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고대 이집트의 미술, 중국의 미술, 인도의 미술(건축), 그리스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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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고대 이집트의 미술, 중국의 미술, 인도의 미술(건축), 그리스의 미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고대 이집트의 미술
2. 중국의 미술
3. 인도의 미술
4. 인도의 건축
5. 그리스의 미술
6. 중세의 미술
7. 르네상스 시대
8. 바로크 시대
9. 서양미술사 (신고전주의부터~)
10. 인상파
11. 야수파
12. 입체파
13. 초현실주의와 달리

본문내용

곳에서 그는 원즈민들의 순수성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표현했다.
13주:야수파
마티스는 후기 인상파의 분위기 속에서 그림을 시작했다. 즉 반 고흐. 폴 세잔느, 고갱의 영향을 받으며 강렬한 색채를 병렬(juxtaposition)에 의해 늘어 놓으므로써 진동하는 것 같은 강렬한 시각적, 감정적 효과를 창조해냈다. 그러나 마티스는 이러한 방법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인의 지참금으로 구입한 세잔느의 \'Three Bathers\'는 그에게는 마치 부적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예술가로서 내 생애의 위기의 순간마다 정신적으로 나를 떠받쳐 준 그림이다. 나는 이 그림으로부터 신념과 인내를 얻었다.\"라는 글과 함께 훗날 파리 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림은 인간의 감정에 흥분이나 자극을 주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안락의자 같은 포근함과 \'warm health\' 같은 신선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티스 또한 고흐나 고갱처럼 일본의 목판화ㅡ 우끼요에 작가인 호쿠사이와 히로시게 안도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당시의 유럽 미술가들에게 많은 신선한 자극을 주었던 아프리카 목각 조각에 표현된 형태의 단순함과 엄격함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Fauve 라는 명칭은 1905년 살롱 도톤에서 비평가 루이 복셀이 익살적인 어투로 처음 사용한 명칭이었다. 마티스는 사물을 표현하는 두 가지 방식(1.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 2.사물을 예술적으로 환기 시키는 것) 가운데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1908년 그의 노트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표현이다. 나의 사고 방식에 의하면 표현은 인간의 얼굴에 비치거나 격렬한 제스쳐에 의해 드러나는 열정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그림의 전체 배치 자체가 표현적이다. 인물, 대상이 차지한 자리, 그 주변의 빈 공간, 비례 등 모든 것이 그 나름의 역할을 한다. 구성은 화가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대로 처리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장식적인 방법으로 배치하는 기술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사물의 외양이 내용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점점 더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14주;입체파
20세기 초 미술은 이제 더 이상 대상을 재현하는 방식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한 형식주의적인 표현방식을 버리고 대신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고자 하는 3차원의 공간에 대한 욕구를 갖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움직임의 물고를 튼 것은 입체파의 선구자인 피카소를 들 수 있다. 입체파는 스페인 태생의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프랑스 화가인 조지 브라크(George Braque, 1882-1963)에 의해서 탄생되었다. 큐비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마티스가 1908년 브라크의 작품에 \'작은 입체 조각들로 이뤄진\'(With little cubes)이라는 평을 한 이후부터이다.
작가이며 이론가였던 아폴리네에르는 입체파는 \"입체파의 화가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대상의 외형 재현이 아니라 대상이 지니고 있는 개념(conception)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외계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찰을 하게 해주었으며 시적 회화의 장을 열게 했으며 사물의 완전한 표현을 위해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표면을 사용하게 했다.\"고 말한다.
입체파는 분석적 입체파와 종합적 입체파로 나눌 수 있다. 입체파의 초기 양식은 분석적인 입체파의 시기이다. 이러한 분석적인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과거 미술의 기법을 뒤엎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들 수 있다.
19세기 말에는 소위 그의 청색시대(Blue period)에는 초췌하고 애처로운 소외된 인물들을 묘사하는 색채로서 청색을 주로 사용했다.
1906 년 피카소는 끊임없이 형태를 모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 목각의 단순성의 법칙, 고대 이베리아의 조각, 세잔느의 말년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게 된다. 이 세 가지의 영감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공간안에 형태를 재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인체의 볼륨을 표현하는 대신 피카소는 형태를 분해하고 그들을 다시 재구성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주름과 비어있는 공간을 묘사했다.이러한 형태와 공간에 대한 묘사는 바로 세잔느의 방식이었다. 그림 왼쪽의 세 명의 여인들은 이베리아 조각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며 오른쪽의 두 명의 여인들은 아프리카 목각 조각의 영향이다.
1912년 입체파는 시각적 언어로는 판독하기 힘든 또 다른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종합적 입체파의 시기라고 한다. 스케치들은 물체들로 구성되어지고 그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종이나 다른 재료들이 선택되어졌다. 이러한 방식의 기법은 특히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해 \'즐기는 것\', \'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재료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와 흥미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택되어진 것이 바로 꼴라쥬(collage=to stick, 고정하기) 기법이다.
15주:초현실주의와 달리
초현실주의의 발상을 시작한 시인 앙드레 브르통에 의하면 \"초현실주의는 구두로, 글로, 혹은 그 밖의 어떤 방법으로든지 생각의 진정한 과정을 표현하도록 의도하는 그러한 순수한 심적인 오토메티즘이다. 이성에 의해서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어떠한 미적인 혹은 도덕적인 선입감에도 빠지지 않는 그러한 생각의 명령이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에게 있어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의 신비, 비밀, 놀라움에 대한 의식을 창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상상력이 항상 유지되어 있는 살아있는 힘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정신 속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무의식 속에는 숨겨진 샘이 있어서 우리가 상상력에 고삐를 매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사고를 자동적이게 놓아둔다면 이 샘은 솟아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초현실주의 이전의 환상적 예술가에 속하는 화가로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가장 신뢰했던 히에로니무스 보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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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7.06
  • 저작시기2007.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9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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