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자본주의 이행 논쟁
(1) 자본주의 이행의 역사
(2) 자본주의 이행의 특징
3. 현대적 자본주의 이행 논쟁
(1)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 이행
(2) 한-미 FTA와 자본주의 이행
4. 결론
5. 참고문헌
2. 자본주의 이행 논쟁
(1) 자본주의 이행의 역사
(2) 자본주의 이행의 특징
3. 현대적 자본주의 이행 논쟁
(1)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 이행
(2) 한-미 FTA와 자본주의 이행
4. 결론
5. 참고문헌
본문내용
착취당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자본가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것”이라는 존 로빈슨의 말처럼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세계화를 거부하기는 어렵다. 좋든 싫든 세계의 134개국이 WTO에 가입하고 33개국이 참관국으로 참여하고 있고, 중국이 최근 WTO 가입을 결정한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지배한 지난 25년간 불평등과 빈곤 그리고 실업이 전 세계적으로 증대하였다. 그리고 자유무역은 국가주권과 민주주의를 침해하고, 노동권과 인권을 박탈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자유주의와 시장맹신주의가 우리 주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시장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이고 제도일 따름이다. 국가개입이 없는 자유시장이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원리란 자연법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참여자의 권리의무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시장은 각 사회의 구조와 발전단계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에 하나의 시장 즉 자본의 활동이 무제한적으로 보장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시장을 강요한다. 우리는 시장원리라는 미명하에 자본의 횡포를 경험하면서 생활한다. 어떤 기업(산업자본)이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수많은 노동자를 해고하면 주식시장에서 그 기업의 주가가 상승한다. 이른바 시장이 정리해고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장은 누구에 의해서 주도되는가. 금융자본이다. 결국 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자본을 위해 기능하는 시장의 이름 아래 대량 해고가 진행되고 노동자의 권리는 박탈되는 것이다.
시장은 충실한 하인이지만 나쁜 주인(good servant but bad master)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시장에게 주인 자리를 넘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칼 폴라니의 말처럼 “시장기구에 인류의 운명을 맡길 때 그 결과는 사회의 파괴(demolition)”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시장은 우리가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만 유용한 제도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화 시대에서 국민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국가는 항상 대중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고, 대단히 당파적이며 특정 계급이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을 논하기 전에 국가의 성격을 논하여야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가 확립되고 민중의 정치적 권리가 확립될 때, 국가는 대중의 이해를 위해 일한다.
우리는 세계에 대해서 개방적 사고를 하여야 한다. 세계 인류가 서로 국경을 초월하여 경제적 교류를 확대한다는 의미에서의 세계화는 부정할 필요도 없고 부정할 수 없다. 경제적 교류의 확대는 세계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초국적 자본과 세계의 부유한 엘리트에 의해 주도되는 위로부터의 세계화(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반대한다. 우리는 인권단체, 노동조합, 여성단체, 환경단체 그리고 농민조직의 민중적 연대에 기초한 세계화(밑으로부터의 세계화)를 추구하여야 한다. WTO는 부분적으로 개혁되어서는 안되고, 민주적이고 공평한 무역기구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WTO에 노동과 환경 등 사회적 조항을 삽입하거나, WTO 농업협정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삽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WTO 협정의 폐지와 전면적 재편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이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그러한 싸움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이미 역사적 퇴조기에 접어들고 있다.
4.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돕과 스위지의 논쟁, 즉 1차 자본주의 이행논쟁은 1940년대에 시작이 되었다. 이 시기까지 자본주의의 이행에 대한 이론은 피렌느 이래 상업화론이 그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돕이 내놓은 생산양식론은 그 새로운 역사적 의의로 인해 다른 학자들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어떠한 자본주의 이행과정의 이론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것은 아무도 정확히 주장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형성과정이 결코 노예제에서 봉건제호 이행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봉건제의 형성보다는 역사적으로 발전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 이행의 연관성을 찾는 것이 자의적이 될 수밖에 없고 또만 역사가의 계급적 당파성 때문에 그 과정의 연구가 왜곡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의 이행과정에 대한 이론들이 과연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닐 수 있는가에 대만 의문도 남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남아있다. 그것은 착취와 피착취라는 역사의 본질적인 측면인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형성이 되면서 이러한 역사적 본질의 관계는 더욱 발전이 되었고 경제 외적이고 법제적인 착취수단이 아닌 '자율적' 착취수단인 '자본'이 그 역사적 본질을 유지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5. 참고문헌
※ 김대래, 일반경제사, 부산: 신지서원, 2002
※ 김대환 편역, 자본주의 이행논쟁, 동녘, 1990.
※ 김석진, 박민수 역음,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비판을 위하여, 공감, 1997
※ 김준호, 경제사입문, 서울: 백산서당, 1982
※ 돕, 모리스/ 이선근 옮김, 자본주의 발전 연구, 동녘, 1990.
※ 박세길, 극한을 향해 치닫는 신제국주의, 전농 홈페이지.
