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 1.『금강』의 구조적 성격과 비극성
2.『금강』의 영웅적 인물과 비극성
3.『금강』-억압된 시대상황 속의 비극성
4. 시(時)․공간을 넘나드는 『금강』
Ⅲ. 맺음말
Ⅱ - 1.『금강』의 구조적 성격과 비극성
2.『금강』의 영웅적 인물과 비극성
3.『금강』-억압된 시대상황 속의 비극성
4. 시(時)․공간을 넘나드는 『금강』
Ⅲ. 맺음말
본문내용
, 따라서 현실과 과거의 연결은 필연적이고, 과거를 통한 현재상황에 대한 공감은 나름대로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2. 비극을 넘어서는 희망의 발견 -어린 하늬-
그렇다고 해서,『금강』은 과거를 꿈같은 이상향으로 설정하여,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통해 무조건식으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금강에서 작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외세에 의존하고 현실의 내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민중의 생활은 억압받고 초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인 과거와 현재의 반복은 단순히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늬는
자기 죽음을 예감했던걸까,
진아는 허리 더듬어 치마 속으로
은방울을 만져 보았다.
아기 낳거든
자기와 똑같은 이름, 하늬로
부르라 했다. 그리고 은방울 달아주고.
해주길 떠나던날 아침. 신동엽, 『錦江』,창작과비평사(1989), p225
진아는
아들을 낳았다,
복슬복슬한
아기 하늬,
<중략>
꼬마 하늬가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애정
쏟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벌어진 석류알처럼 피어나고
눈동자는 물먹은 별
습기차게 빛난다,
<중략>
우리의
가슴마다
새 비맞은 진달래 화창히
피어나는데,
진아는
품속의 하늬,얼르며
먼 금강줄기
바라보다
머루알 깨물었다. 앞의책, pp234~237
동학농민의 실패로 인해 신하늬와 인진아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것은 비극을 초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하늬\'는 \'아기 하늬\'를 낳고 아기 하늬는 또 자신의 아들을 낳음으로써 그들이 이 땅에 구현하고자 했던 동학혁명의 이상은 \'아기 하늬\'들의 정신 속에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신동엽의 경우 역사를 과거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껍데기로 인식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 나아가 영원성이 있는 ‘생명의 알갱이’로 인식한 내면의식이 그의 서사시에 반영되어 있다. 혁명의 실패는 갑오년에도 기미년에도, 4.19 혁명이 좌절된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으며, 진정한 혁명이 실천될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다. 조선조 말기의 양민탄압과 동학혁명의 현실은, 청일전쟁, 일제강점기,8.15해방,6.25의 동족산장과 국토분단, 이승만 독재와 419혁명, 혁명의 좌절과 516쿠테타 등의 고리로 이어지며, 그 이후 현재에 이르는 역사의 질곡과 비극적 전개인 것이다. 이영섭,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연구, 한국문학연구학회(1995)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 현실의 아픔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씨앗을 잉태하고, 그러한 희망은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속에 \'아기하늬\'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아기하늬들을 통해서 계속 되리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즉, 아기하늬는 \'신하늬\'가 남긴 또 다른 희망이며, 분신인 것이다. 따라서 -비극이 계속될지언정- 그것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발견이며, 혁명을 계속 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3. 비극적 세계관에서 ‘ 비극적 앎’으로…
