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비잔틴제국의 성립
Ⅲ. 비잔틴제국의 발전과정
1. 비잔틴제국의 초기
2. 비잔틴제국의 중기
3. 비잔틴제국의 후기
Ⅳ. 비잔틴제국의 사회와 문화
1. 비잔틴제국의 정치와 사회
2. 비잔틴제국의 문화
Ⅴ. 비잔틴제국의 종교
1. 황제-교황 일치제
2. 그리스 정교회의 확립과 분열
Ⅵ. 비잔틴제국의 역사적 의미
Ⅶ. 결론
<참고문헌>
Ⅱ. 비잔틴제국의 성립
Ⅲ. 비잔틴제국의 발전과정
1. 비잔틴제국의 초기
2. 비잔틴제국의 중기
3. 비잔틴제국의 후기
Ⅳ. 비잔틴제국의 사회와 문화
1. 비잔틴제국의 정치와 사회
2. 비잔틴제국의 문화
Ⅴ. 비잔틴제국의 종교
1. 황제-교황 일치제
2. 그리스 정교회의 확립과 분열
Ⅵ. 비잔틴제국의 역사적 의미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정치적으로 결별하면서 양 세력의 분열은 가속화 되었고, 1054년 서방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 그리스정교교회로 최종 분리 되었다.
Ⅵ. 비잔틴제국의 역사적 의미
비잔틴 제국은 문화적으로 오리엔트그리스―로마이슬람등 여러 문명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정교를 배경으로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동시대의 서유럽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또한 북방의 슬라브인들에게 커다란 문화적종교적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슬라브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역할을 감당했다. 그로인해 슬라브인들은 비잔틴문화의 영향으로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러시아의 경우 비잔틴제국의 멸망후 러시아의 이반3세는 마지막황제인 콘스탄티노스11세의 조카딸과 결혼함으로써 비잔틴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한편 비잔틴문화를 러시아에 도입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잔틴문화는 서방세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비잔틴제궁은 아시아민족들의 침입으로부터 서유럽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한편, 중세를 통해 서방세계와 부단한 교섭이나 통상을 하면서 다방면으로 유럽 중세문화의 형성에 기여했다.
또한 그리스어를 공식어로 사용함으로써 고전 사상과 학문이 보존될 수 있었다. 비잔틴 학자들은 그리스 사상가의 저술과 문헌을 수집복사하여 연구 하였다. 특히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호메로스소포클레스 등과 같은 고전이 비잔틴 학자의 손을 거쳐 서방세계로 전달되었다. 비잔틴 학자들은 옛 로마 학자들과 같이 독창성보다는 모방성에 뛰어낫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고전의 분류편찬연구는 유럽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비잔틴 학자들이 고전사상과 학문을 보존한 덕분에 15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그리스 연구가 가능했던 것이다.
Ⅶ. 결론
비잔틴 제국은 1000년 동안이나 그리스―로마의 문명을 간직하면서 서방세계를 밀려오는 이슬람세력과 슬라브 세력으로부터 보호한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마치 우리나라로 따지면 중국세력을 막아낸 고구려와 같은 역할 한 것이다. 비잔틴제국이 역사적으로 다른 이를테면 중세의 서부유럽보다는 소홀히 다루지 않은 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이 1000년 제국은 방파제 역할과 함께 서부 유럽의 르네상스 때에 많은 역할을 한 것이다. 비잔틴제국 멸망 후 이탈리아로 건너간 비잔틴의 고전 학자들로 말미암아 인문주의가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한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의 옛 비잔틴의 영토에 자리 잡고 있는 국가들이 다소 서부 유럽의 국가들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후퇴되어 있는 것이 소홀하게 대접받는 원인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서부세계 동떨어진 그리스정교회가 지배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님 이슬람화로 인해 비잔틴제국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소홀히 대접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럽문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동부 기독교 왕국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들만의 뛰어난 문화를 창조했다. 이런 제국을 소위준제국이라 명명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역사에는 가정은 없지만 만약 비잔틴제국이 없었다면 유럽은 아마 르네상스를 겪지 못한 상황에 근대로 가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유럽 본토가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시달렸을 것이다. 비잔틴 제국은 위대한 왕국이었으며, 근대와 현대를 이룩할 수 있었던 기반적인 역할을 담당한 그리스정교회의 왕국이었다.
