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그리스 로마 시대
중세기독교 시대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고전주의 시대
낭만주의
후기 낭만 시대
전위음악과 현대음악
중세기독교 시대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고전주의 시대
낭만주의
후기 낭만 시대
전위음악과 현대음악
본문내용
가수들이 누리는 그것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하늘아래 영원한 것이 없듯이, 로마의 영광도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4-5세기 동안 로마제국은 내부분열과 전쟁이라는 말기적 현상을 맞고 있었다. 이 시기에 철학자 플로티노스가 출현한다. 전쟁과 질병 그리고 노예제도의 붕괴 등으로 황폐해진 로마제국 말기를 살았던 그는 흔히 신 플라톤주의자라고 불려진다. 플로티노스는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되는 미는 저급한 것이며, 인간은 육체적인 것에서 해방되면 될수록 아름다워진다고 역설하였다. 이 시대의 철학자들이 플라톤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민중들은 다시 마술과 미신이 지배하는 신비의 세계로 돌아갔다. 환상, 유령, 마술이 유행하던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상황은 역시 음악에도 영향을 끼쳐 초기의 마술적인 영역으로 음악을 돌려놓았다. 또 다시 음악은 신비로운 환상과 엑스터시를 일으키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각종의 마술적인 의식에 음악이 사용되었다.
고대의 음악사상은 신호와 도그마에서부터 출발해 과학적 진리와 윤리적 규범의 시대를 거쳐 다시 신비주의의 세계로 돌아왔다. 현실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을 거부하고 내세적인 것을 추구했던 이 세대의 말기적 상황은 기독교 정신으로 대표되는 중세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중세기독교 시대
- 교회음악과 세속 음악의 갈등
중세는 기독교의 시대였다.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갖가지 모영의 조각으로 장식된 성당, 마치 하늘나라까지 닿을 듯 까마득하게 높이 솟은 첨탑, 그리고 그 속에서 경건한 목소리로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는 성가대가 이 시대를 대변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교시절과 완벽한 단절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예배음악과 같이 당장 실용적인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경우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중세인들은 과거의 유산에서 많은 것을 빌려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교회음악이 점점 발달해 감에 따라서 학자들이 여기에 철학적인 정당성을 부여할 필요를 느꼈다. 음악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학자 중에서 초대 기독교의 음악관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관념론자였다. 특히 음악 속에 내재해 있는 수의 법칙에 심취했다는 점에서 그는 중세의 피다고라스였다. 그는 음악을 감각의 대상이 아닌 학문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중세의 리듬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숫자 ‘3’은 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떤 학자는 4음음계의 4음을 예수의 생애에 비유하기도 했다. ‘4’는 또 4계절이나 동서남북, 그리고 천사, 악마, 동물, 식물 등의 네가지 존재의 분류법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이 자연과 우주 법칙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했다. ‘4’의 배수은 ‘8’은 8개의 교회선법에 상응한다. 이와 같이 아우구스티누스의 후계자들은 수라고 하는 극도로 상징적인 비유로 음악을 설명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의 5세기부터 9세기까지를 흔히 서유럽 음악사의 공백기라고 부른다. 이때 서유럽은 민족 대이동으로 내부분열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9세기 초 서로마 제국의 황제 찰스 대제 시대에 이르러 잠시나마 서유럽은 약6백년간 계속된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중세 유럽 문화는 새로운 활기를 찾는다. 중세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 시작한 이때부터 약 13세기까지의 시기를 예술사에서는 보통 ‘로마네스크 시대’라고 부른다. 이는 ‘고딕’이나 ‘바로크’라는 말과 같이 미술사에서 빌려온 말로서, 음악에서 이 로마네스크 양식과 견줄 수 있는 양식의 음악이 그레고리안 성가이다.
세속음악이 점점 발달해 갈수록 교회는 신화와 점점 발달해 갈수록 교회는 신화와 전설 그리고 신의 은총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음악을 신비화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에 가장 적합한 양식이 바로 그레고리안 성가였다. 이 성가는 단 하나의 성부로 노래되며, 노래를 받쳐 주는 반주조차 없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예술적 감동과는 거리가 먼 ‘유형화된 형식주의와 객관주의’ 가 바로 그레고리안 성가의 특징인 것이다. 이렇게 감각적인 것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종교적 권위를 높이려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균형과 조화, 엄숙하고 고요하고 경건한 성격은 바로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의 이념과 일맥상통한다.