시간은 다람쥐 쳇 바퀴 돌듯이 계속 굴러갈 것이다. 과거의 혁명은 안정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미래의 혁명을 예고하는 것이다. 비극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끊임없이 생길지 모른다. -<금강>에서 그러한 것은 물리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 간에 외세의 간섭, 내부체제의 모순 등으로 생각 된다- .그것은 ‘항상 그러한 것’이며, 그렇게 흘러가는 \'불합리한 세계\'속에 우리는 놓여져 있다. 그것이 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세계 앞에서 자아는 항상 나약한 존재 이므로 과거, 현재, 미래에도 언제나 세계의 ‘모순’과‘불합리’는 존재하며, 그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아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자아가 세계의 횡포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세계의 힘이 자아를 ‘모순과 불합리의 소용돌이’속에 빠뜨릴 지라도, 자아는 \'자신의 이상\' 을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의 ‘혁명적 주체’로서 \'아기하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 세계가 자아를 좌절시키더라도, 그리고 그러한 비극이 계속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혁명’과 ‘투쟁’의 과정 속에서 \'아기하늬\'로 대표되는 \'희망\'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세계의 불합리와 모순에 타협하지 않고, -비록 그것이 비극적일지라도-자신의 이상을 추구해 나감으로써, 비극을 넘어서는 \'비극적 앎\'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석영, 서사시『금강』의 탈식민성, 한민족어문학제39집(2001)
◇스티븐 커(박성관역),『시간과 공간의 문학사』,휴머니스트(2004)
◇신동엽,『錦江』,창작과비평사(1989)
◇이영섭,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연구, 한국문학연구학회(1995)
Ⅲ. 맺음말
지금까지 신동엽의 『금강』을 살펴보았다. 먼저, 『금강』을 서사적 내용에 따라 서술 구조를 살펴보고, 서술자가 1인칭 ‘나’ 라는 사실에 기반 하여, 이에 관한 서정성과 비극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허구적 인물인 ‘신하늬’와 역사적 인물인 ‘전봉준’을 통하여 두 인물이 가지는 영웅적인 면모를 살펴보았고, ‘민중’과 ‘하늘’등 소재적 특성을 통한 논의를 해보았으며, 특히 ‘하늘’에서는 ‘영원성’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의 중첩성’이라는 구조적 특성을 통해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금강』의 비극성에 대해 논의하고 이에 대한 ‘희망’의 혁명적 주체로서 ‘아기하늬’를 제시 하였다.
본 발표조는 다른 비극작품과 달리 금강이 ‘시’로 씌어졌다는 점,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허구적 인물과 역사적 인물이 공존한다는 점에 기반 하여 텍스트를 분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혁명 등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오는 혁명의 계보를 통하여 역사 속에서 비극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희망의 혁명적 주체로서 ‘아기하늬’를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역사를 넘어서는’ ‘비극을 넘어서는’『금강』의 비극성의 의미를 고찰하였다. 이에 대하여, 활발한 논의를 통하여 『금강』의 구조적 특성과 비극성에 대해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비극을 넘어서는 희망의 발견 -어린 하늬-
그렇다고 해서,『금강』은 과거를 꿈같은 이상향으로 설정하여,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통해 무조건식으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금강에서 작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외세에 의존하고 현실의 내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민중의 생활은 억압받고 초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인 과거와 현재의 반복은 단순히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늬는
자기 죽음을 예감했던걸까,
진아는 허리 더듬어 치마 속으로
은방울을 만져 보았다.
아기 낳거든
자기와 똑같은 이름, 하늬로
부르라 했다. 그리고 은방울 달아주고.
