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序
Ⅱ.도시생활의 발달과 미술
1.도시문화
2.도시 미술가들
Ⅲ.우키요에(浮世繪)의 발달
1.우키요에의 유래
2. 우키요에에 나타나는 당시의 시대정신
3.우키요에가 서양미술에 미친 영향
Ⅳ.에도시대의 목판화
1.목판화의 발전: 1660~1760
2.다색판화의 발달: 1765~1801
3.더욱 발전하는 목판화: 1801~1868
Ⅴ.에도시대의 장식미술
1.장식미술의 특색
Ⅵ.에도시대의 대표화가들
1.미인화의 대가 『기타가와 우타마로』
2.특수한 묘사법을 개발한 『가쓰시카 호쿠사이』
3.풍경화의 완성자 『우타가와 히로시게』
Ⅶ.結
*참고문헌
Ⅱ.도시생활의 발달과 미술
1.도시문화
2.도시 미술가들
Ⅲ.우키요에(浮世繪)의 발달
1.우키요에의 유래
2. 우키요에에 나타나는 당시의 시대정신
3.우키요에가 서양미술에 미친 영향
Ⅳ.에도시대의 목판화
1.목판화의 발전: 1660~1760
2.다색판화의 발달: 1765~1801
3.더욱 발전하는 목판화: 1801~1868
Ⅴ.에도시대의 장식미술
1.장식미술의 특색
Ⅵ.에도시대의 대표화가들
1.미인화의 대가 『기타가와 우타마로』
2.특수한 묘사법을 개발한 『가쓰시카 호쿠사이』
3.풍경화의 완성자 『우타가와 히로시게』
Ⅶ.結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 지난 뒤 에도의 가장 유명한 생산품이 되는 다색판화의 성장은 에도의 시 애호가들에 의해 출판된 기념 판화를 통해 촉진되었다. 이러한 다색판화는 ‘아지마 나시키에’로 알려지게 되는데, 이 명칭은 교토에서 명성을 얻었던 다색 비단에 해당하는 간토 지역의 물품이 에도의 대색판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대색판화의 등장으로 목판화 기술은 최고의 성숙기에 도달하게 되었다. 1740년대는 한정된 수의 색판을 사용한 판화가 제작되었지만, 1750년대에는 3~4도의 색판에 의한 판화가 등장하게 된다. 특히 18세기 후반이 되면, 10여 가지 이상 색판의 판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3. 더욱 발전하는 목판화: 1801~1868
19세기가 열리는 초창기 10년 동안의 사업과 여가를 목적으로 한 전국 여행이 모든 계층 사이에서 일반화되었다. 산야의 사찰과 신사와 경승지를 순례하는 것이 대중화되었지만,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는 동부 지역의 거대한 수도 에도였다. 에도의 많은 출판가들은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나혼바시로부터 주요 간선 도로의 교차 지역 부근에 위차한 도시의 외곽 지역으로 가게를 옮기거나 새로게 지점을 개점했다. 오랫동안 에도의 독특한 상품으로 여겨져 왔었던 목판화는 이 시대에 들어 에도 방문에 대한 비싸지 않은 기념품으로서 점점 시장을 넓혀갔다.
에도의 출판가들은 이러한 고객들을 위해 가부키 극장과 요시와라에 관한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판화들을 찍어내었다. 또한 이들은 과거에는 주로 회화와 안내서의 형식으로 제작되었던 메이쇼에의 문학적시각적인 풍부한 특성을 개발함으로써 먼 지역의 경승지뿐만 아니라 도시의 주요 명소를 낱장 판화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조와 중국일본의 역사적 영웅들을 소재로 한 판화도 제작되었다. 유녀들과 배우들을 묘사한 기존의 판화가 여전히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이와 같은 새로운 소재의 판화들도 융성하게 되었다.
Ⅴ.에도시대의 장식미술
1. 장식미술의 특색
야시로 유키오는 일본미술의 특색으로서 ‘자연물의 장식적 변형’을 들고 있다. 어린이처럼 감수성이 풍부한 일본인의 심정에는 재미있다고 느낀 것만이 선명한 인상으로 의식에 반영된다. 벚꽃을 사랑하는 일본인의 마음의 눈에 꽃은 반짝이는 큰 별을 이어놓은 것처럼 보이고 일본은 그것들의 자연 비례를 무시한 채 큼직하게, 그리고 모든 꽃들이 정면을 향해 피어난 것처럼 그려서 도인화한다.
서양인에게는 의아하게 느껴지는 자우대칭의 결여 역시 감성적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각적으로 질서정연한 연속성의 리듬이 갑자기 깨져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심리적 주의가 환기되는 것에 대하여, 곰브리히는 장식미술의 심리학적 고찰을 시도한 그의 저서 『질서의 감각』속에서 ‘악센트로서의 파조(破調)’라 불러 분석하고 있는데, 그러한 효과를 일본의 장식미술가는 본능적으로 깨달아 대담하게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Ⅵ.에도시대의 대표화가들
1. 미인화의 대가 『기타가와 우타마로』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徽 1753-1806)는 화가의 별명 즉 화명(畵名)을 기타가와 도요아키(北川豊章)로 부르다가 가타가와 우타마로(北川歌徽)로 고쳤고, 다시 화가로서의 성 즉 화성(畵姓)도 바꾸어 기타가와(喜多川)라 불렀다.