11세기에 이르러 중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폐쇄적인 자급자족경제에서 교역경제로 바뀌면서 경제가 부흥되고 새로운 도시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한 사회를 지배하던 경제적 토대가 바뀌자 예술양식도 이 새로운 이념에 부응하여 자기변신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제보다 자유로운 표면에 나타났다. ‘후기 로마네스크’로 불리는 이 시대가 되면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대두되고, 그리스적인 장식취미가 되살아나게 되는데, 그레고리안 성가도 보다더 규모가 커지고 끝없이 긴 멜리스마(가사 한 음에 붙여진 멜로디)로 장식되기 시작한다. 교역경제를 토대로 시민계급이 대두되자 문화의 세속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음악의 주도적인 생산자이자 향유자였던 교회는 이제 세속음악에 어느 정도 자리를 내 주어야만 했다. 이 시기에 세속음윽을 담당했던 기사계급 출신인 ‘트루바두르’가 출현한다. ‘트루바드르’라는 칭호는 일정한 보수를 받지 않고, 오로지 예술을 위한 예술만을 하는 사람들에게 붙여졌다. 따라서 그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예술을 팔았던 ‘민스트렐’이나 ‘종글레’와는 달랐다. 이렇게 자신들을 떠돌이 음유시인이나 광대와 근본적으로 구분하려는 의도는 ‘돈을 벌거나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예술은 가치가 없다’는 귀족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트루바두르 예술작품의 소재는 민스테렐이나 종글레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소재의 취급방법을 달리함으로써 자신의 예숭을 구분지으려 하였다. 그래서 사용한 것이 애매모호한 양식이었다. 즉, 일부러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표현을 써서 자신들의 지적인 우아함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구분이 불명확한 선율, 자유로운 리듬처리와 더불어 교회음악 양식에 가까운 현학적인 요소가 트루바두르 음악에 섞여 있는 것은 이러한 그들의 귀족적 취향을 잘 말해 준다. 교회음악적 자료와 세속음악적 자료, 정신적인 사랑과 관능
하늘아래 영원한 것이 없듯이, 로마의 영광도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4-5세기 동안 로마제국은 내부분열과 전쟁이라는 말기적 현상을 맞고 있었다. 이 시기에 철학자 플로티노스가 출현한다. 전쟁과 질병 그리고 노예제도의 붕괴 등으로 황폐해진 로마제국 말기를 살았던 그는 흔히 신 플라톤주의자라고 불려진다. 플로티노스는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되는 미는 저급한 것이며, 인간은 육체적인 것에서 해방되면 될수록 아름다워진다고 역설하였다. 이 시대의 철학자들이 플라톤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민중들은 다시 마술과 미신이 지배하는 신비의 세계로 돌아갔다. 환상, 유령, 마술이 유행하던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상황은 역시 음악에도 영향을 끼쳐 초기의 마술적인 영역으로 음악을 돌려놓았다. 또 다시 음악은 신비로운 환상과 엑스터시를 일으키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각종의 마술적인 의식에 음악이 사용되었다.