※ 편집부 역, 경제사 총론 : 소유와 생산양식의 역사이론, 서울: 일월서각, 1985
※ 한스 피터 마르틴, 하라들 슈만 지음(강수돌 옮김), 세계화의 덫, 영림카디널, 1997
※ 박진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WTO",
http://cafe.naver.com/3wi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160, (검색일 : 2007. 4. 1)
※ 양우진,“현대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 연구”,
http://blog.naver.com/NBlogMain.nhn?blogId=arirangep&Redirect=Log&logNo=
80034916252, (검색일 : 2007. 4. 10)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지배한 지난 25년간 불평등과 빈곤 그리고 실업이 전 세계적으로 증대하였다. 그리고 자유무역은 국가주권과 민주주의를 침해하고, 노동권과 인권을 박탈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자유주의와 시장맹신주의가 우리 주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시장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이고 제도일 따름이다. 국가개입이 없는 자유시장이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원리란 자연법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참여자의 권리의무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시장은 각 사회의 구조와 발전단계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에 하나의 시장 즉 자본의 활동이 무제한적으로 보장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시장을 강요한다. 우리는 시장원리라는 미명하에 자본의 횡포를 경험하면서 생활한다. 어떤 기업(산업자본)이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수많은 노동자를 해고하면 주식시장에서 그 기업의 주가가 상승한다. 이른바 시장이 정리해고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장은 누구에 의해서 주도되는가. 금융자본이다. 결국 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자본을 위해 기능하는 시장의 이름 아래 대량 해고가 진행되고 노동자의 권리는 박탈되는 것이다.
시장은 충실한 하인이지만 나쁜 주인(good servant but bad master)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시장에게 주인 자리를 넘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칼 폴라니의 말처럼 “시장기구에 인류의 운명을 맡길 때 그 결과는 사회의 파괴(demolition)”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시장은 우리가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만 유용한 제도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화 시대에서 국민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국가는 항상 대중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고, 대단히 당파적이며 특정 계급이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을 논하기 전에 국가의 성격을 논하여야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가 확립되고 민중의 정치적 권리가 확립될 때, 국가는 대중의 이해를 위해 일한다.
우리는 세계에 대해서 개방적 사고를 하여야 한다. 세계 인류가 서로 국경을 초월하여 경제적 교류를 확대한다는 의미에서의 세계화는 부정할 필요도 없고 부정할 수 없다. 경제적 교류의 확대는 세계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초국적 자본과 세계의 부유한 엘리트에 의해 주도되는 위로부터의 세계화(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반대한다. 우리는 인권단체, 노동조합, 여성단체, 환경단체 그리고 농민조직의 민중적 연대에 기초한 세계화(밑으로부터의 세계화)를 추구하여야 한다. WTO는 부분적으로 개혁되어서는 안되고, 민주적이고 공평한 무역기구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WTO에 노동과 환경 등 사회적 조항을 삽입하거나, WTO 농업협정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삽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WTO 협정의 폐지와 전면적 재편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이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그러한 싸움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이미 역사적 퇴조기에 접어들고 있다.
4.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돕과 스위지의 논쟁, 즉 1차 자본주의 이행논쟁은 1940년대에 시작이 되었다. 이 시기까지 자본주의의 이행에 대한 이론은 피렌느 이래 상업화론이 그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돕이 내놓은 생산양식론은 그 새로운 역사적 의의로 인해 다른 학자들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어떠한 자본주의 이행과정의 이론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것은 아무도 정확히 주장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형성과정이 결코 노예제에서 봉건제호 이행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봉건제의 형성보다는 역사적으로 발전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 이행의 연관성을 찾는 것이 자의적이 될 수밖에 없고 또만 역사가의 계급적 당파성 때문에 그 과정의 연구가 왜곡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의 이행과정에 대한 이론들이 과연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닐 수 있는가에 대만 의문도 남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남아있다. 그것은 착취와 피착취라는 역사의 본질적인 측면인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형성이 되면서 이러한 역사적 본질의 관계는 더욱 발전이 되었고 경제 외적이고 법제적인 착취수단이 아닌 '자율적' 착취수단인 '자본'이 그 역사적 본질을 유지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5. 참고문헌
※ 김대래, 일반경제사, 부산: 신지서원, 2002
※ 김대환 편역, 자본주의 이행논쟁, 동녘, 1990.
※ 김석진, 박민수 역음,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비판을 위하여, 공감, 1997
※ 김준호, 경제사입문, 서울: 백산서당, 1982
※ 돕, 모리스/ 이선근 옮김, 자본주의 발전 연구, 동녘, 1990.
※ 박세길, 극한을 향해 치닫는 신제국주의, 전농 홈페이지.
※ 편집부 역, 경제사 총론 : 소유와 생산양식의 역사이론, 서울: 일월서각, 1985
※ 한스 피터 마르틴, 하라들 슈만 지음(강수돌 옮김), 세계화의 덫, 영림카디널, 1997
※ 박진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WTO",
http://cafe.naver.com/3wi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160, (검색일 : 2007. 4. 1)
※ 양우진,“현대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 연구”,
http://blog.naver.com/NBlogMain.nhn?blogId=arirangep&Redirect=Log&logNo=
80034916252, (검색일 : 2007.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