어려서 그림을 배워, 1775년에 간행된 조루리(淨瑠璃) 대사집(臺詞集)인 『사십팔수련소역(四十八手戀所譯)』에 그린 표지 그림이 처녀작으로 남아 있다. 기타가와 우타마로는 미인화 가운데도 대상에 접근하여 여성의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여 그리는 “오쿠비에(大首繪)”라는 형식을 창안해내어 독자적인 작풍을 확립했다. 여성의 우아한 모습을 그려내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쓰는 선을 그릴 때 검정색선 즉 묵선(墨線) 대신에 빨간색 주선(朱線)을 쓰거나 윤곽선을 생략하는 등 독창적인 표현법을 창안했다.
1792년부터는 미인화 시리즈를 발표하였는데, 각 계층의 부인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이어서 전성기에 있는 기녀나 찻집의 여인 등 실제의 미녀를 모델로 하여 미인화 전문가로써의 빼어난 자질을 발휘했다.
2. 특수한 묘사법을 개발한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1760-1849)는 에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14,5세 때부터 목판 판화 찍는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책을 빌려주는 대본(貸本) 가게에서 일하기도 하다가, 본격적으로 우키요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시기는 18세 때로, 당시 가부키 배우 그림의 대가로 알려져 있던 가쓰카와
이들 대색판화의 등장으로 목판화 기술은 최고의 성숙기에 도달하게 되었다. 1740년대는 한정된 수의 색판을 사용한 판화가 제작되었지만, 1750년대에는 3~4도의 색판에 의한 판화가 등장하게 된다. 특히 18세기 후반이 되면, 10여 가지 이상 색판의 판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3. 더욱 발전하는 목판화: 1801~1868
19세기가 열리는 초창기 10년 동안의 사업과 여가를 목적으로 한 전국 여행이 모든 계층 사이에서 일반화되었다. 산야의 사찰과 신사와 경승지를 순례하는 것이 대중화되었지만,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는 동부 지역의 거대한 수도 에도였다. 에도의 많은 출판가들은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나혼바시로부터 주요 간선 도로의 교차 지역 부근에 위차한 도시의 외곽 지역으로 가게를 옮기거나 새로게 지점을 개점했다. 오랫동안 에도의 독특한 상품으로 여겨져 왔었던 목판화는 이 시대에 들어 에도 방문에 대한 비싸지 않은 기념품으로서 점점 시장을 넓혀갔다.
에도의 출판가들은 이러한 고객들을 위해 가부키 극장과 요시와라에 관한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판화들을 찍어내었다. 또한 이들은 과거에는 주로 회화와 안내서의 형식으로 제작되었던 메이쇼에의 문학적시각적인 풍부한 특성을 개발함으로써 먼 지역의 경승지뿐만 아니라 도시의 주요 명소를 낱장 판화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조와 중국일본의 역사적 영웅들을 소재로 한 판화도 제작되었다. 유녀들과 배우들을 묘사한 기존의 판화가 여전히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이와 같은 새로운 소재의 판화들도 융성하게 되었다.
Ⅴ.에도시대의 장식미술
1. 장식미술의 특색
야시로 유키오는 일본미술의 특색으로서 ‘자연물의 장식적 변형’을 들고 있다. 어린이처럼 감수성이 풍부한 일본인의 심정에는 재미있다고 느낀 것만이 선명한 인상으로 의식에 반영된다. 벚꽃을 사랑하는 일본인의 마음의 눈에 꽃은 반짝이는 큰 별을 이어놓은 것처럼 보이고 일본은 그것들의 자연 비례를 무시한 채 큼직하게, 그리고 모든 꽃들이 정면을 향해 피어난 것처럼 그려서 도인화한다.
서양인에게는 의아하게 느껴지는 자우대칭의 결여 역시 감성적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각적으로 질서정연한 연속성의 리듬이 갑자기 깨져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심리적 주의가 환기되는 것에 대하여, 곰브리히는 장식미술의 심리학적 고찰을 시도한 그의 저서 『질서의 감각』속에서 ‘악센트로서의 파조(破調)’라 불러 분석하고 있는데, 그러한 효과를 일본의 장식미술가는 본능적으로 깨달아 대담하게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Ⅵ.에도시대의 대표화가들
1. 미인화의 대가 『기타가와 우타마로』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徽 1753-1806)는 화가의 별명 즉 화명(畵名)을 기타가와 도요아키(北川豊章)로 부르다가 가타가와 우타마로(北川歌徽)로 고쳤고, 다시 화가로서의 성 즉 화성(畵姓)도 바꾸어 기타가와(喜多川)라 불렀다.
어려서 그림을 배워, 1775년에 간행된 조루리(淨瑠璃) 대사집(臺詞集)인 『사십팔수련소역(四十八手戀所譯)』에 그린 표지 그림이 처녀작으로 남아 있다. 기타가와 우타마로는 미인화 가운데도 대상에 접근하여 여성의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여 그리는 “오쿠비에(大首繪)”라는 형식을 창안해내어 독자적인 작풍을 확립했다. 여성의 우아한 모습을 그려내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쓰는 선을 그릴 때 검정색선 즉 묵선(墨線) 대신에 빨간색 주선(朱線)을 쓰거나 윤곽선을 생략하는 등 독창적인 표현법을 창안했다.
1792년부터는 미인화 시리즈를 발표하였는데, 각 계층의 부인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이어서 전성기에 있는 기녀나 찻집의 여인 등 실제의 미녀를 모델로 하여 미인화 전문가로써의 빼어난 자질을 발휘했다.
2. 특수한 묘사법을 개발한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1760-1849)는 에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14,5세 때부터 목판 판화 찍는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책을 빌려주는 대본(貸本) 가게에서 일하기도 하다가, 본격적으로 우키요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시기는 18세 때로, 당시 가부키 배우 그림의 대가로 알려져 있던 가쓰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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