고대의 음악사상은 신호와 도그마에서부터 출발해 과학적 진리와 윤리적 규범의 시대를 거쳐 다시 신비주의의 세계로 돌아왔다. 현실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을 거부하고 내세적인 것을 추구했던 이 세대의 말기적 상황은 기독교 정신으로 대표되는 중세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중세기독교 시대
- 교회음악과 세속 음악의 갈등
중세는 기독교의 시대였다.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갖가지 모영의 조각으로 장식된 성당, 마치 하늘나라까지 닿을 듯 까마득하게 높이 솟은 첨탑, 그리고 그 속에서 경건한 목소리로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는 성가대가 이 시대를 대변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교시절과 완벽한 단절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예배음악과 같이 당장 실용적인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경우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중세인들은 과거의 유산에서 많은 것을 빌려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교회음악이 점점 발달해 감에 따라서 학자들이 여기에 철학적인 정당성을 부여할 필요를 느꼈다. 음악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학자 중에서 초대 기독교의 음악관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관념론자였다. 특히 음악 속에 내재해 있는 수의 법칙에 심취했다는 점에서 그는 중세의 피다고라스였다. 그는 음악을 감각의 대상이 아닌 학문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중세의 리듬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숫자 ‘3’은 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떤 학자는 4음음계의 4음을 예수의 생애에 비유하기도 했다. ‘4’는 또 4계절이나 동서남북, 그리고 천사, 악마, 동물, 식물 등의 네가지 존재의 분류법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이 자연과 우주 법칙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했다. ‘4’의 배수은 ‘8’은 8개의 교회선법에 상응한다. 이와 같이 아우구스티누스의 후계자들은 수라고 하는 극도로 상징적인 비유로 음악을 설명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의 5세기부터 9세기까지를 흔히 서유럽 음악사의 공백기라고 부른다. 이때 서유럽은 민족 대이동으로 내부분열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9세기 초 서로마 제국의 황제 찰스 대제 시대에 이르러 잠시나마 서유럽은 약6백년간 계속된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중세 유럽 문화는 새로운 활기를 찾는다. 중세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 시작한 이때부터 약 13세기까지의 시기를 예술사에서는 보통 ‘로마네스크 시대’라고 부른다. 이는 ‘고딕’이나 ‘바로크’라는 말과 같이 미술사에서 빌려온 말로서, 음악에서 이 로마네스크 양식과 견줄 수 있는 양식의 음악이 그레고리안 성가이다.
세속음악이 점점 발달해 갈수록 교회는 신화와 점점 발달해 갈수록 교회는 신화와 전설 그리고 신의 은총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음악을 신비화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에 가장 적합한 양식이 바로 그레고리안 성가였다. 이 성가는 단 하나의 성부로 노래되며, 노래를 받쳐 주는 반주조차 없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예술적 감동과는 거리가 먼 ‘유형화된 형식주의와 객관주의’ 가 바로 그레고리안 성가의 특징인 것이다. 이렇게 감각적인 것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종교적 권위를 높이려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균형과 조화, 엄숙하고 고요하고 경건한 성격은 바로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의 이념과 일맥상통한다.
11세기에 이르러 중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폐쇄적인 자급자족경제에서 교역경제로 바뀌면서 경제가 부흥되고 새로운 도시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한 사회를 지배하던 경제적 토대가 바뀌자 예술양식도 이 새로운 이념에 부응하여 자기변신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제보다 자유로운 표면에 나타났다. ‘후기 로마네스크’로 불리는 이 시대가 되면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대두되고, 그리스적인 장식취미가 되살아나게 되는데, 그레고리안 성가도 보다더 규모가 커지고 끝없이 긴 멜리스마(가사 한 음에 붙여진 멜로디)로 장식되기 시작한다. 교역경제를 토대로 시민계급이 대두되자 문화의 세속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음악의 주도적인 생산자이자 향유자였던 교회는 이제 세속음악에 어느 정도 자리를 내 주어야만 했다. 이 시기에 세속음윽을 담당했던 기사계급 출신인 ‘트루바두르’가 출현한다. ‘트루바드르’라는 칭호는 일정한 보수를 받지 않고, 오로지 예술을 위한 예술만을 하는 사람들에게 붙여졌다. 따라서 그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예술을 팔았던 ‘민스트렐’이나 ‘종글레’와는 달랐다. 이렇게 자신들을 떠돌이 음유시인이나 광대와 근본적으로 구분하려는 의도는 ‘돈을 벌거나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예술은 가치가 없다’는 귀족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트루바두르 예술작품의 소재는 민스테렐이나 종글레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소재의 취급방법을 달리함으로써 자신의 예숭을 구분지으려 하였다. 그래서 사용한 것이 애매모호한 양식이었다. 즉, 일부러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표현을 써서 자신들의 지적인 우아함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구분이 불명확한 선율, 자유로운 리듬처리와 더불어 교회음악 양식에 가까운 현학적인 요소가 트루바두르 음악에 섞여 있는 것은 이러한 그들의 귀족적 취향을 잘 말해 준다. 교회음악적 자료와 세속음악적 자료, 정신적인 사랑과 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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