해주길 떠나던날 아침. 신동엽, 『錦江』,창작과비평사(1989), p225
진아는
아들을 낳았다,
복슬복슬한
아기 하늬,
<중략>
꼬마 하늬가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애정
쏟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벌어진 석류알처럼 피어나고
눈동자는 물먹은 별
습기차게 빛난다,
<중략>
우리의
가슴마다
새 비맞은 진달래 화창히
피어나는데,
진아는
품속의 하늬,얼르며
먼 금강줄기
바라보다
머루알 깨물었다. 앞의책, pp234~237
동학농민의 실패로 인해 신하늬와 인진아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것은 비극을 초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하늬\'는 \'아기 하늬\'를 낳고 아기 하늬는 또 자신의 아들을 낳음으로써 그들이 이 땅에 구현하고자 했던 동학혁명의 이상은 \'아기 하늬\'들의 정신 속에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신동엽의 경우 역사를 과거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껍데기로 인식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 나아가 영원성이 있는 ‘생명의 알갱이’로 인식한 내면의식이 그의 서사시에 반영되어 있다. 혁명의 실패는 갑오년에도 기미년에도, 4.19 혁명이 좌절된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으며, 진정한 혁명이 실천될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다. 조선조 말기의 양민탄압과 동학혁명의 현실은, 청일전쟁, 일제강점기,8.15해방,6.25의 동족산장과 국토분단, 이승만 독재와 419혁명, 혁명의 좌절과 516쿠테타 등의 고리로 이어지며, 그 이후 현재에 이르는 역사의 질곡과 비극적 전개인 것이다. 이영섭,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연구, 한국문학연구학회(1995)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 현실의 아픔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씨앗을 잉태하고, 그러한 희망은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속에 \'아기하늬\'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아기하늬들을 통해서 계속 되리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즉, 아기하늬는 \'신하늬\'가 남긴 또 다른 희망이며, 분신인 것이다. 따라서 -비극이 계속될지언정- 그것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발견이며, 혁명을 계속 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3. 비극적 세계관에서 ‘ 비극적 앎’으로…
시간은 다람쥐 쳇 바퀴 돌듯이 계속 굴러갈 것이다. 과거의 혁명은 안정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미래의 혁명을 예고하는 것이다. 비극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끊임없이 생길지 모른다. -<금강>에서 그러한 것은 물리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 간에 외세의 간섭, 내부체제의 모순 등으로 생각 된다- .그것은 ‘항상 그러한 것’이며, 그렇게 흘러가는 \'불합리한 세계\'속에 우리는 놓여져 있다. 그것이 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세계 앞에서 자아는 항상 나약한 존재 이므로 과거, 현재, 미래에도 언제나 세계의 ‘모순’과‘불합리’는 존재하며, 그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아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자아가 세계의 횡포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세계의 힘이 자아를 ‘모순과 불합리의 소용돌이’속에 빠뜨릴 지라도, 자아는 \'자신의 이상\' 을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의 ‘혁명적 주체’로서 \'아기하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 세계가 자아를 좌절시키더라도, 그리고 그러한 비극이 계속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혁명’과 ‘투쟁’의 과정 속에서 \'아기하늬\'로 대표되는 \'희망\'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세계의 불합리와 모순에 타협하지 않고, -비록 그것이 비극적일지라도-자신의 이상을 추구해 나감으로써, 비극을 넘어서는 \'비극적 앎\'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석영, 서사시『금강』의 탈식민성, 한민족어문학제39집(2001)
◇스티븐 커(박성관역),『시간과 공간의 문학사』,휴머니스트(2004)
◇신동엽,『錦江』,창작과비평사(1989)
◇이영섭,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연구, 한국문학연구학회(1995)
Ⅲ. 맺음말
지금까지 신동엽의 『금강』을 살펴보았다. 먼저, 『금강』을 서사적 내용에 따라 서술 구조를 살펴보고, 서술자가 1인칭 ‘나’ 라는 사실에 기반 하여, 이에 관한 서정성과 비극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허구적 인물인 ‘신하늬’와 역사적 인물인 ‘전봉준’을 통하여 두 인물이 가지는 영웅적인 면모를 살펴보았고, ‘민중’과 ‘하늘’등 소재적 특성을 통한 논의를 해보았으며, 특히 ‘하늘’에서는 ‘영원성’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의 중첩성’이라는 구조적 특성을 통해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금강』의 비극성에 대해 논의하고 이에 대한 ‘희망’의 혁명적 주체로서 ‘아기하늬’를 제시 하였다.
본 발표조는 다른 비극작품과 달리 금강이 ‘시’로 씌어졌다는 점,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허구적 인물과 역사적 인물이 공존한다는 점에 기반 하여 텍스트를 분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혁명 등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오는 혁명의 계보를 통하여 역사 속에서 비극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희망의 혁명적 주체로서 ‘아기하늬’를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역사를 넘어서는’ ‘비극을 넘어서는’『금강』의 비극성의 의미를 고찰하였다. 이에 대하여, 활발한 논의를 통하여 『금강』의 구조적 특성과 비극성에 대해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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