4세기에는 오르페우스 신자들이 대중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되지만, 플라톤이나 에우리피데스는 이들을 경시했다. 그러나 그들이 엉터리라는 비난을 받으며 공격당했다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기원전 5-4세기의 ‘오르페우스 박판’에 따르면오르페우스 신앙은 아티카로부터 시칠리아로, 남부 이탈리아에서 로마로 전파되었다. 이 박판이 오르페우스 파와 그 신앙에 대해 그들이 직접 써서 전승한 유일한 문헌이다. 기원후 5-6세기의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오르페우스 파의 천지 창조론이 ‘신학’을 내포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플라톤의 사상과 체계적인 관계를 맺게 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이로써 오르페우스 파의 천지 창조론이 오늘날까지 전승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리스 신화’속에 깊숙이 내재된 관념적인 맥락에 그들이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오르페우스 신앙의 천지 창조 계보는 헤시오도스의 계보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대부분 천 년이 넘는 동안 2차 자료에 의존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헤시오도스의 단계적이로 선형적인 계보에 비해, 오르페우스 신앙의 계보는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등 펼침과 되감김의 움직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고, 계보 자체의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천지 창조 문헌은, 아리스토파네스가 기원전 414년에 쓴 희극 『새』의 693-702행과 에우리피데스가 기원전 405년경에 상연한 『휩시퓔레』의 편린, 그리고 테살로니카 서북쪽의 데르베니에서 발굴된 기원전 4세기 후반의 파피루스이다. 이 세 가지 계보들은 서로 다르지만 천지 창조의 시초의 주역으로
오르페우스 신앙의 천지 창조 계보는 헤시오도스의 계보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대부분 천 년이 넘는 동안 2차 자료에 의존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헤시오도스의 단계적이로 선형적인 계보에 비해, 오르페우스 신앙의 계보는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등 펼침과 되감김의 움직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고, 계보 자체의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천지 창조 문헌은, 아리스토파네스가 기원전 414년에 쓴 희극 『새』의 693-702행과 에우리피데스가 기원전 405년경에 상연한 『휩시퓔레』의 편린, 그리고 테살로니카 서북쪽의 데르베니에서 발굴된 기원전 4세기 후반의 파피루스이다. 이 세 가지 계보들은 서로 다르지만 천지 창조의 시초의 주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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