<참고 문헌>
Peter Rietbergen, 유럽 문화사, 知와 사랑, 2006
민석홍, 西洋史槪論, 삼영사, 2002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13-최후의 노력, 한길사, 2005
시오노 나나미, 바다도시 이야기 상, 한길사, 1996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비잔티움 제국사, 까치, 1999
차하순, 새로 쓴 서양사 총론1, 탐구당, 2000
Ⅵ. 비잔틴제국의 역사적 의미
비잔틴 제국은 문화적으로 오리엔트그리스―로마이슬람등 여러 문명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정교를 배경으로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동시대의 서유럽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또한 북방의 슬라브인들에게 커다란 문화적종교적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슬라브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역할을 감당했다. 그로인해 슬라브인들은 비잔틴문화의 영향으로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러시아의 경우 비잔틴제국의 멸망후 러시아의 이반3세는 마지막황제인 콘스탄티노스11세의 조카딸과 결혼함으로써 비잔틴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한편 비잔틴문화를 러시아에 도입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잔틴문화는 서방세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비잔틴제궁은 아시아민족들의 침입으로부터 서유럽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한편, 중세를 통해 서방세계와 부단한 교섭이나 통상을 하면서 다방면으로 유럽 중세문화의 형성에 기여했다.
또한 그리스어를 공식어로 사용함으로써 고전 사상과 학문이 보존될 수 있었다. 비잔틴 학자들은 그리스 사상가의 저술과 문헌을 수집복사하여 연구 하였다. 특히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호메로스소포클레스 등과 같은 고전이 비잔틴 학자의 손을 거쳐 서방세계로 전달되었다. 비잔틴 학자들은 옛 로마 학자들과 같이 독창성보다는 모방성에 뛰어낫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고전의 분류편찬연구는 유럽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비잔틴 학자들이 고전사상과 학문을 보존한 덕분에 15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그리스 연구가 가능했던 것이다.
Ⅶ. 결론
비잔틴 제국은 1000년 동안이나 그리스―로마의 문명을 간직하면서 서방세계를 밀려오는 이슬람세력과 슬라브 세력으로부터 보호한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마치 우리나라로 따지면 중국세력을 막아낸 고구려와 같은 역할 한 것이다. 비잔틴제국이 역사적으로 다른 이를테면 중세의 서부유럽보다는 소홀히 다루지 않은 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이 1000년 제국은 방파제 역할과 함께 서부 유럽의 르네상스 때에 많은 역할을 한 것이다. 비잔틴제국 멸망 후 이탈리아로 건너간 비잔틴의 고전 학자들로 말미암아 인문주의가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한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의 옛 비잔틴의 영토에 자리 잡고 있는 국가들이 다소 서부 유럽의 국가들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후퇴되어 있는 것이 소홀하게 대접받는 원인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서부세계 동떨어진 그리스정교회가 지배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님 이슬람화로 인해 비잔틴제국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소홀히 대접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럽문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동부 기독교 왕국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들만의 뛰어난 문화를 창조했다. 이런 제국을 소위준제국이라 명명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역사에는 가정은 없지만 만약 비잔틴제국이 없었다면 유럽은 아마 르네상스를 겪지 못한 상황에 근대로 가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유럽 본토가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시달렸을 것이다. 비잔틴 제국은 위대한 왕국이었으며, 근대와 현대를 이룩할 수 있었던 기반적인 역할을 담당한 그리스정교회의 왕국이었다.
<참고 문헌>
Peter Rietbergen, 유럽 문화사, 知와 사랑, 2006
민석홍, 西洋史槪論, 삼영사, 2002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13-최후의 노력, 한길사, 2005
시오노 나나미, 바다도시 이야기 상, 한길사, 1996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비잔티움 제국사, 까치, 1999
차하순, 새로 쓴 서양사 총론1, 탐구당,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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